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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주부전(토끼전)-3
    옛 이야기/고전 小說 2019. 3. 15. 15:20

    자라가 의기양양하여 범이 날개 돋친 듯, 용이 여의주 얻은 듯이 기운이 절로 나서 만경창파를 순식간에 들어가니 내리라 하거늘, 토끼 내려 사면을 살펴보니, 천지가 명랑하고 일월이 조요한데, 진주로 꾸민 집과 자개로 지은 대궐은 반공(半空)에 솟았으며, 수 놓은 문지게와 깁으로 바른 창이 영롱 찬란한지라. 마음에 홀로 기뻐 제가 젠체하더니 이윽고 한 편에서 수근쑥덕하며 수상한 기색이 있는지라.

     

    토끼 혼자 하는 말이,

     

    무너져도 솟을 구멍 있다 하나, 참 나야말로 속수무책이로구나. 그러하나 병법에 이르기를 죽을 땅에 빠진 후에 살고 망할 때에 든 후에 잇다 한지라. 이런고로 천하에 큰 성인 주문왕은 유리옥을 면하시고, 도덕이 높은 탕임금은 한대옥을 면하시고, 만고성인 공부자도 진채의 액을 면하신지라. 천고영웅 한태조도 영양에 에움을 벗어났으니, 설마하니 이 내 몸을 왼통으로 삼킬소냐.’

     

    아무커나 차차 하는 거동 보아 가며 감언이구(甘言利口)와 신출귀몰한 꾀로 임시변통 목숨을 보전하되, 공명이 남병산에 칠성단 모으고 동남풍 빌던 수와 백등 칠일에 진평(陳平)이 화미인하던 꾀를 진심갈력(盡心竭力)하여 내어 가지고, 사족 바싹 웅크리고 죽은 듯이 엎드렸더니, 홀로 전상에서 분부하되,

     

    토끼를 잡아들이라.’

     

    하거늘, 수족 물고기 일시에 달려들어 토끼를 잡아다가 정전(正殿)에 꿇리고, 용왕이 하교하여 가로되,

     

    과인이 병이 중한데 백약이 무효하더니, 천우신조하여 도사를 만나매 이르되, 네 간을 얻어 먹으면 살아나리라 하기로 너를 잡아왔으니, 너는 죽기를 슬퍼 말라.”

     

    하고, 군졸을 명하여 간을 내이라 하니, 군졸이 명을 받들고 일시에 칼을 들고 날쌔게 달려들어 배를 단번에 째려 하거늘, 토끼 기가 막혀 달첨지 말을 돌이켜 생각하나 후회막급이라.

     

    대저 약명을 일러 주던 도사놈이 나와 무슨 원수런가? 소진의 구변인들 욕심 많은 저 용왕을 무슨 수로 꾀어내며, 관운장(關雲長)의 용맹인들 서리 같은 저 칼날을 무슨 수로 벗어나며, 요행 혹 벗어난다 한들 만경창파 넓은 물에 무슨 수로 도망할가? 가련토다 이 내 목숨 속절없이 죽었구나. 백계무책(百計無策) 어이하리.’

     

    하며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문득 한 꾀를 얻어 가지고 마음을 담대히 하여 고개를 번듯 들어 전상을 바라보며 가로되,

     

    이왕 죽을 목숨이오니 한 말씀이나 아뢰옵고 죽겠삽나이다.”

     

    하고 아뢰되,

     

    * 문지게: 지게문. 마루에서 방으로 드나드는 곳에 안팎을 두꺼운 종이로 바른 외짝문. * 잇다: 끊이지 않게 계속 이어가다. * 진평(陳平): 중국 한()나라 초기의 공신. 항우의 신하였다가 유방에게 투항하여 묘책을 써서 공을 세움. 혜제(惠帝) 때 좌승상이 되고, 여씨(呂氏)의 난 때는 주발(周勃)과 힘을 합쳐 평정함. * 정전(正殿): 왕이 나와서 조회(朝會)를 하던 궁전. * 관운장(關雲長): 관우(關羽).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무장. 유비를 섬기고 적벽전(赤壁戰)에서 조조의 군대를 격파함. * 백계무책(百計無策): 있는 꾀를 다 써 봐도 별 수 없음.

     

    토끼 족속이란 것은 본시 곤륜산 정기로 태여나서, 일신을 달빛으로 환생하와 아침 이슬과 저녁 안개를 받아먹고, 기화요초(琪花瑤草)와 좋은 물을 명산으로 다니면서 매양 장복하였음으로 오장육부와 심지어 똥집 오줌통까지라도 다 약이 된다 하여, 막걸리 오입장이들을 만나면 간 달라고 보채이는 그 소리에 대답하기 괴롭사와, 간 붙은 염통 줄기 채 모두 다 떼어내어 청산유수 맑은 물에 설설이 흔들어서, 고봉준령 깊은 곳에 깊이깊이 감추어 두고 무심 중 왔사오니, 배 말고 온 몸을 모두 다 발기발기 찢는다 할지라도, 간이라 하는 것은 한 점도 얻어 볼 수 없을 터이오니 어찌하면 좋을는지? 저 미련하온 별주부가 거기 대하여 일언 사색(辭色)이 반점도 없었으니 아무리 내가 영웅인들 수부의 일이야 어찌 아오리까? 미리 알게 하였더라면 염통 줄기까지 가져다가 대왕께 바쳐 병환을 회춘하시게 하고, 일등공신 너도 되도 나도 되어 부귀공명 하였으면 그 아니 좋았겠는가? 만경창파 멀고 먼 길 두 번 걸음 별주부 너 탓이라. 그러나 병환은 시급하신데 언제 다시 다녀올는지, 그 아니 딱하오니까?”

     

    용왕이 듣고 어이없어 꾸짖어 가로되,

     

    발칙 당돌하고 간사한 요놈. 네 내 말을 들어라 하니, 천지 사이 만물 가운데에 사람으로 금수까지 제 뱃속에 붙은 간을 무슨 수로 꺼내었다 집어넣었다 하겠는고? 요놈 언감생심(焉敢生心)코 어느 존전(尊前)이라고 당돌히 무소(誣訴)로 아뢰느냐. 그 죄가 만 번 죽어도 남지 못하리라.”

     

    하고, 바삐 배를 째고 간을 올리라 하거늘, 토끼 또한 어이없어 간장이 절로 녹으며 정신이 아득하여, 가슴이 막히고 진땀이 바짝바짝 나며 아무리 생각하여도 죽을 밖에 다시 수가 없도다.

     

    이것이 참 독에 든 쥐요 함정에 든 범이라. 그러하나 말이나 단단이 한 번 더 하여 보리라.’

     

    하고 우환 중이라도 흔연한 모양을 가지고 여쭈오되,

     

    옛말에 일렀으되, 지혜로운 자 천 번 생각하는데 한 번 실수할 때가 있고, 우매한 자가 천 번 생각하는데 한 번 잘할 때가 있다 하였는지라. 이러므로 미친 사람의 말도 성인이 가리어 들으시고 어린아이 말도 귀담아 들으라 하오니, 대왕의 지극히 밝으신 지감(知鑑)으로 세세히 통촉하여 보시옵소서. 만일 소신의 배를 갈랐다가 간이 있으면 다행이어니와 정말 간이 없고 보면 물을 데 없이 누구를 대하여 간을 달라 하오리까? 후회막급 되실 터이오니, 지부왕(地府王)의 아들이요 황건역사(黃巾力士)의 동생인들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황천길을 무슨 수로 면하오며, 또한 소신의 몸에 분명하온 표가 하나 있사오니 바라건대 밝히 살피사 의심을 풀으시옵소서.”

     

    * 기화요초(琪花瑤草): 옥같이 고운 꽃과 풀. * 언감생심(焉敢生心): 감히 그런 마음을 품을 수도 없음. * 무소(誣訴): 일을 거짓 꾸며 관청에 고소하는 것. * 지감(知鑑): 지인지감(知人之鑑)의 준말로 사람을 잘 알아보는 식견. * 지부왕(地府王): 염라대왕. * 황건역사(黃巾力士): 힘이 센 신장(神將)의 이름.

     

    용왕이 듣고 가로되,

     

    이 요망한 놈, 네 무슨 표가 있단 말이니?”

     

    토끼 아뢰되,

     

    세상 만물의 생긴 것이 거의 다 같사오나 오직 소신은 밑구멍 셋이오니 어찌 유()와 다른 표가 아니오리까?”

     

    왕이 가로되,

     

    네 말이 더욱 간사하도다. 어찌 밑구멍 셋이 될 리가 있느냐?”

     

    토끼 가로되,

     

    그러하시면 소신의 밑구멍의 내력을 들어 보시옵소서. 하늘이 자시(子時)에 열려서 하늘 되고, 땅이 축시(丑時)에 열려 땅이 되고, 사람이 인시(寅時)에 나서 사람되고, 토끼가 묘시에 나서 토끼 되었으니, 그 근본을 미루어 보면 생풀을 밟지 않는 저 기린도 소자출(所自出)이 내 몸이오, 주려도 곡식을 찍어 먹지 아니하는 봉황도 소종래(所從來)가 내 몸이라. 천지간 만물 중에 오직 토처사가 본방(本邦)이라. 이러므로 옥황상제께옵서 순순히 명하옵시되 토처사는 나는 새 중에 조종(祖宗)이요 기는 짐승 중에 본방이라. 만물 중에 제일 자별(自別)하니 신체 만들기를 별도히 하여 표를 주자 하시고, 일월성신 세 가지 빛을 응하며 정직강유(正直剛柔) 세 가지 덕을 겸하여 세 구멍을 점지하셨사오니, 보시면 자연 통촉하시리이다.”

     

    용왕이 나졸을 명하여 적간(摘奸)하라 하니 과연 세 구멍 분명한지라. 왕이 의혹하여 주저하거늘, 토끼 여쭈오되,

     

    대왕이 어찌 이다지 의심하시나이까? 소신 같은 목숨은 하루 천만 명이 죽사와도 관계가 없삽거니와, 대왕은 만승(萬乘)의 귀하신 옥체로 동방의 성군이시라 경중(輕重)이 판이하오니, 만일 불행하시면 천리강토와 구중궁궐을 뉘에게 전하시며, 종묘사직과 억조창생을 뉘에게 미루시렵나이까? 소신의 간을 아무쪼록 갖다가 쓰시면 환후(患候)가 즉시 평복(平復)되실 것이오, 평복되시면 대왕은 무려(無慮)히 만세나 향수하실 것이니, 어언간 소신은 일등공신이 아니 되옵나이까? 이러한 좋은 일에 어찌 일호나 기망(欺罔)하여 아뢰올 가망이 있사오리까?”

     

    하며 첩첩이구로 발림하며 용왕을 푹신 삶아내는데, 언사가 또한 절절이 온당한지라. 이 고지식한 용왕은 폭 곧이듣고 자기 생각에 헤아리되,

     

    만일 제 말과 같을진대 저 죽은 후에 누구에게 물을손가? 차라리 잘 달래어 간을 얻음만 같지 못하다.’

     

    하고, 토끼를 궁중으로 불러 올려 상좌에 앉히고 공경하여 가로되,

     

    과인의 망녕됨을 허물치 말라.”

     

    하니, 토끼가 무릎을 싹 쓰러뜨리고 단정히 앉아 공손히 대답하여 가로되,

     

    * 소자출(所自出): 사물이 어디로부터 나온 근본. * 소종래(所從來): 지내온 내력. * 본방(本邦)이라: 본국(本國)이라. * 조종(祖宗)이요: 임금의 조상이요. * 자별(自別)하니: 친분이 남보다 특별하니. * 정직강유(正直剛柔): 정직하고 굳세고 부드러움. * 적간(摘奸): 부정이나 거짓이 있는 지를 캐어 살피는 것. * 평복(平復): 병이 나아 건강이 회복됨. * 무려(無慮): 아무 염려할 것 없이. * 기망(欺罔)하여: 남을 그럴 듯하게 속여. * 발림: 살살 비위를 맞추어 달래는 일.

     

    그는 다 예사올시다. 불우의 환과 낙미의 액을 성현도 면치 못하거든 하물며 소신 같은 것이야 일러 무엇하오리까? 그러하오나, 별주부의 자세치 못하고 충성치 못함이 가엾나이다.”

     

    문득 한 신하가 출반주하여 가로되,

     

    신은 듣사오니 옛글에 일렀으되, 하늘이 주시는 것을 받지 아니하면 도리어 그 앙화(殃禍)를 받는다 하오니, 토끼 본시 간사한 짐승이라. 흐지부지 하다가는 잃어버릴 염려가 있을 듯 하오니, 원컨대 대왕은 잃어버리지 마옵시고 어서 급히 잡아 간을 내어 지극히 귀중하신 옥체를 보중케 하옵소서.”

     

    하거늘, 모두 보니 이는 수천 년 묵은 거북이니 별호는 귀위선생(龜位先生)이러니, 왕이 크게 노하여 꾸짖어 가로되,

     

    토처사는 충효가 겸전한 자이라. 어찌 허언이 있으리오. 너는 다시 잔말말고 물러 있거라.”

     

    하시거늘, 귀위선생이 무료히 물러나와 탄식을 마지아니하더라.

     

    왕이 크게 잔치를 배설하여 토처사를 대접할 새, 오음육율(五音六律)을 갖추고 배반이 낭자하매, 서왕모(西王母)는 술잔을 차지하고 연비는 옥소반을 받들어 드릴 적에, 천일주와 포도주에 신선 먹는 교리화조(交梨火棗)로 안주하고, 백낙천(白樂天)의 장진주사로 노래하며, 무궁무진 권할 적에 한 잔 또 한 잔이라. 병 속 건곤(乾坤)에 취하여 세상의 갑자를 잃어버리는도다. 토끼 제 마음에 생각하되,

     

    만일 내 간을 내어 주고도 죽지만 아니할 양이면 내어 주고 수부에 있어 이런 호강 아니할고.’

     

    납작이 엎드리니, 날이 저물어 잔치를 파하매 용왕이 토처사를 향하여 가로되,

     

    토공이 과인의 병만 낫게 하시면 천금상에 만호후를 봉하고 부귀를 한가지로 누릴 것이니, 수고를 생각지 말고 속히 나아가 간을 갔다가 과인을 먹이라.”

     

    하니, 토끼가 못먹는 술을 취한 중에 혼자말로,

     

    한 번 속기도 원통하거든 두 번조차 속을까?’

     

    하며 대답하여 가로되,

     

    대왕은 염려 마옵소서. 대왕의 거룩하신 은혜를 만분의 일이라도 갚고저 하오니, 급히 별주부를 같이 보내어 소신의 간을 가져오게 하옵소서.”

     

    * 앙화(殃禍): 지은 죄의 앙갚음으로 받는 재앙. * 서왕모(西王母): 중국 신화에 나오는 신녀(神女)의 이름. * 교리화조(交梨火棗): 도가(道家)에서 쓰는 용어로 선인(仙人)이 먹는 과일을 뜻함. * 백낙천(白樂天): 중국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를 말함. 낙천은 그의 자(). * 병 속 건곤(乾坤): 호리건곤(壺裏乾坤). 늘 술에 취하여 있음을 이르는 말.

     

    이 때에 날이 서산에 떨어지고 달이 동정에 나오는지라. 시신을 명하여 토처사를 사관으로 보내매, 토끼 사관으로 돌아와 본즉 백옥 섬돌이며 황금 기와요, 호박(琥珀) 주추며 산호 기둥에 수정발을 높이 걸고, 대모(玳瑁) 병풍 둘러치고 야광주로 촛불 삼고, 원앙금침 잣벼개와 요강 타구 재떨이를 발치발치 던져두고, 오동복판 거문고를 새 줄 엊어 세워 놓고, 부용(芙蓉) 같은 용녀들은 맑은 노래와 맵씨 있는 춤으로 쌍쌍이 희롱하니, 옛날에 주 무왕이 그림 속에 서왕모와 희롱하는 듯, 옥소반에 안주 담고 금잔에 술을 부어 권주가로 권권(拳拳)하니, 토처사 산간에서 이러한 승경을 어찌 보았으리오.

     

    밤에 즐겁게 놀고, 이튿날 왕께 하직하고 별주부의 등에 올라 만경창파 큰 바다를 순식간에 건너 와서, 육지에 내려 자라에게 하는 말이,

     

    내 한 번 속은 것도 생각하면 진저리가 나거든 하물며 두 번까지 속을소냐. 내 너를 다리뼈를 추려 보낼 것이로되 십분 용서하노니 너의 용왕에게 내 말로 이리 전하여라. 세상 만물이 어찌 간을 임의로 꺼내었다 넣었다 하리오. 신출귀몰한 꾀에 너의 미련한 용왕이 잘 속았다 하여라.”

     

    하니, 자라가 하릴없어 뒤통수 툭툭 치고 무료히 회정(回程)하여 들어가니, 용왕의 병세와 별주부의 소식을 다시 전하여 알 일이 없더라.

     

    토끼 별주부를 보내고 희희낙락하며 평원 광야 너른 들에 이리 뛰며 흥에 겨워 하는 말이,

     

    어화 인제 살았구나. 수궁에 들어가서 배 째일 뻔하였더니, 요 내 한 꾀로 살아와서 예전 보던 만산풍경 다시 볼 줄 그 뉘 알며, 옛적 먹던 산 실과며 나무 열매 다시 먹을 줄 뉘 알소냐. 좋은 마음 그지없네.’

     

    작은 우자를 크게 부려 한참 이리 노닐 적에, 난데없는 독수리가 살 쏘듯이 달려들어 사족을 훔쳐들고 반공에 높이 나니, 토끼 정신이 또한 위급하도다.

     

    * 호박(琥珀): 누른빛으로 투명 또는 반투명하고 윤이 남. 장식용으로도 쓰임. * 주추: 기둥 밑에 괴는 돌 따위의 물건. * 권권(拳拳): 참된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간직하는 모양. * 회정(回程): 돌아오는 길에 오르는 것.

     

    토끼 스스로 생각하되,

     

    간을 달라 하던 용왕은 좋은 말로 달랬거니와, 미련하고 배고픈 이 독수리야 무슨 수로 달래리오.’

     

    하며 창황망조(蒼黃罔措)하는 중 문득 한 꾀를 얻고 이르되,

     

    여보 수리 아주머니! 내 말을 잠깐 들어 보오. 아주머니 올 줄 알고 몇몇 달 경영하여 모은 양식 쓸 데 없어 한이러니, 오늘로서 만남이 늦었으니 어서 바삐 가사이다.”

     

    수리 하는 말이,

     

    무슨 음식 있노라 감언이설로 날 속이려 하는냐? 내가 수궁 용왕 아니어든 내 어찌 너한테 속을손가?”

     

    토끼 하는 말이,

     

    여보 아주머니, 토진(吐盡)하는 정담을 들어보시오. 사돈도 이리할 사돈이 있고 저리할 사돈이 있다 함과 같이 수부의 왕은 아무리 속여도 다시 못 볼 터이어니와, 우리 터에는 종종 서로 만날 터이어늘 어찌 감히 일호라도 속이리오. 건너 말 이동지가 납제(臘祭) 사냥하느라고 나를 심히 놀래기로 그 원수 갚기를 생각더니, 금년 정이월에 그 집 맏배 병아리 사십 여수를 둘만 남기고 다 잡아 오고, 제일 긴한 것은 용궁에 있던 의사 주머니가 내게 있으니, 아주머니는 생후에 듣도 보도 못한 물건이오니 가지기만 하면 전후 조화가 다 있지만은, 내게는 다 부당한 물건이요 아주머니한테는 모두 긴요할 것이라. 나와 같이 어서 갑시다. 음식 도적은 매일 잔치를 한대도 다 못 먹을 것이오, 의사 주머니는 가만이 앉았어도 평생을 잘 견디는 것이니, 이 좋은 보배를 가지고 자손에게까지 전하여 누리면 그 아니 좋을손가?”

     

    한즉, 이 미련한 수리가 마음에 솔깃하여,

     

    아무려나 가 보자.”

     

    하고 토끼 처소로 찾아가니, 토끼가 바위 아래로 들어가며 조금만 놓아 달라 하니 수리가 가로되,

     

    조금 놓아주다가 아주 들어가면 어찌하게?”

     

    토끼 말이,

     

    그리하면 조금만 늦춰 주오.”

     

    하니 수리 생각에

     

    조금 늦춰 주는 데야 어떠하랴.?’

     

    하고 한 발로 반만 쥐고 있더니, 토끼가 점점 들어가며 조금 하다가 톡 채치며 하는 말이,

     

    요것이 의사 주머니지.”

     

    * 창황망조(蒼黃罔措)하는: 다급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 토진(吐盡)하는: 다 털어놓고 말하는. * 납제(臘祭): 납평제(臘平祭). 납일(臘日)에 한 해 동안의 농사 형편과 그 밖의 일을 여러 신에게 고하는 제사. 이 납평제를 위하여 지방 관청에서는 산짐승을 잡아 진상하였다. * 맏배: 짐승의 새끼를 낳는 처음 번. 또는, 그 새끼. * 채치며: 채다의 힘줌말로 갑자기 힘을 주어 잡아 당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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