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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향전 (淑香傳)-4옛 이야기/고전 小說 2019. 2. 7. 15:46
선은 하는 수 없이 그냥 하직하고, 표진강 물가에 와서 그 근처를 두루 찾아보았으나 알 길이 없었는데, 그러던 차에 어떤 노인이 그때의 사정을 말해 주기를,
?수년 전에 모양이 아리따운 소녀가 장승상 댁에서 나와 이 물가에서 하늘에 사배(謝拜)하고 빠져 죽었소.?
선은 숙향이 정녕 억울한 물귀신이 되었다니 슬프게 낙망하고, 향촉을 갖추어 제사를 지내자, 물 위에서 피리부는 소리가 세 번 나더니, 한 청의동자(靑衣童子)가 작은 배를 타고 피리를 불며 오더니 선에게,
?숙향을 보고자 하거든 이 배에 오르시오.?
하고 전하기로, 선이 고맙게 여기고 그 배에 오르니 뱃길이 살같이 빨랐고, 한 곳이 다다르자, 동자가 다시 일러 주기를,
?이 물을 지키는 신령이 숙향을 구해서 동다하로 보냈다는 말을 들었으니, 그리로 가서 찾아보시오.?
선이 사례하고, 동다하로 가는 도중에 한 중이 지나가므로 길을 물으니,
?여기서 조금 가면 감투 쓴 노옹(老翁)이 있을 것이니 그에게 물으면 알려 주리라.?
선이 갈밭 속으로 가다가 보니, 소나무 아래의 바위의에 한 노옹이 감투를 쓰고서 졸고 있었다. 선이 그의 앞으로 절을 하여도 노옹은 본 체도 하지 않기에 선이 민망스러워하면서,
?저는 지나가는 행인이온데, 길을 몰라서 그럽니다.?
그제야 노옹이 졸던 눈을 조용히 뜨고서,
?나에게 무슨 말을 묻는고? 귀 먹은 사람이니 큰 소리로 말하라.?
?저는 이위공의 아들이온데, 숙향이라는 낭자가 있다 하와 불원철리하고 왔으니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애원하니, 노옹이 눈살을 찡그리며,
?숙향이라는 말은 듣도 보도 못하였는데, 너는 아이로서 이 깊은 밤에 함부로 와서 내 잠을 깨우고 수다스럽게 구느냐.?
선은 어이가 없었으나 다시 절하고서,
?표진강의 물신령이 이곳 어른께 가서 물으라기로 왔으니 가르쳐 주십시오.?
?그 전엔 어떤 여자가 표진강에 빠져 죽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표진강 용왕이 너한테 제물을 받아 먹고 어쩔 수 없으니까 내게로 미룬 모양인데, 아마 전일에 여기 갈대밭에서 불타 죽은 그 소녀인 성싶다.?
?정녕 여기까지 와서 불에 타 죽었습니까??
?저 잿더미에 가 봐라.?
선이 또다시 실망하면서 그곳으로 가서 보니, 불탄 위의 재는 있으나 해골 탄 재는 없었는데, 선은 여전히 졸고 있는 노옹 앞으로 돌아와서,
?어른은 저를 속이지 마시고 바른 대로 알려 주시오.?
?네 열성이 그만하니, 내가 잠들어서 숙향이 어디 있는지 보고 오마. 너는 그동안 두 손으로 내 발바닥을 문지르고 있거라.?
선은 노옹의 말대로, 그날의 해가 저물도록 노옹의 발바닥을 문지르고 있었는데, 이윽고 노옹이 잠을 깨더니,
?너를 위로해 주려고, 내가 마고할미 집에 가 보니 숙향이 누상에서 열심히 수를 놓고 있더라. 내가 그 증거로 불똥을 떨어뜨려서 수놓은 봉황새 날개를 태우고 왔으니, 마고할미 집으로 가서 숙향을 찾고 수놓은 봉의 날개를 보면 내가 분명히 갔던 것을 알 것이다.?
선은 자기가 이미 그 할미집에 가서 물었더니 이리이리 하라고 해서 천리길을 여기까지 해매어 돌아다녔다는 말을 고하자 노옹이 껄걸 웃으며,
?그 마고할미에게 지성으로 빌면 네 뜻을 이룰 수 있을 거다.?
선이 노옹의 말이 신기하므로 감탄하면서 하직하고 돌아서니, 노옹은 벌써 홀연히 흔적이 없었더라, 선은 그 길로 집으로 돌아오자, 걱정하고 기다리던 부모가 반겨 맞으면서 묻기를,
?네 어디를 그리 오래 있다가 왔느냐??
?도중의 산수에 끌려서 그럭저럭 일자가 늦었소이다.?
하고, 천연스러운 변명을 하니라.
이 무렵에 이화장의 노파는 선을 속여서 돌려보내고 숙향의 방으로 가서,
?아까 우리집에 왔던 소년을 보셨소??
?못 보았소이다.?
?그 소년이 전생의 태을진군이라는 선관이라 아가씨의 배필이오나, 아갑게도 그 소년은 전생에 중한 죄를 진 벌로 한 눈이 멀고, 한 다리를 절고, 한 팔을 못 쓰는 병신이오.?
?그분의 전생이 진실로 태을진군이라면 병신인들 상관 있습니까? 내 옥지환의 진주르 ㄹ가진 사람이 태을이니 할머니는 금후 자세히 살펴 주사이다.?
하고, 변치 않는 태을에 대한 일편단심으로 부탁하니라.
하루는 숙향이 누상에서 수를 놓고 있을 때, 홀연히 난데없는 불똥이 공중에서 떨어져서 수놓은 봉의 날개를 태워 버리니, 노파가 보고서 놀라며 혹시 화덕진군이 왔었는지 여부는 후일에 알 수 있으리라고 말하니라.
한편 선은 집으로 돌아온 지 三일 만에 목욕재계하고 요지에 가서 얻은 진주와 요지도의 수족자를 가지고 금은 몇 천냥을 말에 싣고서 이화정의 마고할미의 집으로 찾아가자,노파가 선을 반갑게 맞아서 초당에 인도한 뒤에,
?요전에 공자를 만났을 때는 약간의 술을 하고 섭섭히 지냈으나, 오늘은 싫도록 대접하며 나도 먹겠소이다.?
?그날도 술을 받고 사례를 하지 못하였으니, 오늘은 갚겠소. 그대 할머니 말을 곧이 듣고, 남양과 남군과 표진강까지 두루 다니며 숙향을 찾다가 고생만하고 왔소이다.?
선이 농 비슷하게 노파를 원망하자, 노파가 웃으면서,
?호호호, 주시는 술값은 감사하와 사양치 아니하거니와 내 집이 비록 가난하나 술독 아래는 주천(酒泉)이 있고 위에는 주정(酒井)이 있으니 무슨 값을 받으리까? 그런데 공자느 무슨 일로 그런 먼 곳을 다녀오셨습니까??
선은 큰 한숨을 내쉬며,
?숙향을 찾으려고 갔다고 하지 않았소.?
?공자는 진실로 의리와 정분이 많은 군자입니다. 그런 병신을 위하여 천리를 지척같이 찾아 다니시니 숙향이 알면 오죽 감격하리까??
?숙향을 만났으면 감격해 주었을지 모르지만, 못 만났으니, 내가 애서 찾아 다니는 줄을 어찌 알겠소??
노파는 거짓 놀라는 체해 보이며 묻기를,
?그러면 숙향이가 벌써 다른 곳과 혼인했던가요??
?하하하, 나도 다 알고 있으니, 할머니도 나를 그만 속이시오. 화덕진군의 말을 들으니, 숙향은 지금 이 마고할미 집에서 수를 놓고 있다던데요. 할머니한테 천백 번 절이라도 하고 빌겠으니 나의 마음을 그만 태워 주시오.?
노파는 그래도 정색을 하고 딴청을 쓰기를,
?공자도 거짓말 그만두시오. 화덕진군은 천상(天上)의 남천문 밖에 있는 불을 다스리는 산관인데 어찌 만나보셨다는 말이오? 또 마고할미로 말하자면 천대산에 있는 약을 다스리는 선녀인데 이런 누추한 인간의 집에 내려와서 숙향을 데려갈 리가 있습니까??
선은 자기가 화덕진군을 만났을 때에 이 집에서 숙향이가 이화정에서 놓고 있는 수에 불똥을 떨어뜨려서 태우고 왔으니 그것을 징험해 보라던 말을 다하였으나 그래도 노파는 딴청을 쓰고,
?정 그렇다면 이화정이라는 곳이 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은 노파의 말을 듣고는 술도 먹으려 하지 않고 탄식하기를,
?아아, 할머니가 나를 속이는 것이 아니라면 나도 어찌 할 바를 모르겠소. 삼산(三山) 사해(四海)를 다 찾아다니되 만나지 못하니, 나는 인제 죽을 수밖에 없소.?
하고, 선은 자리에서 수연(愁然)히 일어나니, 노파는 당황한 듯이 선을 바라보며,
?공자는 공후가(公侯家)의 귀공자로서 아름다운 배필을 얻어서 원앙이 녹수(綠水)에 놀고, 추월(秋月) 춘풍(春風)을 지내실 몸인데, 왜 그런 미천한 병신 여자를 생각하십니까??
?모를 제는 무심하나, 숙향이라는 그 천상연분의 배필이 이 세상에 있는 줄을 안 뒤로는 침식이 불편하고 숙향이가 나를 위하며 많은 고생만 겪으며 병신까지 되었다 하니, 철석간장인들 어찌 녹지 않겠소. 내가 끝내 숙향을 찾지 못하면 인강르ㅗ 살아서 있지 않을 결심이오.?
?공자는 너무 낙망치 마시오. 지성이면 감천이니, 좌우간 두고 봅시다.?
?내가 숙향을 만나고 못 만나는 것은 오직 할머니한테 달렸으니, 이 일생을 가엾이 여겨 주시오.?
하고, 선은 이화정을 떠나서 집으로 돌아왔으며, 사흘 후에 밖에 나와서 서 있을 때, 마침 이화정의 노파가 나귀를 타고 그 앞을 지나가고 있었으니, 선이 반겨 인사하고 묻기를,
?할머니, 어디를 가시오??
?공자의 지성에 감동하여 숙향을 찾으러 갔다 옵니다.?
?아 그래요? 그래 거처를 알았습니까??
?글쎄요. 실은 숙향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를 三명 알아냈으니, 공자는 그 중에서 본인 一명을 알아서 택하시오.?
?그 三명은 어디 있습니까??
?하나는 큰 부자 질갈의 딸이요, 하나는 빌어먹는 거지 계집애요, 또 하나는 만고절색이나 병신의 몸입니다. 그런데 그 병신의 여자가 자기의 배필의 남자는 내 진주를 가져간 사람이니까, 그 증거품의 진주를 본 뒤에 몸을 허하겠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선이 노파의 말을 듣고 여간 기뻐하지 않았다.
?그 진주의 증거품을 말한 여자가 내가 찾는 숙향이요. 내가 요지에 갔을 때, 반도 주던 선녀에게 진주를 얻었으니 할머니도 보시오.?
하고, 선은 집안으로 뛰어가더니 제비알만큼이나 큰 진주를 가지고 나와서 노파에게 주면서,
?할머니 수고스러우나 이 진주를 갖다가 그 병신 소녀에게 보이고, 이것이 자기 진주라 하거든 데려다가 할머니 집에 두시오. 그리고 택일해서 알리면 혼사제구는 모두 내가 담당하리다.?
노파는 그러마 하고 진주를 받아 가지고 와서 집에 있는 숙향에게 보이고 선의 말을 전하였더니, 숙향이 그 진주를 받아서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이 진주는 분명히 내 것이니, 모든 일은 할머니 요량대로 하세요.?
노파가 다시 선을 찾아가서 사실대로 알리자, 선은 황금 五○○냥을 주며 혼수에 쓰라고 부탁하더라.
?혼사 지내는 비용은 내가 비록 가난하나 적당히 하겠으니, 이 돈을 두었다가 숙향낭자나 주시오.?
하고, 도로 서에게 맡기고 받지 않더라.
선의 고모는 좌복야(左僕射) 여흥(呂興)의 부인이나 자식이 없어서선을 친자식같이 사랑하였다. 선이 고모집을 찾아가니 고모가 반기면서 말하기를,
?어제 밤중에 백룡(白龍)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서 광한전이라는 대궐로 들어갔더니, 한 선녀가 말하기를, <사랑하던 소아를 너에게 주니 며느리로 삼으라.> 하므로, 내가 너의 아내로 삼으려고 데려다가 다시 본 즉 정말로 아름다운 낭자였다.?
선은 전생이 월궁소아라는 선녀로서 인간의 이름을 숙향이라는 소녀와 혼인하게 된 경위를 자세히 고모에게 알리니, 고모가 크게 반기고 기뻐하며,
?나는 찬성이지만 부모의 성정(性情)이 나와는 다르니 그런 빈천한 소녀를 며느리로 삼을 리 없으니 어찌하랴.?
?저는 부모가 반대하더라도 다른 여자와는 혼인하지 않겠습니다.?
?네가 벼슬하면 두 아내를 둘 것이요, 또 네 부친이 서울에 가시고 없으니 혼사는 내가 주장하고, 둘째 아내는 네 부친의 뜻에 맡기면 좋지 않겠니??
?고모님의 넓은 아량으로 제 소원을 이루게 해 주십시오.?
선은 신신당부하고 돌아와서 혼인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덧 그날이매 선의 고모 이부인은 숙향의 집에 기구가 없으리라고 염려하고 채단과 기구를 장만해서 도왔다. 그리고 신랑의 위의(威儀) 차린 행차를 모두 고모집에서 마련해서 신부집인 이화정으로 가매 잔치에 모인 여러 선객들이 요지선관(瑤池仙官)처럼 성황을 이루었더라. 전안지례(奠雁之禮)를 맞고 동방화촉에 나가서 교배(交拜)하매 천정(天定)한 배필임을 의심할 사람이 없더라.
이리하여 선이 요조숙녀 숙향을 아내로 맞으매 금실의 정이 원앙새가 푸른 나무숲에 놀고 비취가 연리지(連理枝)에 깃들임과 같아서 무궁하게 즐거워하니, 이튿날 선이 고모에게 문안을 들이자 신부가 병신이라더니 어떠냐고 물었으며, 곧 데려다 보고 싶으나 부친이 서울서 내려오시는대로 권귀차로 기별하고 신부를 데려오겠다고 말하니라.
?데려오기 전에 자부(子婦)의 용모가 궁금하시거든 이 족자의 화상을 보십시오.?
?이것이 꿈에 본 선녀이구나.?
하고, 놀라며 반색하여 마지않았으나 그 전에 이 혼인에 반대한 부인은, 서울의 조정에 있으면서 변방문제로 시골에 내려오지 못하고 있는 남편 이상서에게 몰래 알렸던 것이며, 일이 전과는 달라진 것을 보고, 시녀들에게 물어서 비밀로 혼인하려는 실정을 알고, 서울 있는 상서에게 몰래 알렸던 것이매, 일이 전과는 달라진 것을 보고, 시녀들에게 물어서 비밀로 혼인하려는 실정을 알고 서울 있는 상서에게 기별하였더니 상서가 대노하니라. 그는 곧 낙양태수(洛陽太守)에게 통첩하여 자기 아들을 유혹하는 그 계집을 잡아다가 죽이라는 엄명을 하였던 것이라.
어느날 저녁, 까치가 숙향의 방 창문 앞의 나무에 와서 놀란 듯이 울어대니 숙향이 무슨 흉한 징조일가 하고 놀라서,
<장승상 댁의 영춘당에서 사향의 울음과 함께 저녁 까치가 울어서 뜻밖의 봉변을 당하였더니, 오늘 또 저녁까치가 창 앞에 와서 울어대니 무슨 연고가 있을지 두렵다.>
하고, 신혼 직후에 뜻하지 않은 걱정을 하게 되었고, 그날 방이 깊어서 관가의 포리(捕吏)가 몰려와서 불문곡직하고 숙향을 성화같이 잡아가니라. 숙향이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고 잡혀 가서 아문(衙門)에 이르르니, 좌우에 등불을 밝히고 태수가 문초하기를,
?너는 어떤 계집인데, 이상서 댁의 공자를 유혹하여 죽을 죄를 지었느냐? 상서께서 기별하시기를 너를 잡아다 즉시 죽이라 하였으니, 너는 나를 원망치 말고 형벌을 받으라.?
하고, 형틀에 올려 매고 치려고 하거늘 숙향이 울면서 아뢰되,
?저는 다섯 살 때에 부모를 잃고 이화정의 노파를 만나서 의탁하고 있사옵더니, 이생(李生)이 구혼하였으매 상민(常民)의 태생이 양반댁 자제의 배필이 되었다 해서 그것이 제가 유혹한 죄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낸들 어찌 이상서의 분부를 거역하랴. 형리야, 어서 그년을 쳐라!?
부사는 사리의 시비곡절을 가리려고도 하지 않았다. 집장(執杖)과 사령이 매를 둘러 메고 사정없이 치려고 달려 들었으나 형리들이 팔이 금방 무거워지고 움직일 수가 없게 되어서 매를 치지 못하니라.
?음, 무죄한 여자를 치려 하니 그런 성싶으되, 상서의 명을 어기지 못할지니, 너희들의 팔이 움직이지 않아서 칠 수가 없거든 몸을 꽁꽁 동여서 깊은 물에 넣으라.?
하고 태수가 다시 명령하니라.
이때는 밤중이라, 잠자던 태수의 부인이 꿈을 꾸니, 숙향이 울면서 부인 앞에 절하고 엎드려 울면서
<부친이 저를 죽이려 하시는데, 모친은 왜 구해 주시지 않습니까?>
하고 호소하기로, 장시가 놀라서 잠을 깨고 시녀를 불러서 묻기를,
?영감께선 어디 계시냐??
?이상서 댁의 기별로, 그 댁의 새 며느리를 쳐 죽이는 형벌로 동헌에 계십니다.?
장씨가 놀라서 남편 태수를 급히 청하여 내실로 오게 하고 울면서 호소하기를,
?우리 딸 숙향을 잃은 지 一○년이로되, 야속할 정도로 한 번도 꿈에 보이지 않더니, 아까 꿈을 꾸니 숙향이가 와서 <부친이 나를 죽이려 하시는데 모친은 왜 구해주지 않느냐>고 울면서 애원하였으니, 몽사가 역력하고 이상하니, 그 여자가 어떤 사람입니까??
?이위공의 아들이 정식으로 취처하기 전에 임의로 작첩하였으므로, 위공이 노해서 잡아다 죽이라는 명령이오.?
?아무리 관권에 관계되는 일이지만, 무자식한 우리가 어찌 또 죄없는 사람에게 적악(積惡)을 하겠어요. 그 계집을 놓아 주도록 하십시다.?
태수 내외가 숙향을 죽여야 할까 살려야 할까 한 끝에 부인의 말대로 그냥 석방은 하지 못하고, 우선 옥에 가두어 형편을 보아 처리하려고 하니라. 낙양 옥중에 갇힌 숙향은 남편 선에게 자기가 죽는 줄이야 알도록 기별하려고 하였으나 소식을 전할 길이 없어서 더욱 가슴이 터질 것 같아서 울고만 있을 때에 홀연히 옛날에 보던 파랑새가 옥중의 숙향이 앞에 날아와서 앉았으니, 숙향이 기뻐하고 급하게 적삼소매를 뜯어 입으로 깨문 손가락으로 혈서로 급한 사연을 써서, 파랑새의 발목에 매어주고 새에게 푸념하듯이 간청하기를,
?이 숙향이는 옥중에서 죽게 되었으니 죽기는 섧지 않으나 부모와 이랑(李郞)을 보지 못하니 명목(暝目)하지 못하겠다. 또 비명으로 죽으니 원통하지 않으랴. 파랑새야, 너는 신의가 두텁거든 이 소식을 꼭 이위공 댁 아드님께 꼭 전해다오.?
파랑새는 약속한 듯이 세 번 울고서 옥밖으로 날아가니라. 이날 밤 선은 고모집에서 자고 있었는데, 어쩐지 마음이 산란하여 잠을 이루지 모사고 울울불락(鬱鬱不樂) 하더니, 파랑새가 날아와서 누워 있는 선의 팔에 앉으므로, 이상히 여기고 본즉, 새 발목에 혈서의 편지가 매어 있더라. 풀어서 본즉 숙향의 위급하고 애퍼로운 사연이더라. 혼비백산한 선은 그 혈서를 고모에게 보이고, 낙양 감옥으로 달려가서 숙향을 구하려고 하매,
?놀라운 불행이지만 아직 경솔히 굴지 말고 이화정 노파에게 시녀를 보내서 사정을 알아 오도록 하라.?
하고, 한편으로 이상서 댁의 노복을 불러서 사건의 전말을 물어서 자세히 내막을 알게 되자 부인이 대노하니라.
?선이가 비록 상서의 아들이나 내가 양육하였는데, 내가 주혼(主婚)한 일에 대해서 상서가 나를 큰누이 대접한다면 그럴 수가 있나. 동생이 애매한 사람을 죽이려 하니, 내가 직접 서울에 가서 상서 만나서 말하고 그래도 동생이 고집을 부리고 듣지 않으면 황후게 여쭈어서 조처하겠다.?
하고, 행장을 차려서 서울로 급히 올라가니라.
이때 낙양태수는 일찌기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하여 그 자리로 부임하였던 김 전(金佺)이었으며, 이때 공교롭게도 병부상서 이위공의 말을 하자면 사사(私事)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하여 마음이 자연 비창하였으나 마지못해서 낭자를 잡아 들였던 것이라. 숙향이 고운 얼굴에 괴로운 눈물을 흘리고 약한 몸에 큰 칼을 쓰고 끌려서 동헌에 나왔을 때 김태수가 신원을 문초하기를,
?네 나이 몇이며 성명은 무엇인고? 고향은 어디요, 누구의 자식이냐? 속이지 말고 바른 대로 대어라.?
숙향은 정신을 겨우 차리고,
?저의 아비는 김상서라고 하고 제 이름은 숙향이며, 나이는 一五세로소이다.?
태수 옆에 나와 있던 부인이 이 말을 듣고 단번에 눈물이 비오듯이 쏟아져 내리더라.
?네 얼굴을 보니 우리 숙향이와 같고 나이가 꼭 맞으며, 김상서의 딸이라 하니 근본을 더 조사하기로 하고 아직 다스리지 마시기 바라오.?
금태수가 부인의 말을 옳게 여기고 다시 하옥시키고 그 사연을 서울 있는 이상서에게 기별하니라. 김태수의 부인이 숙향을 생각하고 울기만 하므로 태수도 부인을 위로할 겸하여 옥리에게 분부하기를,
?그 정상이 참혹하니 큰 칼이나 벗겨주라.?
서울의 이상서가 낙양태수 김 전의 편지를 보고 크게 노해서 계양태수로 좌천시키고 다른 사람으로 낙양태수를 삼아서 기어코 숙향을 죽이려고 생각할 때에, 마침 하인이,
?여(呂)좌복야 댁의 부인께서 오십니다.?
하고 알리매, 상서가 반가와서 하당(下堂)하여 맞아 들이며 문후하자, 부인이 인사도 받지 않고 곧 화를 내고 큰 소리로 상서를 꾸짖어 가로되,
?요사이 세상에선 벼슬 높고 위엄이 커지면, 동기도 업수이 여기고 억제하려는 거냐??
이상서가 황공해서 영문을 모르고,
?누님, 왜 이렇게 노하십니까??
?선이를 내 손으로 길러서 친자식같이 알기 때문에 마침 마땅한 혼처를 만났기게, 네게 미처 기별하지 못하고 성혼시켰으며, 또 그렇게 한대도 좋은 꿈의 징조와 부합했기 때문에 쓸쓸한 슬하에 내가 데리고 있으려고 그랬던 것이었으나, 그런데 너는 내게도 알리지 않고 무죄한 여자를 죽이려 하니, 대장부가 그러하고서 천하의 병마(兵馬)를 어찌 부리겠느냐??
하고 호통을 내리니, 장병을 지휘하는 병부상서도 어쩔줄을 몰라하더라.
?이번 일을 누님게서 주혼하진 줄은 모르고 잘못 하였으니, 실은 여기서도 마침 양왕(襄王)이 구혼해 왔으므로 제가 허락한 차에, 선이가 미천한 계집에게 장가드었다고 시비가 많아서 그리하였던 것입니다. 혼인은 인륜의 대사이오니 인력으로 어찌하겠소? 낙양태수에게 다시 기별하여 죽이지 말고, 낙양 근처에 주지 말도록 하겠습니다.?
여황후(呂皇后)는 여(呂)부인으 시고모였으므로 황후가 조카딸이 상경하였다는 기별을 듣고 궁중으로 청하여 머무르게 되었으매, 여부인은 곧 선에게 편지를 부쳐서 숙향이가 옥에서 석방될 것을 알렸더니라.
그러나 이상서는 자기의 아들이 호탕하여 학업에 지장될 것을 염려하고 서울로 불러 올렸고, 그렇게 함으로써 선이 숙향을 다시 보지 못하고 상경하게 되었으니, 선이 모친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울매, 모친이 위로와 꾸지람을 겸한 훈계로,
?내 인물 풍채가 남만 못하지 않으매, 좋은 배필을 구할 곳이 어디 없으랴. 부모를 속이고 천한 계집을 얻어서 지내면 성정(性情)이 타락된다. 그런데 이 기회에 부친이 서울로 불러다 공부를 잘 시키려는데 왜 그리 슬퍼하느냐??
선이 그때서야 숙향과 혼인하게 된 자초지종의 연분을 자세히 고하고,
?모친은 제 천정(天定)을 생각하고 숙향을 집으로 불러 들여 주소서.?
?아, 그런 줄은 전연 몰랐다. 네 말대로 진실이 그렇다면 천생연분이니 낸들 어찌 구박하랴. 부친도 그런 실정만 아신다면 하락하실 테니 염려 말고 과거나 해서 성공하고 잘 돌아오거라. 벼슬을 한 뒤에는 너 하려는 일을 부모도 말리지 못할 거다. 그런 점에서도 꼭 과거에 성공해라.?
선은 숙향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이화정의 노파나 만나고 가려고 생각하였으나, 역시 부명(父命)을 거역치 못해서 편지로 숙향을 잘 보호하도록 당부하고 서울로 떠나니라. 상경하여 부친을 뵈니, 부모 허락없이 장가든 것을 대책하고 곧 태학(太學) 으로 보냈고, 부친은 이내 황제께 하직하고 고향집으로 돌아오니라.
이때 김 전은 계양태수로 전근해 가고 낙양태수로는 신관(新官)이 부임하여 숙향을 옥에서 석방한 뒤에 낙양 근처에는 있지 못하도록 하였더니, 이화정의 노파는 옥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숙향을 맞아서 끌어안고 집으로 돌아와보니, 마침 선이 보낸 편지가 와서 기다리고 있더라. 숙향이 임 본 듯이 반갑게 뜯어보니 만단정화(萬端情話)라. 서러운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여 마지못하더라.
?이랑이 이제 서울로 가시고 고을에서는 이 근처에 있지 못하게 하니, 나는 장차 어디로 가서 몸을 의탁하지요??
?이것이 때의 액운이요, 여기 오래 있으면 또 화를 당할 것이니, 이 집의 세간을 정리하고 나와 같이 이 고장을 떠납시다.?
그리하여 숙향은 노파와 함께 정든 이화정을 버리고 딴 고장으로 가서 살게 되었으며, 그러던 중에 하루는 노파가 숙향에게 서글피 말하기를,
?나는 본디 천태산의 마고할미였는데 낭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세상에 내려와서, 이제는 낭자의 급한 화를 다 구하여 드렸으며, 이와 동시에 연분이 다하여 떠나게 되었으니, 여러 해 동안 같이 살던 정의를 잊을 수 없습니다.?
숙향이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절하고 은혜를 감사하여 말하되,
?미련한 인간의 눈이 지금가지 할머니가 신선이심을 알아 보지 못하고, 이제 인연이 다하여 버리심을 당하게 되오니 망극하옵니다. 그동안 할머니의 은혜를 입어서 일신이 안일하더니 할머니가 선경으로 돌아가시면 누구를 의지하오리까??
?내가 청삽살개를 두고 갈 테니, 그 놈이 낭자의 어려움을 도우리다.?
?할머니 가시는 길이 얼마나 되며, 어느날 가시렵니까??
?나 갈 길은 여기서 五만 八천 리요, 지금 곧 떠나려고 합니다.?
숙향이 작별이 급함에 놀라 슬퍼하면서 간청하기를,
?하루만 더 계시다가 가십시오.?
노파가 한숨을 쉬면서,
?내가 간 뒤에 나 입던 옷을 염하여 관 속에 넣고, 저 삽살개가 가서 발로 파는 곳에 묻어 주시고, 만일에 어려운 일이 있거든 그 무덤으로 오면 자연히 구하게 될 것입니다.?
하고, 입었던 적삼을 벗어 주고 이별하니, 두어 걸음 간 뒤에 홀연히 보이지 않아서 간 곳을 알지 못하더라. 숙향이 망극하여 두고 간 적삼을 붙들고 통곡하더라.
숙향이 통곡하다가, 마고할미가 남기고 간 말대로 장례를 지내려고 예복을 갖추고 관에 넣어 가지고 산소터를 찾아서 갈 때에, 따라 오던 청삽살개가 숙향의 치마끝을 물어서 그만 가라고 하매, 조석으로 제사를 극진히 하여 삽살개를 사랑하고 믿으면서 세월을 보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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