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는 현재 약 286개의 성,姓 (2000년 통계)이 있으며, 본(本)을 필수 요소로 한다.
한국의 성씨는 삼국 시대 이후 중국의 성씨 제도를 차용한 것이 많고,
고려 시대부터 족보를 만들고 귀족 계급의 성씨 제도가 확립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성씨는 대부분 한 음절로 이루어져 있으나, 두 음절로 된 복성(複姓)도 있다.
성씨의 종류가 4천개가 넘는 중국이나 성씨가 10만이 넘는 일본과 비교할 때
한국에서는 성씨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고, 김(金)씨, 이(李)씨, 박(朴)씨인 사람이
전체 인구의 약 45%를 차지하여 특정 성씨가 차지하는 인구 비중이 매우 높다
■ 강화황씨(江華黃氏)
■ 강화황씨(江華黃氏)에 대한 자료가 없습니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황진세(黃進世, 1583 癸未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황득추(黃得秋, 1613 癸丑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황봉민(黃奉民, 1598 戊戌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황득상(黃得上, 1608 戊申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황대곤(黃大坤, 1577 丁丑生) : 무과(武科) 광해군7년(1615) 식년시 을과(乙科)
황여중(黃汝中, 1574 甲戌生) : 사마시(司馬試) 인조2년(1624) 식년시 삼등(三等)
황대의(黃大義, 1553 癸丑生) : 사마시(司馬試) 선조9년(1576)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7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무과 5명, 사마시 2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본관 연혁
강화(江華)는 옛 이름은 갑비고차(甲比古次)이며 고구려 때 혈구군(穴口郡), 신라 때는
해구군(海口郡)으로 개칭하고 한주(漢州: 廣州)에 예속시켰다. 940년(고려 태조 23)
현재의 지명인 강화현으로 개편되었고, 1232년(고종 11) 몽골의 침입으로 고종이 천도하여
약 40년간 사실상 수도 역할을 하였으며 지군사(知郡事)로 승격되었다. 1413년(태종 13)에는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었고, 1618년(광해군 10) 부윤(府尹)으로 승격되었고,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에는 인조의 피난처가 되었으며 유수부(留守府)로 승격되었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때에도 인조가 몽진(蒙塵)을 하려고 하였다.
1906년(광무 10)에 강화군이 되었다. 1995년 경기도에 속하였다가
인천광역시로 편입되었다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근세에 이르러서는
병인양요(丙寅洋擾, 1886)·신미양요(辛未洋擾, 1871)·운양호사건
(雲揚號事件, 1875) 등 역사적인 사건의 무대가 되기도 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강화황씨는
1985년에는 총 6가구 28명,
2000년에는 총 929가구 2,929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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