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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완판 105장본) -1옛 이야기/고전 小說 2019. 3. 28. 17:11
구운몽(완판 105장본)
구운몽 목록
양소유는 초나라 양치사의 아들이니 승명(僧名)은 성진이라.
팔선녀라.
정경패는 정사도의 딸이니 영양공주라.
이소화는 황제의 딸이니 난양공주라.
전채봉은 진어사의 딸이니 숙인(淑人)이라.
계섬월은 낙양사람이라.
가춘운은 유인(孺人)이라.
적경홍은 하북 사람이라.
심요연은 검객이니 양주 사람이라.
백능파는 동정용왕의 딸이라.
구운몽 상
천하에 명산이 다섯이 있으니 동쪽은 동악 태산이요, 서쪽은 서악 화산이요, 남쪽은 남악 형산이요, 북쪽은 북악 항산이요, 가운데는 중악 숭산이다. 오악 중에 오직 형산이 중국에서 가장 멀어 구의산이 그 남쪽에 있고, 동정강이 그 북쪽에 있고, 소상강 물이 그 삼면에 둘러 있으니, 제일 수려한 곳이다. 그 가운데 축용, 자개, 천주, 석름, 연화 다섯 봉우리가 가장 높으니, 수목이 울창하고 구름과 안개가 가리워 날씨가 아주 맑고 햇빛이 밝지 않으면 사람이 그 근사한 진면목을 쉽게 보지 못하였다.
진나라 때 선녀 위부인이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선동(仙童)과 옥녀(玉女)를 거느리고 이 산에 와 지키니, 신령한 일과 기이한 거동은 다 헤아리지 못할 정도였다.
당나라 시절에 한 노승이 있어 서역 천축국에서 와 연화봉 경치를 사랑하여, 제자 오륙백 인을 데리고 연화봉 위에 법당을 크게 지었으니, 혹 육여화상이라 하기도 하고 혹 육관대사라 하기도 하였다.
그 대사가 대승법(大乘法)으로 중생을 가르치고 귀신을 다스리니 사람이 다 공경하여 생불(생불)이 세상에 나왔다 하였다. 무수한 제자 가운데 성진이라 하는 중이 삼장경문(三藏經文)을 모르는 것이 없고 총명한 지혜를 당할 사람이 없으니, 대사가 극히 사랑하여 입던 옷과 먹던 바리때를 성진에게 전하고자 하였다.
대사가 매일 모든 제자와 함께 불법을 강론하는데 동정(洞庭)용왕이 백의(白衣)노인으로 변하여 법석(法席)에 참예해 경문을 들었다.
대사가 제자를 불러 말하였다.
"나는 늙고 병들어 산문(山門) 밖에 나가지 못한 지 십여 년이니 너의 제자 중에 누가 나를 위하여 수부(水府)에 들어가 용왕께 보답하고 돌아오겠는가?"
성진이 두 번 절하며 말하였다.
"소자가 비록 불민(不敏)하오나 명을 받아 가겠습니다."
대사가 크게 기뻐 성진을 명하여 보내니 성진이 일곱 근이나 되는 가사(袈裟)를 떨쳐 입고 육환장(六環杖)을 둘러 짚고 표연히 동정을 향하여 갔다. 얼마 후에 문을 지키는 도인(道人)이 대사께 고하여 말하였다.
"남악 위부인(衛夫人)이 여덟 선녀를 보내어 문밖에 왔습니다."
대사가 명하여 부르시니 팔선녀가 차례로 들어와 인사하고 끓어 않자 부인의 말씀을 여쭈어 말하였다.
"대사는 산 서편에 계시고 저는 산 동편에 있어 떨어진 거리가 멀지 아니하지만 자연히 일이 많아 한번도 법석에 나아가 경문을 듣지 못하오니, 사람을 대하는 도리도 없고, 또한 이웃과 교제하는 뜻도 없기에 시비를 보내어 안부를 묻고, 하늘 꽃과 신선의 과일 그리고 칠보문금(七寶紋錦)으로 구구한 정성을 표합니다."
하고, 각각 선과(仙果)와 보배를 눈 위에 높이 들어 대사께 드리니, 대사가 친히 받아 시자(侍子)를 주어 불전에 공양하고, 또 합장하여 사례하며 말하였다.
"노승이 무슨 공덕이 있기에 이렇듯 상선(上仙)의 풍성한 선물을 받겠는가?"
하며, 이어서 큰 재(齋)를 베풀어 팔선녀를 대접하여 보냈다.
팔선녀가 대사께 하직하고 산문 밖에 나와 서로 손을 잡고 말하였다.
"이 남악의 물 하나 산 하나가 다 우리 집 경계인데 육환대사가 거처 기거하신 후로는 동서로 분명히 나뉘게 되어 연화봉 아름다운 경치를 지척에 두고도 구경하지 못한지 오래되었다. 이제 우리 부인의 명을 받아 이 땅에 왔으니 만나기 힘든 좋은 기회라, 또 봄빛이 좋고 해가 저물지 아니 하였으니 이 좋은 때를 맞아 저 높은 대에 올라 흥을 타며 시를 읊어 풍경을 구경하고 돌아가 궁중에 자랑하는 것이 어떠한가?"
하고, 서로 손을 이끌고 천천히 걸어 올라 폭포에 나아가 흐름을 보고 물을 쫓아 내려가 돌다리 위에 쉬니 이때는 바로 춘삼월이었다. 화초는 만발하고 구름과 안개는 자욱한데 봄새 소리에 춘흥이 호탕하고 물색이 사람을 붙잡는 듯하여, 팔선녀가 자연 몸과 마음이 산란하고 춘흥이 일어나 차마 떠나지 못하여 편안히 웃고 말하며 돌다리에 걸터 앉아 경치를 희롱하니, 낭낭한 웃음은 물소리에 어울리고 아름답고 고운 얼굴은 물 가운데 비치어 완전히 한 폭의 미인도라 하면 미인도를 잘 그린 주방(周昉)의 손 아래에 갓 나온 듯하였다.
온갖 희롱하며 떠날 줄 모르더니, 이때 성진이 동정에 가 물결을 헤치고 수정궁(水晶宮)에 들어가니 용왕이 크게 기뻐하여 몸소 문무(文武)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고 궁문 밖에 나가 맞아 들어가 자리를 정한 후에 성진이 땅에 엎드려 대사의 말씀을 낱낱이 아뢰니, 용왕이 공경하여 사례하고 잔치를 크게 베풀어 성진을 대접할 때, 신선의 과일과 채소는 인간 세상의 음식과 같지 않았다.
용왕이 잔을 들어 성진에게 삼배(三盃)를 권하여 말하였다.
“이 술이 좋지는 않으나 인간 세상의 술과는 다르니 과인(寡人)의 권하는 정을 생각하라.”
성진이 재배하여 말하였다.
“술은 사람의 정신을 헤치는 것이라 불가(佛家)에서 크게 경계하니 감히 먹지 못하겠습니다.”
용왕이 지성으로 권하니 성진이 감히 사양치 못하여 석 잔 술을 먹은 후에 용왕께 하직하고 수궁에서 떠나 연화봉을 행하였다. 연화산 아래에 당도하니 취기가 크게 일어나 갑자기 생각하여 말하였다.
‘사부(師傅)께서 만일 나의 취한 얼굴을 보면 반드시 무거운 벌을 내리실 것이다.’
하고, 가사를 벗어 모래 위에 놓고 손으로 맑은 물을 쥐어 얼굴을 씻는데, 문득 기이한 향내가 바람결에 진동하니 마음이 자연 호탕하였다.
성진이 이상히 여겨 말하였다.
“이 향내는 예사로운 초목의 향내가 아니다. 이 산 중에 무슨 기이한 것이 있는가?”
하고, 다시 의관을 정제하고 길을 찾아 올라가니, 이때 팔선녀가 돌다리 위에 않다 있었다. 성진이 육환장을 놓고 합장하여 재배하고 말하였다.
“모든 보살님은 잠깐 소승(小僧)의 말씀을 들어주십시오. 천승(賤僧)은 연화 도량 육관대사의 제자로서 사부의 명을 받아 용궁에 갔다 오는데, 이 좁은 다리 위에 모든 보살님이 앉아 계시니 천승이 갈 길이 없어 부탁합니다, 잠깐 옮겨 앉아서 길을 빌려주십시오.”
팔선녀가 대답하고 절하며 말하였다.
“첩 등은 남악 위부인의 시녀인데 부인의 명을 받아 연화 도량 육관대사께 문안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 다리 위에 잠깐 쉬고 있습니다. <예기(禮記)>에 ‘남자는 왼편으로 가고, 여자는 오른편으로 간다.’ 하였습니다. 첩 등이 먼저 와 앉았으니, 원컨대 화상(和尙)께서는 다른 길을 구하십시오.”
성진이 답하여 말하였다.
“물은 깊고 다른 길이 없으니 어디로 가라 하십니까?”
선녀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옛날 달마존자(達磨尊者)라 하는 대사는 연 꽃잎을 타고도 큰 바다를 육지같이 왕래하였으니, 화상이 진실로 육관대사의 제자라면 반드시 신통한 도술이 있을 것이니, 어찌 이 같은 조그마한 물을 건너기를 염려하시며 아녀자와 길을 다투십니까?”
성진이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모든 낭자의 뜻을 보니 이는 반드시 값을 받고 길을 빌려주시고자 하는 것이니, 본디 가난한 중이라 다른 보화는 없고 다만 행장에 지닌 백팔염주가 있으니, 빌건대 이것으로 값을 드리겠습니다.“
하고, 목의 염주를 벗어 손으로 만지더니 복숭아꽃 한 가지를 던지거늘, 팔선녀가 그 꽃을 구경하니 꽃이 변하여 네 쌍의 구슬이 되어 그 빛이 땅에 가득하고 상서로운 기운은 하늘에 사무치니 향내가 천지에 진동하였다.
팔선녀가 그제야 일어나 움직이며 말하였다.
“과연 육관대사의 제자구나.”
하며, 각각 하나씩 손에 쥐고 성진을 서로 돌아보고 웃으며 바람을 타고 공중을 향해 갔다. 성진이 홀로 돌다리 위에서 눈을 들어보니 팔선녀는 간 곳이 없었다.
한참 후에 채색 구름이 흩어지고 향내가 사라지니 성진이 마음을 진정치 못하여 홀린 듯 취한 듯 돌아와 용왕의 말씀을 대사께 아뢰자, 대사가 말하였다.
“어찌 늦었는가?”
성진이 대답해 말하였다.
“용왕이 심히 만류하기에 차마 떨치지 못하여 지체하였습니다.”
대사가 대답하지 아니하고,
“네 방으로 가라.”
하였다. 성진이 돌아와 밤에 혼자 빈방에 누우니 팔선녀의 말소리가 귀에 쟁쟁하고 얼굴 빛은 눈에 아른거려 앞에 앉아 있는 듯, 옆에서 당기는 듯 마음이 황홀하여 진정치 못하다가 문득 생각하였다.
‘남자로 태어나서 어려서는 공자와 맹자의 글을 읽고, 자라서는 요순 같은 임금을 섬겨, 나가면 백만 대군을 거느려 적진에 횡행하고, 들어서는 백관(百官)을 장악하는 재상이 되어 몸에는 비단 두루마기를 입고, 허리에는 황금으로 만든 도장을 차고, 임금을 섬기고 백성을 달래며, 눈에는 아리따운 미색을 희롱하고, 귀에는 좋은 풍류 소리를 들으며, 영화를 당대에 자랑하고 공명을 후세에 전하면 그것이야말로 진실로 대장부의 일일 텐데 슬프다, 우리 불가는 다만 한 바리때 밥과 한 잔 정화수요, 수삼 권 경문과 백팔염주일 따름이요, 그 도가 허무하고 그 덕이 사라져 없어지니, 가령 도통한 들 넋이 한번 불꽃 속에 흩어지면 뉘 한낱 성진이 세상에 났던 줄을 알리오.’
이럭저럭 잠을 이루지 못하여 밤이 이미 깊었다, 눈을 감으면 팔선녀가 앞에 앉았고 눈을 떠보면 문득 간 데가 없었다. 성진이 크게 뉘우쳐 말하였다.
“불법(佛法)공부는 마음을 정하는 것이 제일인데 이 사사로운 마음이 이렇듯 일어나니 어찌 앞날을 바라겠는가?”
하고, 즉시 염주를 굴리며 염불을 하는데 갑자기 창 밖에서 동자가 급히 말하였다.
“사형는 주무십니까? 사부께서 부르십니다.”
성진이 크게 놀라 동자를 따라 바삐 들어가니 대사가 모든 제자를 거느려 있는데 촛불이 대낮 같았다. 대사가 크게 화를 내며 말하였다.
“성진아, 네 죄를 아느냐?"”
성진이 크게 놀라 신을 벗고 뜰에 나려 엎드려 말하였다.
“소자가 사부를 섬긴 지 십 년이 넘었지만 조금도 불순불공한 일이 없었으니 죄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대사가 크게 화를 내며 말하였다.
“네 용궁에 가 술을 먹었으니 그 죄도 있거니와 오가다 돌다리 위에서 팔선녀와 함께 언어를 희롱하고 꽃 꺾어 주었으니 그 죄 어찌하며, 돌아온 후 선녀를 그리워하여 불가의 경계는 전혀 잊고 인간 부귀를 생각하니 그러하고서 공부를 어찌 하겠느냐, 네 죄가 중하여 이곳에 있지 못할 것이니, 네 가고자 하는 데로 가거라.”
성진이 머리를 두드리고 울며 말하였다.
“소자가 죄 있어 아뢸 말씀이 없지만, 용궁에서 술을 먹은 것은 주인이 힘써 권하였기 때문이요, 돌다리에서 수작한 것은 길을 빌리기 위함이었고, 방에 들어가 망령된 생각이 있었지만 즉시 잘못인 줄을 알아 다시 마음을 정하였으니 무슨 죄가 있습니까? 설사 죄가 있다면 종아리나 때리셔 경계하실 것이지 박절하게 내치십니까? 소자가 십이 세에 부모를 버리고 친척을 떠나 사부님께 의탁하여 머리를 깎아 중이 되었으니, 그 뜻을 말한다면 부자의 은혜가 깊고 사제의 분별이 중하니, 사부를 떠나 연화도량을 버리고 어디로 가라 하십니까?”
대사가 말하였다.
“네 마음이 크게 변하여 산중에 있어도 공부를 이루지 못할 것이니 사양치 말고 가거라, 연화봉을 다시 생각한다면 찾을 날이 있을 것이다.”
하고, 이어서 크게 소리쳐 황건역사(黃巾力士)를 불러 분부하여 말하였다.
“이 죄인을 압송하여 풍도(豐都)에 가 염라대왕께 부쳐라.”
성진이 이 말씀을 듣고 간장이 떨어지는 듯하였다. 머리를 두드리며 눈물을 흘리고 사죄하여 말하였다.
“사부, 사부님은 들으십시오. 옛적 아란존자(阿難尊者)는 창가(娼家)에 가 창녀와 동침하였지만 석가여래께서 오히려 죄하지 아니하였으니, 소자가 비록 근신하지 않은 죄가 있으나 아란존자에게 비하면 오히려 가벼운데, 어찌 연화봉을 버리고 풍도로 가라 하십니까?”
대사가 말하였다.
“아란존자는 비록 창녀와 동침하였으나 그 마음은 변치 아니 하였지만, 너는 한번 요색(妖色)을 보고 전혀 본심을 잃으니 어찌 아란존자와 비교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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