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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주부전(토끼전)-2
    옛 이야기/고전 小說 2019. 3. 11. 15:44

    초목군생(草木群生) 온갖 물건들이 다 스스로 즐거움을 가져 있으니, 작작(灼灼)한 두견화는 향기를 띠었는데 얼숭얼숭 호랑나비는 춘흥을 못 이기어서 이리저리 흩날리고, 청청한 수양 늘어진 시냇가에 날아드는 황금같은 꾀꼬리는 벗 부르는 소리로 구십춘광(九十春光)을 희롱하고, 꽃 사이에 잠든 학은 자취 소리에 자주 날고, 가지 위에 두견새는 불여귀(不如歸)를 화답하니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라. 소상강 기러기는 가노라고 하직하고, 강남서 나오는 제비는 왔노라고 현신(現身)하고, 조팝나무 비쭉새 울고, 함박꽃에 뒤웅벌이오, 방울새 떨렁, 물떼새 찍걱, 접동새 접둥, 뻐국새 벅, 까마귀 골각, 비둘기 국국 슬피 우니 근들 아니 경()일소냐. 천산과 만산에 홍장(紅粧) 찬란하고 앞 시내와 뒤 시내에 흰 깁을 펴인 듯, 푸른 대나무와 소나무는 천고의 절개요, 복숭아꽃과 살구꽃은 순식간 봄이라. 기괴한 바윗돌은 좌우에 층층(層層)한데 절벽 사이 폭포수는 이 골 물 저 골 물 합수(合水)하여 와당탕퉁텅 흘러가는 저 경개 무진(無盡) 좋을시고.

     

    그 구경 다하고 나무수풀 사이로 들어가면 사면으로 토끼 자취를 살피더니 한 곳을 바라보니 각색 짐승 내려온다. 발발떠는 다람쥐며, 노루 사슴 이리 승냥이 곰 도야지 너구리 고슴도치 사지주지 원숭이 범 코끼리 여우 등이 담비 성성이라. 좌우로 오는 중에 토끼 자취 알 수 없어 움친 목을 길게 늘여 이리저리 휘둘러 살피더니 후면으로 한 짐승 들어오는데 화본과 방불(彷佛)하다. 토끼 보고 그림 보니 영낙없는 네로구나. 자라 혼자 마음에 매우 기뻐하여 진가(眞假)를 알려할 때 저 짐승 거동 보소. 혹 풀도 뜯적이며 싸리순도 뜯적이며 층암절벽 사이에 이리저리 뛰어 뺑뺑 돌며 할금할금 강똥강똥 뛰놀거늘 자라 음성을 높혀서 점잖게 불러 가로되,

     

    * 수요장단(壽夭長短): 오래 삶과 일찍 죽음. * 소상강(瀟湘江): 중국 동정호 남쪽에 있는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을 함께 부르는 말로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 벽계산간(碧溪山間): 푸른 시내가 흐르는 산골. * 방출화류(放出花柳): 꽃과 버들이 피다. * 작작(灼灼): 꽃이 핀 모양이 화려하고 찬란한. * 구십춘광(九十春光): 봄의 석달 90일 동안. *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별세계. 이백(李白)<산중문답(山中問答)>問如何事棲碧山 笑而不答自閑, 桃花流水沓然去 別有天地非人間에서 나온 말. * 홍장(紅粧): 붉게 피어 있는 꽃의 비유. * : 명주 실로 바탕을 좀 거칠게 짠 비단. * 사지주지: 사자(獅子). 사지와 주지는 각각 사자를 가리키는 말임. * 담비: 족제비과의 동물. 족제비와 비슷하며 황갈색이나 겨울에는 담색(淡色)으로 변함. * 성성이: 유인원과의 짐승. 수상(樹上) 생활을 하는 오랑우탄. * 방불(彷佛)하다: 비슷하다. * 진가(眞假): 진짜와 거짓. * 할금할금: 남의 눈치를 살피려고 연해 곁눈질을 하는 모양. * 강똥강똥: 채신 없이 경솔하게 뛰는 모양.

     

    고봉준령(高峰峻嶺)에 신수도 좋다. 저 친구, 그대 토선생이 아니신가? 나는 본시 수중호걸이러니 양계에 좋은 벗을 얻고자 광구터니 오늘이야 산중호걸 만났도다. 기쁜 마음 없지 못하여 청하노니, 선생은 아모커나 허락하심을 아끼지 아니 하실까 하나이다.”

     

    하니, 토끼 저를 대접하여 청함을 듣고 가장 점잖은 체하며 대답하되,

     

    거 뉘라서 날 찾는고. 산이 높고 골이 깊은 이 강산 경개 좋은데, 날 찾는 이 거 뉘신고. 수양산(首陽山)에 백이숙제(伯夷叔齊)가 고비 캐자 날 찾는가, 소부(巢父) 허유(許由)가 영천수에 귀 씻자고 날 찾는가. 부춘산(富春山) 엄자릉(嚴子陵)이 밭 갈자고 날 찾는가, 면산()에 불탄 잔디 개자추(介子推)가 날 찾는가. 한 천자의 스승 장량(張良)이가 퉁소 불자 날 찾는가, 상산사호(商山四皓) 벗님네가 바둑두자 날 찾는가. 굴원(屈原)이가 물에 빠져 건져 달라 날 찾는가, 시중천자 이태백(李太白)이 글 짓자고 날 찾는가. 주덕송(酒德頌) 유령(劉伶)이가 술 먹자고 날 찾는가, 염락관민(濂洛關) 군현들이 풍월 짓자 날 찾는가. 석가여래(釋迦如來) 아미타불 설법하자 날 찾는가, 안기생(安期生) 적송자(赤松子)가 약 캐자고 날 찾는가. 남양초당(南陽草堂)에 제갈선생 해몽하자 날 찾는가, 한 종실 유황숙(劉皇叔)이 모사 없어 날 찾는가. 적벽강(赤壁江) 소동파(蘇東坡)가 선유(船遊)하자 날 찾는가, 취옹정(醉翁亭) 구양수(歐陽修)가 잔치하자 날 찾는가.”

     

    * 백이숙제(伯夷叔齊): 원래 고죽국(孤竹國)의 왕자로 은()나라 신하가 되었다. 후에 주()나라 무왕(武王)이 걸주(桀紂)를 치려는 것을 만류하다가,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 죽었다. * 고비: 고사리 * 허유(許由): 요임금이 허유에게 벼슬을 시키자 허유는 영천수에 귀를 씻었다. 소부가 소에게 물을 먹이려 왔다가 그 사연을 듣고 상류로 올라가 소에게 물을 먹였다고 한다. * 엄자릉(嚴子陵): 후한(後漢) 때의 엄광(嚴光). 광무제가 동문이라 하여 벼슬을 주자 부춘산에 숨어 농사지으며 살았다. 자릉은 그의 자(). * 개자추(介子推): 중국 춘추시대의 선비. 면산에 숨은 그를 찾기 위해 진문공(晉文公)이 산에 불을 질렀으나 나가지 않고 타죽었다. * 장량(張良): 중국 전한(前漢)의 공신 장자방(張子房). 유방(劉邦)의 모신(謀臣)으로 소하한신과 함께 한나라 창업의 삼걸(三傑)이라 칭함. * 상산사호(商山四皓): 진시황 때 상산(商山)에 숨어 산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각리선생(角里先生). 이들 모두 눈썹이 하얗기 때문에 사호라 부른다. * 굴원(屈原): 전국시대 초()나라 사람으로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멱라수(羅水)에 투신 자살했다. * 이태백(李太白): 중국 당대(唐代) 제일의 시인이며 시선(詩仙)이라고까지 불리운 이백(李白). 현종(玄宗) 때 한림학사를 지냈으나 양귀비의 노여움을 사서 추방되어 방랑생활을 함. 태백은 그의 자(). * 유령(劉伶): 중국 진()나라의 시인이자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이다. 술을 남달리 좋아하여 <주덕송>을 짓기도 하였다. 백륜(伯倫)은 그의 자()이다. * 염락관민(濂洛關): 중국 송()나라 때의 성리학자인 주돈이(周敦), 정호(程顥), 정이(), 장재(張載), 주희(朱熹). * 안기생(安期生): 진시황이 그에게 많은 재물을 주었으나 모두 버리고 은둔하며 장수하여 선인(仙人)이라 불리운 진()나라 사람. * 적송자(赤松子): 신선의 이름. 신농씨(神農氏) 때의 우사(雨師). * 유황숙(劉皇叔): 유비(劉備). * 소동파(蘇東坡): 중국 북송(北宋)의 문인 소식(蘇軾).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적벽부(赤壁賦)>를 지었다. * 구양수(歐陽修): 중국 송()나라 문인정치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 호는 취옹(醉翁).

     

    두 귀를 쫑그리고 사족을 자주 놀려 가만히 와서 보니, 둥글 넙적 거뭇 편편하거늘 고이히 여겨 주저할 즈음에 자라가 연하여 가까이 오라 부르거늘, 아모커나 그리하라 하고 곁에 가서 서로 절하고 잘 앉은 후에, 대객(待客)의 초인사로 당수복(唐壽福) 백통(白筒)대와 양초(兩草) 일초(日草) 금강초(金剛草)며 지권연(紙卷煙) 여송연(呂宋煙)과 금패 밀화 금강석 물부리는 다 던져두고 도토리통에 싸리순이 제격이라. 자라가 먼저 말을 내되,

     

    토공의 성화(聲華)는 들은 지 오랜지라 평생에 한 번 보기를 원하였더니 오늘이 무슨 날인지 호걸을 상봉하니 어찌하여 서로 보기가 이다지 늦느뇨?”

     

    한즉, 토선생이 대답하되,

     

    세상에 나서 사해를 편답(遍踏)하며 인물 구경도 많이 하였으되 그대 같은 박색은 보던 바 처음이로다. 담구멍을 뚫다가 학치뼈가 빠졌는가 발은 어이 뭉둑하며, 양반보고 욕하다가 상투를 잡혔던가 목은 어이 기다라며, 색주가에 다니다가 한량패에 밟혔던지 등이 어이 넓적하고, 사면으로 돌아보니 나무접시 모양이로다. 그러나 성함은 뉘댁이라 하시오? 아까 한 말은 다 농담이니 거기 대하여 너무 노여워하지 말으시기 바랍니다.”

     

    하거늘, 자라가 그 말을 듣고 마음에 불쾌는 하지마는 마음을 흠뻑 돌려 눅진눅진이 참고 대답하되,

     

    내 성은 별이요, 호는 주부로다. 등이 넓기는 물에 다녀도 가라않지 아니함이요, 발이 짧은 것은 육지에 다녀도 넘어지지 아니함이요, 목이 긴 것은 먼 데를 살펴봄이요, 몸이 둥근 것은 행세를 둥글게 함이라. 그러하므로 수중에 영웅이요, 수족(水族)에 어른이라. 세상에 문무겸전(文武兼全)하기는 나 뿐인가 하노라.”

     

    토끼 가로되,

     

    내가 세상에 나서 만고풍상(萬古風霜)을 다 겪다시피 하였으되 그대같은 호걸은 이제 처음 보는도다.”

     

    자라 가로되,

     

    그대 연세가 얼마나 되관대 그다지 경력이 많다 하느뇨?”

     

    토끼 가로되,

     

    내 연기(年紀)를 알 양이면 육갑을 몇 번이나 지내였는지 모를 터이오. 소년 시절에 월궁에 가 계수나무 밑에서 약방아 찧다가 유궁후예(有窮后)의 부인이 불로초(不老草)를 얻으러 왔기로 내가 얻어 주었으니 이로 보면 삼천갑자 동방삭(東方朔)은 내게 시생(侍生)이오, 팽조(彭祖)의 많은 나이 내게 대하면 구상유취(口尙乳臭)오 종과 상전이라. 이러한즉 내가 그대에게 몇십 갑절 할아비 치는 존장(尊長)이 아니신가.”

     

    * 고이히: 괴이(怪異)하게 * 당수복(唐壽福): 담뱃대의 한 가지. * 양초(兩草) 일초(日草): 담배의 종류. 양초는 한 냥씩 묶은 질이 좋은 담배이고, 일초는 일본에서 수입한 아주 가는 살담배. * 지권연(紙卷煙): 지궐련. 잘게 썬 담배를 얇은 종이로 길게 만 것. * 여송연(呂宋煙): 엽궐련. 담배잎을 통채로 돌돌 말아 만든 담배. * 물부리: 담뱃대나 궐련을 끼어 입에 무는 부분. * 성화(聲華): 세상에 드러난 명성. * 편답(遍踏): 편력(遍歷). 널리 돌아다님 * 학치뼈: 정강이뼈. * 만고풍상(萬古風霜): 오래오래 겪어 온 많은 고생. * 연기(年紀): 대강의 나이. * 육갑: 육십갑자(六十甲子). * 유궁후예(有窮后): 하대(夏代)의 임금. 활을 잘 쏘았으며, 신선세게에 올라가 불사약과 불로초를 구했다 함. * 동방삭(東方朔): 중국 한()나라 무제(武帝) 때의 사람. 서왕모(西王母)의 신선 복숭아를 훔쳐 먹어 죽지 않고 장수하였으므로 삼천갑자 동방삭이라고 부름. * 시생(侍生): 웃어른에 대한 자기의 겸칭. * 팽조(彭祖): 요 임금의 신하로 은나라 말까지 7백 여년을 살았다는 신선. * 구상유취(口尙乳臭): 입에서 젖내가 난다는 뜻으로 언어와 행동이 유치함을 일컬음.

     

    자라가 가로되,

     

    그대의 말이 참 자칭 천자라 하는 것과 다름이 없도다. 아모커나 나의 이왕 한 일을 대강 말할 것이니 좀 들어 보아라. 모르면 모르거니와 아마 놀래기가 십상팔구 될 걸. 어찌 그러한고 하니, 반고씨(盤固氏) 생신날에 산곽(産藿) 진상 내가 하고, 천황씨(天皇氏) 등극하실 때에 술안주 어물진상 내가 하고, 지황씨(地皇氏)의 화덕왕(火德王)과 인황씨(人皇氏)의 구주(九州)를 마련하던 그 사적을 어제까지 기억하며, 유소씨(有巢氏)의 나무 얽어 깃들임과 수인씨(燧人氏)의 불을 내여 음식 익혀 먹는 일을 나와 함께 지내였고, 복희씨(伏羲氏)의 그은 팔괘(八卦)로 용마(龍馬) 하도수를 나와 함께 풀어냈고 공공씨(共工氏)가 싸우다가 하늘이 무너져서 여와씨()가 오색 돌로 보첨(補添)할 제 석수 편수 내가 하고, 신농씨(神農氏)가 장기 내고 온갖 풀을 맛보아서 의약을 마련할 제 내가 역시 참견하고, 헌원씨(軒轅氏)가 배 지을 제 목방패장 내가 하고, 탁록(鹿) 들에서 치우(蚩尤)가 싸울 적에 돌기를 내가 천거하여 치우를 잡게 하고, 금천씨(金天氏)의 봉조서(奉調書)와 전욱씨(頊氏)의 제신(制臣)하던 술법 내가 훈수하고, 고신씨(高辛氏)의 자언기명(自言其名)하던 것을 내 귀로 들어 있고, 요임금의 강구(康衢)노래 지금까지 흥락하고, 순임금의 남풍가(南風歌)는 어제 들은 듯 즐거워라. 우임금의 구년 홍수 다스릴 제 그 공덕을 내가 찬성하고, 탕임금의 상림(桑林) 들에서 비 빌던 일이며, 주나라 문왕 무왕과 주공의 찬란하던 예악문물이 다 눈에 역력하고, 서해 바다 태평양에 유람 갔다가 굴원이 명라수에 빠질 적에 구하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유한(有恨)이라. 이로 헤아려 보면 나는 그대에게 몇 백 갑절 왕존장(王尊長)이 아니신가? 그러나 저러나 재담은 그만두고 세상 재미나 서로 이야기하여 보세.”

    * 반고씨(盤固氏): 천지개벽 때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다는 전설상의 천자. * 산곽(産藿): 해산(解産) 미역. * 천황씨(天皇氏): 중국 태고시대(太古時代)의 전설적인 인물. 삼황(三皇) 중의 한 사람이요 으뜸이다. * 화덕왕(火德王): 불을 담당한 신령. 화덕진군(火德眞君) 또는 축융(祝融). * 구주(九州): 중국의 행정구역을 아홉으로 나누었던 데서 중국 전역을 이르는 말. * 유소씨(有巢氏): 새가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을 보고 사람에게 집을 짓는 것을 가르쳤다는 중국 고대의 전설상의 인물. * 수인씨(燧人氏): 복희씨 신농씨와 함께 삼황 중의 한 사람으로, 인간에게 불의 사용법을 가르쳤다는 전설상의 인물. * 복희씨(伏羲氏): 중국 고대에 삼황오제의 우두머리며 팔괘를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전설상의 인물. 그가 재위하는 동안 황하(黃河)에서 용마(龍馬)가 하도(河圖)를 지고 나왔다고 한다. * 공공씨(共工氏): 요임금 때 물을 다스리던 관리. * 여와씨(): 중국의 전설상의 인면사신(人面蛇身)의 여신. 오색 돌을 빚어서 하늘의 갈라진 곳을 메웠다고 함. 보첨(補添): 보충하여 덧붙이는 것. * 신농씨(神農氏): 중국의 전설상의 제왕으로 삼황의 한 사람. 백성에게 경작을 가르친 데서 신농이라고 하며 불의 덕으로 왕이 된 데서 염제(炎帝)라고도 함. * 헌원씨(軒轅氏): 오제(五帝) 가운데 황제의 다른 이름. * 치우(蚩尤): 중국의 전설상의 인물. 난리를 일으켜 황제(黃帝)와 탁록에서 싸우다가 패하여 잡혀 죽었다 함. * 금천씨(金天氏): 금덕왕(金德王) 소호(少昊)의 다른 이름. * 전욱씨(頊氏): 중국 전설에 나오는 오제(五帝)의 하나. 황제(黃帝)의 손자로 고양(高陽)에서 나라를 일으킴. * 자언기명(自言其名): 제가 자신의 이름을 말함. * 강구(康衢)노래: 요임금이 미복잠행(微服潛行)할 때 길을 지나다가 들었다는 동요와 격양가(擊壤歌). * 남풍가(南風歌): 순임금이 오현금(五絃琴)을 만들고 지었다는 노래. “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兮 南風之時兮 可以阜吾民之財兮라는 내용임. * 상림(桑林): 탕임금이 즉위한 후 칠년간 가뭄이 들자 비를 빌던 숲.

     

    토끼 가로되,

     

    인간 재미를 말하고 보면, 형이 재미가 나서 오줌을 졸졸 쌀 것이니 더 둥글넓적한 몸이 오줌에 빠져서 선유하느라고 헤어나지 못할 것이니 그 아니 불쌍한가?”

     

    자라가 가로되,

     

    어찌하였던지 대강 말하라

     

    토끼 가로되,

     

    심산 풍경 좋은 곳에 산봉우리는 칼날같이 하늘에 꽂혔는데 배산임류(背山臨流)하여 앞에는 춘수만사택(春水滿四澤)이요, 뒤에는 하운(夏雲)이 다기봉(多奇峰)이라. 명당에 터를 닦고 초당 한 칸 지어내니, 반 칸은 청풍이오 반칸은 명월이라. 흙섬돌에 대사리짝이 정쇄(精灑)하기 다시 없다. 학은 울고 봉은 나는도다. 뒤 뫼에서 약을 캐고 앞 내에서 고기 낚아 입에 맞고 배부르니 이 아니 즐거운가? 청천에 밝은 달이 조요하되, 만학천봉에 홀로 문을 닫혔도다. 한가한 구름은 그림자를 희롱하니 별유천지비인간이라. 몸이 구름과 같이 세상 시비 없고 보니 내 종적을 그 뉘 알랴.

     

    추위가 지나가 더위가 오니 사시(四時)를 짐작하고, 날이 가고 달이 오니 광음을 나 몰라라. 녹수청산 깊은 곳에 만화방초(滿花芳草) 우거지고, 난봉과 공작새의 서로 부르는 소리 이 봉 저 봉 풍악이오, 앵무새와 두견새며 꾀꼬리의 소리 이 골 저 골 노래로다. 석양에 취한 흥을 반쯤 띠고 강산풍경 구경하며 곤륜산(崑崙山) 상상봉에 흔 구름을 쓸어치고 지세 형편 굽어 보니 태산은 청룡이오 화산은 백호로다. 상산은 현무 되고 형산은 주작이라. 소상강과 팽려택으로 못을 삼고, 황하수와 양자강 무제의 백량대는 눈가에 의의하다.

     

    적벽강(赤壁江)의 무한한 경개를 풍월로 수작하고, 아미산의 반달 빛은 취중에 희롱하며, 삼신산에 불로초도 뜯어먹고 동정호에 목욕도 하다가 산 속으로 돌아드니, 층암은 집이 되고 낙화는 자리 삼아 한가히 누웠으니, 수풀 사이 밝은 달은 은근한 친구 같고, 소나무에 바람 소리 은은하거늘 돌베개에 높이 누워 취흥으로 잠을 드니 어디서 학의 소리 잠든 나를 깨올세라. 이윽고 일어나 한산(寒山) 석경(石徑) 빗긴 길에 청려장(靑黎杖)을 의지하고 이리저리 배회하니 흰 구름은 천리나 만리에 덮여 있고 밝은 달은 앞 시내와 뒤 시내에 얹혔더라. 산이 첩첩하니 산은 청천 밖에 떨어지고, 물이 잔잔하니 이수는 백로주에 갈라져 있도다. 도도한 이 내 몸이 산수간에 누웠으니 무한한 경개는 정승 주어도 아니 바꾸고 노닐러라.

     

    동녘 둔덕에 올라 휘파람 부니 한가하기 측량 없고, 앞 시내를 굽어보며 글 지으니 흥미가 무궁하다. 오동(梧桐)에 밝은 달은 가슴에 비취고, 양류에 맑은 바람 얼골에 불어 있다. 청풍명월이 그 아니 내 벗인가. 병 없이 성한 이 내 몸이 희황세계(羲皇世界)에 한가한 백성이 되니, 중도 아니며 속한(俗漢)도 아니요, 오직 평지의 신선이라. 강산풍경을 임의대로 희롱한들 그 뉘라서 시비하랴.

     

    이화 도화 만발하고 푸른 버들 휘여진대 동서남북 미색들은 시냇가에 늘어 앉아 섬섬옥수를 넌짓 들어 한가로이 빨래할 제, 물 한 줌 덤벅 쥐어다가 연적같은 젖통이를 슬근슬쩍 씻는 양은 요지연(瑤池宴)과 방불(彷佛)하고, 어진 오월이라 단오일에 녹음방초 우거지고 녹의홍상(綠依紅裳) 미인들이 버들가에 그네 매고 짝지어 추천하는 모양 광한루(廣寒樓) 경개가 완연하다. 풍류호걸 이 내 몸이 저러한 절대가인(絶對佳人) 구경하니 아마도 세상 재미는 나뿐인가 하노라.”

     

    * 춘수만사택 하운다기봉: ‘봄 물이 온갖 연못에 가득차고, 여름 구름이 기이한 봉우리에 많구나.’ 도잠(陶潛)<사시시(四時詩)> ”春水滿四澤 夏雲多奇峰 秋月揚明輝 冬嶺秀孤松에서 인용한 것임. * 정쇄(精灑)하기: 매우 맑고 깨끗하기. * 만화방초(滿花芳草): 온갖 꽃과 꽃다운 풀. * 곤륜산(崑崙山):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중국 서족에 있다는 신성한 산. * 석경(石徑): 돌이 많은 좁은 길. * 청려장(靑黎杖): 명아주 대로 만든 지팡이.

     

    자라가 이르되,

     

    허허 우습도다. 우리 수궁 이야기 좀 들어보소. 오색 구름 같은 곳에 진주궁과 자개 대궐 반공(半空)에 솟았는데 일월이 명랑하다. 이 가운데 날마다 잔치요, 잔치마다 풍류로다. 연꽃 같은 용녀들은 쌍쌍이 춤을 추며 천일주와 포도주며 금강초 불사약을 유리병과 호박잔에 신선하게 담고 담아, 대모소반(玳瑁小盤) 받쳐다가 앞앞이 늘어놓고 잡수시오 권할 제 정신이 상활(爽豁)하고 심정이 황홀하니 헛장단이 절로 난다. 아미산에 반 바퀴 달과 적벽강의 무한한 경개며, 방장 봉래 영주산을 역력히 구경하고 선유하며 돌아올 제, 채석강, 양자강, 소상강, 동정호, 팽려택, 대동강, 압록강을 임의로 왕래하니, 흰 이슬은 강 위에 비껴 있고 물빛은 하늘을 접하였도다. 한들한들한 돗대는 만경창파를 업수이여기는 듯, 떨어진 노을은 외따오기와 같이 날고 가을 물은 긴 하늘과 한 빛일세.

     

    삼강(三江)으로 옷깃 삼고 오호(五湖)로 띠를 하니 오나라 초나라도 동남으로 터져 있고, 만형을 당기우고 구월을 이끄니 하늘과 땅은 밤낮으로 떠 있구나. 평평한 모래에 기러기는 떨어지고 흰 갈매기 잠들 때라. 지극히 슬픈 퉁소로 어부사(漁父詞)를 화답하니 깊은 구렁에 숨은 교룡을 춤추게 하고 외로운 배에 있는 과부를 울리는도다. 달이 밝고 별은 드문드문한데 가막까치 남쪽으로 날아간다.

     

    이 적에 순임금의 두 아내 아황(娥皇) 여영(女英)의 비파 소리는 울적함을 소창(消暢)하고 길 건너 장사하는 계집아이의 부르는 후정화(後庭花) 곡조는 이 회포를 자아낸다. 한 밤에 은은한 쇠북 소리 한산절이 그 어디며, 바람편에 역력한 방망이 소리는 강촌이 저기로다. 초나라 강과 오나라 물에서 고기잡는 어부들은 애내곡(乃曲)을 화답하고, 금못과 옥섬에 연 캐는 계집들은 상사곡(相思曲)을 노래하니, 아마도 별건곤(別乾坤)은 수부(水府)뿐이로다.

     

    * 희황세계(羲皇世界): 복희씨가 다스리기 이전의 오랜 옛적 세상. 백성이 편안하고 한가로이 지내는 세상을 이르는 말임. * 속한(俗漢): 품격이 속된 사람. * 요지연(瑤池宴): 요지에서 벌어진 잔치. 요지는 중국 곤륜산에 있다는 연못. * 광한루(廣寒樓): 전라북도 남원에 있는 누각. «춘향전»에서 이도령과 춘향이가 만난 곳으로 유명하다. * 절대가인(絶對佳人): 절세미인. 당대에 견줄만한 인물이 없는 미인. * 반공(半空): 그다지 높지 않은 공중에. * 대모소반(玳瑁小盤): 거북의 등껍데기로 만든 작은 밥상. * 상활(爽豁)하고: 상쾌하고. * 어부사(漁父詞): 중국 초()나라 굴원이 지은 글로, 굴원과 어부와의 문답 형식으로 이루어짐. * 아황(娥皇): 중국 고대의 요()임금의 딸. 동생 여영과 함께 순()에게 시집가서, 순이 죽은 뒤에 상강(湘江)에 빠져 죽어 상군(湘君)이 되었다 함. * 소창(消暢): 갑갑한 마음을 풀어 후련하게 하는 것. * 후정화(後庭花): 중국 진()나라 선제(宣帝)의 아들인 진후주(陳後主)가 지은 악곡(樂曲)의 이름. * 애내곡(乃曲): 어부가 부르는 뱃노래. * 상사곡(相思曲): 남녀 사이의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 * 별건곤(別乾坤): 별세계, 별천지.

     

    그러나 나의 말은 다 정말이거니와 그대 하는 말은 백 가지에 한 가지도 취할 것 없이 흉한 말은 감추고 좋은 말만 자랑하니, 그 형식으로 꾸며냄을 내 어찌 모르리오. 그대 신세 생각하니 여덟 가지 어려움을 면하기 어렵도다. 두 귀를 기울이고 자세히 들어 보라.

     

    동지섣달 엄동(嚴冬)절에 백설은 흩날리고 층암절벽 빙판되며 만학천봉 막혔으니 어디 가서 접족(接足)할까. 이것이 첫째로 어려움이오.

     

    돌구멍 찬 자리에 먹을 것 전혀 없어 콧구멍을 핥을 적에 냉한 땀이 질질 흘러 사지(四肢)가 불평할 제 팔자 타령 절로 나니 이것이 둘째로 어려움이오.

     

    오뉴월 삼복 중 산과 들에 불이 나고 시냇물이 끓을 적에 산에서는 기름내고 털끝마다 누린내라. 짧은 혀를 길게 빼고 급한 숨을 헐떡일 제 그 정상이 오죽할까. 이것이 셋째로 어려움이오.

     

    춘풍이 화청한 때 풀잎이나 뜯어먹자 하고 산간으로 들어가니 무심중에 독한 수리 두 쭉지를 옆에 끼고 살 쏘듯이 달려들 제 두 누에 불이 나고 적은 몸이 솟구쳐 바위틈으로 들어갈 제 혼비백산 가련하다. 이것이 넷째 어려움이오.

     

    천방지축 달아나서 조용한 데 찾아가니 매 쫓는 사냥꾼은 높은 봉에 우뚝 서서 근력 좋은 몰이꾼 시켜 냄새 잘 맡는 사냥개를 워리 하고 부르면 동에도 가며 서에도 가며 급히 쫓아올 제, 발톱이 뭉그러지며 진땀이 바짝 나니 이것이 다섯째 어려움이오.

     

    죽을 뻔한 후에 사냥 포수 일자총을 들어메고 길목에 질러 앉아 잔철 탄환 장약하여 염통 줄기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길 적에 꼬리를 샅에 끼고 간장이 말라지며 간신히 도망하여 숨을 곳을 찾아가니 죽을 뻔한 댁이 그대 아닌가. 이것이 여섯째 어려움이오.

     

    알뜰히 고생하고 산림으로 달아드니 얼숭덜숭한 천근 대호(大虎) 철사 같이 모진 수염 위엄있게 거스리고 웅크려서 가는 거동 에그 참말 무섭도다. 소리는 우뢰같고 대가리는 왕산(王山)덩이만하며 허리는 반달같고 터럭은 불빛이라. 칼 같은 꼬리를 이리저리 두르면서 주홍 같은 입을 열고 써레 같은 이빨을 딱딱이며 번개 같이 날랜 몸을 동서남북 번뜩이며 좌우로 충돌하여 이 골 저 골 편답하며 돌도 툭툭 받아 보며 나무도 똑똑 꺾어 보니 위풍이 늠름하고 풍채도 씩씩하여 당당한 산군(山君)이라. 제 용맹을 버럭 써서 횃불 같은 두 눈깔을 번개 같이 휘두르며 톱날 같은 앞발을 떡 벌리고 숨을 한 번 씩하고 쉬면 수목이 왔다 갔다 하고 소리 한 번 응하고 지르면 산악이 움죽움죽할 제 정신이 아득하니 이것이 일곱째 어려움이오.

     

    죽을 것을 면한 후에 평원 광야로 달아드니 나무 베는 목동이며 소먹이는 아이들은 창검과 몽치를 들고 달려들어 제잡답(除雜談)하고 치려할 제 목구멍에 침이 말라 지향 없이 도망하니 이것이 여덟째 어려움이라.

     

    이렇듯 궁곤(窮困)할 제 무슨 경황에 삼신산에 가 불로초를 먹으며 동정호에 가 목욕할꼬. 그대의 말은 다 자칭 왈 영웅이라 함이니 그 아니 가소로운가. 아마도 실없는 중 땅강아지 아들 자네로세. 그러나 이것은 실없는 농담이니 과히 노여워하지는 말으시오.”

     

    토끼가 다 들은 후에 할 말이 없어 하는 말이,

     

    소진(蘇秦) 장의(張儀) 구변(口辯)인지 말씀도 잘도 하고, 소강절(邵康節)의 추수(推數)인지 알기도 영험하다. 남의 단처(短處) 너무 발각 말으시오. 듣는 이도 소견 있소. 만고(萬古) 대성(大聖) 공부자(孔夫子)도 진채액(陳蔡厄)에 욕보시고, 천하장사 초패왕()도 대택(大澤) 중에 빠졌으니, 화와 복이 하늘에 있고 궁하고 달함이 명수(命數)에 달렸거늘, 그대는 수부에서 여간 호강깨나 한다고 산간처사로 붙여 있는 나를 그다지 괄시하니 무슨 까닭인지 도무지 알 수 없노라.”

     

    자라가 가로되,

     

    그런 것이 아니라 친구끼리 좋은 도리로 서로 권하려 함이노라. 옛글에 일렀으되 위태한 방위에는 들어가지 말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있지 말라 하였거늘, 그대는 어찌하여 이같이 분요(紛擾)한 세상에서 사느뇨. 이제 나를 만나 계제(階梯) 좋은 김에 이 요란한 풍진을 하직하고 나를 따라 수부에 들어가면 선경도 구경하고, 천도(天桃) 반도(蟠桃) 불사약과 천일주(千日酒) 감홍로(甘紅露) 삼편주(三鞭酒)를 매일 장취(長醉)하고, 구중궁궐(九重宮闕) 같은 높은 집에 무산선녀 벗이 되어 순임금에 오현금(五絃琴)과 왕대욱의 옥퉁소와 춘면곡(春眠曲) 양양가(襄陽歌)를 시시로 화답하는데, 악양루(岳陽樓) 경개도 보며, 등왕각(藤王閣)에 잔치하고, 황학루(黃鶴樓)에서 글도 지으며, 봉황대에서 술도 먹고, 태평건곤 마음대로 노닐 적에 세상 고락 꿈속에 붙여두고 조금이나 생각할까?”

     

    토끼 그 말 듣고 수상이 여겨,

     

    어허 싫다.”

     

    하고 고개를 흔들면서 가로되,

     

    * 수리: 독수리. 산악이나 평야에 사는 맹금. * 일자총: 한 방으로 바로 맞히는 좋은 총. * 왕산(王山): 큰 산. * 소진(蘇秦): 중국 전국시대의 책사(策士). ()나라에 대항하고자 육국(六國)에 합종책(合從策)을 설득하여 성공함. 말 잘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 장의(張儀): 중국 전국시대의 변론가(辯論家). 연횡책(連橫策)을 육국(六國)에 부르짖어 소진의 합종책을 깨뜨렸다. 말 잘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 소강절(邵康節): 중국 송나라 때의 학자 소옹(邵雍)을 말한다. 강절은 시호임. * 추수(推數): 앞으로 닥쳐올 운수를 미리 헤아려 앎. * 단처(短處): 부족한 점. * 공부자(孔夫子): 공자(孔子)의 높임말. 중국 춘추시대의 사상가학자. * 진채액(陳蔡厄): 공자가 진채 땅에서 당한 봉변과 액운. * 초패왕(): 중국 초()나라의 항우(項羽)를 높이어 이르는 말. * 명수(命數): 운명과 재수. * 분요(紛擾): 어수선하고 소란한. * 계제(階梯): 어떤 일을 할 수 있게 된 일의 형편이나 기회. * 천도(天桃) 반도(蟠桃): 선가(仙家)에서, 하늘나라에 있다고 하는 신선 복숭아. * 구중궁궐(九重宮闕): 문이 겹겹이 이어진 깊은 궁궐이라는 뜻. 즉 임금이 있는 대궐 안. * 오현금(五絃琴): 다섯 줄로 된 옛날 거문고의 하나. 중국 순()임금이 만들었다 함. * 춘면곡(春眠曲): 작자연대 미상의 12가사의 하나로 춘흥(春興)을 읊은 내용임. * 양양가(襄陽歌): 이백(李白)이 양양의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한 악부(樂府)에서 비롯되었다는 조선의 12가사 가운데 하나. * 악양루(岳陽樓): 중국 후난성(湖南省) 북쪽에 있는 악양의 거리를 둘러싼 성벽 서문 위의 누각. 동정호(洞庭湖)를 조망하는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 * 등왕각(藤王閣): 당나라 고조(高祖)의 아들 등왕(藤王)이 강서성(江西省)에 세운 누각. 당나라 초기의 시인 왕발(王勃)의 서()로 유명함. * 황학루(黃鶴樓): 중국 호북성(湖北省)에 있는 옛 누각으로 양자강을 조망하는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

     

    그대 말은 비록 좋으나 아마도 위태하지. 속담에 이르기를 노루 피하면 범 만난다 하고, 불가대명(佛家大命)은 독 안에 들어가도 못 면한다 하였으니, 육지에서 살다가 무슨 외입으로 공연스레 수궁에 들어 가리오. 수궁 고생이 육지 고생보다 더하지 말라는데 어디 있으며, 또는 제일 당장 첫째 고생이 두 콧구멍 멀겋게 뚫렸지만 호흡을 통치 못할 터이니 세상 만물이 숨 못 쉬고 어이 살며, 사지가 멀쩡하여도 헤엄칠 줄 모르거니 만경창파 깊은 물을 무슨 수로 건너갈꼬. 팔자에 없는 남의 호강을 부질없이 심욕(心慾)내어 이 세상을 하직하고 그대를 따라 수궁에 들어가다가는 필연코 칠성(七星)구멍에 물이 들어 할 수 없이 죽을 것이니, 이 내 목숨 속절없이 고기 배때기 속에 장사지내면 임자 없는 내 혼백이 창파 중에 고혼이 되어, 어하(魚蝦)로 벗을 삼고 굴삼려(屈三閭)로 짝을 지어 속절없이 되게 되면, 일가 친척 자손 중에 그 뉘라서 나를 찾을까. 아무리 백천만 가지로 생각하여도 십분에 팔구분은 위태한 걸. 콩으로 메주를 쑤고 소금으로 장을 담는다 하여도 도무지 곧이 들리지 아니 하니 다시는 그따위 말로 권치 말라.”

     

    자라가 웃으며 가로되,

     

    그대가 고루하기 심하도다. 한 가지만 알고 두 가지는 알지 못하는구려. 옛글에 하였으되 강의 먼 곳을 한 갈대로 건너간다 하였으니 이러므로 조주(潮州)의 선비인 여선문(餘善文)은 광묘궁에 들어가서 상량문 지어주고, 천하 문장 이태백은 고래를 타고 달 건지러 들어가고, 삼장법사(三藏法師)는 약수(弱水) 삼천리를 건너가서 대장경을 내어 오고, 한나라 사신 장건(張蹇)이는 뗏목을 타고 은하수에 올라가서 직녀의 지기석(支機石)을 주워 오고, 서왕세계(西往世界) 아란존자(阿蘭尊者)는 연잎에 거북을 타고 만경창파를 임의로 헤쳤으니, 저의 목숨이 하늘에 달렸거든 공연히 죽을손가. 대장부 되어 나서 이대도록 잔망(孱妄)할까? 대저 군자는 사람을 못 쓸 곳에 천거하지 아니 하나니 어찌 그대를 못쓸 곳에 지시하리오.

     

    맹자 가라사대 군자는 가히 속을 듯한 방술로 속인다 하고, 또 어지러운 나라에 있지 아닐 것이라 하였으니, 이 점잖은 체모에 부모의 혈육을 가지고 반점이나 턱이 바이없는 거짓말을 하겠나. 천금상에 만호후(萬戶候)를 봉하고, 밥 위에 떡을 얹어 준다 할지라도 아니하려든, 하물며 아무 해()도 없고 이()도 없는 일에 무슨 억하심정으로 위태한 지경에 빠지게 하리오.

     

    * 칠성(七星)구멍: , , , 입에 해당하는 7개의 구멍. * 어하(魚蝦): 물고기와 새우. 곧 어류(魚類)를 이르는 말. * 굴삼려(屈三閭): 굴원은 초()나라의 왕족으로서 삼려대부의 직분을 맡았다. 삼려는 왕족(王族)의 삼성(三姓)인 소()()() 삼가(三家)를 다스리는 자리이다. * 여선문(餘善文): 송나라 문인으로 상량문(上樑文)을 잘 지었다고 함. * 삼장법사(三藏法師): 당나라의 중 현장(). 인도에 가서 불경을 가져다가 한역(漢譯)하였고, 후에 법상종(法相宗) 및 구사종(俱舍宗)의 시조라 불림. 여행기에 대당서역기’(對唐西域記)가 있음. * 약수(弱水): 신선이 살았다는 중국 서쪽의 전설적인 강. 길이가 삼천리에 이른다. * 장건(張蹇): 중국 후한(後漢) 때의 외교가. 무제(武帝) 때 북방의 흉노족을 견제하기 위하여 서역의 대월지와 동맹을 맺고자 서역으로 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하였음. * 지기석(支機石): 직녀(織女)가 베틀이 움직이지 않도록 받쳤다고 하는 돌. * 서왕세계(西往世界): 서방정토. 곧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 * 아란존자(阿蘭尊者): 석가모니의 사촌동생이자 그의 10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 * 잔망(孱妄): 행동이 옹졸하고 경망함.

     

    또는 그대의 상을 보니 미색이 누릇누릇 헷득헷득하야 금빛을 띠었으니 이른바 금생어수(金生於水). 물과 상생이 되어 조금도 염려 없고, 목이 길다라니 고향을 바라보고 타향살이 할 기상이오, 하관(下觀)이 뾰족하니 위로 구하면 역리(逆理)가 되어 매사가 극란(極難)하되, 아래로 구하면 순리가 되어 만사가 크게 길할 것이오, 두 귀가 희고 준수하니 남의 말을 잘 들어 부귀를 할 것이오, 미간이 탁 틔여 화려하니 용문에 올라 이름을 빛낼 것이오, 음성이 화평하니 평생에 험한 일이 없을 것이라. 그대의 상격(相格)이 이와 같이 가지가지 구격(俱格)하니, 일후의 영화부귀가 무궁하여 행락으로는 당명황(唐明皇)의 양귀비(楊貴妃), 한무제의 승로반이오, 팔자로는 백자천손 곽자의(郭子儀), 부자로는 석숭(石崇)이오, 풍악으로 요임금의 대황곡과 순임금의 봉조곡과 장자방의 옥퉁소가 자재(自在)하고, 유시로 사마상여(司馬相如) 거문고에 탁문군이 담을 넘어 올 것이오, 또는 농락수단으로 말하고 보면, 언변에는 육국 종횡하던 소진 장의에게 양두(讓頭)할 것 전혀 없고, 경륜에는 팔진도(八陳圖)로 지휘하던 제갈량이 바로 적수에 지나지 못할 것이니, 이러한 기골 풍채와 경영 배포가 천고에 제일이오 당시에 독보할 경천위지(經天緯地)의 영웅호걸이나, 그대가 마치 팔팔 뛰는 버릇이 있음으로 본토에만 묻혀 있어서는 이 위에 여러 가지 복락을 결단코 한 가지도 누리지 못하고, 도리어 전일과 같이 곤란한 재앙만 돌아올 것이오, 본토를 떠나 외지로 뛰어 가야만 분명코 만사여의할 것이니, 내 말을 일호라도 의심치 말고 이번 이 계제 좋은 김에 나와 한가지 수부로 들어가기를 한 말로 결단하라. 정말이지 나와 같이 친구 잘 인도하는 사람을 만나 보기도 그대 평생 처음일 걸. 토선생댁에 참 복성(福星)이 비취었나니.”

     

    * 금생어수(金生於水): 금생수(金生水). 오행설에서, 금에서 수가 생함을 이르는 말. * 하관(下觀): 얼굴의 아래쪽. * 극란(極難): 극히 어려움. * 상격(相格): 관상에서, 사람 얼굴의 생김새. * 양귀비(楊貴妃): 중국 당나라 현종(玄宗) 때의 귀비. 재색이 뛰어나 궁녀로 뽑혀 현종의 총애를 받고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안녹산(安祿山)의 난에 죽음. * 곽자의(郭子儀): 중국 당나라 숙종(肅宗) 때 사람으로 안사(安史)의 난을 평정하여 분양왕(汾陽王)에 봉해짐. * 석숭(石崇): 중국 진()나라 때의 부호(富豪)이며 문장가. * 사마상여(司馬相如): 중국 전한(前漢)의 문인. 그의 사부(辭賦)는 화려한 것으로 유명하여한위육조(漢魏六朝)의 문인의 모범이 됨. * 양두(讓頭): 지위를 남에게 넘겨 줌. * 경천위지(經天緯地): 온 천하를 경륜하여 다스림. * 복성(福星): 길한 별이란 뜻으로 목성을 일컬음.

     

    토끼 가로되,

     

    나의 기상도 이와 같이 출중하거니와 형의 관상하는 법 신통하도다마는 대저 수요궁달(壽夭窮達)이라 하는 것이 뚝 다 상설(相說)로 되는 일이 없나니, 치부할 상이면 태산 상상봉 백운대 꼭대기에 누웠어도 석숭의 재물이 절로 와서 부자 되며, 장수할 상이면 걸주(桀紂)의 포락(泡烙)하는 형벌을 당하여도 살아날 수 있겠는가? 누구든지 제 상만 믿고 행신(行身)하다가는 패가망신이 십상팔구 되느니라.”

     

    자라가 가로되,

     

    그대는 저물도록 무식한 말만 하는도다. 누구든지 자기 관상대로 되는 것이니, 실한 증거가 있으니 융준용안(隆準龍眼) 한태조는 사상의 정장(亭長)으로 창업한 임금이 되셨고, 용자일표(龍姿逸飄) 당태종은 서생으로서 나라를 얻고, 백면대이(白面大耳) 송태조는 필부로서 천자 되고, 금반대 채택(蔡澤)이는 범수()를 대신하여 정승이 되었고, 그외 여러 영웅호걸들이 무비(無比) 다 관상대로 되었으니 왕후와 장상이 어찌 씨가 있다 하리까?

     

    옛말에 일렀으되 범의 굴에 들어가지 아니하면 어찌 범의 새끼를 얻으리오 하였으니, 대장부가 세상에 나서 자기 일신 사업을 할진대, 되면 좋고 아니 되면 말자하고 노질부질하여 볼 것이지, 그까진 것 무엇이 무서워서 계집아이 태도처럼 요리 빼끗 조리 빼끗 저무도록 시간만 허비하리요. 그대가 바위 구멍에 홀로 있어 무정한 세월을 보내고 초목과 같이 썩어지면 거 뉘라서 토처사가 세상에 나 있는 줄 알겠느냐. 이는 형산에 흰 옥이 진토 중에 묻힌 모양이니, 영웅호걸이 초야에 묻혀 있어 때를 만나지 못함이라. 도토리와 풀잎이며 칡순과 잔디 싹이 그다지 좋은가? 천일주와 불사약에 비하면 어떠하며, 돌구멍 찬 자리에 벗 없이 누었음이 또한 그리 좋은가? 분벽사창(粉壁紗窓) 반쯤 열고 운문병풍(雲紋屛風) 그림 속에 원앙금침 비단 요에 절대가인 벗이 되어 밤낮으로 희롱하는 그 행락(行樂)에 비할진대 과연 어떠하겠느냐? 그대의 하는 말은 졸장부의 말이오, 나의 하는 말은 당당한 정론 아닌가? 만단(萬端)으로 호의(狐疑)를 가지고 유예미결(猶豫未決)하는 자는 자고로 매사불성(每事不成)하는 법이라.

     

    옛날에 한신(韓信)이가 괴철의 말을 듣지 않다가 팽구(烹狗)의 화를 당하고, 대부 종이 범려()의 말을 들었던들 사금의 환이 없었으리니, 내 어찌 전에 일을 증험(證驗)하여 후에 일을 도모치 아니하리오. 이제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후일에 나를 보고저 하려다가는 그대의 고() 고조(高祖)가 다시 살아 와도 정말 할 수 없으리니, 때가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느니라. 후회하면 무엇하리오. 세상인심은 처음 좋아하다가 나중 되면 헌 신 같이 버리거니와, 우리 수부는 동무를 한 번 천거하면 시종이 여일하니 발천(發闡)하기 이렇게 좋은 곳은 구하여도 얻지 못하리라.”

     

    * 수요궁달(壽夭窮達): 오래 살거나 일찍 죽으며, 궁핍하거나 부유하게 되는 것. * 상설(相說): 관상을 보는 사람이 하는 말. * 걸주(桀紂): 중국 하()()나라의 걸()과 주()임금. 포악한 임금의 대표자. * 포락(泡烙): 불에 달근 뜨거운 쇠로 단근질하는 극형(極刑). * 행신(行身): 처신. * 융준용안(隆準龍眼):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의 얼굴 특징을 표현한 말. 우뚝한 코와 용의 눈처럼 부리부리한 눈. 용자일표(龍姿逸飄): 뛰어나게 깨끗한 몸맵시. * 백면대이(白面大耳): 하얀 얼굴과 커다란 귀. * 채택(蔡澤): 중국 전국시대의 정치가로 진()나라 소왕(昭王)에게 객경(客卿)으로 발탁되었다가 범수()대신 재상이 되었다. * 범수(): 중국 전국시대 위()나라의 변설가로 진()나라 소왕에게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을 건의하여 제후를 침략하였다. * 분벽사창(粉壁紗窓): 하얗게 꾸민 벽과 깁으로 바른 창이라는 뜻. 곧 여자가 거처하는, 아름답게 꾸민 방을 말한다. * 만단(萬端)으로: 온갖 방법으로. * 유예미결(猶豫未決): 망설여 결정을 짓지 못함. * 매사불성(每事不成): 하는 일마다 잘 되지 아니함. * 한신(韓信): 중국 전한(前漢)의 무장으로 장량(張良)소하(蕭何)와 더불어 한()나라 창업의 삼걸(三傑) 중 한 사람. 고조(高祖)를 따라 조()()()()를 멸망시키고 항우를 공격하여 큰 공을 세움. * 팽구(烹狗)의 화: 교토사주구팽(狡兎死走狗烹)에서 나온 말. 산에 있는 토끼를 다 잡으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뜻. 한신이 독립하라는 모사 괴철의 말을 듣지 않고 유방(劉邦)을 도왔다가 제후억멸책에 의해 살해당한 고사를 말한다. * 범려(): 중국 춘추시대 월()나라의 재상. ()왕 구천(九踐)을 잘 도와 부차(夫差)를 쳤으나 벼슬을 내놓고 도()로 가서 거부가 되어 도주공(陶朱公)이라고 자칭하였음. * 발천(發闡)하기: 앞길을 열어서 세상에 나서기.

    토끼 이 말을 들으니 든든하기가 태산쯤 되는지라. 마음에 한 반턱이나 속아 고수이 듣고 밑구멍이 옴질옴질하여 쌩긋쌩긋 웃으며 가로되,

     

    내 형을 보매 시체(時體) 사람은 아니로다. 의량(意量)이 넓고 선심이 거룩하여 위인이 관후하니 평생에 남을 속일손가? 나같은 부생(浮生)을 좋은 곳에 천거하니 감격하기 측량 없으나 수부에 들어가서 벼슬이야 쉬울소냐.”

     

    자라가 이 말을 듣고 웃으며 내념(內念)에 생각하되,

     

    요놈 인제야 속았구나.’

     

    하고 흔연히 대답하여 가로되,

     

    그대가 오히려 경력이 적은 말이로다. 역산(歷山)에 밭가시던 순임금도 당요(唐堯)의 천자 위() 수선(受禪)하고, 위수(渭水)에 고기 낚던 강태공도 주문왕의 스승 되고, 산야에 밭 갈던 이윤(伊尹)도 탕임금의 아형(阿兄) 되고, 부암에 담 쌓던 부열(傅說)이도 은고종의 양필(良弼) 되고, 소 먹이던 백리해(百里奚)도 진목공의 정승 되고, 표모(漂母)에게 밥 빌던 한신이도 한태조의 대장 되었으니, 수부나 인간이나 발천하기는 일반이라. 이런 고로 밝은 임금이 신하를 가리고 어진 신하가 임금을 가리나니, 우리 대왕께서는 성신(誠信)하시고 문무하사 한 가지 능과 한 가지 지조가 있는 선비라도 벼슬 직책을 맡기시고, 닭처럼 울고 개처럼 도적질하는 유라도 버리지 아니하시는지라. 이러하기로 나같이 재주 없는 인물로도 벼슬이 주부 일품 자리에 외람히 거하였거든, 하물며 그대같이 고명한 자격이야 들어가면 수군절도사는 따논 당상이지 어디 가겠나. 타작말 만한 황금인 덩이를 허리 아래에 빗겨 차고 안올림 벙거지에 동다리 구군복하고 동개 차고 등채 집고 집채같은 준총 위에 높이 앉아 호강영 바람에 어라 게 물러 있거라, 앞뒤 별배며 에이 기록 좌우 기수 소리 어깨춤이 절로 나고, 장창 대검은 절렁 데그럭 쉬우 아료 소리에 호령이 절로 나리니, 이것이 대장부의 쾌활한 기상이오, 또한 신수 좋은 얼굴을 능연각(凌煙閣)에 걸어 두고 춘추에 빛난 이름을 죽백(竹帛)에 드리우리니, 이것이 기남자(奇男子)의 보배로운 영광이라. 이 어찌 아름답지 아니하리오. 바로 말이지 토끼 가문 중에 시조(始祖) 되기는 염려가 조금도 없을 터이니라.”

     

    * 시체(時體): 그 시대의 풍습이나 유행. * 수선(受禪)하고: 임금의 자리를 이어받고. * 강태공: 중국 주()나라 초기의 정치가. 위수 강가에서 낚시를 하다가 문왕을 처음 만나 그의 군사(軍師)가 되었으며, 뒤에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멸하고 천하를 평정하였다. * 이윤(伊尹): 중국 고대 전설상의 인물. 탕왕을 보좌하여 하()의 걸왕을 멸망시키고 선정을 하였다. * 아형(阿兄): 형을 친근하게 부르는 말. * 부열(傅說): 중국 은()나라 고종(高宗) 때의 재상. 토목공사의 일군이었는데, 당시의 재상으로 등용되어 중흥의 대업을 이루었음. * 양필(良弼): 보필하는 임무를 제대로 해 내는 신하. * 백리해(百里奚): 중국 춘추시대 사람. 자신의 조국 우()나라가 망할 것을 알고, ()나라 목공(穆公)을 찾아가 어진 재상이 되었다. * 동개: 활과 화살을 넣어 등에 지는 제구. * 등채: 옛날 무장이 쓰던 채찍. * 죽백(竹帛): 서적이나 사기(史記)를 이르는 말. * 기남자(奇男子): 재주가 남달리 뛰어난 사나이.

     

    토끼 웃으며 가로되,

     

    형의 말은 흡사하나 어제 밤에 나의 꿈이 불길하여 마음에 종시 꺼림하도다.”

     

    자라가 가로되,

     

    내가 젊어서 약간 해몽하는 법을 배웠으니 아무커나 그대의 몽사를 듣고저 하노라.”

     

    토끼 가로되,

     

    칼을 빼서 배에 대이고 몸에 피칠을 하여 보이니, 아마도 좋지 못한 정상을 당할까 염려하노라.”

     

    자라가 책망하여 가로되,

     

    너무 좋은 몽사를 가지고 공연히 사념(思念)하는구려. 배에 칼을 대였으니 칼은 금이라 금띠를 띨 것이요, 몸에 피칠을 하였으니 홍포(紅袍)를 입을 징조라. 물망(物望)이 일국에 무거우며 명성이 팔방에 떨칠지니, 이 어찌 공명할 길한 꿈이 아니며 부귀할 좋은 꿈이 아니리오. 공자의 주공을 보고 귀인 성인의 꿈이요, 장자(莊子)의 나비 된 꿈은 달관의 꿈이요, 공명의 초당 꿈은 선각의 꿈이요, 그 외 누구누구의 여간 꿈이라 하는 것이 무비관몽(無非觀夢)이요 개시허몽(皆是虛夢)이로되, 오직 그대의 꿈은 몽사 중에 제일 갈 꿈이니 수궁에 들어가면 만인 위에 거할지라. 그 아니 좋을손가.”

     

    토끼가 점점 곧이 듣고 조금조금 달려들며 당상의 인() 꿈을 지금 당장 차는 듯이 희색이 만면하여 가로되,

     

    노형의 해몽하는 법은 참 귀신 아니면 도깨비오. 소강절 이순풍이 다시 살아온들 이에서 더할손가. 아름다운 몽조가 이미 나타났으니 내 부귀는 어디 가랴. 떼어논 당상은 좀이나 먹지. 그러나 만경청파를 어찌 득달할고?”

     

    자라가 대희하여 가로되,

     

    그대는 조금도 염려 말라. 내 등에만 오르면 아무리 걸주 같은 풍파라도 파선할 염려 전혀 없이 순식간에 득달할 터이니 그런 걱정은 행여 두 번도 마시오.”

     

    토끼 웃으며 가로되,

     

    체면 도리상에 형을 타는 것이 대단 미안치 않소. 어찌하여야 좋을는지요?”

     

    자라가 크게 웃어 가로되,

     

    형이 오히려 졸직(卒直)은 하도다. 위수에 고기 낚던 여상(呂尙)이는 주문왕과 수레를 한가지로 타고, 이문(里門)에 문지기 노릇하던 후영이는 신릉군(信陵君)의 상좌에 앉았고, 부춘산에 밭 갈던 엄자릉이는 한광무와 한 베개에 같이 누었으니, 귀천도 관계없고 존비가 아랑곳가? 우리 이제 한 가지로 들어가면 일생 영욕과 백년고락을 한 가지로 지낼 것이니 무엇이 미안함이 있으리오?”

     

    토끼 대희하여 가로되,

     

    형의 말대로 될 양이면 높은 은덕이 백골난망이겠노라. 이 세상 천하에 못 당할 노릇이 있으니 저 몹쓸 사람들이 일자총을 들러 메고 암상스러이 보채일 제, 송편으로 목을 따고 접시물에 빠져 죽고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온 중, 나의 큰 아들놈은 나무 베는 아희에게 무죄(無罪)이 잡혀가서 구메밥을 얻어먹고 감옥에서 갇혀 있은 지 우금(于今) 칠팔 년이나 되어도 놓일 가망 바이없고, 둘째 아들놈은 사냥개한테 물려가서 까막까치 밥이 된 지 지금 수년이라. 그 일을 생각하면 갈수록 더욱 절치부심(切齒腐心)하여 어찌하면, 이 원수의 세상을 떠나갈고 하며 주사야탁(晝思夜度)하옵더니 천만뜻밖에 그대 같은 군자를 만나 어두운 데를 버리고 밝은 곳으로 갈 터이니, 이는 참 하늘이 지시하시고 귀신이 도우심이라. 성인이라야 능히 성인을 안다 하였으니, 나 같은 영웅을 형 같은 영웅 곧 아니면 그 뉘라서 능히 알리오? 하늘에서 내리신 영웅이 형 곧 아니었다면 헛되이 산중에서 늙을 뻔하였고, 나 곧 아니었다면 수중 백성들이 어진 관원을 만나지 못할 뻔하였도다. 이번 내 길이 내게도 영광이어니와 수중에서 어찌 경사가 아니리오? 옛사람이 이르기를 하늘에서 내 재주를 내매 반드시 싸움이 있다 하더니 내게 당하여 참 빈말이 아니로다.”

     

    * 홍포(紅袍): 조선시대 3품 이상의 관원이 공복(公服)으로 입는 옷. * 장자(莊子): 기원전 4세기경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도가(道家) 사상의 중심인물. * 무비관몽(無非觀夢)이요 개시허몽(皆是虛夢): 꿈을 보는 것이 아닌 것이 없으니, 모두가 헛된 꿈이로다. * 졸직(卒直): 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없음. * 여상(呂尙): 강태공. ()는 그에게 봉해진 영지(領地)이며, ()은 그의 이름임. * 신릉군(信陵君): 중국 전국시대 위()나라의 정치가. 소왕(昭王)의 막내 아들. * 구메밥: 죄수에게 벽구멍으로 몰래 들여보내는 밥. * 우금(于今): 지금까지. * 절치부심(切齒腐心): 몹시 분하여 이를 갈고 속을 썩임. * 주사야탁(晝思夜度): 밤낮으로 깊이 생각하고 헤아림.

     

    하며 의기가 양양하여 자라 등에 오르려 할 즈음에, 저 바위 밑에서 너구리 달첨지가 썩 나서서 하는 말이,

     

    토끼야, 너 어디 가느냐? 내 아까 수풀 곁에 누워서 너희 둘이 하는 수작을 처음으로부터 끝까지 대강 들었지만은 아마도 위태하지. 옛말에 위태한 지방에 들어가지 말라 하였고, 분수를 지키면 몸에 욕이 없다 하였으니, 저같이 졸지에 남의 부귀를 탐내고야 나중 재앙이 제 어찌 없을소냐? 고기 배때기에 장사지내기가 아마 십중팔구이지.”

     

    하거늘 토끼 말을 듣더니 두 귀를 쫑긋하며 시름없이 물러날 제, 자라가 가만히 생각하되,

     

    원수의 몹쓸 놈이 남의 큰 일을 작희(作戱)하니 참 이른바 좋은 일에 마()가 드는 것이로군.’

     

    하며 하는 말이,

     

    허허 우습도다. 그대가 잘 되고 보면 오히려 내가 술잔이나 얻어먹는다 하려니와 죽을 곳에 들어가는 데야 더구나 내게 무슨 좋을 일이 있을손가? 달첨지가 토선생 일에 대하여 꽃밭에 불지르려고 왜 저리 배를 앓노. 제 어디 실없는 똥 떼어먹을 놈이 다시 그 일에 대하여 말할소냐.”

     

    하고 썩 떨떠리고 하는 말이,

     

    유유상종이라더니, 모인다니 졸장부 뿐이라. 부귀가 저희에게 아랑곳 있나?”

     

    하며 대단히 비방하고 작별하려 하니, 토선생이 생각하되,

     

    천우신조하여 천재일시(千載一時)로 좋은 기회를 만났으니 때를 잃지 아니 하리라.’

     

    하고 자라에게 달려들어 두 손을 덥석 쥐며 하는 말이,

     

    여보시오, 별주부. 천하 사람들이 별 말을 다한다 하여도 일단 내 말이 제일이온대, 형이 어찌하여 이다지 그리 경솔하시오? 죽어도 내가 죽고 살아도 내가 살 것이니 아무 염려말고 가시옵시다.”

     

    하거늘 주부가 가로되,

     

    형의 마음이 굳건하여 변개 아니할 양이면 내 어찌 태를 조금이나 부리리오.”

     

    하고, 토끼를 얼른 등에 얹고 물로 살짝 들어가 만경창파를 희롱하며 소상강을 바라보고 동정호로 들어갈 제, 토끼가 흥에 겨워 혼자 하는 말이,

     

    홍진자맥(紅塵紫陌) 장안 만호에 있는 벗님네야. 사람마다 가사(假使) 백년을 산다 하여도 걱정 근심과 질병 사고(四苦)를 빼고 보면 태평 안락한 날이 몇 해가 못 되는 것이라. 천백 년을 못살 인생 아니 놀고 무엇하리. 소상 동정의 무한한 경개를 나와 함께 노자세라.“

     

    이렇게 세상을 배반하며 흥을 겨워 가는 형상 칼 첨자(籤子)에 개구리요, 대부등(大不等)에 뱀이라. 의뭉할손 별주부요, 미욱할손 토끼로다. 토끼의 허한 말을 꿀같이 달게 듣고, 서왕세계 얻자 하고 지옥으로 들어가며, 첩첩청산 버려 두고 수중고혼(水中孤魂) 되러 가니 불쌍하고 가련하다. 붉은 고기 한 덩이로 용왕에게 진상간다. 일개 자라의 첩첩이구(첩첩利口)에 그 약은 체하던 경박한 토끼가 속았구나.

     

    * 작희(作戱)하니: 남의 일을 방해하니. * () : 일이 잘 되지 않게 헤살을 부리는 것. * 천재일시(千載一時):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좋은 기회. * 홍진자맥(紅塵紫陌): 속세의 번화한 거리. * 가사(假使): 가령(假令). * 첨자(籤子): 장도(粧刀)가 칼집에서 헐겁게 빠지지 않도록 하는 장식품. * 대부등(大不等): 아름드리의 아주 굵은 나무. * 의뭉: 겉으로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면서 속으로는 엉큼한 것. * 첩첩이구(첩첩利口): 거침없고 빠른 말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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