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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 國手 정운창 -(3)
    옛 이야기/조선의 뒷마당 2019. 5. 27. 00:43



    
    ■ 당대 고수 김종귀 꺾다 
    
    그러나 당대에는 김종귀가 최고로 알려져 있었다. 
    그와의 승부가 최고를 가르는 분수령이었다. 하지만 정운창은 그와 대국하지 못하였다. 
    김종귀는 우연한 일로 평양에 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정운창이 한창 김종귀와 자웅을 겨뤄보고 싶어하던 무렵에 
    평양감사가 된 한 고관이 김종귀를 데려가 휘하에 두었기 때문이다. 
    정운창은 반드시 그와 자웅을 겨루려 별렀지만, 
    곧 돌아오리라고 생각했던 김종귀는 오지 않았다. 
    김종귀는 이때 평양에 머물면서 일부러 서울로 돌아올 날짜를 늦추었다. 
    그가 정운창의 소식을 접하고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자웅을 겨룰 사람이 없어서 무료함을 견디지 못한 정운창은 마침내 평양까지 찾아가 
    김종귀와 대국하고자 했다. 평양에 이르른 정운창은 김종귀를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감영(監營)의 포정문(布政門)에서 사흘을 머물렀으나 감영의 아전은 
    이 시골뜨기를 들여보내지 않았다. 사흘을 기다리다 지친 정운창은 탄식했다. 
    [재능을 소유한 선비가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불운이 그래 이런 정도란 말인가? 
    내 차마 걸음을 되돌릴 수가 없구나! 
    내가 떠나온 고향 땅에서 평양까지의 거리가 거의 수천 리다. 
    고갯길의 험준함과 나그네의 고생도 마다하지 않고 어렵사리 여기까지 이르른 이유는 한 가지 
    기예를 가지고 다른 사람과 자웅을 겨뤄서 잠깐 사이의 상쾌한 기분을 맛보자는 심사이다. 
    그러나 끝끝내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간다면 어찌 기구하지 않으랴.] 
    ‘재능을 소유한 선비가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불운’을 
    말하는 대목엔 비장미가 감돈다. 고수와 겨루는 목적을 부나 명예가 아니라 
    잠깐 사이의 즐거움을 얻기 위함이라 했으니 그의 강한 승부욕을 점칠 수 있다. 
    정운창은 포기하지 않고 또 사흘 동안 감영 문밖에서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 사연을 들은 감사가 뭔가 낌새를 채고 김종귀에게 “이 자는 대체 무엇 하는 사람일까. 
    특이한 점이 있는 것이 분명해. 자네는 물러나서 내 하명을 기다리게”라고 한 뒤 
    사람을 시켜 정운창을 들어오라고 했다. 
    정운창과 몇 마디 주고받은 다음 감사가 “내가 듣기에 자네는 남쪽 지방에 산다고 하던데 
    이제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 이곳까지 와 종귀를 한번 보려는 것을 보니 
    종귀와 구면식인가 보구만”했더니 정운창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그제서야 감사는 김종귀와 대국하려는 그의 속내를 알아차렸다. 
    감사는 이때 재미있는 일을 꾸몄다. 감사는 말을 이었다. 
    “정녕 그렇다면 자네가 김종귀를 만나려는 이유를 내 짐작하겠네. 
    그러나 그 김종귀가 지금 여기에 없으니 어쩐다? 그래도 그만두지 않겠다면 이곳에는 
    김종귀보다는 약간 모자라지만 그와 더불어 상하를 다툴 자가 있으니 
    시험삼아 먼저 두는 것이 그래 어떻겠는가?” 이에 정운창은 
    “황공합니다. 삼가 말씀을 받들겠습니다”라고 대꾸했다. 감사는 김종귀를 그 자리로 불렀다. 
    “저 사람이 김종귀와 더불어 기예를 다투고 싶어하지만 지금 그가 없으니 어찌하면 좋겠는가? 
    자네가 그를 대신하여 바둑을 두게나!” 
    감사가 진짜 김종귀에게 눈을 꿈쩍 하니 그가 거짓으로 
    “황공합니다. 삼가 말씀을 받들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드디어 바둑시합. 감사의 좌우에서 시종하는 자들이 바둑판을 가져다 진설하고 바둑알을 내어왔다. 
    정운창과 김종귀는 진을 치고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알 두 알 희고 검은 바둑알이 판에 오르면서 상황이 불리하게 전개되자 
    김종귀는 운신이 자유롭지 않았다. 반면 정운창은 처음과 다름없이 여유만만했다. 
    옆에서 숨죽이고 보고 있던 감사는 판세를 읽고서 성을 냈다. 
    “지난날에는 장기 두는 종놈들과 대국하며 곧잘 손뼉을 치고 기세를 올리며 
    온 나라 안에 짝할 이가 없다고 큰소리치더니만, 
    오늘에는 실의한 사람모양 움츠러들어 손놀림이 시원스럽지 않으니 무슨 까닭이냐?” 
    그렇게 바둑을 둔 지 한참을 지나자 김종귀는 갈수록 두려움이 밀려와 벌벌 떨며 
    도무지 어떻게 두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정운창의 승리가 확실해 보였다. 
    그때껏 긴장해서 바둑을 두던 정운창도 앞에 있는 자를 대수롭잖게 여기고 
    “조금 쉬었다 할까요?”하고 여유를 부리며 
    “댁은 김종귀와 비교해서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또 지금 종귀는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자 김종귀는 운창의 물음에 답하지 못한 채 
    얼굴만 벌겋게 달아올랐다. 
    김종귀의 완패였다. 조선 제일의 기사인 김종귀가 
    시골뜨기 기사에게 참담하게 완패를 당하는 순간이다. 
    조선 최고의 기사를 휘하에 두었다고 자부한 감사는 더욱 더 분통을 터트리고 
    성을 내었지만 정운창이 이긴 사실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결국 감사는 대국한 자가 김종귀라는 사실을 밝히고 백금 20냥을 꺼내 
    운창에게 상금으로 주었다. 조선의 바둑계는 새로운 영웅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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