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고리를 훔치면 사형당하고 나라를 훔치면 왕이 된다
옛날 어진 사람으로 소문난 용봉이라는 자는 목이 잘려 죽었고,
비간이라는 자는 가슴이 깨져 죽었고, 장 홍이라는 자는 사지가 찢겨 죽었으며,
자서라는 자는 시체가 강물에 던져졌다.
그들은 어짊으로 도 목숨을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도둑의 무리들이 도척에게 “도둑에게도 도가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도척이 말했다.
“어딘들 도가 없겠느냐?
대체로 감춘 보물을 미루어 짐작해 내는 것은 성(聖)이고,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용(勇)이며,
맨 마지막에 늦게 나오는 것은 의(義)이며,
옳고 그름을 나는 것은 지(知)이고, 고르게 나누어 주는 것은 인(仁)이다.
이 다섯 가지를 갖추지 못하고 큰 도둑이 된 자는 세상에 없다.”
이 말대로라면 사람이 성인의 도를 얻지 못하면 세상에서 살 수가 없고,
도둑조차도 성인의 도를 얻지 못하면 도둑질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세상에는 착한 사람보다는 악한 사람이 더 많아서
성인은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보다 해를 끼치는 일이 더 많았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것처럼,
성인이 나타났기 때문에 큰 도둑이 생긴 것이다.
따라서 성인을 없애고 도둑을 풀어놓아야 비로소 천하가 다스려진다.
냇물이 마르면 계곡이 비고, 언덕이 무너지면 못이 메워지는 것처럼,
성인이 없어지면 큰 도둑도 없어져서 천하가 평화로워진다.
하지만 성인이 죽지 않으면 큰 도둑도 죽지 않는다.
만일 성인이 천하를 다스리게 되면 도둑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사람들이 저울추와 저울대를 만들면 도둑들이 저울추와 저울대는 물론
저울에 다는 물건까지 모조리 훔쳐가는 것처럼,
인의로 나라를 바로 잡으려고 하면
도둑들은 그 인과 의까지도 훔쳐가고 말 것이다.
왜 그런가? 갈고리를 도둑질한 자는 그 죄로 죽음을 당하지만
나라는 통째로 도둑질한 자는 왕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왕이 된 자는 인의까지도 훔쳤으니
다시 인의로 나라를 다스리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인의는 도둑들만 잘 살게 만든다.
그래서 그렇게 만든 성인들과 현자들에게 죄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인들을 몰아내 지혜를 포기하면 큰 도둑들은 곧 사라질 것이다.
그것은 마치 옥과 진주를 깨뜨려 버리면
그것을 훔치는 좀도둑들이 없어지는 이치와 같다.
그대가 돈이 없으면 도둑질을 당하지 않고, 도둑들이 훔칠 것이 없으면
도둑질을 못하기 때문에 도둑이 없어질 것이 아니겠는가?
세상에 진실과 믿음을 보장하는 도장을 모두 없애 버리면
백성들이 모두 순박해질 것이고,
곡식을 재는 말이나 저울대를 없애버리면
백성들은 다투지 않을 것이다.
천하의 모든 성스러운 법을 없애 버리면
백성들은 비로소 도를 찾으려고 할 것이다.
인의를 물리치면 천하의 덕은 도와 하나가 될 것이다.
어짊과 인의도 세상을 구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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