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시열의 진퇴양난
독대라는 파격적 대우도 송시열을 북벌론자로 만들 수는 없었다.
하지만 송시열로서도 고민은 있었다. 효종이 이토록 북벌을 호소하는데
정권을 위임받은 신하로서 북벌 자체를 반대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효종이 그에게 중대한 정치적 양보를 한 이유도 여기 있었다.
기해독대 때 효종은 심지어, "조만간 경에게 큰 임무를 맡기고 양전
(이조판서와 병조판서)을 겸직하게 하려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파격적인 대우에는 조건이 있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북벌을 수행하라는 조건이었다.
송시열이 북벌 자체를 반대한다면 효종은 어떤 위기가 닥치더라도 미련 없이
그를 버릴 것이다. 송시열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실권을 계속 유지하려면
북벌을 소리 높이 드높여야 했다. 하지만 송시열의 속마음에 북벌은 먼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었다. 송시열이 영의정 정태화를 찾은 것은
이런 모순된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송시열은 며칠 후 실제 군사를 이끌고 북벌에 나설 것처럼 호언장담했다.
한참 호언하더니 말미에 지나가는 말처럼 정태화의 의견을 물었다. 정태화를 끌어들여
북벌의 책임을 지우려 한 것이다. 하지만 정태화는 송시열보다 처세에 능수능란한 인물이었다.
효종 10년3월 제수된 영상을 사양하려 한 것도 북벌의 시기에 영의정을 맡지 않으려는
의도에서였는지 모른다. 정태화는 송시열이 자신을 끌어들여 북벌의 책임을 지우고자 하는
의도를 간파했다. 정태화의 대답은 이런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공(송시열)의 지략이 성상의 위임을 받아 천하의 대의인 대사(북벌)를 경영하시니
무슨 일인들 못하겠고. 나는 이미 늙고 무능하여 아무것도 도와드리지 못하지만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더 살아서 대감이 비상한 공을 세우고 천하에 대의를 펴는 것을
한 번 보고 죽는 것이 소원이오."
정태화의 이 말은 물론 거절이었다.
송시열이 실망한 낯빛이 되어 돌아가자 정태화의 아들이 물었다.
"아버님은 지금 국제정세가 어느 때인데 북벌을 할 수 있다고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이 말에 정태화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언제 북벌한다고 말했더냐.
송대감이 북벌을 임무로 삼아 성상에게 무한한 위임을 받았으나,
시간이 흘러도 성공할 묘책이 없으니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다.
그의 생각에 내가 북벌이 가망 없다고 하면 그 한마디를 구실 삼아 나에게 죄를 돌리고
자기의 발을 빼려는 것인데 내가 왜 남에게 팔린단 말인가.
그가 나에게 권모술수로 대하니 나 또한 권모술수로 답한 것이다.
우리 속담에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라고 하지 않더냐."
정태화와 그 아들의 대화는 북벌에 대한 조선 지배층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
이들은 북벌을 효종 혼자만이 꾸는 꿈으로 여겼다.
청을 건국한 만주족이 조선보다도 인구가 적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었다.
효종처럼 청의 취약한 구조에 대한 분석도 없었다.
그저 북벌은 안 된다는 것이 이들의 보편적 생각이었다.
송시열도 정태화와 마찬가지 생각이었으나 처지가 달랐다.
정태화는 북벌을 모른 척하면 되지만 송시열은 북벌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송시열은 대일통을 기치로 북벌을 소리 높이 외쳤지만
북벌은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북벌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 순간 효종과 맺은 암묵적 연합전선이 깨지기 때문이었다.
작은 것 하나까지 직접 챙기는 효종이 인사권과 행정권,
그리고 군사권까지 위임하며 맡긴 대임을 방기할 수는 없었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었던 것이다. 이때 송시열을 위기에서 구해 주는
급박한 사태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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