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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8. 서유기 (西遊記)
    중국의 고전 /소설과 희곡 2019. 1. 22. 13:42

    308. 서유기 (西遊記) / 저작자 오승은(吳承恩)

     

    1570년경에 만들어진 책이다. 중국 4대 기서 가운데 하나로, 오승은이 지은 구어 소설이다. 100회본으로, 내용상 4부로 나눌 수 있다. 1부는 손오공(孫悟空)의 출생 내력, 2부는 현장삼장(玄奘三藏)의 내력, 3부는 당나라 태종의 지옥 순례, 4부는 서천취경(西天取經)의 여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손오공의 대활약으로 삼장법사 일행이 요괴들을 무찌르고, 서천에서 경전을 가지고 돌아오는 기상천외한 이야기로, 신마소설(神魔小說)에 속한다.

     

     

    작자 오승은(1500~1582)은 자가 여충(汝忠)이고, 호는 사양산인(射陽山人)으로, 강소성(江蘇省) 회안(淮安) 사람이다. 뛰어난 시재(詩才)를 지녔음을 알려 주는 사양선생존고(射陽先生存稿)등의 저서가 있는데, 과거에는 운이 없었던 듯 45세에 공생(貢生)이 되었을 뿐, 향시에도 합격하지 못했다. 60세경에 절강성(浙江省) 장흥현(長興縣)의 현승(縣丞)이라는 말단 관직을 지냈다. 세속적인 성공과 거리가 먼 불우한 일생을 보냈으며, 서유기는 그가 만년에 저술한 작품인 것으로 추정된다.

     

    서유기는 당나라 고승 현장(600~664)의 고난스러웠던 서천취경(서천으로 불교 경전을 구하러 감)의 여행을 줄기로 삼고 있다. 현장의 체험은 견문록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12, 제자 혜립(慧立)이 지은 대자은사삼장법사전(大慈恩寺三藏法師傳)10권 등에 정리되어 있다. 그의 역사적 장거(長擧)는 민간에서 전설화되고 기상천외한 공상이 덧붙여져 1,000년 뒤, 오승은의 소설로 결실을 맺었다. 그 사이의 발전 과정은 대당삼장취경시화(大唐三藏取經詩話)3(남송 때의 소설)영락대전(永樂大典)(명나라 초기의 백과사전), 박통사언해(朴通事諺解)(조선의 중국어 회화책), 양경언(楊景言)의 잡극 서유기6(명나라 초기)을 통해 알 수 있다.

     

    대당삼장취경시화에 등장하는 후행자(猴行者)는 손오공의 전신으로, 온순한 종자에 지나지 않았지만 원나라 때 비약적으로 성장해 맹활약하기 시작했고, 전체적인 모습도 현재의 서유기와 비슷한 분위기를 띠게 되었다. 주인공 손오공은 난폭하기는 하지만 솔직하고 용감하며, 그 성격은 수호전의 노지심과 이규, 삼국지연의의 장비와도 통하는 타입으로, 아마도 강창(講唱, 노래를 섞어서 연출한 이야기극)의 과정에서 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영웅으로 형상화되었던 것 같다. 황당무계한 설정과 기상천외한 재미, 유머와 골계 등은 다양한 설화를 흡수해 발전시켜 온 서민들의 유산일 것이다. 오승은은 그런 전승들을 기반으로 하여 유머와 골계로 가득한 독자적인 문학 작품을 창작했다. 현대 중국에서는 삼장법사를 무능한 자로 치부하고, 손오공을 영웅시하는 경향이 있다.

     

          

    손오공, 천계(天界)에서 대소동을 일으키다

     

    아주 먼 옛날, 동승신주(東勝神州) 바다 저편에 있는 오래국(傲來國)의 화과산(花果山) 꼭대기에 신기한 바윗돌이 하나 있었다. 이곳은 천지개벽 이래의 정수가 모인 곳인데, 어느 날 그 돌이 열리면서 돌원숭이 한 마리가 태어났다. 돌원숭이는 수렴동(水簾洞)에 모여 사는 원숭이들의 우두머리인 미후왕(美猴王)이 되어 세월 모르고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돌원숭이는 불로장생의 신선술을 배우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그 여행길에서 만난 선인 수보리(須菩提,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에게서 손오공이라는 이름을 얻고 수행에 전념한 끝에 72()의 둔갑술을 비롯해 자신의 털을 작은 원숭이로 바꿀 수 있는 신외신법(身外身法), 한 번 공중제비돌기를 하면 108,000리를 날아갈 수 있는 근두운(觔頭雲)을 불러오는 술법도 배웠다.

     

    화과산으로 돌아온 손오공은 동해의 용왕으로부터 자유자재로 늘어났다 줄어드는 여의금고봉(如意金箍棒)을 얻고, 300여 년의 수명이 다해 유명부(幽冥府, 저승 세계)에 잡혀가서는 여의봉을 휘두르며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그런 다음, 염마장(閻魔帳)을 가져오게 하여 거기에 적힌 자신의 이름을 먹으로 지워 버리게 했다. 이런 사실을 상주문(上奏文)을 통해 알게 된 천상계의 옥황상제는 장수들을 보내 손오공을 체포하려 했으나, 태백장경성(太白長庚星)의 진언을 받아들여 그를 천계로 불러들인 뒤 필마온(弼馬溫)으로 삼았다. 그러나 손오공은 필마온이 말을 담당하는 자리로 직급이 낮다는 것을 알고 천계를 떠나 수렴동으로 돌아온 다음 스스로 제천대성(齊天大聖)이라 칭했다. 그러자 옥황상제는 탁탑이천왕(托塔李天王)과 나타삼태자(哪吒三太子)를 지상에 파견해 손오공을 체포해 오라고 명령했으나, 이들은 오히려 손오공에게 흠씬 두들겨맞고 도망쳐 버렸다. 결국 태백장경성의 진언 으로 옥황상제는 손오공을 아무 직함도 아닌 제천대성으로 천계에 머물도록 허락했다. 그리하여 천계에서 노닐던 손오공은 어느 날 반도원(蟠桃園)의 관리로 임명받아 불로장수의 복숭아를 훔쳐 먹고, 반도(蟠桃) 연회에서 맛있는 음식을 모두 먹어 치운 뒤 태상노군(太上老君)의 금단(金丹)까지 훔쳐서 하계로 도망쳐 버렸다. 손오공의 거듭되는 횡포에 화가 치민 옥황상제는 10만의 천병(天兵)을 파견해 화과산을 포위했다. 구요성(九曜星)과 사대천왕(四大天王)이 번갈아 싸웠으나 손오공이 한 줌의 털을 뽑아 입김으로 불어서 만든 수많은 병사들로 대항했기 때문에 도무지 승부가 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관세음보살의 추천으로 현성이랑진군(顯聖二郞眞君)이 등장하게 되었다. 둘은 새로 변하고, 물고기로 변하는 변신술을 구사하다가 심지어 토지신의 사당으로 변신하는 등 온갖 술법을 다 동원해 싸웠다. 그러다가 마침내 손오공은 태상노군의 금강탁(金鋼琢)에 얻어맞고는 현성이랑진군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러나 손오공을 처형하려 해도 칼이나 창이 소용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태상노군은 손오공을 금단을 끓이는 팔괘로(八卦爐)에 가두었다. 손오공의 두 눈은 매운 연기에 쏘여 눈병을 앓는 사람처럼 흰자위는 시뻘겋게 핏발이 서고 눈동자는 샛노랗게 변색되고 말았다. 이 때문에 훗날 손오공은 화안금정(火眼金睛)’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손오공은 팔괘로에서 탈출했고 다시 천계를 혼란에 빠뜨렸다. 이에 옥황상제는 할 수 없이 석가여래를 불러들였다. 석가여래는 웃으면서 손오공에게 말했다.

     

    나랑 내기를 해 보자. 네가 그럴 재주가 있다면 근두운을 타고 내 오른손을 빠져나가 보아라. 그렇게 하면 네가 이긴 것으로 쳐 더 이상 싸울 필요도 없이 옥황상제를 서방세계로 옮겨 사시게 하고, 이 천궁을 너에게 넘겨주마.”

     

    그 말을 들은 손오공은 속으로 내가 공중제비돌기를 한 번만 하면 108,000리를 날아간다하고 쾌재를 부르면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 간다!”

     

    한 줄기 구름이 달리는가 싶더니 손오공은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석가여래가 혜안을 똑바로 뜨고 지그시 바라보니, 손오공은 풍차처럼 오로지 앞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손오공의 눈앞에 고깃덩어리처럼 불그스레한 기둥 5개가 하늘처럼 푸른 기운을 떠받치고 가지런히 서 있는 게 아닌가.

     

    옳아, 저기가 끝이로구나. 석가여래가 제 입으로 약속을 했으니, 이제 돌아가면 옥좌는 내 것이다!’

     

    그렇게 속으로 외치면서 빠져나가려 하다가 문득 생각해 보았다.

     

    가만! 이대로 돌아가면 증거가 없지. 그러니까 저기다 무슨 표시라도 해 두어야겠어. 그러면 석가여래도 할 말이 없을 거야.’

     

    그래서 손오공은 털 한 줌을 뽑아 하고 불면서 외쳤다.

     

    변해라!”

     

    그러자 그 털은 먹물을 듬뿍 머금은 붓 한 자루로 변했다. 손오공은 그 붓으로 가장 높은 기둥 한가운데에 이렇게 썼다.

     

    제천대성, 여기서 노닐고 가노라.’

     

    그런 다음, 첫 번째 기둥 아래에 오줌을 시원하게 갈겨 놓았다. 손오공은 근두운의 방향을 틀고는, 여래의 손바닥에 서서 외쳤다.

     

    어떠냐! 약속한 대로 옥황상제더러 천궁을 넘기라 일러라!”

     

    석가여래가 버럭 호통을 쳤다.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원숭이 놈아! 네놈은 내 손바닥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고개를 숙여 아래를 보아라!”

     

    손오공이 눈을 깜빡거리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석가여래의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에 기막힌 글씨가 한 줄 적혀 있는 게 아닌가.

     

    제천대성, 여기서 노닐고 가노라.’

     

    엄지와 검지의 갈라진 밑뿌리에서는 아직도 원숭이 오줌 지린내가 풍겨 나고 있었다. 깜짝 놀란 손오공은 잔뜩 긴장을 하고 다시 날아올랐지만, 석가여래가 손바닥을 홱 뒤집으면서 오공의 몸을 치자 몸이 서천문(西天門) 밖으로 나가떨어졌고, 다시 다섯 손가락이 금 · · · · 토의 오행산(五行山)’으로 바뀌어 그 몸을 짓눌러 버리는 것이었다.

     

    삼장법사, 서천으로 길을 떠나다

     

    손오공이 오행산에 갇힌 지 500년이 지나 당나라 태종의 시대가 되었다. 석가모니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중국에 삼장의 진경(眞經)을 전하리라 마음먹고, 관음보살에게 긴고아(緊箍兒, 머리에 조여들게 만든 금으로 된 둥근 테)를 주어 여행을 떠나게 했다. 당나라 장안에 도착한 관음보살은 태종이 연 수륙재(水陸齋, 수륙의 잡귀에게 재를 올리고 음식을 공양하는 법회)에서 회주(會主)로 뽑힌 덕 있는 승려 현장(玄奘) 선사를 만났다. 현장은 태종의 칙명으로 삼장법사라는 호를 받아, 서역으로 경전을 구하러 떠났다.

     

    종자 둘을 데리고 국경을 넘어 쌍차령(雙叉嶺)에 들어선 삼장법사는 웅산군(熊山君)과 인장군(寅將軍)에게 두 종자를 잡아먹히고 홀로 오행산에 이르렀다. 오행산 바위 아래 갇혀 있던 손오공이 삼장을 보고 빌며 말했다.

     

    스님, 제발 저를 구해 주십시오. 스님을 서역까지 모시겠습니다.”

     

    삼장은 산꼭대기에 붙어 있던 봉인을 떼어내 손오공을 풀어 주고 제자로 삼았다. 노상강도를 죽이고 삼장법사를 위기에서 구해 내기는 했지만, 살생을 범했기 때문에 삼장법사는 손오공의 머리에 긴고아를 씌웠다.

     

    이윽고 둘은 사반산(蛇盤山)의 응수간(鷹愁澗)이라는 계곡에 이르렀는데, 용 한 마리가 나타나 말을 삼켜 버렸다. 이 용은 관음보살의 명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용은 백마로 변신해 삼장을 태우고 서천으로 향했다. 다음으로 오사장국(烏斯藏國, 티베트)의 고로장(高老莊)에 이르렀는데, 요괴를 사위로 맞아 곤란에 빠진 집에 머물게 되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 요괴는 귀가 길고 코가 긴 데다, 뭐든지 먹어 치우는 돼지 같은 놈이었다. 전생에는 천하(天河)의 천봉원수(天蓬元帥)였으나 벌을 받아 하계에 떨어졌을 때 그만 돼지의 배에서 태어나게 된 저팔계(猪八戒)였다. 저팔계는 손오공을 상대로 쇠스랑을 휘두르며 싸웠으나 패하고, 삼장의 두 번째 제자가 되었다. 이윽고 유사하(流沙河)에 이르자 목에 9개의 해골을 걸고 더벅머리를 한 요괴가 나타났다. 그가 바로 사오정(沙悟淨)으로, 영소보전(靈霄寶殿, 옥황상제가 사는 궁전)의 권렴대장(捲簾大將)이었다가 죄를 지어 유사하에 귀양을 온 것이었다. 사오정은 저팔계를 상대로 수중에서 크게 싸웠으나 승부를 내지 못하고, 보살의 명령으로 불법에 귀의해 삼장의 세 번째 제자가 되었다. 이렇게 하여 삼장 일행이 모두 갖추어져 고난의 여행길에 올랐다.


    살생의 누명을 쓰고 파문당한 손오공

     

    여행을 계속하던 일행은 백호령(白虎嶺)이라는 높은 산에 이르렀다. 손오공이 아침 식사를 구하러 자리를 비운 사이 미녀로 변신한 요괴가 달콤한 말로 삼장 일행을 꼬드겼다. 근두운을 타고 돌아온 손오공은 한눈에 그 요괴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가차 없이 공격을 가했다. 요괴는 해시법(解屍法)으로 가짜 시체를 남겨 두고 도망쳤다. 삼장은 그 장면을 보고 몸을 부르르 떨며 사람을 죽였다고 나무라고, 저팔계는 옆에서 맞장구를 치며 부추겼다. 그래서 삼장은 주문을 외워 긴고아를 쓴 손오공에게 고통을 주었다.

     

    손오공이 사죄하고 잠깐 화해를 했으나 다시 요괴가 노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에 다시 손오공이 일격을 가하자 이번에도 요괴는 노파의 시체를 남기고 도망쳤다. 이에 손오공이 토지신을 불러내 망을 보게 한 다음 마침내 요괴를 쓰러뜨리자, 요괴의 혼백은 흩어지고 한 줌 백골만 남았는데, 그 백골 위에는 백골부인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사태를 파악한 삼장은 요마였다고 마음을 놓았는데, 저팔계가 또 중상했다.

     

    형님이 사람을 죽였습니다. 스승님의 눈을 속이려고 시체를 이렇게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삼장은 저팔계의 말을 듣고 손오공을 파문했다. 변명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손오공은 삼장에게 절을 하고는 화과산으로 돌아갔다.

     

    한편, 길을 재촉하던 삼장 일행은 숲 속에서 길을 잃고, 보탑(寶塔)의 요마 황포괴(黃袍怪)에게 삼장이 사로잡히고 말았다. 삼장은 요마에게 사로잡혀 그의 부인이 되어 있던 보상국(寶象國) 공주의 도움으로 도망쳐서 보상국의 왕을 알현하고 공주의 편지를 왕에게 전했다. 사정을 알게 된 국왕은 저팔계와 사오정에게 요마 퇴치를 의뢰했으나 오히려 사오정이 사로잡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또한 요마는 서생으로 변신해서 보상국으로 잠입한 다음, 국왕에게 삼장이야말로 공주를 납치하고 당나라 승려를 잡아먹은 호랑이의 화신이라고 고하고는 물을 뿌려 삼장을 호랑이로 바꾸어 놓았다.

     

    삼장이 곤경에 처했다는 소식을 접한 백마는 원래의 용으로 돌아가 요마와 싸웠으나 부상을 입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저팔계가 나타났다. 백마는 스승을 버리고 도망치려는 저팔계에게 눈물로 하소연하며 설득했다. 저팔계는 어쩔 수 없이 손오공을 찾아 화과산으로 갔다.

     

    저팔계는 교묘한 언설로 손오공을 설득해 함께 보탑으로 돌아왔다. 손오공은 먼저 사오정을 구출한 뒤 공주로 변신해 요마 황포괴를 기다렸다. 보탑으로 돌아온 요마는 눈물을 흘리는 공주, 곧 손오공에게 소중한 내단(內丹)을 빼앗겼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손오공은 여의봉을 휘둘러 부하 요괴들을 모두 때려죽였다.

     

    그제서야 속은 걸 알고 달려든 요마와 50~60합을 싸우다가 마침내 엽저투도(葉底偸桃)라는 주문을 외우더니 거인으로 변신해 요마의 머리를 여의봉으로 내리쳐 제압했다. 그리고 축지법(縮地法)을 구사해 공주를 궁전까지 데려다 주고 호랑이로 변한 삼장에게 물을 끼얹었다. 제 모습을 되찾은 삼장은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오공아, 역시 너는 좋은 제자였구나. 이제 빨리 서천으로 떠나도록 하자. 공을 이루고 다시 동녘 땅으로 돌아가면 내 반드시 폐하께 네가 으뜸 공을 세웠다고 아뢰겠다.”

     

    이렇게 하여 손오공은 다시 일행에 가담해 서천으로 향했다.

     

    관음보살이 홍해아를 잡은 뒤 제자로 삼아

     

    서쪽으로 여행을 계속하는데, 소나무 꼭대기에 어린아이가 매달려 있었다. 손오공은 한눈에 요괴임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삼장은 가엽게 여겨 아이를 구해 주었다. 이 요괴는 옛날에 손오공과 의형제를 맺은 우마왕(牛魔王)의 아들 홍해아(紅孩兒)였다. 홍해아는 삼장의 살점을 먹으면 불로장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공중에서 선풍을 일으켜 삼장을 화운동(火雲洞)으로 납치해 가고 말았다. 한편 손오공은 스승이 자신의 말은 듣지도 않고, 이런 일만 자초한다고 화를 내며 일행을 해산할 것을 선언했다. 처음에는 저팔계도 찬성했지만 사오정의 중재로 생각을 바꾸었다. 손오공은 저팔계와 함께 화운동으로 향했다. 그러나 홍해아가 설치한 바퀴가 5개 달린 수레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염 때문에 접근할 수 없었다. 이에 손오공은 동해의 용왕에게 원군을 요청해 다시 맞섰다. 손오공의 신호로 용왕 휘하의 수병들이 요화(妖火)에 물을 끼얹었지만, 이 요화는 보통 불이 아니어서 물로는 끌 수 없었다. 마침내 손오공은 연기에 휩싸여 질식했고, 사오정과 저팔계의 간호로 겨우 제정신을 차렸으나 만신창이가 되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관음보살의 도움을 청하러 저팔계를 파견했으나 어리석은 저팔계는 그만 홍해아의 계략에 넘어가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렇게 하여 손오공은 아픔을 참고 관음보살의 도움을 청하려 근두운을 탔다. 관음보살은 대해의 물을 모두 가둘 수 있는 호리병으로 홍해아를 굴복시킨 뒤 삼장과 저팔계를 구해 주었다. 그리고 홍해아는 관음보살의 제자로 들어가 선재동자(善財童子)각주1) 가 되었다.

     

    다시 길을 떠난 일행은 강 건너편까지 800리나 되어 사람이 한 번도 건넌 적이 없다는 통천하(通天河)에 이르렀다. 하룻밤 신세를 지려고 들어간 진씨 집이 영감대왕(靈感大王) 묘당의 제례에 자식을 희생으로 바쳐야 할 처지임을 알고 손오공과 저팔계가 어린 남녀 아이로 변신해 괴물 앞으로 나아갔으나 결국 괴물을 놓치고 말았다.

     

    다음 날 일행이 눈을 떠 보니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 탓에 통천하는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삼장은 만류하는 진씨를 겨우 뿌리치고 길을 서둘러 얼어붙은 통천하를 건너기 시작했다. 그러나 삼장 일행이 강 중간쯤 이르렀을 때 갑자기 얼음이 깨지는 바람에 강물에 빠져 괴물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괴물이 일부러 강을 얼어붙게 한 뒤 심장 일행이 건너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수중전에 약한 손오공은 저팔계와 사오정을 전면에 내세워 괴물을 뭍으로 끌어 올리는 책략을 구사해 성공할 단계에 이르렀으나, 성질이 급한 나머지 괴물이 뭍으로 올라오기도 전에 여의봉을 휘두르는 바람에 그만 놓쳐 버리고 말았다. 저팔계와 사오정만으로는 괴물을 이길 수 없어, 마침내 손오공은 관음보살의 법력에 의지하기로 했다. 관음보살은 옷깃에 동여매고 있던 실끈을 하나 풀더니 대바구니에 묶어 강물 속으로 내려보냈다. 대바구니를 건져 올리자 금붕어 한 마리가 들어 있었으니, 바로 괴물의 정체였다. 이때의 풍경을 묘사한 것이 바로 후세에 전하는 어람관음상(魚籃觀音像)이다. 이렇게 하여 삼장 일행은 통천하의 원래 주인이었던 늙은 거북의 등을 타고 무사히 강을 건넜다.

     

    파초선을 놓고 벌이는 손오공과 우마왕의 변신술 대결

     

    시간이 화살처럼 빨리 흘러 일행은 화염산(火焰山)이라는 험난한 곳에 이르렀는데, 그곳은 불길을 끄지 못하면 지나갈 수 없는 곳이었다. 손오공은 마을의 노인에게서 파초선(芭蕉扇)을 부치면 불을 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철선공주(鐵扇公主)에게 파초선을 빌리러 갔다. 그런데 철선공주는 바로 다름 아닌 우마왕의 부인이자 홍해아의 어머니였다. 공주는 파초선으로 바람을 일으켜 손오공을 소수미산(小須彌山)까지 날려 보내 버렸다. 손오공은 영광보살(靈光菩薩)에게서 얻은 정풍단(定風丹)으로 바람을 견뎌 낼 수 있게 되자 작은 벌레로 변신해 공주가 마시는 차 속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공주의 배 속에서 소란을 피워 파초선을 빼앗는 데 성공했지만 그것은 가짜였다. 속은 것이 분해 발을 동동 구르던 손오공은 이번에는 우마왕으로 변신해 공주를 속이고 진짜 파초선을 빼앗았다. 그러나 우마왕도 이에 질세라 저팔계로 둔갑해 파초선을 다시 되찾았다.

     

    우마왕이 황새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면, 손오공은 보라매로 변신해 발톱으로 황새의 눈알을 찍으려 했다. 우마왕은 손오공이 보라매로 변신한 것을 알고 재빨리 참매로 둔갑해 보라매를 공격했고, 그러면 손오공은 다시 오봉(烏鳳)으로 변신해 참매 꽁무니에 바짝 따라붙었다. 그러자 우마왕은 백학으로 둔갑해 길게 울더니 재빨리 남쪽으로 날아갔다. 손오공은 그 뒤를 따라가지 않고 날갯짓을 한 번 하더니 새 중의 왕 단봉(丹鳳)이 되어 길게 울었다. 새의 왕 앞에서 다른 새들은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하는 법이어서 우마왕은 단번에 기가 죽어 산비탈 아래로 곤두박질치고는 한 마리 사향노루가 되어 천연덕스럽게 풀을 뜯어 먹기 시작했다. 그것을 눈치챈 손오공은 재빨리 호랑이로 변신해 사향노루를 덮쳤다. 깜짝 놀란 우마왕은 커다란 얼룩무늬 표범으로 변신해 호랑이를 덮쳤다. 그러자 손오공은 사자로 변신하고, 우마왕은 다시 곰으로 변신했다. 손오공은 거대한 코끼리가 되어 긴 코로 곰을 휘감았다.

     

    그러자 우마왕은 실성한 듯 히죽히죽 웃더니 본래의 모습인 흰 소로 돌아갔다. 흰 소의 머리통은 험산준령과 같고, 두 눈알은 번갯불처럼 번득거렸으며, 2개의 뿔은 철탑처럼 솟았고, 이빨은 예리한 칼날과 같았다. 머리에서 꼬리까지 길이가 1,000(, 1장은 10)이나 되고, 발굽에서 등까지의 높이만 해도 800장이나 되는 거대한 흰 소가 우마왕의 본래 모습이었던 것이다.

     

    이 못된 원숭이 놈아! 한번 붙어 볼 테냐!”

     

    우마왕이 고함을 지르자, 손오공은 여의봉을 꺼내 늘어나라!” 하고 외쳤다. 그러자 키가 1만 장에 머리는 태산과 같고, 눈은 해와 달 같으며, 입은 핏빛 연못 같고, 이빨은 대문짝만한 모습으로 변신했다. 주인과 함께 늘어난 여의봉이 우마왕의 머리통을 노리자 우마왕은 뿔을 흔들며 공격했다. 하늘이 놀라고 땅이 요동치는 대격전이 벌어지자 천계의 신들이 모여들어, 우마왕은 사방팔방으로 부처님의 군사들에게 포위당한 꼴이 되었다. 게다가 옥황상제의 명령을 받은 탁탑이천왕과 나타삼태자가 신장(神將)들을 거느리고 달려왔다. 삼두육비(三頭六臂, 머리 셋에 팔이 여섯 달린 괴물)로 변신한 나타삼태자는 우마왕의 등에 올라타 참요검(斬妖劍)으로 머리를 잘라 버렸다. 그러나 우마왕의 몸체에서는 머리가 다시 났고, 입으로는 연기를 토해 냈으며, 눈으로는 황금색 빛을 쏘아 댔다. 나타삼태자가 다시 검으로 머리를 자르니 또 머리가 자랐다. 그러기를 10여 차례, 마침내 나타삼태자가 화륜아(火輪兒)를 꺼내 소뿔에 걸치고 진화(眞火)를 일으키자, 불이 활활 타올랐다. 그 열기를 견디지 못한 우마왕은 다시 둔갑해 위기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탁탑이천왕이 조요경(照妖鏡)으로 우마왕을 비추자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마침내 항복했다.

     

    공주로 변신한 요괴와 결혼할 위기에 빠진 삼장

     

    서방으로 여행을 계속하던 삼장 일행은 반사령(盤絲嶺)에서 여자 요괴를 물리치고, 사타령(獅駝嶺)에서는 청사자 · 흰코끼리 · 대붕이라는 삼대마왕을 퇴치하고, 비구국(比丘國)에서는 원로로 둔갑한 요괴를 무찔러 난관을 극복하고 마침내 천축국(天竺國)에 도착했다. 삼장 일행은 포금선사(布金禪寺)에 도착해 하룻밤 신세를 청했다. 그러자 주지는 자기 절에 천축국의 공주를 숨겨 주고 있는데 성안에도 공주가 있으니, 과연 어느 쪽이 진짜 공주인지 법력으로 진상을 밝혀 달라고 요청했다.

     

    다음 날, 일행은 성안으로 들어가 회동관역(會同館驛)에 숙소를 정하고 삼장과 손오공이 국왕을 만나러 가는데, 사거리에 화려한 누각이 높이 설치되어 있었다. 공주가 누각에서 실로 짠 공을 던져 맞는 사람을 남편으로 삼는 당천혼(撞天婚) 행사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그 아래를 지나던 삼장이 그 공에 맞는 바람에 공주와 결혼해야 할 지경에 처하고 말았다. 사실 그 공주는 요괴였다. 진짜 공주는 납치해 숨겨 두고서 공주로 변신해 삼장과 결혼한 다음, 그 정기를 빼앗아 태을상선(太乙上仙)이 되려고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괴는 잔꾀를 써서 삼장의 세 제자를 성 바깥으로 쫓아내고 혼례를 치르려 했다. 그러자 손오공은 삼장이 걱정스러워 한 마리 꿀벌로 변신해 궁중으로 날아들었다. 한눈에 공주가 요괴임을 알아차린 손오공이 공격을 가하자, 요괴는 옷과 장식을 모두 벗어 던지고 절구 방아처럼 생긴 봉을 들고 손오공에게 덤벼들었다. 반나절이나 공중전을 벌이다가 손오공이 여의봉을 100개로 늘려서 공격하자 그제야 마침내 요괴는 도망쳐 모영산(毛潁山)의 굴로 숨어들었다. 그러자 손오공은 토지신을 불러내 토끼 굴을 살펴보게 했고, 마침내 요괴가 숨어든 굴을 발견한 손오공이 그곳을 부수자 요괴는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다시 공중전이 벌어지자 태음성군(太陰星君)이 오색구름을 타고 나타났다.

     

    이 요괴는 월궁(月宮)의 옥토끼였다오. 월궁에 살 때 공주에게 매를 한 번 맞은 적이 있는데 그 앙갚음을 하려고 이런 죄를 저질렀다오. 이 늙은이의 낯을 봐서라도 용서해 주시구려.”

     

    그렇게 하여 옥토끼는 태음성군과 함께 월궁으로 돌아가고, 포금선사에 있던 공주는 국왕과 상봉했다.

    숙원 성취, 진경(眞經)을 손에 넣다

     

    겨우 영취산(靈鷲山)에 도착한 일행은 목욕을 한 뒤, 바닥이 없는 배를 타고 능운도(凌雲渡)를 건너 마침내 뇌음사(雷音寺)에 도착해 석가모니를 배알했다. 석가모니에게 위로의 말을 듣고 경전을 하사받은 일행은 기쁨에 넘쳐 귀로에 올랐으나, 도중에 그것이 백지 경전임을 알고 황망히 영취산으로 되돌아갔다. 영문을 알아보니 삼장 일행이 선물을 바치지 않았다고 석가모니의 제자인 아난다(阿難陀)와 가섭(迦葉)이 심술을 부린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자금발우(紫金鉢盂)를 헌상하고 진경 5,048권을 받았다.

     

    그러고 나서 삼장 일행은 팔대금강(八大金剛)의 도움으로 구름을 타고 날아갔다. 한편, 오방게체(五方揭諦) 등 삼장 일행을 은밀히 보호해 온 신령들이 관음보살에게 삼장 일행이 여정 중에 겪은 80번의 재난을 기록한 재난부(災難簿)를 올렸다. 관음보살이 그것을 훑어보고 말했다.

     

    아뿔싸! 우리 불문에서는 구구 팔십일이라고, 재난도 81번을 겪어야 하는데 1번이 부족하지 않으냐!”

     

    그래서 팔대금강은 삼장 일행을 통천하의 서쪽 기슭에 떨어뜨렸다. 그 난을 무사히 극복한 삼장 일행은 다시 구름을 타고 장안(長安) 상공에 이르러 망경루(望經樓)에서 태종을 배알하고, 경전 5,048권을 헌상했다. 그리고 여태까지 거쳤던 나라들의 통관 증명서를 보이자 태종은 대전에서 내려와 삼장의 손을 잡고 그 노고를 치하했다.

     

    이어서 일행은 팔대금강과 더불어 구름을 타고 영취산으로 돌아가 석가모니 앞에 엎드렸다. 이렇게 하여 삼장법사는 석가모니의 은덕으로 전단공덕불(旃檀功德佛), 손오공은 투전승불(鬪戰勝佛), 저팔계는 정단사자(淨檀使者), 사오정은 금신나한(金身羅漢), 백마는 팔부천룡(八部天龍)이 되어 성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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