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지혜를 터득한 사람은 정작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진리를 책에서만 찾으려 든다.
하지만 책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한 말을 기록해 놓은 데 불과할 뿐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는 말로서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야말로 잘 사는 방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책을 써서 사람들에게 알려 주려 든다. 하지만 그런 책은 읽을 필요가 없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잘 사는 방법이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사물의 모양과 빛밖에 없다.
그리고 들어서 알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사물에 붙인 명칭과 소리뿐이다.
그러므로 사물의 모양이나 빛, 명칭이나 소리로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를 알 수가 없다.
옳게 사는 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정작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잘 사는 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이 떠들고 있으니
사람들이 어떻게 그 진실을 알 수 있겠는가?
제환공이 대청 위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한 기술자가 마당에서 수레바퀴를 만들고 있었다.
기술자가 망치와 끌을 놓고 제환공에게 물었다.
“환공은 무슨 책을 읽고 계십니까?”
그러자 환공이 말했다.
“성인들이 써 놓은 말씀을 읽고 있네.”
“그 성인께서는 지금 살아계십니까?”
“이미 돌아가신 지 오래된 분이네.”
“그럼 죽은 사람이 남긴 말의 찌꺼기나 읽고 계시는군요.”
“내가 무슨 책을 읽든 말든 네가 웬 참견이냐?”
“제가 평생 동안 수레바퀴를 깎으면서 경험한 것을 통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수레바퀴를 깎을 때 느리게 깎으면 헐렁해지고 너무 빨리 깎으면 빡빡해져서,
그 속도를 맞추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따라서 제 손의 깎는 속도가 알맞게 되려면
마음의 속도와 똑같아져야 하기 때문에
평생 수레바퀴를 깎아야만 그 속도를 겨우 알 수 있을까 말까 합니다.
이처럼 저는 어느 정도로 깎아야 하는가를 말로서는 할 수가 없기에
제 아들에게 그걸 가르칠 수가 없고,
제 아들 역시 제게서 그것을 배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 아들놈도 저 스스로 마음의 속도와 손의 속도가 맞아
익숙해질 때까지 연마를 하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저는 나이가 칠순이 넘었는데도 수레바퀴 깎는 일을 그만두지 못하고
이 짓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옛 성인도 저와 똑같이 자신이 깨달은 바를 제자들에게
하나도 전하지 못하고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환공께서 읽으시는 것도
옛 성인의 껍질이나 겨우 읽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부터 글은 말을 다 전할 수 없고, 말은 뜻을 다 전할 수 없다고 했다.
따라서 인식하기보다는 체험을 중요시해야 하고,
이론보다는 실제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진리를 책에서만 배우려고 하지 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