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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갈량은 적벽대전을 지휘하지 않았다 . 적벽대전은 삼국시대의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총 8회에 걸쳐서 이 전쟁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서는 어지러운 변화, 계속해서 일어나는 위기, 뛰어난 기지, 의기양양한 모습 등을 그리고 있어 독자를 지루하게 하..
■ 제갈량은 적벽의 화공에 참여한 적이 없다 . 중국 역사 중 208년에 일어난 적벽대전은 약자가 강자를 이긴 대표적인 싸움이다. 바로 이 적벽대전이 끝난 직후 위, 촉, 오 삼국의 균형이 이루어졌다. 전쟁문학으로서의 [삼국지연의]는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이 전쟁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
“만약 우리가 매복을 두었다가, 적이 그걸 알고 험한 지세에 의지하고자 정형 골짜기로 되 숨어버린다면, 그거야 말로 큰일 아니겠소?” 진여가 그렇게 말해 광무군 이좌거가 더는 다른 소리를 낼 수 없게 했다. 새벽녘에 한군이 골짜기를 나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장수..
“조나라는 대군을 이끌고서도 우리보다 먼저 이곳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저들은 싸우기에 이로운 곳을 골라 굳고 높은 누벽까지 쌓아 올렸다. 그렇다면 저들의 바라는 바는 뻔하다. 우리 본진을 끌어 내어 저희 대군으로 정면에서 승패를 가리려 함에 틀림이 없다. 따라서 조나라 군..
한(漢) 3년의 첫 달이 되는 겨울 10월의 해는 짧았다. 한나라 군사들이 조나라로 밀고 들기 전 마지막 야영을 하고 있는 정형(井형) 어귀는 오래잖아 저물고 밤이 깊어갔다. 장졸들이 넉넉히 쉬었다 싶은 삼경 무렵이 되자 한신은 날래고 똑똑한 기마대 2천을 골라 깨우게 했다. “모두 되도..
“내가 들으니 병법에서 아군이 적군의 열 배가 되면 포위하고, 두 배가 되면 공격하라 하였소. 지금 한신이 수만 군사를 일컬으며 오고 있지만 실제로 싸울만한 군사는 몇 천 명에 지나지 않소. 게다가 천리 먼 곳에 와서 우리를 치는 것이니 이미 장졸 모두 몹시 지쳐있을 것이오. 그런데..
위(魏)와 대(代)를 평정한 한신이 장이와 더불어 군사를 이끌고 조나라로 내려온다는 소문은 조왕(趙王) 헐(歇)과 성안군(成安君) 진여(陳餘)의 귀에도 들어갔다. 이에 그들은 대나라에서 조나라로 들어오는 길목이 되는 정형(井형)길 조나라 쪽 어귀에 군사를 모아놓고 기다렸다. 조나라의..
■ 방통은 조조에게 연환계를 사용하지 않았다. 방통(179-214)의 자는 사원이고, 양양 (지금의 호북성 양번) 사람으로, 젊었을 때부터 주목을 받았으며, 제갈량과 교류하며 비슷한 명성을 누렸다. "복룡과 봉추 중 한 사람을 얻으면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 이 말은 당시 양양 일대에 널리 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