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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씨걸식지변(佛氏乞食之辨) 정도전(鄭道傳)
    옛 이야기/고전 隨筆 2018. 12. 27. 15:03


    불씨걸식지변(佛氏乞食之辨) 정도전(鄭道傳)

     

     

    사람에게 먹는 것처럼 큰일은 없다. 하루라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으며 또한 하루라도

    구차하게 먹을 수도 없다. 먹지 않으면 생명에 해롭고, 구차하게 먹으면 의리에 해롭다.

    홍범(洪範)1) 팔정(八政)2)에 식화(食貨)3)가 먼저이고, 백성에게 5()4)를 중하게 여겼는데,

    오직 식()이 첫째를 차지하였으며, 자공(子貢)5)이 정사를 물으니 공자도

    먹는 것부터 족하게 하라.” 하였다.

     

    이것은 옛 성인이 백성이 살아가는 데는 하루라도 식()이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모두

    이에 정신을 쏟아서, 곡식 농사[稼穡]를 가르치고, ()과 세()를 제정하며, 나라에는

    수요(需要)를 맞추고, 제사·빈객을 대함에는 준비를 철저히 하며, 환과(鰥寡)6) 노유(老幼)에는

    부양을 중히 하여 헐벗고 굶주리는 탄식이 없게 하였으니, 성인이 백성을 생각함이

    이처럼 원대(遠大)하였다.

     

    위로 천자와 공경대부는 백성을 다스림으로써 먹고, 아래로 농공 상고(商賈)7)는 힘써

    근로함으로써 먹고, 중간인 선비는 집안에서 효도하고 집밖에서 공손하여, 선왕의 도를 지켜

    후학을 가르침으로써 먹고 사니, 이는 옛 성인이 하루라도 구차하게 먹고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위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각각 직분이 있어, 그 직분대로 하늘의 양육을

    받았으니, 그 백성을 보호함이 지극한 때문이었다.

    이 반열에 들지 않은 자는 간악한 백성이라, 왕의 법에 반드시 베어 죽이고 용서하지 않는다.

     

    금강경(金剛經)8)에 이르기를,

    그때 세존(世尊)은 식사 때가 되면 옷을 입고 바리때9)를 가지고 사위성(舍衛城)10)에 들어가

    거처하고 그 성중에서 빌어먹었다.” 하였다.

    대개 석가모니(釋迦牟尼)란 자는 남녀가 함께 사는 것을 불의(不義)라 하여, 인륜을 무시하고

    또 농사일을 버리며, 끊임없이 태어나는[生生] 사물의 근본을 끊고 그의 도로써 천하 풍속을

    바꾸려 하고 있으니, 진실로 그의 도와 같이 한다면 천하에 사람이 존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과연 그렇다면, 동냥 줄 사람인들 누가 있겠으며, 천하에 먹을 것이 없어져 버리고

    말 것이니, 과연 빌어먹을 수나 있겠는가?

     

    석가모니란 자는 서역왕(西域王)의 아들로서 아비의 작위를 불의(不義)라 하고 뛰쳐나가니,

    백성을 다스리는 자가 아니며, 남자가 밭 갈고 여자가 베 짜는 것을 불의라 하여 내버리니,

    부지런히 일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군신·부자·부부의 인륜도 없으니,

    이는 선왕의 도를 지키는 자도 아니다. 따라서 이들은 비록 하루에 한 낟알을 먹더라도

    그것은 모두 구차히 먹는 것이다. 그의 도와 같이 한다면, 기실 지렁이와 같이 먹지 않아야만

    옳을 것이다. 빌어먹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자력(自力)으로 먹을 수 있으면 불의가

    되고, 빌어먹으면 의가 되는지? 불씨의 말이 옳지도 않고 이치에도 맞지 않음은

    책을 펴보면 문득 알게 되므로, 이에 논변(論辨)하는 것이다.

     

    불씨(佛氏)가 처음에는 걸식하여 먹은 것에 불과하였다. 그런데 그마저도 군자가 불의라

    꾸짖어 조금도 용서하지 않았건만, 지금은 오히려 화려한 집에서 풍족한 의식으로 임금의

    봉양과 같이 편안히 앉아서 먹고, 전원(田園)과 노비를 넉넉하게 두어 문부(文簿)

    공문서보다 더하며 분주하게 공급함이 공무(公務)보다 준엄하니, 그 도에 이른바 번뇌(煩惱)

    끊고 속세를 벗어나 청정(淸淨)하여 욕심이 적다고 하는 것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가 있는가?

     

    앉아서 의식을 허비할 뿐만 아니라, 좋은 일이라고 거짓 칭탁하여 여러 가지 공양으로 반찬과

    밥이 낭자하고, 무늬 있는 비단을 찢어 당간(幢竿)11)과 번기(幡旗)12)를 장엄하게 하니,

    대개 평민 10()의 재산을 하루아침에 허비하는 일이다. , 의리를 버리고 이미 인륜을

    13)먹는 악인[惡賊]이 되어, 하늘이 낸 만물을 해쳐 휩쓸어버리니 참으로 천지의 큰 좀이다.

     

    장자(張子)14)는 말하기를,

    위에는 예()로써 그 거짓을 막는 사람이 없고, 아래에는 학문으로써 그 가려진 것을

    열어줄 이가 없으니, 혼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정일(精一)15)하여 스스로를 믿고

    남보다 뛰어난 재주 있는 이가 아니고서야 어찌 그 사이에 똑바로 서서 더불어

    시비를 견주며, 득실을 따지겠는가?” 하였다.

     

    , 선현[先正]이 깊이 탄식한 까닭이 어찌 우연한 일이겠는가, 어찌 우연한 일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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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홍범(洪範): 서경(書經)의 편 이름. ()나라 기자(箕子)가 주() 무왕(武王)에게 정치에 대한 기본 원칙을 제시하였다고 전해지는 것이다.

    2) 팔정(八政): 전항(前項)의 홍범 가운데서 셋째로 제시한 것인데, 농업 문제[], 경제 문제[], 제사[] 등 여덟 가지의 항목을 나열한 것이다.

    3) 식화(食貨): 음식물과 재화(財貨)를 아울러 이르는 말로서 경제(經濟)’를 뜻한다.

    4) 오교(五敎): 오상(五常)의 교를 이름이니, 부자군신부부장유붕우의 가르침이다.

    5) 자공(子貢): 중국 춘추 시대 위나라의 유학자(B.C.520?-B.C.456?). 성은 단목(端木), 이름은 사(). 공문십철(孔門十哲)의 한 사람으로 언어에 뛰어났으며, 노나라와 위나라의 재상(宰相)을 지냈다. 공자를 경제적으로 많이 도와주었다.

    6) 환과(鰥寡): 늙어서 아내 없는 사람(홀아비)과 젊어서 남편 없는 사람(과부).

    7) 상고(商賈): 장수, 곧 장사하는 사람.

    8) 금강경(金剛經):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의 약어. 지혜의 정체(正諦)를 금강(다이아몬드)의 견실함에 비유하여 해설한 불경으로 우리나라 조계종의 기본 경전이다.

    9) 바리때: 절에서 쓰는 승려의 공양 그릇(밥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들어 안팎에 칠을 하여 사용한다. 바리발다라발우(鉢盂)발우대응기(應器)응량기.

    10) 사위성(舍衛城): ‘사위는 범어 슈라바스티(Sravasti)의 음역(音譯)으로, 지금 네팔에 가까운 북부 인도 지방의 지명으로, ‘사위성은 석가모니 재세 당시 교살라국(憍薩羅國)의 수도였다. 석가모니가 가장 많이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하다. 남쪽 1마일 되는 곳에 석가모니가 설법하던 기원정사(祈園精舍)가 있다.

    11) 당간(幢竿)=짐대: ()을 달아 세우는 대. ‘은 법회 따위의 의식이 있을 때에, 절의 문 앞에 세우는 기. 장대 끝에 용 머리를 만들고, 깃발에 불화(佛畫)를 그려 불보살의 위엄을 나타내는 장식 도구이다.

    12) 번기(幡旗)=(): 부처와 보살의 성덕(盛德)을 나타내는 깃발. 꼭대기에 종이나 비단 따위를 가늘게 오려서 단다.

    13) =벽어(壁魚): 우리나라에만 분포하는 의류와 종이의 해충.

    14) 장자(張子): 송나라 때 학자인 장재(張載). 자는 자후(子厚), 호는 횡거(橫渠).

    15) 정일(精一)하다: 정세(精細: 정밀하고 자세함)하고 한결같다.

     

     

     

     

    해설

     

     

    ?韓國文學槪論?(한국문학개론편찬위원회 편, 혜진서관, 1991.)에서는 ?동문선(東文選)?중의

    ()’분별을 뜻하는 말로, 옳고 그름과 참과 거짓을 가리기 위한 목적으로 쓴 글,

    크게는 논() 속에 포함된다고 하고, ‘에 대해서는, “오늘날 논설과 같은 성격의 글

    이라고 하면서, 이를 비평수필’ (pp.542-545) 로 본다고 하였다.

     

    지은이 정도전(鄭道傳: 1337[1342?]-1398)은 여말, 선초의 대학자이며 정치가이다.

    자는 종지(宗之), 호는 삼봉(三峰)이다. 조선 개국공신인 그는, 조선의 건국에서

    ()는 이성계가 담당했으나 문()은 자신이 담당했다고 하는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유학 중심의 치국 이념을 정립했다.

    불씨잡변(佛氏雜辨)도 그러한 사고의 일환으로 볼 수가 있다.

    여기에는 총 19편의 변()이 들어 있는데, 철저한 배불(排佛) 의식이 드러난다.

    불씨걸식지변(佛氏乞食之辨)도 그 중의 하나이다. 유교는 내세관이 없어 종교로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신랄한 비판을 한 것을 보면, 서로 다른 종교끼리의 적대감이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글이라 여겨져서 이에 소개하는 바이다.

    그는 후에 왕자의 난 때 태종 이방원(李芳遠)에게 살해되었다.

    저서에는 ?삼봉집(三峰集)?,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불씨잡변(佛氏雜辨)?등이 있다.

    이 글은 ?삼봉집(三峰集)? ?동문선(東文選)?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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