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arney Kessel 은 모던 재즈 기타의 흐름을
주도한 뮤지션중 한 명으로 손꼽힙니다.
그는 기타를 독습으로 마스터했는데
스윙스타일의 깔끔한 연주들은 언제들어도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줍니다
모던 재즈 기타의 원형을 확립한 찰리 크리스찬(Charlie Christian) 이후
가장 대표적인 비밥 재즈 기타리스트로 꼽히는 Barney Kessel은
1950년대 초반, 스윙을 기초로 한
비밥 재즈 기타의 개척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데뷔한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케셀의 연주를 두 단어로 표현한다면,
기타 음에 대한 '명료함'과 음악에 대한 '열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명료함은 절제된 간결함과 리드미컬한 연주에서,
열정은 한 곳에 머물지 않는 그의 음악적 발자취에서 찾아 볼 수 있지요
1923년 10월 17일 오클라호마 머스코지(Muskogee)에서 태어난 케셀은
십대시절부터 블루스와 재즈에 심취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독학으로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14세 때, 전원이 흑인으로 구성된 밴드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했고, 같은 고향 출신의 찰리 크리스찬을 만나면서
그의 활동무대는 서서히 메인 필드로 옮겨가게 된다.
크리스찬은 케슬에게 항상 재즈 기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윙'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케셀의 연주에서 리드미컬한 멜로디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점 때문이다.
커셀이'50년대 들어서 Billie Holiday와 Frank Sinatra의 앨범에 참여한 것은
그가 재즈 기타리스트로서 최고의 위치에 다다랐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또한 '52년에는 Oscar Peterson Trio의 일원으로서
당시 '머큐리(Mercury)' 레이블의 첫 번째 히트곡이자,
지금도 오스카 피터슨의 대표 곡으로 꼽히는 'Tenderly'를 녹음했다.
'53년 케셀은 웨스트 코스트 재즈의 메카라 할 수 있는
Contemporary 레이블과 계약을 맺으면서
리더로서 자신의 앨범들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다운비트(Downbeat) 독자가 선정하는 기타리스트 부문에서
10년 간-'63년 Wes Montgomery에게 내놓기 전까지- 정상에 오르게된다.
이 시기(1953-61, 69년)가 바니 케셀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데,
당시 컨템프러리 레이블에서 내놓은 대부분의 앨범들은
모두가 손색없는 재즈 기타의 교과서들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Lester Koenig의 지금 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정갈하면서 풍부한 음량을 담아낸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은 분명 거부하기 힘든 매력이다.
바니 케슬의 기타는 단순한 듯하지만
들을수록 많은 언어가 내재되어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스윙과 블루스뿐만 아니라 펑키함과 강렬함 록적인 프레이즈,
그리고 한음 한음 녹아 내리는 인간적인 울림은 거대하기보다는
개인적인 소박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성향은 그에게 음악적인 면과
상업적인 면 모두에서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무엇보다 연주에 있어서 인간적이라는 것은..
글쎄요.. 분명한 것은 살아있는 존재의 본질이
음악보다 더 위대하다는 겁니다.
음악은 단지 그러한 본질의
표현방식 중 하나이니까요."
그의 음악을 표현하는 그의 음악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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