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1. 시경 (詩經)중국의 고전 /시와 산문 2019. 1. 1. 19:56
401. 시경 (詩經)
BC 470년경에 만들어진 책이다. 고대 중국의 풍토와 사회를 배경으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을 노래한 가장 오래된 시가집이다. ‘시경’이란 ‘시의 성전(聖典)’이라는 뜻이다. 서주(西周) 초기(BC 11세기)부터 춘추시대 중기(BC 6세기)까지 전승된 많은 시가 실려 있다.
『시경』은 원래 3,000여 편이었던 것을 공자가 아악(雅樂)에 잘 맞게 305편을 가려서 편집하고 정리했다고 하는데 사실인지는 의심스럽다.
한나라 때에 이르러 시편을 해석하는 4명의 학자가 나타났다. 이것을 ‘사가(四家)의 시’라고 하며, 『노시(魯詩)』, 『제시(齊詩)』, 『한시(韓詩)』, 『모시(毛詩)』가 이에 해당한다.
이 가운데 『모시』만이 후세에 전해져 남송의 학자 주희에 의해 『시경』으로 불리게 되었다.
『시경』은 『서경』과 더불어 일찍이 유가의 필독서가 되었고, 지식인들이 자신의 생각을 인용해서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되었다. 그래서 시에는 늘 유가적 해석이 뒤따랐다. 곧, 남녀의 연애를 노래하는 것을 ‘음란한 시’라 평하는 식이다.
송나라 때에 이르러 기존의 해석을 부정하는 기풍이 일어났다. 청나라 때에는 사실을 밝히려는 고증학(考證學)이 일어났고, 근대 시인 문일다(聞一多, 1899~1946)나 마르셀 그라네(Marcel Granet, 1884~1940)와 같은 중국학자가 나타나 시가 언제 어떻게 불렸는지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계기로 갑골문(甲骨文)과 금문(金文) 또는 종교와 민속학 분야의 연구 성과를 도입해 시를 노래했던 시절의 생활 감정이나 삶의 정경을 밝혀내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육의(六義) / 시의 양식
『시경』의 서두에는 「대서(大序)」라는 서문이 있다. 중국 최고의 시론이기도 한 이 서문은 뒷날 한시와 고대 가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여기에는 시의 정의와 효용, 법칙 등이 언급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서 시의 법칙에 나오는 육의(六義)는 다음과 같다.
[풍(風)] 원래 글자는 ‘범(凡)’ 또는 ‘풍(諷)’이며, 신내림(降神)의 종교적 가요(呪謠)를 말한다. 그것이 나중에 지방의 풍습이나 사람들의 생활 감정을 노래하는 민요적 시로 변화한 것이다.
[아(雅)] 원래 글자는 ‘하(夏)’이며, 가면을 쓰고 춤을 추면서 조상의 공덕을 노래하는 서사적인 시를 말한다. 씨족 집단의 결속을 강화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나, 나중에 궁정과 귀족사회에서 벌어지던 향연에서 불리게 되었다.
[송(頌)] ‘송’은 용모를 흉내 낸다는 뜻으로, 원래는 ‘아’와 동일하게 조상의 공덕을 가무로 재현하는 서사적 시를 말한다. 다만, 나라의 종묘(宗廟)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 ‘아’와 다르다.
■ 시의 표현 방식
[부(賦)] 직접적인 감정과 정경을 노래한다. 곧, 느낀 것을 있는 그대로 노래하는 방법이다.
[비(比)] 비유(직유와 은유 등)를 이용해 어떤 감정이나 정경을 노래하는 방법이다.
[흥(興)] ‘흥사(興詞)’로 노래하려는 감정이나 상황을 규정하는 방법을 말한다. 흥사란 고대 신앙을 배경으로 한 주술적 언어에서 발생한 것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용화된 시구를 말하는데, 초목조수(草木鳥獸)와 같은 사물이나 풀을 뜯고 나무를 베는 등의 신성한 행위를 표현하면서 그와 관련된 무언가를 상징하는 것이다.
■ 「국풍편(國風篇)」
주남(周南) · 소남(召南)을 정풍(正風)이라 하고, 패풍(邶風) · 용풍(鄘風) · 위풍(衛風) · 왕풍(王風) · 정풍(鄭風) · 제풍(齊風) · 위풍(魏風) · 당풍(唐風) · 진풍(秦風) · 회풍(檜風) · 조풍(曹風) · 빈풍(豳風)을 변풍(變風)이라 한다. 모두 15국풍, 160편이 실려 있다. 15국풍이란 황하 유역에 있는 15개국의 가요라는 뜻인데, 여기에서 사용된 시구에는 방언이 거의 없다. 이것은 『시경』이 성립될 무렵에 공통어로 다시 썼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크게 나누어 보면 연애와 혼인에 관한 것이 많고, 다음으로 생활고와 전쟁, 농촌 제사, 수렵 등에 관한 것인데 대부분 시구가 단순하게 반복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종사(螽斯, 베짱이) - 자손의 번영을 축복하는 시
螽斯羽詵詵兮
베짱이 떼 많기도 하네.
宜爾子孫振振兮
너의 자손 번성하리라.
螽斯羽薨薨兮
베짱이 울음소리 시끄럽기도 하네.
宜爾子孫繩繩兮
너의 자손 번성하리라.
螽斯羽揖揖兮
베짱이 울음소리 끝도 없네.
宜爾子孫蟄蟄兮
너의 자손 번성하리라.
베짱이는 다산의 상징이며 약으로도 쓰는 상서로운 곤충이다. ‘흥사’를 사용한 것으로, 베짱이가 떼지어 날갯짓을 하면서 날아오르는 모양을 묘사함으로써 자손의 번영을 축복하는 시이다. 아마도 결혼식 때 춤을 추면서 불렀을 것이다. 이처럼 『시경』에는 노래와 춤이 함께하는 시가 많다. 「주남」
작소(鵲巢, 까치집) - 결혼하는 딸을 축복하는 시
維鵲有巢, 維鳩居之
저 까치 집을 지으니 비둘기 날아와 사네.
之子于歸, 百兩御之
그럼, 이 아가씨 시집갈 때 백 량의 수레가 마중하리.
維鵲有巢, 維鳩方之
저 까치 집을 지으니 비둘기 같이 사네.
之子于歸, 百兩將之
그럼, 이 아가씨 시집갈 때 백 량의 수레로 보내리.
維鵲維巢, 維鳩盈之
저 까치집을 지으니 비둘기 차지하네.
之子于歸, 百兩成之
그럼, 이 아가씨 시집갈 때 백 량의 수레가 성황이네.
까치와 비둘기는 모두 상서로운 새로, 이 시 역시 흥사이다. 까치집에 비둘기를 맞이하는 정경을 빗대어 시집가는 딸이 남성의 집에 받아들여짐을 축복하는 시이다. 「소남」
표유매(摽有梅, 떨어지는 매실) - 매실을 던져 구혼하는 시
摽有梅其實七兮
내던지는 매실 일곱 개
求我庶士迨其吉兮
나를 찾는 사내들아, 이 기회를 놓치지 마라.
摽有梅其實三兮
내던지는 매실 세 개
求我庶士迨其今兮
나를 찾는 사내들아, 지금이 좋은 때잖니.
摽有梅頃筐旣之
내던지는 매실 한 광주리
求我庶士迨其謂之
나를 찾는 사내들아, 빨리 대답하지 못하겠니.
매실은 임산부에게 좋은 약리 작용을 가진 주술적인 열매이다. 그 매실을 마음에 둔 남자를 향해 던져 구혼하는 시이다. 이것을 투과혼(投果婚, 열매를 던져 구혼하는 것)이라 한다. 노래 마당에서 유희성을 곁들여 부르던 시였을 것이다. 『진서(晋書)』의 「반악전(潘岳傳)」에 미소년 반악(潘岳)이 외출을 하면 여자들이 둘러싸고 마차가 가득 찰 정도로 많은 과일을 던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또한 투과혼의 풍습이라 할 것이다. 이런 풍습은 다른 시에서도 볼 수 있다. 「소남」
추우(騶虞) - 사냥터의 신에게 기도하는 사냥꾼의 노래
彼茁者葭
저 무성한 갈대밭에서
一發五豝
화살 하나에 암퇘지 다섯 마리라니
于嗟乎騶虞
아! 진짜 추우(천자의 사냥터를 돌보는 신)로다.
彼茁者蓬
저 무성한 쑥밭에서
一發五豵
화살 하나에 새끼 돼지 다섯 마리라니
于嗟乎騶虞
아! 진짜 추우로다.
사냥을 시작하기 전에 사냥꾼이 사로잡혀 있는 멧돼지를 활로 쏘아 사냥터의 신에게 바치고 사냥이 잘되게 해 달라고 기원하는 주술적 의례의 시이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사냥터의 신으로 분장한 젊은이를 찬양하는 시가 있다. 「소남」
웅치(雄雉, 장끼) - 버림받은 여자의 한
雄稚于飛, 泄泄其羽
장끼가 날아오르네, 천천히 날갯짓하며 가네.
我之懷矣, 自貽伊阻
그리운 임이여! 내 마음에 괴로움만 남았구나.
雄稚于飛, 下上其音
장끼가 날아오르네, 오르락내리락 날갯짓 소리 들리네.
展矣君子, 實勞我心
진짜 내 임이여! 이 괴로움 어이할까?
瞻彼日月, 悠悠我思
저 해와 달 바라보니, 끝없는 이 생각
道之云遠, 曷云能來
길은 멀다 하는데, 어찌 빨리 오려나?
百爾君子, 不知德行
세상의 군자들아! 어찌 덕행을 모르느냐?
不忮不求, 何用不臧
해하고 탐내지 않는데, 이보다 어찌 더 선하란 말이냐?
장끼는 남자를 상징한다. 1~2장은 장끼가 날아가는 모습을 노래하여 남자가 여자로부터 떠남을 상징한다. 3장은 다시 맺어지고 싶어 하는 여자의 간절한 희망과 절망을 노래했다. 4장은 한에 사무쳐 자신을 위로하는, 버림받은 여인의 심정을 그렸다.
이 시는 박정한 남자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다. 「국풍편」에는 전쟁으로 남편을 빼앗긴 여자들이 슬픔과 그리움에 몸부림치며 생활고를 한탄한 사회 고발적인 시도 꽤 있다. 「패풍」
■ 「소아편(小雅篇)」 · 「대아편(大雅篇)」
「소아편」과 「대아편」에는 모두 105편의 시가 실려 있다. 여기 실린 시를 시대순으로 살펴보면 오래된 시는 대부분 의례에 관련된 것이고, 새로운 시대의 시는 서주 후기의 정치 사회에서 나타난 혼란과 붕괴를 반영한 것이 많다. 그 가운데는 작자의 입장을 뚜렷이 드러낸 창작시도 있어서 개인의 관념이 등장하는 고대 사상의 일면도 엿볼 수 있다.
육소(蓼蕭, 큰 다북쑥) - 제례에 참석한 손님을 축복하는 시
蓼彼蕭斯, 零露瀼兮
저 큰 다북쑥, 이슬 촉촉하네.
旣見君子, 我心寫兮
임을 만나 보니, 내 마음 후련하네.
燕笑語兮, 是以有譽處兮
잔치 벌여 웃고 이야기하니, 좋은 말만 들리고 마음 편안하네.
蓼彼蕭斯, 零露瀼瀼
저 큰 다북쑥, 이슬 듬뿍 젖었네.
旣見君子, 爲龍爲光
임을 만나 보니, 가없는 영광이네.
其德不爽, 壽考不忘
그 덕 그르치지 않으니, 오래오래 살리라.
蓼彼蕭斯, 零露泥泥
저 큰 다북쑥, 이슬 함빡 젖었네.
旣見君子, 孔燕豈樂
임을 만나 보니, 즐겁고 편안하네.
宜兄宜弟, 令德壽豈
그 형에 그 아우라, 착한 덕에 오래하고 즐거우리.
蓼彼蕭斯, 零露濃濃
저 큰 다북쑥, 이슬에 흠뻑 젖었네.
旣見君子, 鞗革沖沖
임을 만나 보니, 가죽으로 고삐 장식 드리웠네.
和鸞雝雝, 萬福攸同
방울 소리 딸랑딸랑, 만복이 함께하리라.
쑥과 이슬은 신성한 주술적 힘을 지니고 있다. 그 쑥에 이슬이 맺혔다는 표현으로 손님을 축복하는 시이다. 이것은 외교적인 의례의 시이기도 한데, 손님이 이 노래에 답가를 부를 수 있었다.
『논어』 「계씨편(季氏篇)」에서 공자가 아들 백어(伯魚)에게 반드시 시를 배우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제례는 이처럼 외교의 무대가 되기도 했는데, 사회가 어수선한 시절에는 조상의 영전에 부패한 정치를 고발하는 장이 되기도 했다. 「소아」
문왕(文王) - 주 왕조의 제전가(祭典歌)
文王在上, 於昭于天
문왕의 영혼은 위에 계시고, 오! 하늘에서 빛나네.
周雖舊邦, 其命維新
주는 오래된 나라이지만, 그 천명은 늘 새로웠네.
有周不顯, 帝命不時
주가 밝지 않은가, 천명이 늘 때에 맞으니
文王陟降, 在帝左右
문왕이 오르내려 천제의 곁에 계셨네.
모두 7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명을 받은 문왕의 영혼이 주나라에 강림하는 부분에서 시작해 자손의 번영과 신하의 충성, 은나라의 복속, 신하들의 열성적인 활약을 노래하고, 문왕의 덕에 따라 만방을 아울러야 한다고 가르치는 장엄한 서사시이다.
한편, 이 시는 씨족 집단의 결속을 강화할 목적으로, 문왕으로 분장한 춤꾼이 이야기에 맞춰 춤을 추는 극시(劇詩)이기도 하다. 「대아」
■ 「송편(頌篇)」
주송(周頌)과 노송(魯頌), 상송(商頌)을 합해 40편의 시를 수록하고 있다. 주송은 주나라, 노송은 노나라의 종묘에서 불리던 악가(樂歌)인 데 비해, 상송은 상[은(殷)]나라의 종묘사직을 계승한 송(宋)나라의 것이라고 한다.
3송 모두 조상을 찬양하고 신의 강림과 계시를 찬양하는 것으로, 춤이나 음악이 따른다. 이 가운데 주송의 시들은 1편이 1장으로만 이루어져 짧다.
□ 책 속의 명문장
殷鑒不遠 / 은감불원
은나라 사람은 거울을 멀리서 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바로 전 왕조인 하(夏)나라가
좋은 본보기가 된다는 말이다. 자신의 행위를 비추어 볼 본보기나 거울은 바로 곁에 있으니,
다른 사람의 실패를 보고 경계로 삼아야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 「대아, 탕편(蕩篇)」
他山之石, 可以攻玉 / 타산지석, 가이공옥
남의 산에서 나는 거친 돌도 옥을 가는 숫돌로 쓸 수 있다는 뜻이다. - 「소아, 학명편(鶴鳴篇)」
我心匪席, 不可轉也 / 아심비석, 불가전야
‘내 마음은 돌이 아니라서 굴릴 수 없다’라는 뜻이다. 곧, 자신의 마음은 반석과도 같이 굳건해서
절대로 움직일 수 없음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 「패풍, 백주편(柏舟篇)」
'중국의 고전 > 시와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405. 왕유 (王維) (0) 2019.01.12 404. 도잠(도연명) (陶潛(陶淵明) (0) 2019.01.08 403. 조조·조비·조식 (曹操·曹丕·曹植) (0) 2019.01.05 402. 굴원 (屈原) (0) 2019.01.02 시와 산문 (0) 2018.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