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는 현재 약 286개의 성,姓 (2000년 통계)이 있으며, 본(本)을 필수 요소로 한다.
한국의 성씨는 삼국 시대 이후 중국의 성씨 제도를 차용한 것이 많고,
고려 시대부터 족보를 만들고 귀족 계급의 성씨 제도가 확립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성씨는 대부분 한 음절로 이루어져 있으나, 두 음절로 된 복성(複姓)도 있다.
성씨의 종류가 4천개가 넘는 중국이나 성씨가 10만이 넘는 일본과 비교할 때
한국에서는 성씨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고, 김(金)씨, 이(李)씨, 박(朴)씨인 사람이
전체 인구의 약 45%를 차지하여 특정 성씨가 차지하는 인구 비중이 매우 높다
■ 황주최씨(黃州崔氏)
■ 시조 : 최남혁(崔南赫
시조 최남혁(崔南赫)의 상계는 전주최씨에서 분관한 계통인데 문헌이 없으 므로
분파계대를 고증할 길이 없다. 그는 조선개국 초기에 벼슬이 좌상(左相)이었으나
직간하다가 황주목사로 좌천되고 그후 평북 의주로 유 배되어 그곳에서 정착하였다.
그래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前 임지를 추모하여 본관을 황주라 하였다.
- 묘소는 의주군 송장면 금광동에 있다.
●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최중식(崔重湜, 1772 壬辰生) : 문과(文科) 순조26년(1826) 별시2 을과(乙科)
최대립(崔大立, 1603 癸卯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최의수(崔義壽, 1597 丁酉生) : 무과(武科) 인조14년(1636) 별시 병과(丙科)
최중일(崔仲一, 1614 甲寅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최숭(崔崇, 1546 丙午生) : 무과(武科) 선조17년(1584) 별시 병과(丙科)
최발립(崔發立, 1630 庚午生) : 무과(武科) 현종3년(1662) 증광시 을과(乙科)
최응오(崔應五, 1814 甲戌生) : 사마시(司馬試) 헌종6년(1840)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7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문과 1명, 무과 5명, 사마시 1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항렬자
17世-중(重) 18世-석(碩) 응(膺) 19世-정(廷) 원(元) 20世-재(載) 기(基) 21世-
봉(鳳) 현(鉉)- 22世-종(鍾) 준(俊) 23世-태(泰) 24世- 25世- 26世-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18世孫은 17代孫)
● 본관 연혁
황주(黃州)는 황해도 중앙 북단에 위치하는 황주군 일대의 지명이다.
고구려 때는 동홀(冬忽) 또는 동어홀(冬於忽)이라 불렀고,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취성군(取城郡)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건국 전 태봉 무렵에
황주(黃州)로 바꾸었고 983년(성종 2) 황주목이 되었고, 993년(성종 12)에는 절도사
(節度使)를 두었으며 천덕군(天德郡)이라 부르며 관내도(關內道) 관할로 두었다.
1012년(현종 3) 안무사(安撫使)를 두었다가 다시 목으로 개편하여 서해도(西海道)에
예속하였고 1217년(고종 4)에 지고령군(知固寧郡)으로 강등되었다.
1269년(원종 10) 원(元)나라의 동녕부(東寧府)에 속하였고, 1290년(충렬왕 6)
서북면으로 관을 옮겼으며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황주목(黃州牧)으로
환원되면서 서해도에 이관되었다. 조선 세조 때에 진(鎭)을 두어
2도호부, 6군, 5현 등을 관할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평양부 황주군이 되었다가,
1896년 황해도 황주군으로 개편되었다. 1937년 황주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황주최씨는
1985년에는 총 357가구 1,324명,
2000년에는 총 446가구 1,395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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