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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 벽암록 (碧巖錄)중국의 고전 /사상과 처세 2019. 5. 6. 14:03
239. 벽암록 (碧巖錄) / 저작자 환오(원오, 圜悟)
1135년경에 만들어진 책으로, 고전적인 선학의 문답 공안집이다. ‘벽암(碧巖)’이란 편저자인 환오가 주지로 있던 협산(夾山) 영천원(靈泉院)의 방장에 걸려 있던 액자에 적혀 있는 글로, 협산의 개조 선회(善會)가 그 깨달음의 경지에 대해 “원숭이가 새끼를 안고 푸른 산 그림자로 사라지고, 작은 새는 꽃을 물어 푸른 바위 앞에 떨어뜨린다”라고 말한 고사에서 유래한다
이 책은 『벽암집(碧巖集)』이라고도 하며, 자세한 명칭은 『불과환오선사벽암록(집)[佛果圜悟禪師碧巖錄(集)]』이다. 임제종(臨濟宗) 양기파(楊岐派)1)의 환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이 평석(評釋)한 대표적인 선학의 문답 공안집이다. 이전에 운문종(雲門宗)의 설두중현(雪竇重顯2), 980~1052)이 당나라의 고전적 선학의 공안 1,700칙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100칙을 가린 뒤, 그 하나하나에 대해 운문으로 된 송고(頌古)를 덧붙여 『백칙송고(百則頌古)』를 저술했다. 여기에 대해 임제종의 환오가 각 칙마다 수시(垂示, 서술적 수훈)와 저어(著語, 부분적인 짤막한 평), 평창(評唱, 전체적인 평석)을 가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설두는 사천성 수녕(遂寧) 사람으로, 운문종의 개종조 문언(文偃)3)의 적손인 지문광조(智門光祚)에게 깨달음의 법통을 이었다. 5년 동안 문언에게 가르침을 받고 종지를 수행하면서 시가 문학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해 한림의 문사로 칭송받았다. 설두산에 들어가서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키고, 운문종 중흥의 조사로 추앙받았다. 환오 역시 사천성 성도 사람으로, 임제종 5대 조사 법연(法演)의 제자가 되어 법통을 이어받았다. 원래는 유가 출신으로, 그 무렵의 유학자들에게 경론을 배웠지만, 큰 병에 걸린 뒤 학문의 무력함을 깨닫고 선(禪)으로 전환했다. 뒷날 호남(湖南)의 협산 영천원에 안주해 참선자들에게 『설두송고』를 강의한 것이 이 책의 발단이다.
이 책은 환오의 제자들이 간행한 것인데, 제자 대혜종고(大慧宗杲)가 이 책이 선을 형식화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해 간본을 회수해 불태웠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종문(宗門)의 제일가는 책으로 평가받고 ‘안개 낀 바다의 나침반, 밤길의 북두’로 찬양받는 책이 되었다. 전 10권에 100편을 수록하고 있다.
1) 임제종 제8조를 지낸 송나라의 선승 방회(方會, 996~1049)가 시조로, 그의 별칭 ‘양기 방회’에서 딴 이름이다. 방회는 중국 선종(禪宗)의 5가7종(五家七宗)의 하나로 꼽힌다. 저서로는 『어록(語錄)』이 전해진다.
2) 중국 선종의 일파인 운문종의 승려로 시문(詩文)이 뛰어났다. 저서로는 『설두칠부집(雪竇七部集)』이 있다.
3) 중국 선종5가(禪宗五家)의 하나이자 운문종의 개조이다. 저서는 따로 없고 그의 말을 기록한 『운문광진선사광록(雲門匡眞禪師廣錄)』이 전해진다.
■ 이 책 10권은 본칙(本則), 송(頌), 수시(垂示), 저어[著語, 착어(着語)라고도 함], 평창(評唱)의 다섯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칙〉은 설두가 가려낸 100칙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고전적 선자(禪者)의 문답공안(問答公案)이다. 〈송〉은 100칙의 문답에 대한 뜻과 거기에 관련된 선승의 태도 등을 시로 평가하고 감상한 것이다. 이 두 부분은 설두가 편저한 것으로, 『설두송고(雪竇頌古)』라고 한다.
〈수시〉는 본칙 하나하나에 환오가 그 요지를 설명한 것으로, 각 칙의 뜻을 나타내는 간결한 서문이다. 그러나 반드시 모든 칙에 수시가 붙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가운데는 수시가 없는 것도 있다. 〈저어〉는 본칙 및 송의 장구 아래에 환오가 단 짤막한 평으로, 일종의 경구(警句) 같은 것이다. 욕설 같은 것도 있고, 조롱하는 것도 있으며, 혐오감을 드러내는 말도 있다. 그 무렵에 쓰이던 비어와 속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해 선학 문답의 묘미를 한껏 드러낸 부분이다. 〈평창〉은 본칙과 송에 대한 환오의 강평(講評)으로, 비교적 장문이다.
저어나 평창은 환오가 『설두송고』를 법단 위에서 강설할 때 제자가 필기한 것을 나중에 정리, 보충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수시는 환오가 설두의 송고를 들면서 머리말을 단 것으로서 서론에 해당된다. 수시는 환오가 직접 붓을 들어 적은 것으로 보인다.
이상의 내용이 100칙 하나하나에 수시 · 본칙 · 본칙평창 · 송 · 송평창의 순서로 배열되고, 본칙과 송의 각 장구 아래 저어가 편의적으로 삽입되어 전 10권을 구성하고 있다.
여기서는 장문의 평창은 생략하고, 설두의 본칙과 송, 거기에 대한 환오의 수시와 저어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예를 들어 보기로 하겠다. 다음의 칙은 설두의 스승인 지문광조(1013~1063)와 수행승의 문답으로, 연꽃은 물 위에서 피는 것, 연잎은 물속에 있는 것이라는 상식적인 분별을 타파하는 선학의 문답이다.
■ 제21칙 지문연화하엽(智門蓮華荷葉)
〈수시〉
법당(法幢, 설법의 깃발)을 세우고, 종지(宗旨, 근본이 되는 뜻)를 밝힌다. 이것은 본래 비단 위에 꽃을 장식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수행자가 지적인 편협을 벗어던지고 분별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는 태평무사한 사람이 될 것이다. 만일 수행자가 한순간에 모든 언어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리의 근원을 깨닫는다면, 그는 하나를 듣고 셋을 아는 사람이 될 것이며,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모든 것을 버리고 머리를 조아려 스승의 조치를 구하도록 하라. 아래에 나와 있는 ( ) 안의 내용은 환오가 덧붙인 저어이다.
〈본칙〉
어떤 승려가 지문에게 물었다.
“연꽃이 아직 물에서 나오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뻔한 일에 골몰하고 있구나. 진흙에 진흙을 부어 섞는 꼴이군. 어디서 그런 말을 듣고 왔나 보군.)
지문이 대답했다.
“연꽃이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이로구나. 온 세상 사람이 품고 있는 큰 문제로다.)
승려가 물었다.
“물 위에 나온 뒤에는 어떠합니까?”
(혼란스럽게 머리를 굴리지 마라. 이래도 아직 모르겠느냐?)
지문이 대답했다.
“연잎마저 나왔도다.”
(북쪽 지방은 춥지만 평화롭다. 따뜻한 강남은 전란이 끊이지 않아 고생이 많을 것이다. 또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난감하다. 지문이 세상 사람을 웃기는구나.)
〈송〉
연꽃과 연잎, 이 거짓조차 없는 구체적 현상을 지금 그대에게 알려 주노라.
(정말 노파심이 대단하시군. 연꽃과 연잎의 어디에 이중성이 있는가? 그대로이지 않은가? 말로 내뱉으면 금세 더럽혀져 버리는구나.)
물 위에 나타났을 때와 물 아래 있을 때가 어떻게 다른가?
(진흙으로 진흙을 씻는 꼴이다. 물 위와 아래를 나누어 보는 건 그래도 낫다. 흐리멍텅하지는 않으니까.)
강북과 강남의 지식인들에게 물어보아라.
(자기 자신은 어디로 갔느냐? 지식인들에게 물어 뭘 얻을 수 있겠느냐? 스스로 고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를 가나 의심 많은 여우뿐이로구나.
(의심 많은 여우는 구덩이를 파서 한꺼번에 묻어 버려라. 스스로 자신을 의심해라. 아직도 모르겠느냐? 지팡이를 내려치면서 말한다. “알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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