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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 수호전 (水滸傳)중국의 고전 /소설과 희곡 2019. 1. 19. 21:41
307. 수호전 (水滸傳) / 저작자 시내암(施耐庵)
1510년경에 만들어진 책으로, 통쾌한 무용담과 함께 비극으로 끝나는 영웅들의 모습을 그린 이야기이다. 『수호전』은 크게 100회본과 120회본, 김성탄(金聖歎)의 70회본의 3종류로 나누어진다. 100회본과 120회본의 차이는 전호(田虎), 왕경(王慶)을 토벌하는 내용의 유무와 삽입된 시나 사(詞)가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70회본은 108명이 양산박에 모이는 장면에서 끝난다.
송나라 선화(宣和) 연간(1119~1125)에 송강(宋江)1) 을 비롯한 36명이 산동에서 반란을 일으켜 한때 관군을 격파했으나 나중에 항복했다는 간단한 기술이 『송사(宋史)』에 3차례 언급된다. 송강 일당의 반란 사건은 그 일화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얼마 뒤 영웅설화로 전설화되어 민중들 사이에서 많은 인기를 누렸던 점으로 미루어 민중들이 송강의 반란에 얼마나 공감했었는지를 알 수 있다. 민중은 그 행동을 영웅시하고, 그 활약에 갈채를 보냄으로써 갈증을 해소했다. 즉, 이 이야기의 배후에는 부패한 관료 정치에 대한 민중의 증오심이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수호 설화가 발생한 것은 북송 말년에서 남송(1127)이 시작될 무렵이다. 이 설화는 강담으로 유포되고 연극으로 공연되는 사이에 이야기가 이야기를 낳아, 처음에는 36명이었던 영웅이 점점 불어나 마침내 108명이 되었다. 거기에 다른 설화들이 삽입되어 지금의 형태로 정리된 것은 명나라(1368)가 시작되면서이다. 『수호전』의 편자는 시내암으로 알려져 있으나, 일설에는 편자가 나관중(羅貫中)이라고도 하고, 시내암의 작품을 나관중이 개작했다고도 하는데, 오늘날에는 시내암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시내암은 강소성(江蘇省) 흥화현(興化縣) 사람으로, 군웅의 한 사람인 장사성(張士誠, 1321~1367)의 난2) 에 참가했다고 한다.
현대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절에는 계급투쟁과 노동 인민의 반착취, 반압박에 대한 희망과 요구를 반영한 혁명 소설로 높이 평가되었다. 통치 계급이 귀순 권고와 토벌이라는 비열한 수단을 이용한 심각한 현실을 반영했고, 농민 혁명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우두머리 송강에 대해 비열한 항복주의자라고 격렬하게 비판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그것은 『수호전』을 빌린 간접적인 현실 정치의 비판이라 할 것이다.
1) 『수호전』의 주인공으로, 실존 인물이다. 1121년 회남(淮南)에서 농민 반란을 일으켜 35명의 부하를 이끌고 한때 상당한 기세를 올렸으나, 그 후 항복한 사실이 『송사(宋史)』에 기록되어 있다. 남송 시대 이후 원나라 때에 걸쳐 이야깃거리로 채택되었다.
2) 본래 태주[泰州, 강소성(江蘇省) 태현(泰縣)]의 염전인 백구장(白駒場)에 적을 둔 소금 중개인이었던 장사성이 1353년 염장(鹽場) 관리와 염정(鹽丁) 사이에 일어난 분쟁을 틈타 염정을 모아 일으킨 난.
■ 민중의 꿈과 슬픔을 반영한 영웅 비극
송나라의 휘종(徽宗) 선화(宣和) 연간(1119~1125)에 채경(蔡京)과 동관(童貫), 고구(高俅), 양전(楊戩)이라는 4명의 고관이 나라의 정치를 좌지우지하며 악정을 일삼았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죄를 범하거나 억울하게 누명을 써 갈 곳 없는 죄인과 무뢰한들이 관권에 반항해 천하를 휘젓고 다니다가 이윽고 양산박(梁山泊)에 모여들게 된다. 모두 108명인 그들은 송강(宋江)과 노준의(盧俊義)를 두령으로, 오용(吳用)과 공손승(公孫勝)을 군사로 삼아, 각자 나름대로의 직분을 가지고 ‘체천행도(替天行道)’(하늘의 뜻을 받들어 도를 행한다)의 깃발 아래 기세를 올려, 동관이 이끄는 관군을 2차례, 고구가 이끄는 관군을 3차례 격파한다. 그러나 그 뒤 천자의 귀순 권유를 받아 양산박을 버리고, 칙명을 받아 북방의 요(遼)나라로 원정해 항복시킨 데 이어서 전호(田虎), 왕경(王慶), 방랍(方臘)의 반란을 평정한다. 그런 악전고투를 거듭하는 사이 108명 가운데 태반은 전사하거나 병사해 점차 숫자가 줄어들었다. 방랍을 토벌하고 수도로 개선한 자는 고작 27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그 공으로 제각기 관직과 작위를 받았는데, 그 가운데 절반은 각자의 임지로 갔고, 나머지 절반은 관직을 버리고 야인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마지막까지 남은 27명도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지만, 고구와 양전은 여전히 송강을 두려워했다. 결국 그들은 채경, 동관과 일을 꾸며서 먼저 송강의 오른팔인 노준의를 독살한 뒤 이규(李逵)를 없애고, 마지막으로 송강을 독살했다.
이상이 『수호전』의 줄거리이다. 전반부에는 영웅호걸들의 용감한 반항이 그려지고, 귀순을 한 후반부에는 그 비극적인 말로가 묘사된다. 용감한 반항에 대한 민중의 공감과 비통한 말로에 대한 민중의 동정심과 슬픔 등은 봉건사회의 민중이 만들어 내는 영웅상의 전형적인 성격이다. 이것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면, 전반부에 묘사되는 개개의 영웅전은 『수호전』이라는 큰 강의 지류와 같고, 그 크고 작은 108개의 지류가 모여 큰 강을 이룬 다음 사라진다. 『수호전』은 그 흐름의 전체를 그린 것으로, 민중의 꿈과 슬픔을 반영한 영웅 비극이다.
『수호전』의 판본은 다양한데, 크게 나누면 100회본과 120회본, 김성탄이 첨삭한 70회본의 3종류라 할 수 있다. 여기서는 120회본을 바탕으로 이 이야기의 발원지에서 하류까지 그 구성을 살펴보기로 하자.
1. 1회.
2. 2회부터 71회까지.
3. 72회부터 82회까지.
4. 83회부터 90회까지.
5. 91회부터 110회까지.
6. 111회부터 119회까지.
7. 120회.
100회본에는 5의 ‘91회부터 110회까지’가 없다. 이것은 100회본에 20회분을 증보해 120회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100회본에는 120회본의 ‘110회부터 119회까지’가 ‘91회부터 99회까지’가 되고, ‘120회’가 ‘100회’가 된다. 또한 김성탄이 개작한 70회본은 다른 본의 ‘1회’를 ‘결자(楔子)’라 하고, ‘2회부터 71회까지’를 ‘1회부터 70회까지’로 하여 그 뒷부분은 삭제해 버렸다. 그 대신 108명이 모두 참수형을 당한다는 노준의의 꿈 이야기를 덧붙여 그것을 결론으로 삼았다.
1. 1회 - 복마전이 열리고 바깥세상으로 나온 108인의 마왕
송나라의 인종(仁宗) 가우(嘉祐) 3년(1058)에, 천하에 전염병이 돌자 조정에서는 전염병 퇴치를 위한 기도를 올리기로 하고, 태위(太尉) 홍신(洪信)을 칙사로 삼아 강서(江西) 신주(信州)의 용호산(龍虎山, 도교의 본산)으로 보내 장천사(張天師)를 초빙하게 했다. 홍신은 험한 산을 오르내리고 호랑이와 뱀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고생고생한 끝에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장천사는 벌써 구름을 타고 도성으로 출발한 다음이었다. 홍신은 하는 수 없이 다른 도사들의 안내로 경내를 둘러보다가 마왕이 갇혀 있는 복마전(伏魔殿)을 보고 흥미를 느껴 도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문을 열었다. 거기서 홍신은 ‘우홍이개(遇洪而開)’(홍씨를 만나 열린다)라는 글이 새겨진 비석을 발견하고 더욱 흥미를 느껴 그 비석 아래를 파게 하니, 깊은 구멍 바닥에서 구릉구릉 하는 소리가 들려오다가 이윽고 검은 연기가 피어올라 복마전 일각을 날려 버렸다. 솟아오른 검은 연기는 이윽고 무수한 금빛으로 변하더니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것은 그곳에 봉인되어 있던 36개의 천강성(天罡星)과 72개의 지살성(地煞星)으로 이루어진 108인의 마왕이었다.
2. 2회~71회 - 노지심을 비롯한 영웅들이 펼치는 활약상
홍신이 복마전을 연 지 40여 년 뒤인 철종(哲宗) 말년에 도성에 고이(高二)라는 무뢰한이 있었는데, 축국(蹴鞠, 공을 발로 차는 놀이)을 잘해서 철종의 동생인 단왕(端王)과 교류했다. 이 사람이 바로 고구이다. 이윽고 철종이 죽고 단왕[휘종(徽宗)]이 즉위하자, 고구는 일약 전수부태위(殿帥府太尉, 근위장관)가 되었다.
한편, 왕진(王進)이라는 근위군의 무예사범이 있었는데, 그의 돌아가신 아버지가 고구와 봉술 시합을 한 적이 있었다. 고구가 그 원한을 자신에게 갚으려 한다는 사실을 안 왕진은 어머니와 함께 집을 버리고 연안(延安)으로 도망쳤다. 이윽고 화음현(華陰縣)에 이르렀을 때, 우연히 그곳 대지주의 집에서 하룻밤을 신세지다가 그 집 아들을 만났다. 온몸에 용 9마리를 새겼다 하여 구문룡(九紋龍) 사진(史進)이라 불리는, 무예에 미쳐 있는 젊은이였다. 왕진은 그 집에 반년을 머물면서 사진에게 무예 18반을 가르쳤다.
이 구문룡 사진이야말로 후일 양산박에 모인 108명의 영웅 가운데 최초의 등장인물이다. 사진은 왕진이 연안부(延安府)로 떠난 뒤, 가까운 소화산(少華山)에 본거지를 둔 도적의 수령 신기군사 주무(神幾軍師朱武), 도간호 진달(跳澗虎陳達), 백화사 양춘(白花蛇楊春)─이들 3명도 뒷날 양산박에 모인다─과 싸워 사로잡았으나, 그들의 의협심에 감동해 오랏줄을 풀어 주고 술잔을 나눈 뒤 산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그들은 친구가 되었다. 어느 날 밤, 사진이 세 사람을 초대해 잔치를 벌이고 있는데, 밀고를 받은 화음현 현위가 400명의 병사를 풀어 사진의 집을 포위했다. 사진은 집에 불을 지르고 세 두령과 함께 빠져나와 소화산으로 도망쳤다. 세 사람은 사진에게 산채(山寨)의 두령이 되어 주기를 청했으나, 사진은 도적이 되기를 거부하고 연안의 경략부(經略府)에 머물고 있을 왕진을 찾아 홀로 산을 떠났다. 이윽고 당도한 위주(渭州)의 찻집에서 왕진의 소식을 묻고 있노라니, 무인 차림을 한 뚱뚱한 남자가 다가왔다. 그가 바로 제할(提轄, 지방군의 지휘관) 노달(魯達), 뒷날의 화화상 노지심(花和尙魯智深)이다.
이상은 2회에서 3회 전반까지의 줄거리이다. 3회에서 9회까지는 노지심의 활약상이 그려진다. 6회에서 노지심은 사진과 재회했다 다시 헤어지며, 7회부터는 표자두 임충(豹子頭林冲)이, 9회에는 소선풍 시진(小旋風柴進)이 등장한다. 9회 이후 노지심은 퇴장해 17회까지 등장하지 않고, 그 대신 7회에 등장한 임충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어 12회까지 활약한다. 그리고 12회부터는 청면수 양지(靑面獸楊志)가 등장한다. 급시우 송강(及時雨宋江)의 등장은 18회부터이다. 이야기는 주요 등장인물과 다른 인물과의 관계가 얽히면서 진행된다. 크고 작은 108개의 실을 교묘히 조종하여 그들을 양산박으로 이끌어 가는 치밀한 구성이 돋보인다.
양산박에 모인 108명은 지하에서 파낸 비석을 보고, 자신들이 108개 별의 환생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108명 가운데 무관 출신이 24명으로 가장 많고, 이어서 산채의 두령에서 좀도둑까지 포함해 도적이 19명이다. 이하, 상인이나 장사꾼이 12명, 관리가 10명, 농업 종사자(지주 계급)가 6명, 도선공 · 대장장이 · 석공 · 은세공사 등 기술자가 6명, 한량과 건달 5명, 지식인 · 부자 · 어부 각 3명, 도사 · 사냥꾼 · 나무꾼 · 머슴 각 2명, 왕족 · 신상(紳商) · 의사 · 노름꾼 · 마부 · 병사 · 씨름꾼 · 농부(소작인) 각 1명으로, 그들 대부분은 무법자이다.
3. 72회~82회 - 황제에게 귀순한 송강 일당의 요나라 정벌
양산박에 모인 송강 일당이 처음에는 동관, 다음에는 고구가 이끄는 관군을 격파하고 마침내 황제로부터 귀순 권고를 받기에 이르는 과정이 전개된다. 먼저 휘종에게 총애를 받는 동경[東京, 개봉(開封)] 최고의 명기 이사사(李師師)와 송강, 시진, 신행태보 대종(神行太保戴宗), 낭자 연청(浪子燕靑), 이렇게 4명의 만남으로 이야기의 단서를 열고, 다시 이사사를 등장시켜 연청이 이사사를 매개로 하여 휘종을 만나 귀순하는 내용으로 이어지도록 구성했다.
귀순 권고를 받은 송강을 비롯한 108명의 처우에 대해, 고구는 도성 안으로 불러들여 몰살하는 것이 국가를 위한 상책이라고 건의하지만, 태위 숙원경(宿元景)은 그들에게 요나라를 정벌케 하는 편이 국가를 위한 득책(得策)이라고 주장했다. 이로써 송강 일당은 요나라 정벌에 나서게 되고,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통쾌한 무용담은 서서히 비극적인 결말로 돌아선다.
4. 83회~90회 - 요나라 땅을 돌려주고 개선의 길에 올라
요나라를 정벌하는 이야기이다. 송강을 선봉으로 하고 옥기린 노준의(玉麒麟盧俊義)를 부선봉으로 하는 요나라 정벌군은 단주(檀州) · 계주(薊州) · 패주(覇州)에서 요나라 군대를 물리치고, 유주(幽州)에 이르러 요나라 최고의 장수 올안광(兀顔光)을 쳐부순 뒤, 국왕 야율휘(耶律輝)를 연경성(燕京城)으로 몰아넣고 포위했다. 그런데 요나라의 우승상 저견(褚堅)이 채경 · 동관 · 고구 · 양전에게 뇌물을 보내 화해를 요청함으로써 결국 정전의 조칙이 하달되었다. 송강은 어쩔 수 없이 점령한 땅을 요나라에 돌려주고 개선의 길에 올랐다.
귀환하는 길에 송강과 함께 오대산을 방문한 노지심이 옛 은사인 지진장로(智眞長老)를 만나 각자의 운명을 암시하는 게송(偈頌)을 받는다는 삽화나, 연청이 옛 친구 허관충(許貫忠)을 만나 그가 사는 산속의 초가집을 방문한 자리에서 공을 이룬 다음에는 물러날 준비를 하는 것이 좋다는 충고를 듣는 삽화 등은 전투 장면과 다르게 애수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휘종은 동경으로 개선한 송강 일행의 공을 치하하여 관직과 작위를 주도록 채경과 동관 등에게 명령했으나, 채경 일당은 일부러 시간만 끌고 있었다. 바로 그때, 하북(河北)에서 전호의 반란이 일어났다.
5. 91~110회 - 시시각각 다가오는 108인의 불행한 운명
100회까지는 전호의 반란군을 진압하는 이야기이고, 101회 이후는 왕경 토벌을 다루고 있다. 전호 토벌에서는 전호가 가장 믿는 부하인 교도청(喬道淸)과 입운룡 공손승(入雲龍公孫勝)의 법술 싸움과 전호의 처남 오리(鄔梨)의 양녀 경영(瓊英)의 활약이 재미있다. 교도청은 나중에 송강의 군대에 항복하고 공손승을 스승으로 모신다. 경영은 꽃처럼 아름다운 16세 처녀로, 돌팔매질의 명수이다. 왜각호 왕영(矮脚虎王英)은 경영과 대결을 벌이다가 허벅지에 상처를 입고, 일장청 호삼랑(一丈靑扈三娘)과 소위지 손신(少尉遲孫新), 표자두 임충, 흑선풍 이규(黑旋風李逵), 양두사 해진(兩頭蛇解珍)과 같은 호걸들도 경영의 돌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 사실 경영은 오리의 친딸이 아니다. 열 살 때 부모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뒤 집사였던 섭청(葉淸) 부부의 손에 자라다가 전호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섭청 부부와 함께 군대에 사로잡힌 것을 오리가 양녀로 삼은 것이다. 섭청은 그 뒤 경영의 부모를 죽인 자가 전호라는 사실을 알고 옛 주인의 원수를 갚기 위해 송강과 내통하다 오리가 독화살에 맞아 의사를 찾는 것을 기회로 삼아, 오리를 속이고 돌팔매질의 달인인 몰우전 장청(沒羽箭張淸)과 신의 안도전(神醫安道全) 두 사람을 데리고 갔다. 경영이 자신처럼 돌팔매질을 잘하는 사내가 있다면 결혼할 생각이 있음을 아는 섭청은 경영과 장청의 돌팔매질 시합을 주선해 부부의 연을 맺게 한 다음, 넷이서 오리를 독살하고 송강의 군대와 계략을 세워 전호를 사로잡았다.
전호의 반란을 평정하고 동경으로 개선하는 송강 일행을 기다린 것은 채경 일당의 음모였다. 채경 일당은 송강을 실각시키기 위해 이전부터 회서(淮西) 일대에서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왕경을 토벌하라고 명령했다.
101회의 후반부부터 105회의 전반부까지는 왕경이 반란을 일으키기까지의 과정이 서술된다. 왕경을 토벌하러 간 송강의 군대는 연전연승을 하고 마침내 왕경의 본거지인 남풍성(南豊城)을 함락시켰다.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왕경은 장강을 건너 도망치려고 어선을 탔다가 뱃사공으로 변장한 수군 장수 혼강룡 이준(混江龍李俊)에게 붙잡혔다.
송강이 왕경 일당을 토벌하고 동경으로 개선하는 도중에 완주(宛州)의 추림도(秋林渡)라는 나루터에서 기러기 떼가 대열을 흐트리며 날아가는 것을 보고 수상쩍게 여겨 그 사연을 물으니, 연청이 화살을 쏘아 기러기 십여 마리를 잡았다는 것이었다. 송강은 그 말을 듣고 연청을 불러 타일렀다.
“기러기 떼가 질서 있게 대열을 지어 하늘을 날아가는 것이 우리 형제의 모습과 같지 않으냐. 네가 그 가운데 몇 마리를 쏘아 떨어뜨린 것은 우리 형제 가운데 몇 사람을 잃는 것과도 같다. 앞으로는 꼭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다섯 글자를 가슴에 새기고 새를 죽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연청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죄를 뉘우쳤다. 송강은 영문 모를 슬픔에 사로잡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연민의 정을 일으켰다. 이 일화 또한 전투 장면 뒤에 놓여 슬픈 분위기를 은근히 조성해 그 운명을 암시하는 복선 역할을 하고 있다.
동경으로 개선한 송강과 노준의 두 사람에게는 제각기 보의랑(保義郞)과 선무랑(宣武郞)이라는 낮은 무임소 관직이 내려졌지만, 다른 장수들에게는 아무런 포상도 없었다. 오히려 채경 일당의 획책으로 일행은 성 밖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처사에 송강이 의기소침해 있는 것을 보고 이규가 말했다.
“형님, 그리 마음에 두지 마세요. 양산박에 있을 때 우리는 누구에게도 짓밟히지 않았습니다. 결국 황제의 귀순 권고 때문에 이런 꼴을 당하고 있는 겁니다. 형님, 우리 다시 양산박으로 돌아갑시다. 그러면 얼마나 속이 편하겠습니까?”
다른 장수들도 모두 이규와 같은 생각이었지만, 송강을 배려해서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그때 강남의 도적 방랍이 윤주(潤州)를 침략하고 양주(揚州)를 장악하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져 송강 일행은 다시 토벌 명령을 받게 되었다.
6. 111회~119회 - 영웅들 사라지다
송강의 군대는 악전고투하면서 윤주 · 상주(常州) · 소주(蘇州) · 선주(宣州) · 호주(湖州) · 목주(睦州) · 수주(秀州) · 항주(杭州) · 흡주(歙州)로 나아가 마침내 방랍의 본거지 청계성(淸溪城)을 함락시켰다. 방랍은 깊은 산속으로 도망쳤으나 노지심의 손에 붙잡혔다.
송강의 군대는 방랍 일당을 평정하고 개선했다. 이때 살아남은 자는 고작 36명으로, 3분의 2가 목숨을 잃고 말았다. 게다가 돌아가는 길에 항주의 육화사(六和寺)에서 노지심이 숨을 거두고, 목주의 전투 때 한쪽 팔을 잃은 행자 무송(行者武松)은 거기서 출가했고, 임충도 중풍에 걸려 절에 남았으며, 병관색 양웅(病關索楊雄)은 부스럼으로 죽고, 고상조 시천(鼓上皂時遷)은 곽란(급성 위장병)으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연청은 한 장의 편지를 남기고 사라졌다. 소주까지 왔을 때, 혼강룡 이준이 중풍에 걸리자 출동교 동위(出洞蛟童威)와 번강신 동맹(飜江蜃童猛) 형제가 남게 되는데, 그들은 후일 섬라(暹羅, 태국) 지역으로 떠났다. 이렇게 9명이 죽거나 길을 떠나 동경으로 돌아온 사람은 27명이었다. 일행은 휘종의 치하를 받고 제각기 관직과 작위를 받는다.
7. 120회 - 송강과 이규는 독주를 마시고 숨을 거둔다
이 이야기의 결말이다. 27명의 영웅은 관직과 작위를 받았지만 아무도 기뻐하지 않았다. 그 가운데 사령을 받고 일단 임지로 갔다가 병을 핑계로 반납하거나 사령을 박탈당한 자가 15명이었고, 나머지 12명은 각자의 임지로 부임했다. 그 12명 가운데 5명, 곧 노준의 · 이규 · 송강 · 화영 · 오용의 마지막 모습과 휘종이 꿈속에서 송강과 더불어 노니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채경 · 동관 · 고구 · 양전에게는 송강 일행이 은상을 받고 지방관이 되는 것 자체가 재미없는 일이었다. 네 사람은 계략을 꾸며, 먼저 여주(廬州)의 안무(按撫)가 된 노준의를 조정으로 불러들인 뒤 음식에 수은을 넣어 취하게 했다. 돌아가는 길에 노준의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결국 강에 빠져 죽었다. 이어서 네 사람은 초주(楚州)의 안무로 있는 송강에게 칙사를 보내 독주를 마시게 했다. 칙사가 돌아간 다음 송강은 윤주의 도통제(都統制)로 있는 이규에게 급히 사자를 보냈다. 이규가 서둘러 달려오자 송강은 그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술기운이 돌자 물었다.
“조정에서 독주를 든 사자를 내게 보낼 모양인데 어떡하면 좋겠는가?”
이규가 대답했다.
“모반을 일으켜야지요.”
“그 문제는 천천히 생각해 보도록 하세.”
그리고 다음 날 이규가 떠날 즈음에야 비로소 어제 마신 술이 바로 칙사가 가져온 독주임을 알렸다.
“내가 죽으면 동생이 모반을 일으켜 우리의 충의를 깰까 두려워 어제 마신 술에 독을 넣었다네. 자네도 윤주로 돌아가면 독이 퍼져 곧 죽게 될 걸세.”
두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이별을 고하고, 곧 숨을 거두었다.
한편, 무승군(武勝軍)의 승선사(承宣使)로 있던 오용와 응천부(應天府)의 병마도통제(兵馬都統制)로 있던 화영은 똑같은 꿈을 꾸게 되는데, 그 꿈으로 송강과 이규가 독살되어 초주의 남문 바깥에 있는 요아와(蓼兒洼)라는 곳에 묻혀 있다는 것을 알고, 그곳으로 달려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나무에 목을 매어 죽었다.
휘종은 이 모든 것이 채경을 비롯한 4명의 간계에 의한 것임을 알았지만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어느 날 휘종이 이사사의 집에 갔을 때, 꿈에서 양산박으로 건너가 송강을 만난 뒤 그 충성심을 확인하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뒷날, 휘종은 태위 숙원경의 주청을 받아 송강을 충렬의제영응후(忠烈義濟靈應侯)로 추봉하고, 양산박에 사당을 세웠다.
“후일, 송공명(宋公明)은 영험이 뛰어나다 하여 사철 공물이 끊이지 않았다. 양산박에 와서 비를 빌면 비를 얻고, 바람을 빌면 바람을 얻었다. 그뿐 아니라 초주의 요아와에서도 영험이 잘 나타나, 그 지방 사람들이 다시 거대한 전각을 세우고 2채의 긴 회랑을 덧붙였다. 천자께 상주해 폐액을 하사받는 한편으로 정전(正殿)에는 신상(神像) 36체를 모시고, 회랑에는 72장수의 상을 안치해 해마다 제사를 올렸는데,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긴 이야기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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