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 - 8옛 이야기/고전 小說 2018. 12. 23. 22:01
이때 한양성 도련님은 주야로 시서 백가어를 숙독하였으니 글로는 이백(李白)이요, 글씨는 왕희지(王羲之)라. 국가에 경사 있어 태평과를 보이실 새 서책을 품에 품고 장중에 들어가 좌우를 둘러 보니 억조창생 허다 선비 일시에 숙배한다. 어악풍류 청아성에 앵무새가 춤을 춘다. 대제학 택출하여 어제를 내리시니 도승지 모셔내어 홍장(紅帳) 위에 걸어 놓(으)니 글 제에 하였으되
“춘당춘색이 고금동이라.”
뚜렷이 걸었거늘 이도령 글 제를 살펴보니 익히 보던 배라. 시지(試紙)를 펼쳐놓고 해제(解題)를 생각하여 용지연(龍池硯)에 먹을 갈아 당황모 무심필을 반중동 덤벅 풀어 왕희지 필법으로 조맹부 체(體)를 받아 일필휘지(一筆揮之) 선장하니 상시관이 이 글을 보고 자자(字字)이 비점이요 구구(句句)이 관주로다. 용사비등(龍蛇飛騰)하고 평사낙안이라 금세의 대재(大才)로다. 금방의 이름을 불러 어주삼배(御酒三盃) 권하신 후 장원급제 휘장이라. 신래(新來)의 진퇴(進退)를 나올 적에 머리에는 어사화요 몸에는 앵삼이라. 허리에는 학대로다. 삼일(三日) 유가한 연후에 산소에 소분하고 전하께 숙배하니 전하께옵서 친히 불러 보신 후에
“경의 재조 조정에 으뜸이라.”
하시고 도승지 입시(入侍)하사 전라도 어사를 제수하시니 평생의 소원이라.
수의(繡衣), 마패(馬牌), 유척을 내주시니 전하께 하직하고 본댁으로 나갈 때 철관 풍채는 심산맹호(深山猛虎)같은지라. 부모전 하직하고 전라도로 행할 새 남대문 밖 썩 나서서 서리, 중방, 역졸 등을 거느리고 청파역 말 잡아 타고 칠패, 팔패, 배다리 얼른 넘어 밥전거리 지나 동작이를 얼픗 건너 남대령을 넘어 과천읍에 중화(中火)하고 사근내, 미륵당이, 수원 숙소(宿所)하고 대황교, 떡전거리, 진개울, 중미, 진위읍에 중화하고 칠원, 소사, 애고다리, 성환역에 숙소하고 상류천, 하류천, 새술막, 천안읍에 중화하고 삼거리, 도리치, 김제역 말 갈아 타고 신구, 덕평을 얼른 지나 원터에 숙소하고 팔풍정, 화란, 광정, 모란, 공주, 금강을 건너 금영에 중화하고 높은 한길 소개문, 어미널티, 경천에 숙소하고 노성, 풋개, 사다리, 은진, 간치당이, 황화정, 장애미고개, 여산읍에 숙소참하고 이튿날 서리 중방 불러 분부하되
“전라도 초읍 여산이라. 막중국사 거행불명즉 죽기를 면치 못하리라.”
추상같이 호령하며 서리 불러 분부하되
“너는 좌도로 들어 진산, 금산, 무주, 용담, 진안, 장수, 운봉, 구례로 이 팔읍을 순행하여 아무 날 남원읍으로 대령하고, 자, 중방 역졸 너희 등은 우도로 용안, 함열, 임피, 옥구, 김제, 만경, 고부, 부안, 흥덕, 고창, 장성, 영광, 무장, 무안, 함평으로 순행하여 아무 날 남원읍으로 대령하고, 종사 불러 익산, 금구, 태인, 정읍, 순창, 옥과, 광주, 나주, 평창, 담양, 동복, 화순, 강진, 영암, 장흥, 보성, 흥양, 낙안, 순천, 곡성으로 순행하여 아무 날 남원읍으로 대령하라.”
분부하여 각기 분발하신 후에
어사또 행장을 차리는데 모양 보소. 숱 사람을 속이려고 모자 없는 헌 파립에 벌이줄 총총 매어 초사갓끈 달아 쓰고 당만 남은 헌 망건에 갖풀관자 노끈당줄 달아 쓰고 의뭉하게 헌 도복에 무명실 띠를 흉중에 둘러 매고 살만 남은 헌 부채에 솔방울 선추달아 일광을 가리고 내려올 제 통새암, 삼례 숙소하고 한내, 주엽쟁이, 가리내, 싱금정 구경하고 숩정이, 공북루 서문을 얼른 지나 남문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소강남여기로다. 기린토월(麒麟吐月)이며 한벽철연(寒碧淸煙), 남고창종(南固暮鍾), 건지망월(乾止望月), 다가사후(多佳射侯), 덕진채련(德眞採蓮), 비비락안(飛飛落雁), 위봉폭포(威鳳瀑布), 완산팔경을 다 구경하고 차차로 암행(暗行)하여 내려올 제 각읍 수령들이 어사 났단 말을 듣고 민정(民情)을 가다듬고 전공사(前公事)를 염려할 제 하인인들 편하리요. 이방, 호장 실혼(失魂)하고 공사회계(公事會計)하는 형방, 서기 얼른 하면 도망차로 신발하고 수다한 각 청상(廳上)이 넋을 잃어 분주할 제 이때 어사또는 임실 국화들 근처를 당도하니 차시(此時) 마침 농절(農節)이라. 농부들이 농부가(農夫歌)하며 이러할 제 야단이었다.
“어여로 상사디야 천리건곤 태평시(太平時)에 도덕 높은 우리 성군(聖君) 강구연월 동요 듣던 요(堯)임금 성덕(聖德)이라 어여로 상사디야. 순(舜)임금 높은 성덕으로 내신 성기 역산에 밭을 갈고 어여로 상사디야. 신농씨 내신 따비 천추만대(千秋萬代) 유전(遺傳)하니 어이 아니 높으던가 어여로 상사디야. 하우씨(夏禹氏) 어진 임금 구년홍수(九年洪水) 다스리고 어여라 상사디야. 은왕(殷王) 성탕 어진 임금 대한칠년(大旱七年) 당하였네 어여라 상사디야. 이 농사를 지어내어 우리 성군 공세 후에 남은 곡식 장만하여 앙사부모 아니하며 하육처자 아니할까 어여라 상사디야. 백초를 심어 사시(四時)를 짐작하니 유신(有信)한 게 백초로다 어여라 상사디야. 청운공명 좋은 호강 이 업(業)을 당할소냐 어여라 상사디야. 남전북답 기경하여 함포고복(含哺鼓腹) 하여보세 얼럴럴 상사디야.”
한참 이리할 제 어사또 주령 짚고 이만하고 서서 농부가를 구경하다가
“거기는 대풍(大豊)이로고.”
또 한편을 바라보니 이상한 일이 있다. 중씰한 노인들이 낄낄이 모여 서서 등걸밭을 일구는데 갈멍덕 숙여 쓰고 쇠스랑 손에 들고 백발가(白髮歌)를 부르는데
“등장가자 등장가자 하느님 전에 등장갈 양이면 무슨 말을 하실는지. 늙은이는 죽지 말고 젊은 사람 늙지 말게. 하느님 전에 등장가세. 원수로다 원수로다 백발이 원수로다. 오는 백발 막으려고 우수(右手)에 도끼 들고 좌수(左手)에 가시 들고 오는 백발 두드리며 가는 홍안(紅顔) 끌어당겨 청사(靑絲)로 결박하여 단단히 졸라매되 가는 홍안 절로 가고 백발은 시시(時時)로 돌아와 귀 밑에 살 잡히고 검은 머리 백발되니 조여청사모성설이라. 무정한 게 세월이라. 소년향락 깊은들 왕왕이 달라가니 이 아니 광음(光陰)인가. 천금준마(千金駿馬) 잡아 타고 장안대도 달리고저. 만고강산(萬古江山) 좋은 경개(景槪) 다시 한 번 보고지고. 절대가인(絶代佳人) 곁에 두고 백만교태(百萬嬌態) 놀고 지고. 화조월석 사시가경(四時佳景) 눈 어둡고 귀가 먹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어 할일 없는 일이로세. 슬프다 우리 벗님 어디로 가겠는고. 구추(九秋) 단풍잎 지듯이 선아선아 떨어지고 새벽하늘 별 지듯이 삼오삼오 쓸어지니 가는 길이 어디멘고. 어여로 가래질이야. 아마도 우리 인생 일장춘몽(一場春夢)인가 하노라.”
한참 이러할 제 한 농부 썩 나서며
“담배 먹세. 담배먹세.”
갈멍덕 숙여 쓰고 두덕에 나오더니 곱돌조대 넌짓 들어 꽁무니 더듬더니 가죽 쌈지 빼어 놓고 세우 침을 뱉아 엄지가락이 자빠지게 비빚비빚 단단히 넣어 짚불을 뒤져 놓고 화로에 푹 질러 담배를 먹는데 농군이라 하는 것이 대가 빡빡하면 쥐새끼 소리가 나것다. 양 볼때기가 오목오목 코궁기가 발심발심 연기가 홀홀 나게 피워 물고 나서니 어사또 반말하기는 공성이 났지.
“저 농부 말 좀 물어보면 좋겠구먼.”
“무슨 말.”
“이 골 춘향이가 본관에 수청들어 뇌물을 많이 먹고 민정(民政)에 작폐한단 말이 옳은지.”
저 농부 열을 내어
“게가 어디 사나.”
“아무데 살든지.”
“아무데 살든지라니. 게는 눈콩알 귀꽁알이 없나. 지금 춘향이를 수청 아니든다 하고 형장 맞고 갇혔으니 창가(娼家)에 그런 열녀 세상에 드문지라. 옥결같은 춘향몸에 자네 같은 동냥치가 누설을 시키다간 빌어먹도 못하고 굶어 뒤어지리. 올라간 이도령인지 삼도령인지 그놈의 자식은 일거후 무소식하니 인사(人事) 그렇고는 벼슬은커니와 내 좇도 못하지.”
“어 그게 무슨 말인고.”
“왜. 어찌 되나.”
“되기야 어찌 되랴마는 남의 말로 구습을 너무 고약히 하는고.”
“자네가 철 모르는 말을 하매 그렇지.”
수작을 파하고 돌아서며
“허허 망신이로고. 자 농부네들 일 하오.”
“예.”
하직하고 한 모롱이를 돌아드니 아이 하나 오는데, 주령 막대 끌면서 시조(時調) 절반 사설(辭說) 절반 섞어 하되
“오늘이 며칠인고. 천리길 한양성을 며칠 걸어 올라가랴. 조자룡의 월강(越江)하던 청총마(靑총馬)가 있었다면 금일로 가련마는 불쌍하다 춘향이는 이서방을 생각하여 옥중에 갇히어서 명재경각 불쌍하다. 몹쓸 양반 이서방은 일거 소식 돈절하니 양반의 도리는 그러한가.”
어사또 그 말 듣고
“이애. 어디 있니.”
“남원읍에 사오.”
“어디를 가니.”
“서울 가오.”
“무슨 일로 가니.”
“춘향의 편지 갖고 구관댁에 가오.”
“이애. 그 편지 좀 보자꾸나.”
“그 양반 철모르는 양반이네.”
“웬 소린고.”
“글쎄 들어보오. 남아(男兒) 편지 보기도 어렵거든 황 남의 내간을 보잔단 말이오.”
“이애 들어라. 행인이 임발우개봉이란 말이 있느니라. 좀 보면 관계하랴.”
“그 양반 몰골은 흉악하구만 문자속은 기특하오. 얼른 보고 주오.”
“호노자식이로고.”
편지 받아 떼어 보니 사연에 하였으되
일차 이별후 성식이 적조하니 도련님 시봉 체후만안하옵신지 원절복모하옵니다. 천첩 춘향은 장대뇌상에 관봉치패하고 명재경각(命在頃刻)이라. 지어사경에 혼비황릉지묘하여 출몰귀관하니 첩신(妾身)이 수유만사나 단지 열불이경(烈不二更)이요 첩지사생(妾之死生)과 노모(老母) 형상이 부지하경이오니 서방님 심량처지하옵소서.
편지 끝에 하였으되
거세하시군별첩고 작이동설우동추라. 광풍반야누여설하니 하위남원옥중수라.
혈서(血書)로 하였는데 평사낙안(平沙落雁) 기러기 격으로 그저 툭툭 찍은 것이 모두 다 애고로다. 어사 보더니 두 눈에 눈물이 듣거니 맺거니 방울방울 떨어지니 저 아이 하는 말이
“남의 편지 보고 왜 우시오.”
“엇다 이애. 남의 편지라도 설운 사연을 보니 자연 눈물이 나는구나.”
“여보 인정있는 체하고 남의 편지 눈물 묻어 찢어지오. 그 편지 한장 값이 열 닷냥이오. 편지 값 물어내오.”
“여봐라. 이도령이 나와 죽마고우(竹馬故友) 친구로서 하향(遐鄕)에 볼 일이 있어 나와 함께 내려오다 완영에 들렸으니 내일 남원으로 만나자 언약하였다. 나를 따라 가 있다가 그 양반을 뵈어라.”
그 아이 반색하며
“서울을 저 건너로 알으시오.”
하며 달려들어
“편지 내오.”
상지할 제 옷 앞자락을 잡고 실랑하며 살펴보니 명주 전대를 허리에 둘렀는데 제기(祭器) 접시같은 것이 들었거늘 물러나며
“이것 어디서 났소. 찬 바람이 나오.”
“이놈 만일 천기누설(天機漏洩)하여서는 생명을 보전치 못하리라.”
당부하고 남원으로 들어올 제 박석치를 올라서서 사면을 둘러보니 산도 예 보던 산이요 물도 예 보던 물이라. 남문 밖 썩 내달아
“광한루야 잘 있더냐. 오작교야 무사하냐.”
객사청청유색신은 나귀 매고 놀던 데요, 청운낙수 맑은 물은 내 발 씻던 청계수(淸溪水)라. 녹수진경 넓은 길은 왕래하는 옛길이요, 오작교 다리 밑에 빨래하는 여인들은 계집아이 섞여 앉아
“야야.”
“왜야.”
“애고 애고 불쌍터라. 춘향이가 불쌍터라. 모질더라 모질더라. 우리 골 사또가 모질더라. 절개 높은 춘향이를 위력겁탈(威力劫奪)하려 한들 철석같은 춘향 마음 죽는 것을 헤아릴까. 무정터라 무정터라. 이도령이 무정터라.”
저희끼리 공론하며 추적추적 빨래하는 모양은 영양공주, 난양공주, 진채봉, 계섬월, 백릉파, 적경홍, 심요연, 가춘운도 같다마는 양소유가 없었으니 뉘를 찾아 앉았는고. 어사또 누에 올라 자상히 살펴보니 석양은 재서(在西)하고 숙조(宿鳥)는 투림할 제 저 건너 양류목(楊柳木)은 우리 춘향 그네 매고 오락가락 놀던 양을 어제 본 듯 반갑도다. 동편을 바라보니 장림 심처(深處) 녹림간(綠林間)에 춘향집이 저기로다. 저 안에 내동원은 예 보던 고면(古面)이요, 석벽의 험한 옥(獄)은 우리 춘향 우니는 듯 불쌍코 가긍하다. 일락서산(日落西山) 황혼시에 춘향문전 당도하니 행랑은 무너지고 몸채는 꾀를 벗었는데 예 보던 벽오동은 수풀 속에 우뚝 서서 바람을 못 이기어 추레하게 서 있거늘 단장 밑에 백두루미는 함부로 다니다가 개한테 물렸는지 깃도 빠지고 다리를 징금 끼룩 뚜루룩 울음 울고 빗장전 누렁개는 기운없이 졸다가 구면(舊面)객을 몰라보고 꽝꽝 짖고 내달으니
“요 개야 짖지 마라. 주인같은 손님이다. 너의 주인 어디 가고 네가 나와 반기느냐.”
중문을 바라보니 내 손으로 쓴 글자가 충성 충(忠)자 완연터니 가운데 중(中)자는 어디 가고 마음 심(心)자만 남아 있고 와룡장자 입춘서(立春書)는 동남풍에 펄렁펄렁 이내 수심 도와낸다. 그렁저렁 들어가니 내정은 적막한데 춘향의 모 거동 보소. 미음 솥에 불 넣으며
“애고 애고 내 일이야. 모질도다 모질도다. 이서방이 모질도다. 위경 내 딸 아주 잊어 소식조차 돈절하네. 애고 애고 설운지고. 향단아 이리와 불 넣어라.”
하고 나오더니 울 안의 개울물에 흰 머리 감아 빗고 정화수 한 동이를 단하에 받쳐 놓고 복지(伏地)하여 축송하되
“천지지신 일월성신은 화위동심하옵소서. 다만 독녀 춘향이를 금쪽같이 길러내어 외손봉사 바라더니 무죄한 매를 맞고 옥중에 갇혔으니 살릴 길이 없삽니다. 천지지신(天地之神)은 감동하사 한양성 이몽룡을 청운에 높이 올려 내 딸 춘향 살려지이다.”
빌기를 다한 후
“향단아 담배 한 대 붙여 다오.”
춘향의 모 받아 물고 후유 한숨 눈물 질새, 이때 어사 춘향모 정성 보고
“나의 벼슬한 게 선영음덕으로 알았더니 우리 장모 덕이로다.”
하고
“그 안에 뉘 있나.”
“뉘시오.”
“내로세.”
“내라니 뉘신가.”
어사 들어가며
“이서방일세.”
“이서방이라니. 옳지 이풍헌 아들 이서방인가.”
“허허 장모 망령이로세. 나를 몰라, 나를 몰라.”
“자네가 뉘기여.”
“사위는 백년지객(百年之客)이라 하였으니 어찌 나를 모르는가.”
춘향의 모 반겨하여
“애고 애고 이게 왠 일인고. 어디 갔다 이제 와. 풍세대작(風勢大作)터니 바람결에 풍겨 온가. 봉운기봉터니 구름 속에 싸여온가. 춘향의 소식 듣고 살리려고 와 계신가. 어서 어서 들어가세.”
손을 잡고 들어가서 촛불 앞에 앉혀 놓고 자세히 살펴보니 걸인 중에는 상걸인이 되었구나. 춘향의 모 기가 막혀
“이게 웬 일이오.”
“양반이 그릇되매 형언(形言)할 수 없네. 그때 올라가서 벼슬 길 끊어지고 탕진가산(蕩盡家産)하여 부친께서는 학장질 가시고 모친은 친가로 가시고 다 각기 갈리어서 나는 춘향에게 내려와서 돈 천이나 얻어 갈까 하였더니 와서 보니 양가(兩家) 이력 말 아닐세.”
춘향의 모 이 말 듣고 기가 막혀
“무정한 이 사람아. 일차 이별후로 소식이 없었으니 그런 인사가 있으며 후긴지 바랐더니 이리 잘 되었소. 쏘아 논 살이 되고 엎질러진 물이 되어 수원수구(誰怨誰咎)할까마는 내 딸 춘향 어쩔라나.”
홧김에 달려들어 코를 물어 뗄려 하니
“내 탓이지 코 탓인가. 장모가 나를 몰라보네. 하늘이 무심(無心)태도 풍운조화(風雲造化)와 뇌성뇌기(雷聲雷氣)는 있느니.”
춘향모 기가 차서
“양반이 그릇되매 간롱조차 들었구나.”
어사 짐짓 춘향모의 하는 거동을 보려 하고
“시장하여 나 죽겠네. 나 밥 한 술 주소.”
춘향모 밥 달라는 말을 듣고
“밥 없네.”
어찌 밥 없을꼬마는 홧김에 하는 말이었다. 이때 향단이 옥에 갔다 나오더니 저의 아씨 야단 소리에 가슴이 우둔우둔 정신이 울렁울렁 정처없이 들어가서 가만히 살펴보니 전의 서방님이 와 계(시)구나. 어찌 반갑던지 우루룩 들어가서
“향단이 문안이오. 대감님 문안이 어떠하옵시며 대부인 기후 안녕하옵시며 서방님께서도 원로에 평안히 행차하시니까.”
“오냐. 고생이 어떠하냐.”
“소녀 몸을 무탈하옵니다. 아씨 아씨 큰 아씨. 마오 마오 그리 마오. 멀고 먼 천리 길에 뉘 보려고 와계(시)관대 이 괄시가 왠 일이오. 애기씨가 알으시면 지레 야단이 날 것이니 너무 괄시 마옵소서.”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먹던 밥에 풋고추 저리김치 양념 넣고 단간장에 냉수 가득 떠서 모반에 받쳐 드리면서
“더운 진지 할 동안에 시장하신데 우선 요기하옵소서.”
어사또 반겨하며
“밥아 너 본지 오래로구나.”
여러가지를 한데다가 붓더니 숟가락 댈 것 없이 손으로 뒤져서 한편으로 몰아치더니 마파람에 게 눈 감추 듯 하는구나.
춘향모 하는 말이
“얼씨구 밥 빌어먹기는 공성이 났구나.”
이때 향단이는 저의 애기씨 신세를 생각하여 크게 울든 못하고 체읍하여 우는 말이
“어찌할꺼나 어찌할꺼나. 도덕 높은 우리 애기씨 어찌하여 살리시려오. 어찌꺼나요 어찌꺼나요.”
실성으로 우는 양을 어사또 보시더니 기가 막혀
“여봐라 향단아. 울지 마라 울지 마라. 너의 아기씨가 설마 살지 죽을소냐. 행실이 지극하면 사는 날이 있느니라.”
춘향모 듣더니
“애고 양반이라고 오기는 있어서 대체 자네가 왜 저 모양인가.”
향단이 하는 말이
“우리 큰 아씨 하는 말을 조금도 괘념 마옵소서. 나 많아야 노망한 중에 이 일을 당해 놓(으)니 홧김에 하는 말을 일분인들 노하리까. 더운 진지 잡수시오.”
어사또 밥상 받고 생각하니 분기탱천하여 마음이 울적, 오장이 울렁울렁 석반이 맛이 없어
“향단아. 상 물려라.”
담뱃대 투툭 털며
“여보소 장모. 춘향이나 좀 보아야지.”
“그러지요. 서방님이 춘향을 아니 보아서야 인정이라 하오리까.”
향단이 여쭈오되
“지금은 문을 닫았으니 파루치거든 가사이다.”
이때 마침 파루를 뎅뎅 치는구나. 향단이는 미음상 이고 등롱 들고 어사또는 뒤를 따라 옥문간 당도하니 인적이 고요하고 쇄장이도 간 곳 없네.
이때 춘향이 비몽사몽간에 서방님이 오셨는데 머리에는 금관이요, 몸에는 홍삼이라. 상사일념(相思一念)에 목을 안고 만단정회(萬端情懷)하는 차라
“춘향아.”
부른들 대답이 있을소냐. 어사또 하는 말이
“크게 한번 불러 보소.”
“모르는 말씀이오. 예서 동헌이 마주치는데 소리가 크게 나면 사또 염문(廉問)할 것이니 잠깐 지체하옵소서.”
“무에 어때, 염문이 무엇인고. 내가 부를 게 가만있소. 춘향아.”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래어 일어나며
“허허 이 목소리 잠결인가 꿈결인가. 그 목소리 괴이하다.”
어사또 기가 막혀
“내가 왔다고 말을 하소.”
“왔단 말을 하게 되면 기절담락(膽落)할 것이니 가만히 계옵소서.”
춘향이 저의 모친 음성을 듣고 깜짝 놀래어
“어머니 어찌 오셨소. 몹쓸 딸자식을 생각하와 천방지방 다니다가 낙상하기 쉽소. 일후일랑은 오실라 마옵소서.”
“날랑은 염려말고 정신을 차리어라. 왔다.”
“오다니 뉘가 와요.”
“그저 왔다.”
“갑갑하여 나 죽겠소. 일러 주오. 꿈 가운데 님을 만나 만단정회하였더니 혹시 서방님께서 기별 왔소. 언제 오신단 소식 왔소. 벼슬 띠고 내려온단 노문 왔소. 답답하여라.”
“너의 서방인지 남방인지 걸인 하나가 내려왔다.”
“허허. 이게 왠 말인가. 서방님이 오시다니 몽중에 보던 님을 생시에 본단말(인)가.”
문틈으로 손을 잡고 말 못하고 기색하며
“애고 이게 누구시오. 아마도 꿈이로다. 상사불견(相思不見) 그린 님을 이리 수이 만날손가. 이제 죽어 한이 없네. 어찌 그리 무정한가. 박명하다 나의 모녀. 서방님 이별 후에 자나 누(우)나 님 그리워 일구월심 한이더니 내 신세 이리 되어 매에 감겨 죽게 되는 날 살리려 와 셰시오.”
한참 이리 반기다가 님의 형상 자세 보니 어찌 아니 한심하랴.
“여보 서방님. 내 몸 하나 죽는 것은 설운 마음 없소마는 서방님 이 지경이 왠 일이오.”
“오냐 춘향아. 설워 마라. 인명이 재천인데 설만들 죽을소냐.”
춘향이 저의 모친 불러
“한양성 서방님을 칠년대한(七年大旱) 가문 날에 갈민대우 기다린 들 나와 같이 자진(自盡)턴가. 심은 나무(가) 꺾어지고 공든 탑이 무너졌네. 가련하다 이내 신세 하릴없이 되었구나. 어머님 나 죽은 후에라도 원이나 없게 하여 주옵소서. 나 입던 비단 장옷 봉장 안에 들었으니 그 옷 내어 팔아다가 한산세저 바꾸어서 물색 곱게 도포 짓고 백방사주 긴 치마를 되는대로 팔아다가 관, 망, 신발 사드리고 절병, 천은비녀, 밀화장도, 옥지환이 함 속에 들었으니 그것도 팔아다가 한삼, 고의 불초(不肖)찮게 하여 주오. 금명간 죽을 년이 세간 두어 무엇할까. 용장, 봉장, 빼닫이를 되는대로 팔아다가 별찬 진지 대접하오. 나 죽은 후에라도 나 없다 말으시고 날 본 듯이 섬기소서. 서방님 내 말씀 들으시오. 내일이 본관 사또 생신이라. 취중에 주망 나면 나를 올려 칠 것이니 형문 맞은 다리 장독(杖毒)이 났으니 수족인들 놀릴손가. 만수운환 흐트러진 머리 이렁저렁 걷어 얹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들어가서 장폐하여 죽거들랑 삯군인 체 달려들어 둘러업고 우리 둘이 처음 만나 놀던 부용당의 적막하고 요적(寥寂)한 데 뉘어 놓고 서방님 손수 염습하되 나의 혼백 위로하여 입은 옷 벗기지 말고 양지 끝에 묻었다가 서방님 귀히 되어 청운에 오르거든 일시도 둘라 말고 육진장포 개렴하여 조촐한 상여 위에 덩그렇게 실은 후에 북망산천 찾아갈 제 앞 남산 뒷 남산 다 버리고 한양성으로 올려다가 선산 발치에 묻어주고 비문에 새기기를 수절원사춘향지묘라 여덟자만 새겨 주오. 망부석이 아니 될까. 서산에 지는 해는 내일 다시 오련마는 불쌍한 춘향이는 한 번 가면 어느 때 다시 올까. 신원이나 하여주오. 애고 애고 내 신세야. 불쌍한 나의 모친 나를 잃고 가산을 탕진하면 하릴없이 걸인 되어 이집 저집 걸식타가 언덕 밑에 조속조속 졸면서 자진하여 죽게 되면 지리산 갈가마귀 두 날개를 떡 벌리고 둥덩실 날아 들어 까옥까옥 두 눈을 다 파먹은들 어느 자식 있어 후여 하고 날려 주리.”
애고 애고 설이 울 제 어사또
“울지 마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느니라. 네가 나를 어찌 알고 이렇듯이 설워하느냐.”
작별하고 춘향 집에 돌아왔지.
춘향이는 어둠침침 야삼경에 서방님을 번개같이 얼른 보고 옥방에 홀로 앉아 탄식하는 말이
“명천(明天)은 사람을 낼 제 별로 후박(厚薄)이 없건마는 나의 신세 무슨 죄로 이팔청춘에 님 보내고 모진 목숨 살아 이 형문 이 형장 무슨 일(인)고. 옥중고생 삼사삭에 밤낮없이 님 오시기만 바라더니 이제는 님의 얼굴 보았으니 광채없이 되었구나. 죽어 황천에 돌아간들 제왕전(諸王前)에 무슨 말을 자랑하리.”
애고 애고 설이 울 제 자진하여 반생반사(半生半死)하는구나.
'옛 이야기 > 고전 小說'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 - 해설 (0) 2018.12.30 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 - 9 (0) 2018.12.23 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 - 7 (0) 2018.12.23 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 - 6 (0) 2018.12.23 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 - 5 (0) 2018.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