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이 지켜야 할 사소한 예절 이것저것 / 이덕무(李德懋)옛 이야기/고전 隨筆 2019. 3. 3. 23:08
아이들이 지켜야 할 사소한 예절 이것저것 / 이덕무(李德懋)
어릴 때 육갑(六甲)·구구(九九)·세계(世系)1)·국호(國號) 등 여러 가지 이름과 숫자를 상세하게 기억하지 않으면, 자라서는 더욱 거칠고 어리석게 된다. 심지어 오장(五臟) 이름이며 오곡(五穀) 차례며 경서(經書)와 사서(史書)의 편명도 능히 분별하지 못하는 자까지 있는데, 이는 사람 됨됨이가 부족한 사람이다. …(중략)…
이천 선생(伊川先生)2)은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이 어릴 때는 아직 주견이 없으니, 마땅히 격언(格言)과 지론(至論)을 날마다 그의 앞에 늘어놓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가 비록 깨닫지 못한다 하더라도 실컷 들어서 귀에 배고 마음속을 채우게 되면 오랜 뒤에는 저절로 버릇이 되어 본디부터 있는 것과 같이 된다. 그렇게 되면 비록 다른 말로 유혹하더라도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만일 어릴 때 이렇게 미리 예방하지 않으면 그가 조금 자라게 되면 편벽된 호기심으로 사욕이 안에서 생기고 뭇사람의 꼬드기는 말이 밖에서 유혹하게 될 것이므로, 그때에는 제아무리 순수하려 해도 될 수가 없다.”
어린이들은 거개가 글 읽기 싫어하고 어른이 시키는 일 하기는 수치스럽게 여기면서, 모든 즐거운 잡기(雜技)는 권하지 않아도 잘하고 가르치지 않아도 열심히 한다. …(중략)…
어린아이는 욕심이 많은 법이니 욕심을 낼 때마다 금해야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무릇 남의 의복과 기물 등 좋은 물건을 보고서 부러워하지도 말고 헐뜯지도 말고 훔치지도 말고 빼앗지도 말고 바꾸지도 말고 감추지도 말게 하며, 무릇 자기 물건에 대해서는 인색하지도 말고 자랑하지도 말고 남의 것보다 못하다고 한탄하지도 말게 하라.
형제간에는 아무리 조그마한 물건이라도 고루 나누어 가져야지 혼자만 가져서는 안 된다. …(중략)…
어린이가 담배를 피우는 것은 아름다운 품행이 아니다. 골수를 마취하고 혈기를 마르게 하는 것이며, 독한 진액은 책을 더럽히고 불티는 의복을 태운다. 그리고 담뱃대를 물고 서로 시시덕거리며 경쟁하다가 입술을 찢어지게 하고 이를 부러뜨리며, 심지어는 머리를 다치게 하고 목구멍을 찌르기까지 하는데, 어찌 두렵지 않은가?
혹은 손님과 마주하여 긴 담뱃대를 빼물고 함께 불을 붙이는 어린이도 있는데, 어찌 그리도 오만하기 그지없는가? 또는 어른이 매까지 때리며 엄하게 금하는데도 숨어서 몰래 피우고 끝내 고치지 않는 어린이가 있는가 하면, 혹은 어린이에게 담배 피우기를 권하는 부형까지 있으니, 어찌 그리도 천박한가? 담배가 성행하는 것은 절대로 아름다운 일이 아니다. …(중략)…
밤참은 많이 먹지 말고 먹은 즉시 눕지 말라. 무릇 음식을 먹을 때에는 부스러기를 혀로 핥아서는 안 되고, 국물을 손가락으로 찍어 먹어서도 안 된다. 그리고 밥 먹을 때에는 크게 웃지 말라. 세수하지 않고 조반을 먹는 것을 ‘악착(齷齪)’3)이라 한다. …(중략)…
먼지를 쓸어내는 일은 시간에 구애받지 말며 벼루는 5일에 한 번씩 씻고, 이불, 요, 자리는 3일에 한 번씩 털어라. 책꽂이[書畫籤軸]는 어지러워질 때마다 정리하고, 여름철에는 아침저녁으로 방에서 뛰는 벼룩을 잡으라. …(중략)…
나무에 올라가 매미를 잡지 말고, 지붕에 올라가 새 새끼를 잡지 말며, 이웃집 과일을 따거나 꽃가지를 꺾지도 말라. 그리고 벌레, 새, 풀, 나무 등 모든 생물을 해쳐서는 안 된다. 나의 양심을 파괴하는 일일 뿐 아니라, 떨어지고 자빠지고 쏘이고 찔리고 하는 등 그 해가 한두 가지만이 아니다. 새순을 꺾어 먹거나 봄철 소나무의 진을 빨아먹어서는 안 된다.
얼음과 눈을 함부로 먹거나, 눈을 뭉치고 얼음을 지치는 것은 용모나 자태를 손상할 뿐 아니라 또한 고치기 어려운 병이 나기가 쉽다. 공자는,
“부모는 오직 자식이 아플까 근심한다.” 하였다. …(중략)…
빈천한 집안 아이는 굳이 말할 것도 없고 비록 부귀한 집안 아이도 책을 읽는 여가에 그 근력(筋力)에 따라 때때로 힘든 일을 하면, 후일에 그 보람이 매우 크다. …(하략)
---------------------------------------------------------------------------
1) 세계(世系):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계통.
2) 이천 선생(伊川先生): 중국 북송의 유학자 정이(程頤)(1033-1107). 자는 정숙(正叔). 호는 이천(伊川). 이천백(伊川伯)에 봉해졌으므로 이천선생으로 불리었다. 정호(程顥)의 아우로서 정호와 함께 이정(二程)이라 불린다. 최초로 이기(理氣)의 철학을 내세우고 유교 도덕에 철학적 기초를 부여하였다. 저서에 ?이천선생문집?, ?이정전서(二程全書)?가 있다.
3) 악착(齷齪): 정결하지 못함.
♣해설:
이 글은 “청장관전서” 제31권에 있는 「사소절(士小節)」 제8 동규(童規) 3 사물(事物) 조에 나오는 글이다.
어렸을 때 구구단 따위를 잘 배워두어야 한다는 말이나, 주견이 서기 전에 좋은 말들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말들은 우리가 명심해야 할 일들이라 여겨지며, 남의 것을 탐하지 말고 제 것을 자랑하지 말라는 데에 이르러서는 저절로 고개가 주억거려지기도 한다.
어린이가 담배를 피우는 것에 대해 장황할 정도로 언급한 것을 보면 당시 담배 피우는 일이 매우 성행했음을 알 수가 있기도 하다. 송재소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의 고전칼럼 ‘담배에 대한 단상’을 보면, 한학4대가의 한 사람인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1638)의 담배 예찬을 비롯하여 “연경(煙經)”이라는 저서를 남긴 문무자(文無子) 이옥(李鈺: 1760-1813), 그리고 신하들에게 내린 책문(策問)에서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어 담배의 이로움을 조목조목 개진하면서 담배를 적극 권장한 정조(正祖)까지 있었으니, 어린이의 담배를 금해야 한다는 이덕무의 고언(苦言)은 당시로서는 매우 용기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담배뿐만이 아니라 벌레, 새, 풀, 나무 등 모든 생물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데에 이르면, 그야말로 오늘날의 자연보호론자들에 못지않은 선각자였음을 저절로 깨닫게 되지 않는가?
'옛 이야기 > 고전 隨筆'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송(老松) / 강희안(姜希顔) (0) 2019.03.11 산가서(山家序) / 길재(吉再) (0) 2019.03.10 부녀자들이 지켜야 할 사소한 예절 이것저것 / 이덕무(李德懋) (0) 2019.03.01 선비들이 지켜야 할 사소한 예절 이것저것 / 이덕무(李德懋) (0) 2019.02.23 이상한 관상쟁이의 대답[異相者對] / 이규보(李奎報) (0) 2019.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