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사우재기(四友齋記) / 허균(許筠)
    옛 이야기/고전 隨筆 2019. 1. 22. 10:19

    사우재기(四友齋記) / 허균(許筠)

     

     

    ()를 사우(四友)라고 이름 지은 것은 (중략)벗하는 자가 셋이고, 내가 거기에 끼어들고 보니, 아울러 넷이 된 셈인 때문이다. 세 사람은 누구인가? 오늘날의 선비는 아니고 옛사람이다. 나는 세상 물정을 잘 모르고 거짓되고 미덥지 못하여 세상과는 잘 맞지 않으므로, 요즈음의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꾸짖고 떼 지어 배척하므로, 문전에 찾아오는 이가 없고 밖으로 나가도 더불어 함께할 사람이 없다. (중략)

     

    벗이라는 것은 오륜의 하나, 나만 홀로 갖지 못했으니 어찌 심히 수치스럽지 아니하랴?” (중략)어디로 가서 벗을 구할 것인가? 어쩔 수 없어 옛사람 중에서 사귈 만한 이를 가려서 벗으로 삼을 수밖에 (중략)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진()의 처사 도원량(陶元亮)1)이다. 그는 한가하고 고요하며 평탄하고 소탈하고 국량이 넓어 세상일 따위는 마음에 두지 않고 가난을 편히 여기며 천명을 즐기다가 신선이 되듯 한생을 마쳤으니, 그 맑은 풍모와 빼어난 절개는 아득하여 나로서는 따라잡을 길이 없다. 나는 그를 지극히 사모하지만, 그의 경지에는 미칠 수가 없다.

     

    다음으로는 당나라의 한림(翰林) 이태백(李太白)2)이다. 그는 세상을 초탈하여 고매하고 호탕하여 팔극(八極)3)을 좁다 하고 지체가 높은 귀인들도 개미 보듯 대하며 스스로 산수 간에 방랑하였으니, 내가 따라 가고자 부러워하는 처지이다.

     

    그 다음은 송나라 학사 소자첨(蘇子瞻)4)이다. 그는 허심탄회하여 다른 사람과 경계를 두지 않으므로 현명한 이나 어리석은 이, 귀한이나 천한 이를 가림 없이 모두 그와 더불어 즐기니, 유하혜(柳下惠)5)의 화광동진(和光同塵)6)의 풍모가 있어 나는 이를 본받고자 하지만 이루지 못하고 있는 처지이다.

     

    이 세 분 군자의 문장은 천고에 떨쳐 빛나지만, 내 보기에는 모두가 그들에게는 여사(餘事)7)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취하는 바는 전자(인품)에 있지 후자(문장)에 있지 아니하다. (중략)

     

    나는 이정(李楨)8)에게 명하여 세 군자의 상을 원래의 모습과 똑 같이 그리게 하고, 이 초상에 찬()을 짓고 그것을 석봉(石峯)9)으로 하여금 해서(楷書)로 쓰게 하였다. 매번 머무는 곳마다 반드시 좌석 한쪽에 걸어놓으니 세 군자가 엄연히 서로 마주보고 사물에 대하여 그 경중 따위를 품평(品評)하며 마치 함께 웃고 얘기하는 듯하여 (중략)그 생활이 괴로운 것을 알지 못하였다. (중략)

     

    , 나는 진실로 글을 잘하지 못하는 자라, 세 분 군자의 여사(餘事)에도 능하지 못하지만 성격마저 자질구레한 예법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망령되고 어리석어 감히 그러한 인물이 되기를 바라지도 못한다. 오직 그분들을 존경하고 사모하여 벗으로 삼고자 하는 정성만은 신령마저도 감동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하겠다. 그러므로 벼슬에 나가는 일과 그 거취는 은연중에 그분들과 합치되었다. 도연명이 팽택(彭澤)의 현령(縣令)이 되어 80일 만에 관직을 벗었는데, 나는 세 번이나 이천 석의 자리10)에 임명되었으나 임기를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배척받아 쫓겨났다. (중략)

     

    이태백은 심양(潯陽)과 야랑(夜郞)으로 귀양 가고 소동파는 대옥(臺獄)과 황강(黃岡)으로 귀양 갔었다. (중략)나는 죄를 지어 형틀에 묶이고 볼기 맞는 고문을 받은 뒤 남쪽으로 옮겨지니, 아마도 조물주가 희롱하여 그 곤궁한 재액은 같이 맛보게 하면서도, 부여된 재주와 성품만은 갑자기 바꿀 수 없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하늘의 복을 입어, 혹시라도 전야로 돌아가도록 허락된다면, (중략)내가 사는 집은 한적하고 외져서 아무도 찾아오는 이가 없으며, 오동나무가 뜰에 그늘을 드리우고 대나무와 들매화가 집 뒤에 총총히 줄지어 심어져 있으니, 그 그윽하고 고요함을 즐기면서 북쪽 창에다 세 군자의 초상을 펴놓고 분향하면서 읍을 한다. 그래서 마침내 편액을 사우재(四友齋)라 하고 인하여 그 연유를 위와 같이 기록해 둔다. (하략)

     

    -----------------------------------------------------------------------

    1) 도원량(陶元亮): 중국 동진의 시인(365-427). 이름은 잠(). 호는 오류선생(五柳先生). ()가 연명(淵明)이라서 흔히 도연명(陶淵明)이라 하는데, 원량(元亮)은 그의 또 다른 자()이다. 405년에 팽택현(彭澤縣)의 현령이 되었으나, 80여 일 뒤에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남기고 관직에서 물러나 귀향하였다. 자연을 노래한 시가 많으며, 당나라 이후 육조(六朝) 최고의 시인이라 불린다. 시 외의 산문 작품에 오류선생전, 도화원기(桃花源記)등이 있다.

    2) 이태백(李太白): 중국 당나라의 시인 이백(李白: 701-762). 그의 자가 태백(太白)이다.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 젊어서 여러 나라에 만유(漫遊)하고, 뒤에 출사(出仕)하였으나 안녹산(安祿山)의 난으로 유배되는 등 불우한 만년을 보냈다. 칠언절구에 특히 뛰어났으며, 이별과 자연을 제재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현종과 양귀비의 모란연(牧丹宴)에서 취중에 청평조(淸平調)3수를 지은 이야기가 유명하다. 시성(詩聖) 두보(杜甫)에 대하여 시선(詩仙)으로 칭하여진다. 시문집에 ?이태백시집? 30권이 있다.

    3) 팔극(八極): 온 세상.

    4) 소자첨(蘇子瞻): ‘자첨(子瞻)’은 소식(蘇軾)의 자(). 중국 북송의 문인으로 이름은 소식(蘇軾: 1036-1101). 호가 동파거사(東坡居士)라서 흔히들 소동파(蘇東坡)라 칭한다.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구법파(舊法派)의 대표자이며, 서화에도 능하였다. 작품에 적벽부(赤壁賦), 저서에 ?동파전집(東坡全集)? 등이 있다.

    5) 유하혜(柳下惠): 춘추 시대 노()나라의 현자(賢者)로서, 성은 전(), 이름은 획()이다. 식읍(食邑)이 유하(柳下)이고 시호(諡號)가 혜()이다. 자는 금() 혹은 계()이고 유하(柳下)에서 살았으므로 이것이 호가 되었으며, 문인들이 혜()라는 시호를 올렸으므로 유하혜라고 했다. 노나라에서 형옥(刑獄)의 일을 관장하는 사사(士師) 벼슬을 살았다. 능란한 변설과 밝은 예절로 이름이 높아 공자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더러운 임금 섬기기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아니하였고, 작은 벼슬도 사양하지 아니하였다. 화광동진(和光同塵)했던 것이다. 대도(大盜) 도척(盜跖)은 그의 동생이다.

    6) 화광동진(和光同塵): 빛을 감추고 티끌 속에 섞여 있다는 뜻으로 자기의 뛰어난 지덕(智德)을 나타내지 않고 세속을 따름을 이르는 말. (?도덕경(道德經)?)

    7) 여사(餘事): 별로 중요시하지 않은 취미 정도의 일.

    8) 이정(李楨): 조선 선조 때의 화가(1578-1607). 자는 공간(公幹). 호는 나옹(懶翁)나와(懶窩)나재(懶齋)설악(雪嶽). 13세 때 장안사의 벽화를 그렸으며, 산수화와 인물화를 잘 그렸다. 산수도(山水圖), 한강 조주도(寒江釣舟圖)등이 있다.

    9) 석봉(石峯): 조선 선조 때의 명필가. 이름은 한호(韓濩:1543-1605). 자는 경홍(景洪). 호가 석봉(石峯)인데, 청사(淸沙)라고도 했다. 추사 김정희와 함께 조선 서예계의 쌍벽으로, ?석봉천자문(石峯千字文)?, ?석봉서법(石峯書法)? 등이 전한다.

    10) 이천 석의 자리: 태수(太守)를 가리킨다.

     

     

     

     

     

    해설

    이글은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6권에 실린 기()이다.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작자인 지은이 허균(許筠:1569-1618)의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성소(惺所학산(鶴山백월거사(白月居士) 등이며 본관은 양천(陽川)이다. 초당두부의 원조로 알려진 허엽(許曄)의 막내아들로 벼슬길에 오른 후 반대자의 탄핵을 받아 파면, 유배를 당하는 일이 빈번했다. 중국 사신의 일행으로 중국에 가서 문명을 날리기도 했다. 예조참의·좌찬성 등을 역임했으나, 스승인 서출(庶出)과 어울리며 국가의 변란을 기도했다는 죄목으로 참수형을 당했다. 때문에 그의 저작들은 모두 불태워지고 ?성수시화 (惺叟詩話)?, ?학산초담(鶴山樵談)?,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등 일부만이 남아 전한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