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수라고 무조건 옳지도 않고 소수라고 무조건 그르지 않다
효자는 부모에게 아첨하지 않고, 충신은 왕에게 아첨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효자라 일컫고 충신이라 불러 주는 것이다.
부모나 왕의 말과 행동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알고 있다고 해서 나도 그렇게 알고 있고,
세상에서 좋은 일이라고 해서 어디서나 좋은 일로 통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세상 사람들에게 모두 통하는 일이라고 해서
모두 부모나 왕의 생각보다 더 옳고 소중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사람들은 남들이 자신에게 세속과 영합해서 살고 있다고 비난하거나
남에게 아첨을 많이 떤다고 말하면 불끈 화를 내게 된다.
그러나 그런 말을 듣고 화를 내는 사람은 정말 아첨꾼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교묘한 말이나 비유로 뭇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한다.
하지만 교묘하고 아름다운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멋진 옷으로 맵시를 내고 용모를 잘 꾸미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아첨하는 것이 아니라고 애써 변명을 하고 있다.
이웃과 한패가 되어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고 떠들어 대면서도
자기만은 그들과 한패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이야말로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있는 사람은 크게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어딘가에 깊이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자 역시 크게 빠진 자는 아니다.
정말 깊이 빠진 사람은 평생 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이며,
평생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한 자야말로 크게 어리석은 자이다.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갈 때 한 사람이 길을 잘 몰라도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다.
길을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셋 중에서 두 사람이 길을 잘 모르고 한 사람만이 잘 알면,
헛수고만 할 뿐 목적지에 도착할 수가 없다.
길을 모르는 사람이 아는 사람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지금 이 세상은 거의 모든 사람이 나쁜 경향에 깊이 빠져 있어서
비록 나 혼자만 옳아도 그 목적지에 도착할 가망이 없으니,
어찌 슬픈 일이 아닐 수 있겠는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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