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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 - 9옛 이야기/고전 小說 2018. 12. 23. 22:01
어사또 춘향 집에 나와서 그날 밤을 새려 하고 문안 문밖 염문할 새 길청에 가 들으니 이방 승발 불러 하는 말이
“여보소. 들으니 수의도가 새문 밖 이씨라더니 아까 삼경에 등롱불 켜 들고 춘향모 앞세우고 폐의파관한 손님이 아마도 수상하니 내일 본관 잔치 끝에 일습을 구별하여 생탈없이 십분 조심하소.”
어사 그 말 듣고
“그놈들 알기는 아는데.”
하고 또 장청(杖廳)에 가 들으니 행수, 군관 거동 보소.
“여러 군관님네 아까 옥거리 바장이는 걸인 실로 괴이하데. 아마도 분명 어사(인)듯하니 용모파기 내어 놓고 자세히 보소.”
어사또 듣고
“그놈들 개개여신이로다.”
하고 현사에 가 들으니 호장 역시 그러하다. 육방(六房) 염문 다 한 후에 춘향집 돌아와서 그 밤을 샌 연후에 이튿날 조사 끝에 근읍(近邑) 수령이 모여든다. 운봉영장, 구례, 곡성, 순창, 옥과, 진안, 장수 원님이 차례로 모여든다. 좌편에 행수, 군관 우편에 청령, 사령 한가운데 본관은 주인이 되어 하인 불러 분부하되
“관청색 불러 다담을 올리라. 육고자 불러 큰 소를 잡고, 예방(禮房) 불러 고인을 대령하고, 승발 불러 차일을 대령하라. 사령 불러 잡인을 금하라.”
이렇듯 요란할 제 기치, 군물(軍物)이며 육각풍류(六角風流) 반공에 떠 있고 홍의홍상(紅衣紅裳) 기생들은 백수(白手) 나삼(羅衫) 높이 들어 춤을 추고 지화자 둥덩실 하는 소리 어사또 마음이 심란하구나.
“여봐라 사령들아 . 너의 원 전에 여쭈어라. 먼 데 있는 걸인이 좋은 잔치에 당하였으니 주효(酒肴) 좀 얻어 먹자고 여쭈어라.”
저 사령 거동 보소.
“어느 양반이건데, 우리 안전님 걸인 혼금(혼禁)하니 그런 말은 내도 마오.”
등 밀쳐내니 어찌 아니 명관(名官)인가. 운봉이 그 거동을 보고 본관에게 청하는 말이
“저 걸인의 의관은 남루하나 양반의 후예인 듯하니 말석에 앉히고 술잔이나 먹여 보냄이 어떠하뇨.”
본관 하는 말이
“운봉 소견대로 하오마는.”
하니, 마는 소리 후 입맛이 사납겠다. 어사 속으로
“오냐. 도적질은 내가 하마. 오라는 네가 져라.”
운봉이 분부하여
“저 양반 듭시래라.”
어사또 들어가 단좌하여 좌우를 살펴보니 당상의 모든 수령 다담을 앞에 놓고 진양조가 양양할 제 어사또 상을 보니 어찌 아니 통분하랴. 모 떨어진 개상판에 닥채 젓가락, 콩나물, 깍두기, 막걸리 한 사발 놓았구나. 상을 발길로 탁 차 던지며 운봉의 갈비를 직신
“갈비 한대 먹고지고.”
“다라도 잡수시오.”
하고 운봉이 하는 말이
“이러한 잔치에 풍류로만 놀아서는 맛이 적사오니 차운 한 수씩 하여 보면 어떠하오.”
“그 말이 옿다.”
하니 운봉이 운을 낼 제 높을 고(高)자, 기름 고(膏)자 두 자를 내어 놓고 차례로 운을 달 제 어사또 하는 말이
“걸인이 어려서 추구권이나 읽었더니 좋은 잔치 당하여서 주효를 포식하고 그저 가기 무렴하니 차운 한 수 하사이다.”
운봉이 반겨 듣고 필연(筆硯)을 내어주니 좌중이 다 못하여 글 두귀를 지었으되 민정(民情)을 생각하고 본관 정체(政體)를 생각하여 지었것다.
금준미주(金樽美酒)는 천인혈(千人血)이요
옥반가효(玉盤佳肴)는 만성고(萬姓膏)라
촉루낙시(燭淚落時) 민루낙(民淚落)이요
가성고처(歌聲高處) 원성고(怨聲高)라
이 글 뜻은
금동이의 아름다운 술은 일만 백성의 피요, 옥소반의 아름다운 안주는 일만 백성의 기름이라. 촛불 눈물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높았더라.
이렇듯이 지었으되 본관은 몰라 보고 운봉이 글을 보며 내념에
“아뿔싸. 일이 났다.”
이때 어사또 하직하고 간 연후에 공형 불러 분부하되
“야야. 일이 났다.”
공방 불러 포진(鋪陳) 단속, 병방 불러 역마(驛馬) 단속, 관청색 불러 다담 단속, 옥 형방 불러 죄인 단속, 집사 불러 형구(刑具) 단속, 형방 불러 문부 단속, 사령 불러 합번 단속, 한참 이리 요란할 제 물색없는 저 본관이
“여보 운봉은 어디를 다니시오.”
“소피하고 들어오오.”
본관이 분부하되
“춘향을 급히 올리라.”
고 주광이 난다.
이때에 어사또 군호할 제 서리 보고 눈을 주니 서리, 중방 거동 보소. 역졸 불러 단속할 제 이리 가며 수군 저리 가며 수군수군. 서리, 역졸 거동 보소. 외올 망건 공단 쓰개 새 평립 눌러 쓰고 석 자 감발 새 짚신에 한삼(汗衫) 고의 산뜻 입고 육모 방망이 녹피 끈을 손목에 걸어 쥐고 예서 번뜻 제서 번뜻 남원읍이 우꾼우꾼. 청파역졸 거동 보소. 달같은 마패(馬牌)를 햇빛같이 번뜻 들어
“암행어사 출또야.”
외(치)는 소리 강산이 무너지고 천지가 뒤눕는 듯 초목금수(草木禽獸)인들 아니 떨랴. 남문에서
“출또야.”
북문에서
“출또야.”
동‧서문 출또 소리 청천(靑天)에 진동하고
“공형(公兄) 들라.”
외(치)는 소리 육방(六房)이 넋을 잃어
“공형이오.”
등채로 휘닥딱
“애고 중다.”
“공방 공방.”
공방이 포진 들고 들어오며
“안하려던 공방을 하라더니 저 불 속에 어찌 들랴.”
등채로 휘닥딱
“애고 박 터졌네.”
좌수 별감 넋을 잃고 이방 호장 실혼(失魂)하고 삼색나졸 분주하네. 모든 수령 도망할 제 거동 보소. 인궤 잃고 과줄 들고 병부 잃고 송편 들고 탕건 잃고 용수 쓰고 갓 잃고 소반 쓰고 칼집 쥐고 오줌누기. 부서지(느)니 거문고요 깨지느니 북 장고라. 본관이 똥을 싸고 멍석구멍 새앙쥐 눈 뜨듯 하고 내아(內衙)로 들어가서
“어 추워라. 문 들어온다 바람 닫아라. 물 마르다 목 들여라.”
관청색(官廳色)은 상을 잃고 문짝 이고 내달으니 서리 역졸 달려들어 후닥딱
“애고 나 죽네.”
이때 수의사또 분부하되
“이 골은 대감이 좌정하시던 골이라. 훤화를 금(禁)하고 객사(客舍)로 도처하라.”
좌정 후에
“본관은 봉고파직하라.”
분부하니
“본관은 봉고파직이오.”
사대문(四大門)에 방(榜) 붙이고 옥 형리 불러 분부하되
“네 골 옥수를 다 올리라.”
호령하니 죄인을 올리거늘 다 각각 문죄 후에 무죄자(無罪者) 방송할 새
“저 계집은 무엇인고.”
형리 여쭈오되
“기생 월매 딸이온데 관정(官庭)에 포악한 죄로 옥중에 있삽내다.”
“무슨 죄인고.”
형리 아뢰되
“본관 사또 수청으로 불렀더니 수절이 정절이라 수청 아니 들려 하고 관전(官前)에 포악한 춘향이로소이다.”
어사또 분부하되
“너만 년이 수절한다고 관정 포악하였으니 살기를 바랄소냐. 죽어 마땅하되 내 수청도 거역할까.”
춘향이 기가 막혀
“내려오는 관장(官長)마다 개개이 명관(名官)이로구나. 수의사또 듣조시오. 층암절벽 높은 바위 바람 분들 무너지며 청송녹죽 푸른 나무가 눈이 온들 변하리까. 그런 분부 마옵시고 어서 바삐 죽여주오.”
하며
“향단아 서방님 어디 계신가 보아라. 어젯밤에 옥 문간에 와 계실 제 천만 당부하였더니 어디를 가셨는지 나 죽는 줄 모르는가.”
어사또 분부하되
“얼굴 들어 나를 보라.”
하시니 춘향이 고개 들어 대상(臺上)을 살펴보니 걸객(乞客)으로 왔던 낭군 어사또로 뚜렷이 앉았구나. 반 웃음 반 울음에
“얼씨구나 좋을씨고 어사낭군 좋을씨고. 남원읍내 추절(秋節) 들어 떨어지게 되었더니 객사에 봄이 들어 이화춘풍(李花春風) 날 살린다. 꿈이냐 생시냐 꿈을 깰까 염려로다.”
한참 이리 즐길 적에 춘향모 들어와서 가없이 즐겨하는 말을 어찌 다 설화(說話)하랴. 춘향의 높은 절개 광채 있게 되었으니 어찌 아니 좋을손가. 어사또 남원 공사(公事) 닦은 후에 춘향 모녀와 향단이를 서울로 치행(治行)할 제 위의(威儀) 찬란하니 세상 사람들이 누가 아니 칭찬하랴. 이때 춘향이 남원을 하직할 새 영귀(榮貴)하게 되었건만 고향을 이별하니 일희일비(一喜一悲)가 아니 되랴.
놀고 자던 부용당(芙蓉堂)아. 너 부디 잘 있거라. 광한루 오작교며 영주각(瀛州閣)도 잘 있거라. 춘초는 연년녹하되 왕손은 귀불귀라 날로 두고 이름이라. 다 각기 이별할 제 만세무량(萬歲無量)하옵소서. 다시 보기 망연이라.
이때 어사또는 좌‧우도 순읍(巡邑)하여 민정을 살핀 후에 서울로 올라가 어전(御前)에 숙배하니 삼당상 입시(入侍)하사 문부(文簿)를 사정(査定) 후에 상(上)이 대찬(大讚)하시고 즉시 이조참의 대사성을 봉하시고 춘향으로 정렬부인을 봉하시니 사은숙배하고 물러나와 부모 전에 뵈온대 성은을 축수(祝壽)하시더라. 이때 이판 호판 좌‧우‧영상 다 지내고 퇴사 후에 정렬부인으로 더불어 백년동락(百年同樂)할 새 정렬부인에게 삼남삼녀(三男三女)를 두었으니 개개이 총명하여 그 부친을 압두하고 계계승승(繼繼承承)하여 직거일품으로 만세유전하더라.
<大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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