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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4. 전등신화 (剪燈新話)
    중국의 고전 /소설과 희곡 2019. 1. 8. 14:04

    304. 전등신화 (剪燈新話) / 저작자 구우(瞿佑

     

    1397년경에 만들어진 책으로, 명나라의 독서계를 풍미한 낭만적 괴담집이다. 작자 구우는 전등록(剪燈錄)40권을 다시 구성해 신화(新話)’를 썼다고 한다. 현존하는 판본은 420편이지만, 그 밖에 1편 또는 2편이 덧붙여진 것도 있다. ‘전등(剪燈)’이란 등잔불의 심지를 잘라 불을 더 밝게 하면서 밤이 새도록 읽는다는 뜻이다

     

    작자 구우(1341~1427)는 절강성(浙江省) 전당(錢塘) 사람으로 자는 종길(宗吉), 호는 존재(存齋)이며, 시인으로 이름을 알렸다. 전등신화의 각 편에 시가 많이 나오고, 시를 짓는 이야기와 시인을 둘러싼 이야기가 많고, 소설 문체에도 4 · 6변려체의 미문이 구사된 점도 지은이가 시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전등신화외에도 많은 저작이 있었으나 태반은 산실되었고, 현재 전하는 것은 귀전시화(歸田詩話)영물시(詠物詩)뿐이다. 전등신화가 출판되자 많은 모작이 나타났는데, 대표적인 것이 이정(李禎, 1376~1452)전등여화(剪燈餘話)이다.

     

    전등신화전등여화는 동아시아 각국의 괴담소설에 큰 영향을 끼쳤다. 조선에서 최초로 이 책을 언급한 사람은 김시습(1435~1493)인데, 그의 금오신화(金鰲新話)창작과 연관지어 볼 수도 있다. 또한 전등여화1443년에 주석된 용비어천가에 언급된 것으로 보아 그보다 훨씬 전에 유입된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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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조시대의 지괴(志怪)와 당나라의 전기(傳奇) 같은 문언소설의 흐름은 송 · · 명으로 이어지지만, 새로이 일어난 백화소설 (구어체 소설)1)에 가려 큰 빛을 발하지 못했다. 그때 혜성처럼 나타난 문언소설이 바로 전등신화였다. 이 소설집은 지괴와 전기의 전통을 이어받아 괴담의 형식을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낭만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그런 점에서 당나라 전기의 정통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1) 중국의 구어체(口語體)로 서술된 소설. 특히 백화 운동(白話運動) 시대의 소설을 이르는 말로, 루쉰(魯迅)<광인 일기(狂人日記)>가 유명하다.

     

    모란등롱(牧丹燈籠)

     

    원나라 말기의 이야기이다. 방국진(方國珍)이 절강성 동부를 점령했을 즈음, 명주(明州)에서는 매년 515일 밤부터 다섯 밤에 걸쳐 등불 축제를 열었는데, 성안의 모든 사람이 구경했다.

     

    지정(至正) 20(1360), 진명령(鎭明嶺) 기슭에 교생(喬生)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일찍이 아내를 잃고 홀로 살고 있었다. 외로움에 빠진 그는 등불 축제가 한창인데 구경도 가지 않고 멍하니 문 옆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보름밤도 깊어 자정이 지난 거리에는 사람 그림자도 거의 사라지고 없는데,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모란등 2개를 든 쪽 찐 머리의 여자아이 하나를 앞장세우고, 그 뒤로 17~18세나 됨 직한 절세미인이 붉은 치마에 비취색 저고리로 단장한 채 간드러진 걸음걸이로 느릿느릿 서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교생은 저도 모르게 그 뒤를 따라갔다. 잠시 뒤, 여자는 웃음 띤 얼굴로 교생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는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달빛 아래 만났으니 무슨 인연이라도 있는 모양입니다.”

     

    교생은 앞으로 나아가 인사를 하고 말했다.

     

    제 집이 바로 저기인데 잠깐 들렀다 가시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여자는 등을 든 시녀에게 말했다.

     

    금련아, 등을 들고 이분 집으로 가 보자.”

     

    교생은 여자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 황홀한 사랑을 나누었다. 교생은 여자에게 사는 곳과 이름을 물었다. 그러자 여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성은 부(), 자는 여경(麗卿), 이름은 숙방(叔芳)입니다. 저희 집은 옛 봉화주(奉化州)의 주판(州判) 집안이었는데,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가세가 기울어 지금은 금련이를 데리고 호수 서쪽에 임시로 살고 있지요.”

     

    교생은 그녀를 가지 못하게 붙들고 같이 잤다. 요염한 몸매에 교태가 넘치는 말씨가 교생의 욕망을 더욱 자극했다. 두 사람은 마음껏 사랑을 나누었다. 그 뒤로 두 사람은 밤이면 사랑을 나누고 날이 밝으면 헤어졌다.

     

    이런 생활이 보름쯤 되었을 때, 밤마다 속삭이는 소리가 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이웃집 노인이 벽에 구멍을 뚫어 엿보았더니, 교생이 등불 아래 해골과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노인은 다음 날 아침 교생에게 따져 물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인이 말했다.

     

    자네 정말 큰일일세. 인간은 정기가 넘치는 양의 세계에 살고, 유령은 요사하고 더러운 음의 세계에 사는 법이지. 자네는 음의 세계에 사는 부정한 유령과 동침하면서도 그런 사실을 모르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는데, 그러다가는 정기가 고갈되어 그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고 말 게야. 정말 애통한 일이야.”

     

    교생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 노인에게 그 여자를 만난 경위를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노인이 말했다.

     

    여자가 호수 서쪽에 임시로 머물고 있다고 했으니, 그 부근을 찾아보면 될 걸세. 사연을 알 수 있지 않겠나.”

     

    교생은 노인의 말대로 월호(月湖) 서쪽으로 가서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으나 하나같이 그런 여자는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윽고 해가 저물자 교생은 호심사(湖心寺)로 가서 잠시 쉰 다음 복도를 어슬렁거리다가 서쪽 복도 끝에 어두운 방 하나가 있는 것이 보였다. 거기에 관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 관에는 하얀 종이가 붙어 있었고 전 봉화주 주판의 딸 여경의 관이라 적혀 있었다. 그 앞에는 모란꽃 두 송이 형태의 등이 걸려 있고, 그 아래에는 죽은 자에게 바쳐진 종이로 만든 시녀가 서 있었는데, 그 등에는 금련(金蓮)’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교생은 모골이 송연해져서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절 밖으로 도망쳐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은 이웃의 노인 집에 머물렀다. 노인은 벌벌 떨고 있는 교생에게 비법을 알려 주었다.

     

    현묘관(玄妙觀)의 위() 법사가 만든 부적이 당대 최고라고 하니, 당장 가서 그것을 구해 오게.”

     

    다음 날 아침 교생은 현묘관으로 갔다. 위 법사는 교생을 보자마자 놀라며 물었다.

     

    엄청난 요기가 감돌고 있군. 무슨 일로 찾아왔는가?”

     

    교생이 사연을 이야기하자, 위 법사는 붉은 부적 2장을 그려 주었다.

     

    한 장은 문에 붙이고, 한 장은 침상에 붙이게. 그리고 다시는 호심사에 가지 않도록 하게.”

     

    교생은 부적을 들고 집으로 돌아와 위 법사가 시킨 대로 문과 침상에 붙였다. 그러자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 달 정도 지난 뒤, 교생은 친구 집에서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취기에 그만 위 법사의 주의를 잊고 호심사 앞을 지나고 말았다. 그 문 앞에서는 금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가씨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그러면서 금련은 교생의 손을 이끌고 서쪽 복도 끝 어두운 방으로 데리고 갔다. 방에는 여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교생에게 따지고 들었다.

     

    당신과 나는 등불 축제일에 우연히 만났고, 나는 당신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해 온몸을 바쳐 당신을 받들고 밤낮으로 오가며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요사스러운 도사의 말만 믿고 나를 이렇게 박정하게 대하십니까? 당신이 원망스러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오늘 이렇게 만났으니 절대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 겁니다.”

     

    그러고는 교생의 손을 잡고 관 앞으로 갔다. 그러자 관 뚜껑이 저절로 열리더니, 여경이 교생을 안고 관 속으로 들어가자 다시 저절로 닫혔다. 교생은 관 속에서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이웃집 노인은 교생이 돌아오지 않자 사방을 찾아 헤맨 끝에 호심사에 이르러 관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교생의 옷이 관 뚜껑 밖으로 살짝 비어져 나와 있는 것이 아닌가. 노인은 승려에게 부탁해 관 뚜껑을 열게 했다. 관 속에서 교생은 여자의 사체를 끌어안은 채 죽어 있었다. 여자의 얼굴은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승려는 탄식하며 말했다.

     

    이 여자는 봉화주 주판의 딸인데, 열일곱 살 때 세상을 떠났지요. 가족들은 그 관을 우리에게 맡기고 북쪽으로 떠나 버렸습니다. 그 뒤로 소식이 끊어진 지 벌써 12년이나 되었습니다. 설마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여자의 시신과 교생을 서문 밖에 묻었다.

     

    그 뒤로 어두운 밤이나 달이 없는 밤이면 모란등을 든 금련을 앞세우고 교생과 여자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이 자주 보였는데,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오한과 신열로 고생했고, 공덕을 드리고 제사를 지내야 병이 나았다.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현묘관의 위 법사를 찾아가 부적을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위 법사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부적은 나쁜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는 있으나, 귀신의 화기를 입은 다음에는 아무 소용이 없소이다. 소문에 사명산(四明山)의 철관도인(鐵冠道人)이 유령을 물리치는 술법에 밝다 하니 그 사람을 찾아가 보시오.”

     

    그래서 사람들은 사명산으로 갔다. 등나무 줄기와 칡덩굴을 잡고 험한 산을 기어올라 정상에 이르니 과연 초암(草庵) 하나가 있었다. 도인은 동자가 학을 길들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책상에 기대앉아 있었다.

     

    나는 산림에 숨어 사는 일개 서생에 지나지 않으니 그런 술법을 어찌 알겠소. 당신들은 잘못된 소문을 들은 게요.”

     

    도인은 사람들을 상대하려 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위 법사의 소개로 왔다고 했다.

     

    그 말 많은 놈이 결국 사람을 귀찮게 만드는구먼.”

     

    도인은 동자를 데리고 바람처럼 산을 내려와 서문 바깥에 이르렀다. 그러고는 방장(方丈, 사방 열 자) 넓이의 단을 세우고 앉아 부적을 태웠다. 그러자 누런 두건에 비단 도포를 입고, 무쇠 갑옷에 날카로운 창을 든 저승사자가 나타났다. 그는 단 아래 우뚝 서더니, 허리를 굽히며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이 부근에 요사스러운 잡귀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괴롭히는데, 너희들은 어찌 모르고 있었더냐? 당장 그놈들을 잡아오도록 해라!”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저승사자들은 여경과 금련 그리고 교생을 쇠고랑을 채워 잡아 왔다. 채찍으로 맞았는지 그들의 몸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도인은 심문을 한 다음 세 사람에게 진술서를 쓰도록 했다. 세 사람이 각자의 사연을 몇백 자로 적어 자신의 죄를 인정하자, 도인은 판결문을 작성해 세 사람 모두 구유(九幽) 지옥에 넣기로 결정했다. 세 사람이 슬피 울며 가지 않으려 하자, 도인은 빨리 끌고 가라고 호통을 쳤다. 이튿날, 사람들이 사례를 하려 했으나 도인은 사라지고 암자에는 잡초만 무성했다. 뒤이어 급히 현묘관으로 달려가 위 법사를 찾았더니 그는 벌써 벙어리가 되어 있었다.

     

    애경전(愛卿傳)

     

    절강성 가흥(嘉興)에 나애애(羅愛愛)라는 명기가 있었다. 재색을 겸비하고 시에도 능해 모든 사람들이 사모하여 애경(愛卿)이라 불렀다. 어느 해 여름, 더위도 끝날 무렵인 15일에 그 지방의 명사들이 원호(鴛湖)에 있는 능허각(凌虛閣)에서 달구경을 하며 시를 짓는 모임을 가졌는데, 애경이 먼저 4수의 시를 읊자 다른 사람들은 시를 지을 생각도 잊고 말았다고 한다.

     

    같은 고을에 사는 조씨라는 부잣집 아들이 예를 갖추어 애경을 아내로 삼으려 했다. 그의 아버지는 벌써 세상을 떠났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애경은 조씨 집으로 시집을 간 뒤로는 여자의 길을 걸으며 남편과 시어머니를 잘 모셨다. 얼마 뒤, 친척 가운데 이부상서(吏部尙書)의 벼슬을 하는 사람이 조씨를 강남 땅의 관리로 발탁하겠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조씨는 자신이 강남 땅으로 가 버리면 어머니와 아내가 슬퍼할 것이고, 만일 가지 않는다면 어렵게 찾아온 출세의 기회를 놓치게 될 판이라 어느 쪽으로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러자 애경이 말했다.

     

    대장부는 입신양명하여 부모의 이름을 드날리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들었습니다. 사사로운 정에 사로잡혀 출세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어머니는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다만, 연세가 많으시고 병이 잦으니, 왕을 섬기는 날은 많아도 부모의 은덕에 보답할 날은 많지 않다는 옛사람의 말을 명심하시어, 서산에 지는 해를 쫓듯이 빨리 돌아오도록 하십시오.”

     

    조씨가 애경의 말을 듣고 마음을 정하자, 애경은 안채에 술상을 차려 이별을 고했다. 애경은 그때 남편에게 술을 따르고 어머니의 장수를 비는 시를 지어 읊었다. 이별을 슬퍼하는 시를 듣고,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사람들 모두 눈물을 흘렸다.

     

    조씨는 그 술기운을 빌려 과감히 여행길에 나섰는데, 도성에 도착해 보니 믿고 의지해야 할 이부상서가 병이 들어 관직에서 물러난 뒤여서 어디 의탁할 곳도 구하지 못한 채 그냥 여관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한편, 고향의 어머니는 아들 걱정으로 병이 더욱 깊어져 마침내 자리에 눕고 말았다. 애경이 정성껏 간병했지만, 그런 보람도 없이 어머니는 반년 뒤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숨을 거두기 전에 어머니는 애경에게 말했다.

     

    아들은 출세하려고 서울로 가서 소식이 끊어지고, 나 또한 병이 들어 네가 나를 섬기느라고 정말 고생이 많았다. 너에게 보답도 못 하고 이렇게 죽게 되다니, 정말 애통하구나. 내가 오로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뒷날 너희들이 자식들을 거느리고 행복하게 잘 사는 것뿐이다. 하늘도 네 효심을 알 것이니 결코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애경은 슬피 울면서 관을 마련해 어머니를 백저촌(白苧村)에 묻었다. 그 뒤로 애경은 매일 영전에 절을 올리고 어머니의 명복을 빌었다. 그러다 보니 애경의 몸도 점점 여위어 갔다.

     

    원나라 지정 16, 장사성(張士誠)이 난을 일으켜 소주(蘇州)를 점령했다. 그 이듬해, 원나라의 승상은 묘족(苗族)의 우두머리 양완(楊完)을 강소성과 절강성의 참정(參政)으로 임명하고, 가흥에서 반란군을 막도록 했다. 그 군대는 양민의 재산을 약탈하고 잔학한 것으로 유명했다. 조씨 집은 유만호(劉萬戶)라는 자가 덮쳤는데, 그는 애경의 미모에 반해 억지로 범하려 했다. 이에 애경은 목욕을 하고 오겠다고 속이고는 비단으로 목을 매 죽고 말았다. 수상히 여긴 유만호가 달려갔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유만호는 시신을 이불로 싼 뒤 뒤뜰에 있는 은행나무 아래 묻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장사성은 원나라와 화해했고, 양완은 죽임을 당했으며, 그의 부하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조씨는 고생 끝에 가흥으로 돌아왔지만, 성곽이며 주민들은 옛날 그대로가 아니었다. 옛집도 폐허나 다름없이 변해 들보에는 쥐가 들락거리고, 나무 위에서는 올빼미가 울어 대고 있었으며, 푸른 이끼와 무성한 잡초만이 섬돌과 뜨락을 뒤덮고 있었다. 어머니와 아내는 간곳없고 그저 집만 덩그러니 우뚝 서 있었다. 조씨는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이윽고 힘을 내 간단히 청소한 다음 잠을 청했다. 다음 날, 동문 밖에서 옛날에 부리던 노복을 만나, 어머니와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복은 조씨를 백저촌에 있는 어머니의 묘로 안내하고, 소나무와 잣나무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나무들은 모두 부인께서 심으신 겁니다. 이 묘도 부인께서 만드신 겁니다.”

     

    그리고 아내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도 알려 주었다.

     

    조씨가 집으로 돌아와 뒤뜰의 은행나무 아래를 파 보니 애경은 얼굴도 피부도 아직 살아 있는 듯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그 모습이 더욱 사무친 조씨는 시신을 쓰다듬으며 통곡했다. 조씨는 애경의 시신을 향탕(香湯)으로 깨끗하게 씻기고 깨끗한 옷을 입혔다. 그러고는 관을 사다가 어머니 무덤 곁에 묻고 울면서 말했다.

     

    부인, 그대는 평소 총명하고 재주가 뛰어났으니 설령 죽었다 한들 보통 사람들처럼 소식을 끊어서는 안 되오. 당신의 영혼이라도 한번 보고 싶구려. 이 세상과 저세상이 달라 영혼 보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으나, 난 당신을 절대로 피하지 않을 것이오. 보고 싶소. 나는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나리라 믿소.”

     

    그로부터 열흘 뒤 달도 없는 어두운 밤, 잠을 이루지 못한 조씨가 홀로 방에 앉아 있는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갑자기 곡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멀리서 들려오다 점점 가까워졌다. 조씨는 황망히 일어나 말했다.

     

    만일 애경의 영혼이라면 모습을 드러내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그러자 말소리가 들렸다.

     

    저예요. 당신이 저를 그리는 마음에 감동해 비록 저승에 있는 몸이지만 너무 슬퍼 이렇게 왔습니다. 오늘 밤 당신을 만나려고요.”

     

    그러더니 발자국 소리와 함께 점점 가까이 다가와 모습을 드러냈다. 과연 애경이었다. 엷은 화장도 하얀 옷도 이전과 똑같았지만, 다만 목에 얇은 비단을 감고 있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애경은 조씨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흐느껴 울며 자작시를 읊었는데, 그 소리가 너무도 처량해서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조씨는 애경을 방으로 들이고는 어머니를 잘 모시고 묘를 지켜 준 일, 정절을 지키다 죽은 일에 대해 고마워했다. 그러자 애경은 부끄러워하는 표정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저는 기생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꿩이나 들오리는 집에서 길들일 수 없고, 길가의 버들이나 울타리에 핀 꽃은 누구든 꺾을 수 있지요. 저는 문가에 서서 웃음을 팔 줄은 알았어도 좋은 아내로 살아가는 일에 대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오는 손님은 모두 맞이해 여기서도 자고 저기서도 자고, 그렇게 살아온 몸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그런 저를 아내로 맞아 주셨기에 지난날의 과거는 모두 씻어 버리고, 잘못을 고치며 가사에 전념해 왔습니다. 그리하여 조상을 모시는 예에 따라 시어머니를 정성껏 모시고 예를 갖추어 장사를 지냈으니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답니다. 간혹 노래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세월을 보내며 일찍이 문 밖을 내다본 적도 없었는데, 하늘이 저를 이렇게 버릴 줄이야 어찌 알았겠습니까. 큰 난리가 일어나 악당들이 서로 다투어 집을 빼앗고 남의 아내를 범하려 했습니다. 저는 홀몸으로 그런 치욕을 겪으며 살 수 없어 정조를 지키며 죽기로 결심했지요.”

     

    조씨는 애경을 상냥하게 어루만지며 위로하고, 어머니가 지금 어디 계시는지를 물었다.

     

    어머니는 생전에 나쁜 일을 하지 않아 벌써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셨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왜 아직도 저세상에 있는 게요?”

     

    제가 죽어서 저승에 갔더니, 그곳 사자가 저를 열녀라고 칭찬하며 그 길로 무석(無錫) 지방에 있는 송씨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게 해 주었지만, 저는 당신을 단 한 번이라도 만나 마음속의 회포를 풀고자 세월을 늦추고 있었습니다. 이제 당신을 뵈었으니 내일이면 바로 그 집안으로 가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옛정을 잊지 않으시고 그 집을 찾아가셨을 때 그 애가 당신을 보고 웃으면 저인 줄 아십시오.”

     

    그런 다음 조씨와 애경은 사랑을 나누었다. 닭이 울자 애경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으나 몇 걸음도 못 가 계단에서 돌아보며 울었다.

     

    서방님! 몸조심하세요. 이제 영영 이별이군요.”

     

    애경은 차마 떠나지 못하고 한참을 서 있다가 해가 뜨자 홀연히 사라졌다.

     

    조씨는 서둘러 짐을 챙겨 무석 지방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송씨 집안에 대해 물어보니 과연 아들이 태어났다고 했다. 그 아들은 어머니의 배 속에 20개월이나 들어 있었는데, 겨우 태어나서는 여태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조씨가 사연을 이야기하고 그 아이를 만나자, 아이는 방긋 웃으며 울음을 그쳤다. 송씨는 애경의 성을 따서 그 아이의 이름을 나생(羅生)이라 지었다. 조씨는 송씨와 친척이 되기를 원했고, 그 이후로 두 집안은 선물을 주고받으며 서로 소식을 끊지 않고 살았다.

     

    녹의인전(綠衣人傳)

     

    천수(天水)에 사는 조원(趙源)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독신으로 지냈다. 원나라 연우(延祐) 연간에 공부를 하러 전당(錢塘)으로 가서 서호 북쪽의 갈령(葛嶺)에 거처를 정했는데, 그 이웃에 송나라의 재상을 지낸 가추학(賈秋壑)의 옛집이 있었다. 혼자 지내기가 무료했던 조원은 날이 저물면 문 밖으로 나와 우두커니 서 있곤 했다. 그때 어떤 여자가 동쪽에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녹색 옷을 입고 쪽 찐 머리를 했는데, 나이는 열대여섯쯤으로 보였고, 화장은 하지 않았지만 꽤 미인이었다. 조원은 여자에게 마음이 끌렸다. 그 뒤로도 여러 번이나 그 여자를 보게 된 조원은 어느 날 밤, 조심스레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댁이 어디신데 저녁마다 이곳에 오십니까?”

     

    여자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웃으며 말했다.

     

    제 집은 바로 이웃인데, 모르고 계셨나요?”

     

    조원이 은근히 마음을 떠보았더니 여자는 흔쾌히 응했다. 조원은 여자를 집으로 데리고 가서 사랑을 나누었다. 아침이 되자 여자는 돌아가고, 다시 저녁이 되면 찾아왔다. 이렇게 달포를 지내다 보니 서로 정이 깊어졌다.

     

    조원은 여자가 사는 곳과 이름을 물었다.

     

    예쁜 여자를 얻었으면 됐지, 왜 억지로 알려 하세요?”

     

    그래도 조원이 계속 묻자, 여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늘 녹색 옷을 입고 있으니, 저를 부를 때 녹의인이라 하면 될 테지요.”

     

    그리하여 조원은 아마도 이 여자는 어느 대갓집의 시녀인데, 밤마다 마을 다니는 것을 숨기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여자에게 마음이 끌렸다.

     

    어느 날 밤, 조원이 술에 취해 녹색 옷은 첩의 복장이라고 놀리자 여자는 그 뒤로 한참이나 찾아오지 않았다. 다시 나타난 날 사연을 묻자 여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이 저를 첩이라고 놀리는 바람에 너무 창피해서 오지 않았던 거예요. 사실, 당신과 저는 옛날부터 서로 인연이 있었는데, 그 옛정에 이끌려 이렇게 오게 된 거랍니다.”

     

    조원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다시 캐묻자, 여자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당신에게 절대로 피해를 주지는 않을 거예요. 저는 원래 가사도(賈似道, 송나라의 정승 가추학) 님의 시녀였습니다. 당신은 그때 그 댁의 하인으로 차를 달이는 일을 하고 있었지요. 저는 당신을 사모하게 되었고, 그러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내외의 구별이 엄격해 어찌할 도리가 없었고, 결국 다른 사람들이 우리 사이를 추학 어른께 고자질해 우리는 서호(西湖)의 단교(斷橋) 부근에서 같이 목이 잘리고 말았지요. 당신은 벌써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났는데, 저는 아직도 저세상을 헤매고 있답니다.”

     

    그 뒤로 여자는 조원의 집에 머물며 돌아가지 않았다. 여자는 옛날에 추학의 집에 머물고 있었을 때의 일을 조원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조원이 물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같이 지낼 수 있소?”

    앞으로 3년입니다.”

     

    조원은 믿지 않았지만, 어느덧 3년이 지나자 여자는 병상에 누웠다. 조원이 의원을 부르려 하자 여자가 말했다.

     

    예전에 말했던 대로 우리의 인연은 이것으로 끝이에요.”

     

    여자는 조원의 팔에 매달리며 말을 이었다.

     

    저는 저세상의 망령인데도 당신에게 오래오래 사랑을 받았으니 무슨 미련이 더 있겠습니까. 이제 헤어질 때가 되었어요. 다시는 저를 생각하지 마세요.”

     

    여자는 그렇게 이별을 고하고는 벽 쪽으로 돌아누웠고, 그 뒤로는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조원이 울면서 유해를 관 속에 넣고 매장하려 하다가 관이 너무 가벼워 뚜껑을 열어 보니 그 안에는 이불과 녹색 옷, 비녀와 귀고리만 들어 있었다. 조원은 그길로 그 관을 북산 기슭에 묻었다. 그녀의 사랑에 감동한 조원은 장가를 들지 않고 영은사(靈隱寺)에 들어가 승려로서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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