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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 공손룡자 (公孫龍子)중국의 고전 /사상과 처세 2019. 3. 26. 12:15
229. 공손룡자 (公孫龍子) / 저작자 공손룡(公孫龍)
BC 320~250년경에 만들어진 책으로, ‘궤변가(詭辯家)’를 대표하지만 사실은 뛰어난 논리적 사고를 보여 주는 명가(名家)의 첫째가는 저서이다. 저자는 성이 공손이고, 이름은 용(龍)이며, 자는 자병(子秉)이다. 『사기』의 「맹자열전(孟子列傳)」, 「평원군열전(平原君列傳)」, 『장자』, 『전국책』, 『회남자(淮南子)』, 『열자』 등에 이름이 보인다. 또한 『사기』의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 공손룡, 자는 자석(子石)이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이는 다른 사람이다
공손룡은 BC 4~BC 3세기 때 사람으로, BC 320~BC 250년경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여러 자료에 따르면, 그는 조(趙)나라 사람으로서 연(燕)나라의 소왕(昭王)과 조나라의 혜문왕(惠文王)에게 군비 축소를 설파하고, 또한 조나라 평원군(平原君)의 식객으로 우대받았으나 신참 추연(鄒衍)이 중용되자 물러났다. 그의 저서 『공손룡자』는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따르면 14권인데, 현재는 6편만이 남아 있다.
그는 상대를 논쟁의 덫에 걸려들게 함으로써 굴복시키는 궤변가로 알려져 있다. 물론 궤변의 측면도 있으나 그보다는 오히려 뜨거운 논쟁 속에서 자칫 안이하게 처리해 버릴 수 있는 논리에 대한 자각을 중시한 인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명가(名家)1)’는 그런 경향을 지닌 사람들에게 주어진 명칭이다. 공손룡 자신이 ‘명가’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이 ‘명가’의 흐름은 유가의 ‘정명(正名)’이라는 사고에서 시작해 순자 또는 후기 묵가의 논리학적 고찰로 발전했다. 공손룡은 아마도 묵가의 영향 아래 활동을 시작한 인물일 것이다.
그러나 『공손룡자』는 일부분만 전해지기 때문에 그의 본래적 사고를 얼마나 담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그 내용도 지극히 난해해 윤곽을 파악하기가 힘들다. 여기에 소개하는 내용은 중국의 현대어 번역에서 차용한 것이다.
1) 중국의 제자백가 중 궤변학파(詭辯學派)를 지칭하는 말. 전국시대에는 변자찰사(辯者察士)로 불렸고, 전한 시대에 사마담(司馬談)이 모든 학파를 분류할 때 6가(家) 중의 하나로 명가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명가라는 명칭은, 이 학파가 명(名, 개념 · 표현 · 명목)과 실(實, 내용 · 실체)의 일치 · 불일치 관계를 중시하여, 세상이 혼란한 것은 명과 실의 불일치에 그 원인이 있으므로 명실합일(名實合一)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서 연유했다.
■ 백마는 말이 아니다(白馬非馬)
주인 : 백마는 말이 아니다.
손님 : 왜 그렇게 말하는가?
주인 : ‘말(馬)’이란 사물을 가리키는 이름이고, ‘백(白)’이란 색깔을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백마는 말이 아니다.
손님 : 그러나 백마를 앞에 두고 말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왜 ‘백’ 자가 붙은 말은 말이 아닌가?
주인 : ‘말을 가지고 싶다’고 했을 때는 검은 말이건 노란 말이건 상관없다. 그러나 ‘백마를 가지고 싶다’고 했을 때는 검은 말이나 노란 말은 해당이 안 된다. 백마가 말이 아닌 까닭은 그것으로 확실히 드러난다.
손님 : 색깔이 있는 말은 말이 아니라는 말인가? 그러나 세상에 색깔 없는 말은 없으니, 그렇다면 말 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주인 : 말에게 색깔이 있기 때문에 백마가 존재한다. 말에 색깔이 없다면, 곧 그냥 ‘말’이라면 ‘백마’를 원할 수가 없다. 한편, ‘백’이 말일 리가 없다. ‘백마’란 ‘백’과 ‘마’가 결합한 것이므로 ‘백마는 말이 아니다’는 것이다. 가령 백마가 말이라고 해 보자. 그렇다면 ‘백마는 노란 말이다’라고 할 수 있겠는가?
손님 : 할 수 없다.
주인 : 노란 말은 백마가 아니다. 그리고 백마는 말이다. 그렇다면 노란 말은 말이 아니다. 왜 노란 말이 말이 아닌데, 백마는 말인가? 또한 여기서 무엇과도 결합할 수 없는 ‘백’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백마’라고 했을 때, 이 ‘백’은 다른 것과 결합된 것으로서 벌써 본래의 ‘백’이 아니다. ‘말’에는 색깔에 대한 아무런 규정이 없다. 그러나 ‘백마’에는 그런 것이 있어서 ‘황마’, ‘흑마’를 배척한다. 곧, 색깔 규정이 없는 ‘말’은 색깔 규정이 있는 ‘백마’와는 다른 존재이다. 그래서 나는 ‘백마는 말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다
주인 : ‘딱딱하고 하얀 돌(堅白石)’은 ‘견(堅)’, ‘백(白)’, ‘석(石)’ 세 글자의 결합이 아니라, 2가지의 결합이다.
손님 : 왜 그런가?
주인 : 눈으로 볼 때, ‘견’은 안 보인다. 곧, 보이는 것은 ‘백’과 ‘석’ 2가지뿐이다. 손으로 만져 보았을 때, ‘백’은 느낄 수 없다. 따라서 만져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견’과 ‘석’ 2가지뿐이다.
손님 : 그러나 ‘백’이 보이므로 ‘백’이 없다고 할 수 없고, ‘견’을 느끼므로 ‘견’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견’, ‘백’, ‘석’ 3가지라고 해야 한다.
주인 : 아니다.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다는 것은 ‘백’과 ‘견’이 없다는 것이다.
손님 : ‘백’이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는다면, 석이 보일 리가 없다. ‘견’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물체를 돌이라 할 수 없다. 3가지는 불가분의 관계인데도 불구하고 당신은 1가지를 숨기려 하고 있다.
주인 : 아니다. 누군가가 숨기는 게 아니다. 저 스스로 숨는 것이다. 눈으로 볼 때 ‘견’이 숨고, 손으로 만질 때는 ‘백’이 숨는다. ‘견’과 ‘백’은 분리되어 있다.
손님 : 손으로 만져서 ‘견’이 아니라면, ‘백석’을 구할 수 없다. ‘견’, ‘백’, ‘석’ 3가지는 절대로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주인 : 석(돌)은 석이다. 석의 ‘견’과 ‘백’은 각기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분리되어 모습을 숨기는 것이다.
손님 : ‘견’이 보이지 않고, ‘백’이 만져지지 않는다고 해서 ‘견’이나 ‘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 둘 다 돌 가운데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왜 분리하는가?
주인 : ‘견’이나 ‘백’은 돌에만 붙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물체에도 붙어 그 성질을 드러낸다. 그러나 돌이나 물체에서 독립된 ‘견’, ‘백’은 파악할 수 없다. 곧, 숨어 있는 것이다. 만일 그런 독립된 ‘견’이나 ‘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석 외의 물체가 공통적으로 ‘견’, ‘백’이 될 리가 없다. 따라서 ‘견’, ‘백’, ‘석’은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 올바른 명칭이 치세의 근본
이 밖에도 『공손룡자』에는 다음 4편이 포함되어 있다.
「적부(跡府)」 공손룡의 사적을 담고 있다.
「지물(指物)」 실체(物)와 명칭(指)의 관계를 분석하고 있다.
「통변(通變)」 ‘일(一)’, ‘이(二)’, ‘좌(左)’, ‘우(右)’ 등을 예로 들어 개념의 동일성과 차이를 논하고, 세상의 잡다한 논의는 배척했다.
「명실(名實)」 올바른 명칭이야말로 치세의 근본이라 주장하고 있다.
또 『열자(列子)』의 「중니편(仲尼篇)」에는 공손룡이 펼친 학설의 극단적인 예로서 ‘목표에는 이를 수 없다. 도달할 수 있으면 그것은 목표가 아니다’, ‘물질은 없어지면 물질이 아니다. 또는 물질은 분할하면 끝이 없다’, ‘그림자는 물질에 붙어 움직인다. 또는 운동을 무한히 분할하면 운동은 존재하지 않는다’와 같은 명제가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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