
풀 뜯고 뛰노는 것이 말에게는 가장 큰 지혜이다.
말은 말굽이 있어야 서리와 눈을 밟을 수 있고,
털이 있어야 바람과 추위를 막을 수 있다.
말은 풀을 뜯고 물을 마시고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것이 타고난 본성이다.
따라서 말에게는 예의라든가 규칙이라든가 화려한 집 따위는 필요 없는 법이다.
그런데 춘추시대에 백락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자기는 말을 잘 다룬다고 하면서 털을 태우고 깎고,
여러 마리를 한 마구간에 묶어 두자 죽는 놈들이 나왔다.
게다가 말을 훈련시킨다고 굶기고 물도 안 주고 마구 뛰게 했으며
재갈을 물리고 채찍질했기 때문에 말들은 반이나 죽게 되었다.
백락이라는 자가 나타나가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지만
말 조련사가 나타나면서부터 말들은 수난을 겪게 된 것이다.
또 그 시대에 도공이 나타나서
“나는 진흙을 잘 다룬다.
둥글게 만들면 나침반에 맞고, 모나게 만들면 자에 맞는다.”고 말했다.
또한 한 목수가 나타나서
“나는 나무를 잘 다룬다.
굽게 깎으면 곡척에 맞고 곧게 깎으면 먹줄에 맞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진흙이나 나무의 성질이 어떻게 기술자가 손대는 대로
나침반에도 맞고 자에도 맞으며 곡척에도 맞고 먹줄에도 맞을 수 있겠는가?
백락이 말을 잘 다룬다고 칭찬하고,
도공과 목수가 진흙과 나무를 잘 다룬다고 칭찬하는 것은
바로 인의로써 의롭게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을 가리켜
성인이니 현인이니 칭찬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정말로 천하를 잘 다스리는 자는 그런 식으로 하지 않는다.
백성들에게도 본성이 있는 것처럼, 말이란 놈을 풀을 뜯고 물 마시며 놀다가
기쁘면 서로 목을 맞대고 비비고, 또 화가 나면 들을 돌려 서로를 차기도 한다.
말의 지혜는 그 정도의 수준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말에 수레의 가로막대나 멍에를 씌워 붙들어 매면
말이란 놈은 끌 채 마구리를 부러뜨리고 멍에를 꺾으며
수레 장막을 찢고 재갈을 씹어 부숴 버리며 고삐를 물어 끊어 버린다.
그렇게 그것들을 파괴하는 데 자신의 지혜를 쓸 뿐이다.
하지만 파괴는 지혜가 아니다.
따라서 말의 지혜가 도둑처럼 된 것도,
본래 순종하는 말의 본성을 난폭하게 만든 것도
백락이 저지른 죄이다.
남의 본성을 바꾸려 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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