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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좌(上座)가 사승(師僧)을 속임 / 성현(成俔)옛 이야기/고전 隨筆 2019. 1. 19. 21:16
상좌(上座)가 사승(師僧)을 속임 / 성현(成俔)
상좌(上座)가 사승(師僧)을 속이는 것은 옛날부터 흔히 있는 일이었다.
옛날에 어떤 상좌가 있었는데 그가 사승에게 말하였다.
“까치가 은수저를 입에 물고 문 앞에 있는 가시나무에 올라 앉아 있습니다.”
중이 이를 믿고 나무를 타고 올라가니 상좌가 크게 소리를 질러댔다.
“우리 스승이 까치새끼를 잡아 구워 먹으려 한다!”
중이 어쩔 줄을 몰라 내려오다가 가시에 찔려 온몸에 상처를 입고 노하여 상좌의 종아리를 때렸더니, 상좌가 밤중에 중이 드나드는 문 위에 큰 솥을 매달아 놓고는 큰 소리로, “불이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중이 놀라서 급히 일어나 뛰어나오다가 솥에 머리를 부딪혀서 까무러쳐 땅에 엎어졌다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나와 보니 불은 없었다. 중이 노하여 꾸짖으니 상좌가 말했다.
“먼 산에 불이 났기에 알린 것뿐입니다.”
이에 중이 말했다.
“이제부터는 다만 가까운 데 불만 알리고 먼 데서 난 불은 알릴 필요가 없느니라.”
또, 어떤 상좌가 사승을 속여 말했다.
“우리 집 이웃에 과부가 하나 있는데 나이가 젊은데다가 예쁘장합니다. 항상 내게 말하기를, ‘절의 정원에 있는 감은 너의 스승이 혼자 먹느냐?’ 하기에, 제가 대답했습니다. ‘스승이 어찌 혼자만 먹겠습니까? 매양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그랬더니 그 과부는, ‘네가 내 말을 하고 좀 얻어 오너라. 나도 감이 먹고 싶다.’ 했습니다.”
중이 말했다.
“만약 그렇다면 네가 따서 갖다 주어라.”
상좌가 모두 따다가 제 부모에게 갖다 주고는 중에게 와서 말했다.
“여자가 기뻐하며 맛있게 먹고는 다시 말하기를, ‘옥당(玉堂)에 차려놓은 흰 떡은 너의 스승이 혼자 먹느냐?’ 하기에, 제가, ‘어찌 스승이 혼자 먹겠습니까? 매양 사람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하였더니, 과부가 말했습니다. ‘네가 내 말을 하고 좀 얻어 오너라. 나도 먹고 싶다.’ 했습니다.”
중이 말했다.
“만약 그렇다면 네가 거두어서 갖다 주어라.”
이에 상좌가 모두 거두어 제 부모에게 주고는 중에게 와서 말했다.
“과부가 매우 기뻐하며 맛나게 먹고 나서 하는 말이, ‘무엇으로써 네 스승의 은혜를 보답하여야 하겠느냐?’ 하기에 ‘제가 우리 스승이 서로 만나보고 싶어 합니다.’ 하니, 과부가 흔쾌히 허락하며 말하기를, ‘우리 집에는 친척과 종들이 많으니 스승이 오시는 것은 불가하고 내가 몸을 빼어 나가서 절에 가서 한 번 뵈옵겠다.’ 하므로, 제가 아무 날로 기약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중은 기뻐 날뛰기를 마지아니하였다. 그 날짜가 되자 상좌를 보내어 가서 맞아 오게 하였더니, 상좌가 과부에게 가서 말했다.
“우리 스승이 폐(肺)를 앓는데 의사의 말이 부인의 신발을 따뜻하게 하여 배를 다림질하면 낫는다 하니 한 짝만 얻어가고자 합니다.”
과부가 드디어 주었다. 상좌가 돌아와서 문 뒤에 숨어서 엿보니 중이 깨끗이 선실(禪室)을 쓸고는 자리에다가는 요를 펴놓고 혼자 중얼거려 웃으며 말한다.
“나는 여기에 앉고 여자는 저기에 앉게 하고, 내가 밥을 권하고 여자가 먹으면, 여자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가서 서로 함께 즐길 수가 있겠지.”
상좌가 들어가서 신을 중 앞에 던지면서 말했다.
“모든 일이 끝장났습니다. 내가 과부를 청하여 문까지 이르렀다가 스승의 하는 소행을 보고 크게 노하여 하는 말이, ‘네가 나를 속였구나. 네 스승은 미친 사람이구나.’ 하고, 달아나므로 내가 쫓아갔으나 따르지 못하고, 다만 신 한 짝만 주워가지고 왔습니다.”
중이 머리를 숙이고 후회하며 말하였다.
“네가 내 입을 쳐라.”
이에 상좌가 목침(木枕)으로 힘껏 쳐서 이빨이 모두 부러졌다.
또 어떤 중이 과부를 꾀어 장가들러 가는 날 저녁에 상좌가 속여 말했다.
“가루 양념과 생콩을 물에 타서 마시면 양기(陽氣)가 매우 좋아진답니다.”
중이 믿고서 그대로 하여 마시고 과붓집에 갔더니, 배가 더부룩이 불러 간신히 기어서 들어가 휘장을 내리고 발로 곡도(穀道)1)를 괴고 앉아 꼼짝하지 못하였다. 조금 있다가 과부가 들어왔으나 중이 꿇어앉은 채 움직이지를 못하였다. 과부가 말했다.
“어찌 이처럼 목우(木偶)2) 모양을 하고 있습니까?”
하며 손으로 잡아끄니, 중이 땅에 엎어지면서 좌르륵 설사를 하여 구린내가 방안 가득 찼으므로 과부는 매를 때려 내쫓았다.…(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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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곡도(穀道): 대장과 항문.
2) 목우(木偶): 나무 인형.
♣해설
지은이 성현(成俔)에 대해서는 ‘어우동(於于同)’에서 소개했다. 이 글은 ?용재총화(慵齋叢話)? 제5권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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