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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안씨가훈 (顔氏家訓)중국의 고전 /사상과 처세 2019. 4. 7. 23:35
234. 안씨가훈 (顔氏家訓) / 저작자 안지추(顔之推)
590년경에 만들어진 책으로, 동란 속을 살아가던 한 지식인이 자손에게 남긴 인생과 생활의 지침서이다. 책 제목은 ‘안씨(顔氏) 집안의 가훈(家訓)’이라는 뜻이다. 구성은 「서(序)」에서 「유언」까지 모두 20편으로 나누어져 있고, 각 편은 제각기 몇 가지 짧은 절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는 「서」, 「교자(敎子)」, 「치가(治家)」, 「풍조(風操)」의 일부를 소개한다.
가훈이라면 『안씨가훈』이라 할 정도로 1,400년 동안 읽혀 왔고, 유교적 교양인의 삶과 일상 생활에 영향을 끼쳤다. 이 책은 원래 「서」에 밝혔듯이 남북조시대의 귀족 안지추(531~602?)가 자손을 위해 쓴 가훈과 여러 가지 감상을 정리한 것이다.
5~6세기의 중국은 북방 민족인 북조와 한족인 남조가 대립한 이후로 수(隋)나라가 통일을 이루기까지 난세가 이어지고 있었는데, 안지추는 이 남북의 틈에 끼어 일생을 살았다.
그는 남조의 양(梁)나라에서 관직에 올랐으나 서위(西魏)의 군대에 의해 북방으로 납치되었고, 북제(北齊)에서 중용되어 황문시랑(黃門侍郞)이라는 고위직에 올랐다. 그러나 북제는 북주(北周)에게 멸망당하고, 마침내 수나라의 천하가 되었다. 이렇게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그는 유교적 교양인으로 보수적인 성향과 성실함을 지키며 살아갔다.
전 20편 가운데 앞에서 든 4편 외에 나머지는 「형제(兄弟)」, 「후취(後娶)」(재혼), 「모현(慕賢)」(좋은 친구), 「면학(勉學)」, 「문장(文章)」, 「명실(名實)」(명성), 「섭무(涉務)」, 「성사(省事)」, 「지족(止足)」(출세욕의 억제), 「계병(誡兵)」(군사에는 관여하지 말 것), 「양생(養生)」, 「귀심(歸心)」(불법), 「서증(書證)」(고전의 고증), 「음사(音辭)」(음운론), 「잡예(雜藝)」(서화 · 궁술 · 음악 등), 「종제(終制)」(유언)이다.
1) 서(序) - 서문
가풍을 올바르게 하고 자손을 가르친다
성인의 글에는 말과 행동을 신중하게 하고 세상에 이름을 떨칠 수 있게 하는 가르침이 많다.
그러나 위진(魏晋) 시대(3세기) 이후의 글들은 성인의 글을 흉내 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내는 것은 결코 이것만이 진실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 가족의 가풍을 올바르게 하고 자손을 깨우쳐 주고 싶을 따름이다.
우리 가문의 가정교육은 잘 다듬어져 있다. 나는 7~8세 때 두 형을 따라 아침저녁으로 부모님께 문안 인사를 올리는 등의 절도 있는 생활 태도를 배웠다. 그러나 내가 9세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는 바람에 우리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형은 고생하면서 나를 키워 주었는데, 어린 내가 가련해서인지 엄하게 가르치지 않아 그런대로 책은 읽었지만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제멋대로 행동하게 되었다. 18~19세가 되어 학문을 해야겠다는 마음은 먹었지만 몸이 따라 주지 않았다.
30세가 넘어서야 겨우 큰 과오를 범하지 않게는 되었으나 마음과 말, 이성과 감정이 일치하지 않았다. 밤에 문득 눈을 뜨고 나의 잘못을 깨치며 과거의 실패를 가슴 아파하는 지경이었다. 그래서 여기에 20편의 문장을 남겨 자손들이 조상의 전철을 밟지 않게 하려 한다.
2) 교자(敎子) - 자식 교육
예법 교육은 어릴 적부터
아기가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고 감정을 구별할 줄 알게 되면 예법을 가르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은 하게 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은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2~3세가 되면 매를 드는 것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세상을 가만히 살펴보면, 어린아이에게 식사 예절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 두어 응석받이로 키우는데, 이런 아이가 세상 물정을 알게 될 때쯤에는 적당히 해도 통용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어 교만해진다. 그제서야 부모는 자식을 감시하고 가르치려 하는데, 이래서는 아무 효과가 없다.
바람직한 부자 관계
아버지와 자식은 엄격한 관계로서 너무 허물이 없어도 안 되고, 그렇다고 피를 나눈 사이에 지나치게 격식을 따져 쌀쌀맞게 대해서도 안 된다. 너무 쌀쌀맞으면 애정이 서로 소통되지 않으며, 반대로 너무 허물이 없으면 예도가 무너진다.
자식을 편애하지 마라
옛날부터 특정 자식을 편애하는 폐해는 너무도 많았다. 영특한 자식을 귀여워하는 것은 괜찮지만, 재주가 부족한 자식도 똑같이 귀여워해야 한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졌다 하더라도 결국 화를 불러오게 된다. 정(鄭)나라의 공숙단(共叔段)이 반란을 획책하다가 죽임을 당한 것은 그의 어머니 무강(武姜)이 어릴 때부터 그를 너무 편애해 인격이 잘못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또 한나라 고조는 만년에 측실인 척(戚) 부인을 편애해 그녀가 낳은 아들 여의(如意)를 후계자로 삼으려 했다. 그것을 한스럽게 생각하고 있던 정부인 여후(呂后)는 고조가 죽자 척 부인을 죽이고, 어린 여의마저 죽이고 말았다.
3) 치가(治家) - 가족을 다스린다
감화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간다
감화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다. 따라서 아버지가 자애롭지 못하면 자식은 불효자가 된다. 형이 관대하지 못하면 동생은 형을 존경하지 않는다. 남편이 올바르지 못하면 아내는 순종하지 않게 된다. 만일 아버지가 자애로운데도 자식이 반항하고, 형이 관대한데도 동생이 대들고, 남편이 훌륭한데도 아내가 잔소리만 늘어놓는다면, 그것은 형벌로 다스릴 수밖에 없는 것으로, 가르쳐서 될 일이 아니다.
베푸는 자는 오만하고, 검약하는 자는 인색하다
공자는 『논어』 「술이편」에서 “사람이 사치하면 겸손할 줄 모르고, 검소하면 매우 고루해진다. 나는 겸손하지 못한 자와 있을 바에야 차라리 고루한 자와 있겠다”라고 했다. 또 「태백편」에서는 “설령 주공과 같은 뛰어난 재주가 있다고 해도, 그가 교만하고 인색하다면 그 나머지는 볼 것이 없다”라고 했다. 이는 곧 검약한 것은 좋으나 인색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검약이란 쓸데없는 낭비를 줄이면서도 써야 할 데는 써야 한다는 말이다. 인색하다는 것은 필요할 때에도 물질을 아끼고, 어려운 사람을 돌보려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요즈음 세상을 보면 베푸는 자는 오만하고, 검약하는 자는 인색하다. 남에게 베풀 때는 뻐기지 말고 검약하면서도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위는 예뻐하고, 며느리는 미워한다
보통 여성은 사위는 귀여워하고, 며느리는 미워하는 경향이 있다. 어머니가 사위만 귀여워하면 아들들의 마음이 불편해진다. 며느리를 괴롭히면, 그 집 딸들도 따라서 며느리를 구박하게 된다. 그래서 여자란 집에 있건 시집을 가건 죄인이 되어 버린다. 모두가 어머니 탓이다.
결혼은 상거래가 아니다
우리 가문의 조상들은 결혼은 엇비슷한 청빈한 가문과 맺어야 한다는 규범을 세워 두었다. 요즈음에는 딸을 팔아 재물을 끌어들이거나 재물로 여자를 사들이기도 한다. 부모의 지위나 재산을 가늠해 보고, 유리한 쪽과 인연을 맺으려는 것은 상거래와 다름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버릇없는 며느리와 사위가 생기는 것이다. 욕심 때문에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반드시 마음을 다잡아야 할 것이다.
빌린 책은 소중하게 다루어라
다른 사람에게 빌린 책은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혹시 원래부터 파손된 곳이 있으면 수리해서 돌려주는 것이 교양 있는 사대부의 태도이다.
강록(江祿)이라는 사람은 아무리 다급한 일이 생겨도 읽고 있던 책을 반드시 잘 말아서(그 무렵에는 두루마리 책이었다) 간수한 다음에야 자리에서 일어섰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읽은 책은 늘 깨끗했고, 빌려 준 사람이 인상을 찌푸리는 일 따위는 결코 없었다고 한다.
4) 풍조(風操) - 마음가짐
이별할 때가 중요하다
이별은 쉬워도 다시 만나기는 어렵다. 그래서 옛사람은 이별을 소중히 여겼다. 강남 지방에는 이별의 선물로 눈물을 흘리며 인사를 하는 풍습이 있다. 양(梁)나라 무제(武帝)의 동생이 동부에 있는 군에 부임하게 되어 왕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무제는 울었지만 동생은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왕은 동생을 임지로 보내지 않았다.
북방에서는 이별할 때 웃는다. 이렇듯 사람 가운데는 눈물이 적은 사람도 있다. 속으로는 슬퍼하면서도 눈물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억지로 형식적인 눈물을 강요하는 것은 좋지 않다.
예의의 참뜻을 모르면 방중하기 쉽다
『예기(禮記)』에 “부모가 돌아가신 날에는 즐기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고인의 덕을 생각하고 슬퍼하다 보니 손님을 맞이할 기분이 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이지, 반드시 집 안에 틀어박혀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부모의 기일이 오면 바깥출입은 삼가면서도 집 안에서 웃고 떠들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그러면서 급한 일로 찾아온 사람이 있어도 만나려 하지 않는다. 이는 예의의 참뜻을 모르는 행동이다.
찾아온 손님을 문 앞에서 쫓지 마라
옛날에 주공(周公)은 머리를 감다가도 손님이 찾아오면 몇 번이고 멈추어 허둥지둥 머리카락을 손으로 움켜쥔 채 나와서 맞이했고, 또 먹던 밥을 마저 넘기지도 않고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 다반사였다고도 한다. 그만큼 인재를 소중히 여겨 이름 없는 선비라도 하루에 70명이 넘게 만났다고 한다. 그런데 진(晋)나라 문공(文公)은 과거에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두수라는 아전이 찾아왔을 때 머리를 감는 중이라고 하면서 만나 주지 않았다. 그러자 두수는 이렇게 말했다.
“머리를 감으려고 머리를 숙이다 보면 마음도 뒤집어지는 모양이군. 마음이 뒤집어지니 생각도 바뀔 테지. 그러니 문공이 나를 만날 리가 없지.”
그 말을 전해 들은 문공은 그를 다시 불러 만났다고 한다. 찾아온 손님을 문 앞에서 쫓아내지 않도록 집안사람들을 잘 교육해야 할 것이다.
□ 책 속의 명문장
一沐三握, 一飯三吐 / 일목삼악, 일반삼토
한 번 머리를 감는 도중에 세 번이나 젖은 머리채를 붙들고 손님을 맞았고, 한 끼의 밥을 먹는 도중에 세 번이나 입 안의 밥을 뱉어 내고 사람을 만났다는 말로서 주공의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토포악발(吐哺握髮)이라는 고사성어도 여기서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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