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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 구운몽(九雲夢) - 해제옛 이야기/고전 小說 2019. 3. 25. 17:50
구운몽(九雲夢)
[해제]
<구운몽>의 이해를 위하여 작가 김만중(金萬重)의 생애와 인간, 그리고 문학과 사상 등을 언급하고 나서, <구운몽>의 대체적인 줄거리와 사상적 배경, 원전비평과 이본상의 문제, 비교문학적인 문제, 그리고 본서에 사용된 텍스트의 문제를 차례로 기술하기로 하겠다.
김만중(김만중, 1637~1692)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소설가로 본관은 광산(光山), 아명은 선생(船生), 자는 중숙(重叔), 호는 서포(西浦), 시호(諡號)는 문효(文孝)이다. 조선조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의 증손이고, 충렬공 익겸의 유복자이며, 숙종의 장인인 광성부원군 만기의 아우로서, 숙종대왕의 초비(初妃)인 인경왕후의 숙부이다. 그의 어머니 해평 윤씨는 인조의 장인인 해남부원군 윤두수의 4대손이고 영의정을 지낸 문익공 방(昉)의 증손녀이며, 이조참판 지(遲)의 따님이다.
김만중은 어머니의 남다른 가정 교육에 힘입어 성장하였다. 그의 아버지 익겸이 일찍이 정축호란(丁丑胡亂, 1637) 때, 강화도에서 순절하였으므로 형 만기와 함께 어머니 윤씨만을 의지하여,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유달랐던 것이다. 실은 그의 대작 <구운몽>도 귀양지에서 어머니의 외로움을 덜기 위해 지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는 만년에 어머니를 술회한 글에서, 어린 시절 가난하고 외로운 환경 속에서도 그의 어머니가 많은 책을 이웃의 홍문관 서리를 통해 빌려 와 손수 등사하여 읽게 하였고, 때로는 베틀에 짜고 있는 피륙을 팔아 독서물을 충당하였을 뿐 아니라, 소학, 사략, 당시(唐詩) 등을 손수 가르쳤다고 회고한 바 있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어머니 윤씨가 만기, 만중 형제의 교육을 위해 얼마나 고심하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김만중은 위와 같이 어머니로부터 엄격한 훈도를 받고 14세에 진사 초시에 합격하였고, 이어서 16세에 진사에 장원급제하였으며, 그 뒤 1655년에 정시문과에도 급제하여 관료로 발을 내딛기 시작, 1666년에 정언(正言), 1667년에 지평(持平), 수찬(修撰)을 역임하였으며, 1668년에는 경서 교정언, 교리가 되었다. 아울러 1671년에는 암행어사로 경기 및 삼남 지방의 진정득실을 조사하기 위해 부교리가 되는 등 1674년까지 헌납, 부수찬, 교리 등을 지냈다. 그러다가 1675년 동부승지로 있을 때, 인선왕후의 상복 문제로 서인(西人)이 패배하자 관직을 박탈당하였다.
1688년에 남인인 장숙의(張淑儀) 일가를 둘러싼 언사의 죄로 연루되어 추국(推鞫)을 받고 하옥되었다가 선천으로 유배되었다. 이 선천 유배지에서 어머니 윤씨를 위해 <구운몽>을 지었다는 것이 최근 밝혀졌다. 1년이 지난 1688년 11월에 드디어 선천 유배지에서 풀려났으나, 3개월 뒤인 1689년 2월 이른바 을사환국(乙巳換局)을 계기로 다시 남해로 유배되었다. 이와 같이 유배가 계속된 것은 숙종의 계비(繼妃)인 인현왕후 민씨의 여화(餘禍) 때문이었다. 그가 남해 유배지에 있는 동안 그의 어머니 윤씨는 그의 안위를 걱정한 끝에 세상을 떴다. 효성이 지극했던 그는 장례식에도 참석치 못하고 1692년 남해 유배지에서 56세를 일기로 외로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김만중의 사상과 문학은 조선조에 있어서 이전의 여느 문인과도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그의 사상은 주자학적 유교 사상권에 있으면서도 불교와 도교의 세계를 자유로이 드나들었을 뿐 아니라, 산수, 음률, 천문, 지리 등 구류(九流)의 여러 방기(方技)에까지 능통한, 말하자면 다분히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하였다. 그는 문학에서도 탁월한 업적을 남기었다. ‘조선 사람은 조선으로 글을 써야 한다.’는 소위 국민문학론을 제창한 바 있고, 아울러 통속소설의 문학적 효용을 깊이 인식하여 직접 통속소설을 많이 썼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늘날 전하는 것은 안타깝게도 <구운몽>과 <남정기>뿐이다.
이제 <구운몽>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일찍이 이재가 <구운몽>의 주지(主旨)를 ‘인생의 부귀공명이 일장춘몽’이라고 파악한 바와 같이, <구운몽>의 주제는 역시 대승불교의 중심인 <금강경>의 공관(空觀)에 있다. 공관은 표면적으로는 인생만사를 헛것으로 부정하는 데 있는 것 같지만, 이면적으로는 인생만사를 역설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구운몽>은 결국 <금강경>의 주제를 소설화한 대작이라고 볼 수가 있다. 문학 내적으로는 인도, 중국 등에서 이루어진 환몽구조(幻夢構造)의 이야기를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결과가 <구운몽>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구운몽>은 진작부터 영어, 독일어, 러시아어, 체코어 등으로 번역되어 서양인들에게까지 소개되었다.
구운몽(완판 105장본)
[해설]
다음 완판본은 2권 2책으로 된 국문 목판본이다. 그 판각 연도는 이 책 상권말에 ‘임술맹추’라는 기록으로 볼 때, 철종 13년(1862) 봄이 될 것이다. 또한 이 책의 판각 연도가 1892년이고, 역시 고어투가 군데군데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 책의 성립 시기는 경판본과 같이 역시 19세기 초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책의 상권은 55장, 하권은 50장, 도합 105장으로 되어 있으며, 그 체재는 세로가 21cm, 가로가 17cm, 매장 13행, 매행 17자 내지 21자이며 분장(分章)은 전혀 없으나 분장될 만한 곳에 ‘각설이라’를 임의로 삽입해 놓고 있다. 내용의 체재로 말하면, 다른 국문본에 비하여 축약된 곳이 곳곳에 보이지만, 자매본인 경판본보다 훨씬 풍부하며, 구성에 있어서도 경판본에 비하여 비교적 잘 짜여져 있다. 아울러 이 책의 내용은 표현상 한국미를 자아내게 하고 토속적 표현이 많다. 이 책의 텍스트는 한문으로 된 을사본으로 추정된다.
다음 참고로 이번 책에는 원래 계획과는 다르게 분량상 싣지는 못했지만, 위 두 본과 좋은 대비를 이루는 경판본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는 것으로 논의를 맺을까 한다. 경판본은 1권 1책으로 된 국문 목판본으로 완판본과 대를 이루고 있는 자매본에 해당된다. 이 책의 체재로 말하면, 세로가 28.5cm, 가로가 19.5cm이고, 장수는 32장, 매장 13행, 매행 24자 내외로 장(章)도 나누어져 있지 않고 연철(連綴)되었으며, 필체는 행서로 읽기에 좀 거북스럽다. 이 경판본은 <구운몽> 이본 가운데 가장 간략화한 것이 특색이라 할 수 있으나, 완판본에 비하여 무질서한 편이다. 더구나 시, 상소문 따위는 전혀 볼 수가 없다. 말하자면 갱개본(梗槪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경판본이 언제 판각되었는지는 확적하게 알 수 없으나, 이 책 가운데 비교적 고어투가 군데군데 보이는 것으로 보아 완판본과 같이 적어도 19세기 초엽에는 성립되지 않았는가 추측된다. 그리고 이 책의 문체는 역어체로 그 대본은 한문본 가운데 노존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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