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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숙향전 (淑香傳)-1
    옛 이야기/고전 小說 2019. 2. 1. 12:46

    淑 香 傳

     

    작품해설

     

    작자와 창작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국문본과 한문본이 있다. 국문본으로는 필사본 18, 경판본 3, 구활자본 1종 등 모두 22종이 있으며, 한문본은 모두 12종으로 김동욱본, 국립도서관본 등이 있다. 송대(宋代)에 김전(金佺)이란 사람이 어부들에게 잡힌 거북을 구해준 적이 있었다. 김전은 장회의 딸과 혼인하였으나, 늦도록 자식이 없어 근심하다가 명산대천에 빌어 숙향을 낳는다. 세 살 때 피란길에서 부모와 헤어진 숙향은 우여곡절 끝에 구출되어 장승상댁의 수양딸이 되어 성장하던 중에 그 집의 시비 사향(麝香)의 모함으로 장승상댁에서 쫒겨나게 된다. 숙향은 포진강물에 투신하였으나, 용녀와 화덕진군(火德眞君)의 도움으로 구출되어 유리걸식하다가 이화정이라는 술집에서 술장사하는 마고할미와 함께 생활하게 된다.

     

    숙향이 꿈에서 본 광경을 수놓아 판 것이 계기가 되어 숙향과 이선은 서로 만나게 되고 이선의 고모인 여부인의 도움으로 두 사람은 백년가약을 맺게 된다. 한편, 아들 이선이 자기 몰래 숙향과 정혼한 사실을 알게 된 이상서는 낙양 수령인 김전을 시켜 숙향을 처형하라는 영을 내리고, 이선을 경성으로 데려가 태학에 입학시킨다. 처형 직전에 여부인의 도움으로 풀려난 숙향은 도둑의 겁탈을 피해 마고할미의 무덤에 가서 자살을 결심하고 대성통곡하게 되는데, 마침 이 소리를 들은 이상서 부부에 의해 구출된다.

     

    한편, 이선은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귀가한 후에 부모에게 숙향과의 전생 인연을 말하니, 이선의 부모는 비로소 두 사람의 관계를 승낙하고 혼례를 치루어 주니 이들은 부모의 승낙을 얻어 화목한 가정을 꾸리게 된다. 이때 양왕이 황제의 힘을 빌어 자신의 딸 설중매와 이선의 혼인을 강요하나, 이선은 설중매가 황족의 힘을 믿고 숙향을 핍박할까 염려하여 황제의 부름에 칭병하고 나가지 않는다.

     

    이선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양왕은 황태후가 병이 들자 황제에게 봉래산 선약(仙藥)을 구할 수 있는 인물로 이선을 추천한다. 숱한 고난 끝에 봉래산에서 무사히 선약을 구해와 황태후를 살린 이선은 초왕에 봉해진다. 봉래산에서 설중매가 전생에 자신의 부인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선은 설중매를 자신의 둘째 부인으로 맞이하게 되고, 이선과 숙향, 그리고 설중매는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천상으로 복귀한다.

     

    <숙향전>은 전쟁 고아로서 술집에 기거하는 비천한 존재인 숙향과 양반사대부가의 귀공자인 이선 사이의 대등하고도 열렬한 애정, 그리고 이들의 결연으로 야기된 갈등을 통해 봉건적 신분 관계의 모순과 질곡을 매우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숙향전>에서의 숙명론적 세계관과 보은 사상은 신분제도와 남녀차별, 가장의 절대적 권위 등 봉건적 규범의 제반 문제점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중심축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숙향전 (淑香傳)

     

     

    중국 송()나라 때에 천하 제일의 명공(明公)이 있었으니, 성은 김()이요 이름은 전()이라 하더라.

     

    그의 집안은 대대로 명문거족(名門巨族)이라, 부친 운수선생(雲水先生)은 도덕이 높은 선비로서, 공명(功名)에 뜻이 없어 산중에 은거하여 세월을 보내었으니, 천자(天子)가 그 소문을 들으시고, 신하를 보내어 이부상서(吏部尙書)의 벼슬을 주며 불렀으나 종시 조정에 나오지 않고 산중에서 일생을 마치니, 집안이 처량하더라.

     

    그의 아들 김 전이 또한 문장이 빼어나서 이태백(李太白)과 두보(杜甫)를 압도하고, 글씨는 왕희지(王羲之)와 조화보를 무색하게 할 정도라, 그에게 배우려는 선비들이 구름 모이듯이 따르더라.

     

    하루는 동학에 사는 친구가 호주부(湖州府)로 벼슬 하여 부임하게 되었으므로 리 밖까지 전송하려고 술대접을 하고 반하물[半河水] 강가에 이르렸으니, 때마침 여러 어부들이 큰 거북을 잡아서 불에 구워 먹으려고 법석대었으니, 김 전이 수상히 여기고 자세히 본즉 그 거북의 이마 위에 하늘 천()자가 있고, 배 위에도 역시 하늘 천자가 있더라. 김 전은 그 거북이 비상한 영물임을 알고 당부하기를,

     

    ?이 거북은 영물이니 물에 놓아 살려주시오.?

     

    그러자 어부들이 말하되,

     

    ?우리가 종일 고생 끝에 이 거북 하나를 잡았는데 어찌 놓아 주겠소??

     

    하고 듣지 않았으니, 이때 거북이 김 전을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죽을 목숨을 슬퍼하는 형상을 짓더라. 김 전은 갖고 있던 술과 안주를 어부에게 주고 그 거북을 사다시피 바꾸어 받아서 다시 강물에 넣어 주었더니, 거북이 기쁘게 물속으로 들어가면서 감사한 형용으로 김 전을 돌아보더라. 김 전이 친구를 전송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 강을 건널 때에 갑자기 심한 풍랑이 일어서 다리가 무너지고 배가 뒤집혀서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었고, 김 전도 물에 빠져서 죽을 지경에 이르더라.

     

    이때 김 전의 앞에 홀연히 꺼먼 널빤지 같은 것이 떠올랐다. 김 전이 그 널빤지 위에 올라타서 겨우 피란을 하였으나 알고 보니 그것은 큰 물짐승이었는데, 네 굽을 허위대며 물 위를 살같이 빠르게 달려서 순식간에 건너편 강 언덕에 다다라서 무사히 육지에 오르게 되더라.

     

    <, 이 짐승이 필경 앞서 구해 준 거북이가 저 살려준 은혜를 갚고자 나를 구해 주었구나.>

     

    하는 생각으로, 김 전은 그 거북에게 고마워하자 거북의 입에서 말 대신으로 안개 같은 것을 토하며 그 광채가 무지개 서듯이 황홀하더니, 이윽고 그 황홀한 기운이 사라지는 동시에 거북도 홀연히 없어지고, 그곳에 새알만한 진주(眞珠) 구슬 두 개가 놓여 있었으니, 김 전이 더욱 기이하게 여기고 두 손 위에 놓고 자세히 보니 구슬 가운데 오색의 광채가 찬란한데, 한 개에는 목숨 수()자가, 한 개에는 복 복()자가 선명히 보이더라.

     

    <거북을 살려준 인연이라 하지만 기이한 일이로다.>

     

    김 전은 그런 생각을 하며, 그 구슬 두 개를 갖고 집으로 돌아오니라. 이때 김 전의 나이 세였으나, 집이 빈한해서 장가를 들지 못한 총각신세이더라.

     

    형초(荊楚) 땅에 사는 장희라는 사람이 공명에 뜻이 없어서 벼슬을 탐내지 않고 있었으나, 본디 지체가 공후(公侯)의 자손이라 집이 부유하며, 슬하에 무남독녀를 두었는데, 낭자의 사람됨이 뛰어나고, 재주와 용모가 어질고 아름다워서 양친이 장중보옥(掌中寶玉)같이 아끼면서 사윗감 고르는데 여간 안목이 높지 않았으니 그러던 장희가 김 전의 인품이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청혼하여 왔고, 김 전은 반하물 강가의 거북에서 얻은 진주로 예물을 보내고 약혼을 하였으나, 장모 되는 장희부인은 그 초라한 예물을 탓 삼아서 평소의 뜻과 어긋난 불평을 남편에게 말하기를,

     

    ?공경대부(公卿大夫)들 집안에서 우리 딸에게 구혼하는 귀공자가 구름같이 모여드는 데도 허하지 않으시더니, 왜 구태여 가난한 김 전에게 허혼하시오. 이제 김 전의 예물을 보니 그 빈한의 정도를 알겠으며 외 딸의 평생이 걱정이외다.?

     

    ?혼인은 인륜의 대사이매, 당신이 모를 말이오. 더구나 혼인에서 재물을 취하는 행위는 오랑캐의 풍습이 아니요? 그뿐 아니라 당신이 초라하게 여기는 그 폐물의 진주를 보니 천금과 바꾸지 못할 보배요.?

     

    하고, 은방에 맡겨서 반지로 만들었더니, 광채가 황홀 찬란하여 눈이 부서서 보지 못할 정도였으니 좋은 날을 택해서 김 전을 사위로 삼으니, 신랑 신부의 품격과 용모가 해와 달을 합한 것같이 황홀하더라.

     

    장인 장희는 김 전의 풍모를 보고 희색만연하여, <내 딸의 사위로는 도리어 과만하다>고까지 말하고, 사랑함이 친아들 못지않았으니, 김 전은 장씨를 아내로 맞자, 원앙이 푸른 물에 놀고, 비취가 연리지(連理枝)에 깃들인 것같이 금실이 좋고 아름다웠으나, 그들이 결혼한 후 년 만에 장희 부부가 모두 세상을 떠나매, 딸의 애통이 망극하였는데 김 전은 장인 장모의 장례를 극진히 지낸 뒤에 조석의 제사를 공손히 받들더라.

     

    이러저러 여러 해를 지났으나, 김 전 부부의 슬하에 일점의 혈육이 없어서 서럽게 보내던 중, 어느 해 첫 가을 월 보름날 밤에, 김 전과 장씨는 부부동반 하여 누()에 올라서 달구경을 하고 있었으니 이때 홀연히 공중에서 꽃송이가 장씨 치마 앞에 떨어졌으니, 이상히 여기고 자세히 보니 배꽃도 아니요, 매화꽃도 아닌데 높은 향기가 진동하더니, 문득 회오리바람이 불어서 꽃잎이 산산이 흩어져서 어디로 날라가버리니라. 장씨는 마음에 그 꽃을 아깝게 여기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이날 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달이 떨어져서 황금 산돼지로 변해서 장씨의 품안으로 기어드는 바람에 놀라서 잠을 깨니 기인한 꿈이었기에, 잠든 남편을 깨워서 그 꿈 이야기를 알리기를,

     

    ?어젯밤에 계수나무 꽃 한 송이가 떨어져 뵈더니, 오늘밤 꿈도 이러하니, 하늘이 우리의 무자(無子)함을 불쌍히 여겨서 귀자(貴子)를 점지해 주실 모양이오.?

     

    남편은 이런 해몽을 하고 기뻐하였더니, 과연 그날부터 아내 몸에 태기가 있더라. 김 전 부부는 크게 기뻐하며 아들 낳기를 기다렸더니, 삭이 차매 장씨는 난산으로 고생하므로 김 전은 의약으로 치료하며 순산을 빌었는데, 그러다가 마침 일에 기이한 향기가 풍기며 오색구름이 집을 둘러싸더니, 밤이 깊은 후에 선녀 한 쌍이 내려와서 말하되,

     

    ?집을 정하게 소제하고 있으면 선녀(仙女)가 하강(下降)하실거요.?

     

    하고, 장씨의 산실(産室)로 들어가니라. 김 전이 바삐 나와서 노복(老僕)을 시켜 집 안팎을 소제하고 기다렸더니, 이윽고 오색구름이 집을 두르며 향기가 다시 진동하므로, 김 전은 혹시 아내가 죽는 징조가 아닐까 하고 산실로 달려가 보니, 아내는 순산하고 산파 노릇을 한 두 선녀는 벌써 방문 밖에 나와 있었는데 금새 자취를 감추어 버리니라.

     

    김 전이 놀라서 황급히 방안으로 들어가 보니, 아내 장씨는 기절하고 인사불성이었는데, 김 전은 아내의 수족을 주물러서 한참 후에 정신을 차렸으므로 반색을 하고, 낳은 아이를 보니 옥골선풍(玉骨仙風)이 비범하게 탈속(脫俗)하였으나, 불행히 남자가 아니라 서운함을 금치 못하더라.

     

    이 딸의 이름을 숙향(淑香)이라 하고, ()를 월선궁(月仙宮)이라 하여 사랑하고 귀중히 함이 비길 데 없었느니라.

     

    나이 다섯 살이 되매 자태가 더욱 아름다워졌으므로, 달에서 내려온 선녀의 태생임을 나타내었고 믿어졌더라. 보름달이 구름과 안개를 헤치고 창공에 걸린듯 사람의 눈이 부시고목소리가 맑고 고와서 백옥을 산호(珊瑚)채로 두드리는 듯하니, 모든 일에 진선진미(眞善眞美)하매, 김 전은 행여나 단명(短命)하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우명한 관상가 왕규를 청해다가 숙향의 사주를 보였더니,

     

    ?숙향아가는 세상 사람이 아니라 월궁항아(月宮姮娥)의 정맥이라, 장차 귀하게 되리로소이다. 다만 옥황상제께 죄를 지어서 인간으로 태어났사오매, 초분(初分)은 험하고, 그 후는 길하리이다.?

     

    이 말을 들은 김 전은,

     

    ?우리의 집은 다행히 의식이 족한데 어찌 초분이 괴로우리요.?

     

    하니 의아하여 반문하기를,

     

    ?미리 정하지 못할 것은 사람의 팔자이옵니다. 아가씨는 세에 부모를 이별하고 사방으로 우랑하다가, 세가 되면 부모를 다시 만나 부귀영화하고, 이자일녀(二子一女)를 두고, 세 때 하늘로 올라가리라.?

     

    김 전은 이 관상가의 말을 믿지는 않았으나, 만일의 일을 걱정해서 숙향의 생년월시를 금실로 수놓은 비단 주머니를 만들어서 채워 두니라.

     

    이때 송나라의 국운이 불행해서 금나라가 반()하여 황성(皇城)을 침노하려고, 먼저 형초지방을 침범하였으니, 김 전의 가족은 피란하다가 도중에서 도적을 만나서 재산이 든 행장을 전부 버리고, 김 전은 숙행을 등에 업고 아내를 데리고 도망하기 바빴는데, 도적의 추격이 급해서 점점 가까이 몰려 왔으므로 김 전은 숙향을 업고는 도저히 빨리 도망할 수가 없었으니, 기진맥진한 그는 아내에게 이르기를,

     

    ?여보, 도적의 추격이 급하고 우리의 힘이 다해서 빨리 도망칠 수가 없으니 어찌하오. 우리가 요행히 살아나면 자식은 다시 만나 보려니와, 만일에 우리가 도적에게 잡혀서 죽어 버리면 죽은 몸은 누가 거두며, 조상 제사는 누가 받들겠소. 혈욱의 인정으론 야속하지마는 숙향을 여기 두고 우산 급한 화를 피하였다가, 다시 와서 데려가기로 합시다.?

     

    아내는 남편의 이 말을 듣고 망극하여 울며 애원하기를,

     

    ?나는 숙향이와 함께 죽을 결심이니, 당신이나 어서 빨리 피신하여 천금귀체를 보존한 뒤에, 우리 모녀의 죽은 몸이나 찾아서 거둬 주시오.?

     

    ?당신을 버리고서야, 차마 어찌 나 혼자 피신하겠소. 차라리 함께 죽기로 합시다.?

     

    ?그건 안될 말씀이오. 대장부가 어찌 처자 때문에 개죽음을 당한단 말씀이오. 그러지 말고 어서 빨리 상신 먼저 피신하시오.?

     

    아내의 손을 잡고 또다시 주저하는 김 전은,

     

    ?내가 당신을 어찌 버리고 가겠소.?

     

    하고 가려고 하지 않자, 장씨가 통곡하면서 단념하고 말하기를,

     

    ?당신이 정 그러시다면, 정박한 심정이지만 그럼 숙항을 여기 두고 가십시다.?

     

    ?자아, 어서 갑시다.?

     

    김 전이 아내를 재촉하자 장씨는 표주박에 밥을 담아서 숙향에게 주면서 타이르기를,

     

    ?숙향아, 내 배고프거든 이 밥을 먹고, 목이 마르거든 냇가의 물을 떠서 마시고 잘 있거라. 우리가 내일 와서 데려가마.?

     

    어린 숙행은 어머니의 매정한 말에 발을 동동거리며 울며 애원하기를,

     

    ?어머니, 아버지. 나를 데리고 가요.?

     

    하니, 장씨는 어린 딸의 애원에 가슴이 메어지는 듯하고 정신이 아찔해서 말을 못하다가 우는 소리로 또 달래기를,

     

    ?잠깐만 여기서 기다리면 다시 와서 데려가마. 울거나 큰 소리 말고 있어야 한다. 큰 소리를 내면, 도적이 알고 와서 잡아죽인다. 알겠지 응??

     

    그러나 숙향은 더욱 큰 소리로 울면서 어미니에게 매달리며 가로되,

     

    ?어머니는 왜 나를 여기 버리고 나 혼자 도적에게 잡혀 죽으라 해요. 싫어요, 싫어요. 나를 데리고 가요.?

     

    하고 어머니 옷을 쥐고 놓으려 하지 않으니 장씨는 차마 그런 딸을 버리지 못하여 안고 울었는데, 김 전도 마침내 통곡하면서 말하기를,

     

    ?형세가 급한데, 어찌 그애 하나 때문에 세 가족이 다 죽는단 말이오. 당신이 정 가지 않는다면, 나도 안 가고 여기서 함께 잡혀 죽겠소.?

     

    장씨는 천지가 망극하여, 마침내 옥가락지 한 짝을 빼어 숙향의 옷고름에 매어 주고 달래기를,

     

    ?숙향아, 울지 말고 여기 있으면 내가 곧 오마.?

     

    결심을 하고 뒤를 돌아보니, 도적은 벌서 저쪽에서 달려오고 있었으니, 김 전이 황망히 장씨를 이끌고 가니 숙향이 통곡하며,

     

    ?어머니, 날 버리고 어디로 가요? 나도 데려가요.?

     

    하고 부르는 소리가 멀리 가도록 들리니 김 전 부부의 간장이 녹는 듯이 저리고 아파 어두운 길을 허둥지둥 달아나니, 그 형상이 실로 참혹하더라.

     

    도적이 와서 홀로 우는 숙향을 보고,

     

    ?네 아비 어미는 어디로 갔느냐? 간 곳을 알리지 않으면 죽여 버린다.?

     

    숙향은 부모를 찾는데 놀라서 울면서도 정신을 차려서

     

    ?나를 버리고 간 부모를 내가 어찌 알겠어요. 알면 내가 찾아 가겠어요.?

     

    하고 애절히 울었으나, 도적은 잔인하게도 죽이려고 얼러댔으나, 도적 중의 한 명이,

     

    ?몹쓸 제 아비 어미가 버리고 간 불쌍한 어린 것이 배 고파서 우는데 무슨 죄가 있다고 죽이겠느냐? 여기 이대로 두면 산짐승에게 상할 거다.?

     

    하고, 인정있게 업어다가 마을 앞에 두고 가면서,

     

    ?나도 자식이 이만한 것이 있는데, 참으로 가련하다. 네 부모가 너를 버리고 가면서 오죽 마음이 아팠으랴!?

     

    하고 눈물까지 머금었으나, 숙향은 어디로 갈지를 몰라 부모만 부르고 길로 방황하매 그 정상을 보는 사람들이 불쌍히 여겼으며, 날이 이미 저물고 인적도 그쳤으니, 배고프고 갈 바를 몰라서 덤불 밑에 엎드러 우니라.

     

    그때 문득 황새 한 떼가 하늘에서 날아 오더니, 날개로 덮어 주었으므로 춥지는 않았으나 배가 고파서 견디지 못하니, 이윽고 원숭이떼가 아직 살아 있는 물고기를 갖다 주었으므로, 숙향은 반색하여 배가 부르도록 먹으니라.

     

    이튿날 아침에 까치가 날아와서 숙향의 앞에 와서 오락가락하는 꼴이 어디로 인도하려는 기색 같으므로, 숙향이 울면서 그 까치를 따라서 고개 여럿을 넘어 가니 어떤 마을이 있었는데, 숙향이 그 마을로 들어 가니, 마을 사람들이 숙향을 보고서,

     

    ?어떤 아인데 혼자 방황하느냐??

     

    ?우리 부모가 내일 와서 데려간다 하시더니, 지금껏 찾아오지 않아요.?

     

    하고 숙향이 울며 대답하였으므로 무두 가엾이 여기더라. 그들도 숙향의 얼굴이 고우므로 데려다가 기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병란(兵亂)이 급해서 피란할 때인지라 그리하지도 못하고, 다만 밥을 먹여 주면서,

     

    ?우리도 피란 길이기 때문에 데려 가지는 못하니, 이 밥을 잘 먹고 어디로든지 안전한 데로 가거라.?

     

    하더라.

     

    각설하고. 일시 피신하였던 김 전은 아내 장시를 깊은 산속에 감추어 두고, 살며시 산에서 내려와 숙향을 찾아 갔으나 종적을 모르매 필경 죽었으려니 하고, 아내 있는 산중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더라.

     

    ?숙행이가 그 근처에 없으니, 필경 죽은 모양이오.?

     

    울면서 말하는 남편의 말을 들은 장시는 통곡하다가 그만 기절할 지경이더라. 김 전은 놀라서 아내를 위로하며,

     

    ?모두 운명이니 너무 서러워 말아요. 아까 내가 죽었으리란 말은 나도 잘못한 낙망 끝의 말이었소. 어린 것이 그 두고 온 장소에서 멀리 가지 못하였을 터이니 죽었어도 시체가 그 근처에 있을 것인데, 그것조차 없었으니 필경 누가 데려간 것이 분명하오. 왜 숙향이가 어렸을 때에 사주를 보인 관상가 왕규가 다섯살 때에 부모와 이별한다고 하지 않았소. 그 말이 맞는 것이니 너무 상심치 마시오.?

     

    ?가엾어라 숙향아, 내가 너와 함께 죽지 못한 것이 한이다. 여보 당신은 관상가의 말이나마 믿어서 죽지 않았으리라 하시지만, 그 애는 죽었어요. 요행히 살아 있을지라도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가겠어요.?

     

    하고 혼절하니, 김 전은 위로할 바를 몰랐으니,

     

    ?숙향이가 살아 있으면 앞으로 반드시 만나보리니, 당신도 왕규의 말을 믿어요.?

     

    하는 말로 위로하더라.

     

    이 무렵에 숙향은 피란하는 사람들이 다 흩어져 가버린 밤중에 천지가 괴괴히 적막하고 달빛만 처랑한데 배고프고 슬퍼서 홀로 울고 있자니, 푸른 새가 나타나서 앞을 인도하자 숙향이 그 푸른 새를 따라서 한 곳에 이르러 본즉, 큰 전각(殿閣)이 으리으리하고 풍경 소리가 은은히 우니라.

     

    홀연히 청의(靑衣)의 소녀가 그 전각에서 가만히 나와서, 숙향을 안고 들어가서 높은 집의 고운 자리에 놓으니, 숙향이 놀라는 눈으로 본즉, 한 부인이 화관(花冠)을 쓰고 칠보단장으로 황금교의에 앉았다가 숙향을 보고 황망히 자리에서 내려와서 동편에 놓은 백옥교의로 자리를 옮겨 앉았는데, 숙향이 그냥 울고만 있으니 부인이 입을 열어,

     

    ?선녀가 인간세계에 내려와서 더러운 물을 많이 먹어서 정신이 상하였으니, 선약 경액(瓊液)을 쓰도록 하라.?

     

    부인의 명을 받은 시녀가 경액을 만호종에 가득 부어서 주니, 숙향이 그것을 받아서 마시며, 흐렸던 정신이 선명해지며, 전생의 월궁(月宮)의 선녀로 천상(天上)에서 놀던 일과, 인간세계에 내려와서 부모를 잃고 고생한 일이 역력히 회상되니, 몸은 비록 아이지만 마음은 어른이라. 머리를 들어서 부인에게 사례하기를,

     

    ?제가 하늘에서 죄를 얻어서 인간으로 내려와 고초를 당하던 중, 부인께서 이처럼 데려다가 관대히 대해 주시니 감사하옵니다.?

     

    ?선녀는 나를 아십니까??

     

    ?제가 멀리 나와 고생을 한 탓으로 정신이 혼미하여 알아 뵙지 못하오니 황송하옵니다.?

     

    ?나는 후토부인이로소이다. 선녀가 인간에 내려와서 고초이단(苦楚異端)이시매, 원숭이와 황새와 파랑새를 보내었더니, 그것들을 보셨나이까??

     

    ?모두 보았삽거니와, 부인의 은혜 백골난망이오라 천상(天上)의 죄를 속()하옵고, 부인 좌하(座下)의 시녀가 되어 은혜를 갚고자 하옵니다.?

     

    ?선녀는 월궁소아(月宮小娥). 불행하여 지금 인간으로 잠시 귀양살이를 하지만 년의 고락을 지내시면 다시 천궁(天宮)의 쾌락을 받으실 것이니, 서러워하지 마소서. 오늘은 날이 저무었고, 오신 길이 머온지라. 오늘은 나와 함께 머무시고 내일 돌아가소서.?

     

    하고 좋은 음식과 풍악을 갖추어 대접하니, 인간세상에 보지 못한 풍류더라. 부인이 경액을 권하니, 숙향의 정신이 상쾌 총명해져서 천상의 일만 기억되고, 인간 세사(世事)는 깨끗이 잊혀졌으니, 숙향이 후토부인에게 묻기를,

     

    ?듣자오니, 명사계는 시왕이 계시다 하더니 정녕 그렇습니까??

     

    ?그렇소이다.?

     

    숙향의 물음에 후토보인이 대답하기를,

     

    ?인간의 부모를 시왕전에 있으면 만날 수 있겠습니까??

     

    ?선녀의 부모는 인간으로 그저 계시거니와, 옥황상제의 사람이 아니라, 봉래산 선관(仙官)선녀로서 인간으로 귀양내려갔사오니, 기한이 차면 다시 봉래로 가시니 이곳이 계실 리는 없사옵니다.?

     

    ?인간 세상으로 나가면 다시 부모를 찾아 볼 수 있겠읍니까??

     

    ?인간으로 태어난 숙향의 말인지라, 후토부인은,

     

    ?월궁의 선녀로 계실 때는 상제님게 득죄하여 억울하게 되었더니, 규성(奎星)이란 선녀가 옥황님께 득죄하여 인간으로 내려와서 장승상의 부인이 되었사오니, 선녀도 그 댁으로 가서 전생의 은혜를 갚고, 바야흐로 때를 만나 귀히 되고 부모를 만날 것이니, 앞으로 一五년 이후 되오리다.?

     

    ?인간의 고행(苦行)을 생각하면, 일각이 삼추 같사온데 一五년을 어찌 지내리까. 차라리 죽어 말고자 하옵니다.?

     

    ?이것은 천명(天命)이라, 천상에서 득죄하여 받는 바이어니와, 다섯 번 죽을 액을 겪고서 생전의 죄를 속한 후에 인간의 영화를 보실 것입니다.?

     

    이윽고 금계(金鷄)가 울고 날이 밝아 오니 부인이 황급히,

     

    ?선녀를 모시고 말씀이 무궁하오나, 가실 곳이 머옵고 때가 늦어가니 어서 가소서.?

     

    ?때는 늦어가나, 인간의 길을 모르오니 누구의 집으로 의탁해 가오리까??

     

    ?그건 염려 마소서. 선녀가 가실 길은 내가 알리오리다. 장승상 댁으로 먼저 가소서.?

     

    ?장승상 댁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이까??

     

    ?○○리지만 그건 염려 마소서.?

     

    하고 부인은 화분에 심은 나무 한 가지를 꺾어서 흰 사슴의 뿔에 매고서 다시 말하되,

     

    ?이 사슴을 타면 순식간에 만리라도 가시리니, 시장하시거든 이 열매를 가지고 가소서.?

     

    숙향이 부인에게 사례하고 사슴의 등에 올라타니, 그 사슴이 한번 굽을 치고 달리자 만리 강산이 번개같이 눈앞을 지나가니라. 가는 새 없이 한 곳이 이르니 사슴이 더 가지 않고 발을 멈추고 서므로 숙향이 사슴의 등에서 내리자 배가 고팠으므로, 부인이 준 열매를 먹으니 배가 부르고 천상의 일이 일시에 잊혀지고, 마음도 다시 인간으로 돌아와서 타고 왔던 사슴이 물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조차 들기 시작하였으며, 그곳은 초목이 무성하여 어디로 갈지 길도 없으므로, 잠시 모란나무에 몸을 기대고 졸더라.

     

    알고 보니 이곳은 흠남군(欽南郡) 땅의 장승상 집의 동산이었으며, 장승상은 한()나라의 장량(張良)의 후손이라 일찍이 벼슬하여 명망이 조정에서 으듬이라. 전에 승상이 되어 부귀공명이 일국에 제일이더니, 시종조(時宗朝) 때에 간신의 모함을 만나서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한가로운 세월을 보내었으니, 슬하에 일점혈육이 없어 항상 슬퍼하다가 승상이 하루는 꿈을 꾸었더니, 선녀가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서 계화(桂花)꽃 한 가지를 주면서,

     

    ?전생의 죄가 중해서 무자(無子)하였더니, 이제 이 꽃을 주매 잘 간수하라. 그러면 뒤에 좋은 일이 있을지라.?

     

    놀라서 깨보니 꿈이었는데, 부인을 불러서 꿈 이야기를 하고,

     

    ?우리 부부 무자하여 쓸쓸하더니, 이제 하늘이 자식을 점지하시는 모양이오. 그러나 우리 나이 에 어찌 생산을 바라겠소??

     

    하고 한탄하였으나 집 위의 하늘에는 오색의 안개가 어리어 있었고 기이한 향기가 집안에 가득하매, 승상이 다시 이상히 여기고,

     

    ?이때가 겨울이라. 오색 안개가 어리고 꽃이 피어 향내를 풍길 계절이 아닌데, 꿈처럼 이상도 하오.?

     

    하고 청려장(靑藜杖)을 짚고 뒷동산에 올라서 주위를 살펴보니 모란포기에 새 잎이 피어나고 있는데, 그 밑에서 어린 소녀가 잠을 곤히 자고 있자 승상이 놀라서 부인과 시녀를 부르는 소리에 그 잠자던 소녀가 깨어서 울기 시작하니 장승상이 그 소녀 앞으로 가서,

     

    ?너는 어떤 아이인데, 이 동산에서 혼자 자고 있느냐??

     

    숙향은 반갑기도 하고 겁도 나서 울며 말하되,

     

    ?저는 부모를 잃고 거리로 헤매던 중에 어떤 짐승이 업고 가다가 여기에 두고 간 모양입니다.

    ?네 나이가 몇 살이냐? 이름은 뭐냐??

    ?나이는 다섯 살이요, 이름은 숙향이라 하옵니다. 우리 부모가 나를 바위틈에 숨겨 두고 가시면서, 내일 와서 다려가마 하시더니 오시지 않아서 울고 있습니다.?

     

    장승상이 측은히 여기고 탄식하며,

     

    ?허어 부모 잃은 어린애로구나.?

     

    하고 부인을 불러다 보이니, 그 소녀의 모습이 꿈에 본 아이와 똑같았으므로 기뻐하며 말하되,

     

    ?이것은 하늘이 우리에게 자식 없음을 가없이 여기시고 주신 아이이니, 집에서 기르고 싶소이다.?

     

    하고, 안고 들어가 음식을 먹이고 옷을 갖추어 귀엽게 기르더라. 어느덧 이태가 지나서 일곱 살이 되니, 숙향의 얼굴은 일월 같고, 배우지 않은 글에 능통하고 수놓기를 잘하매, 승상부부의 사랑이 친딸 이상이더라. 이러구러 열 살이 되니, 점점 기이한 재주를 나타내서 어른이 믿지 못할 일이 많았으니, 부인의 사랑과 신임이 두터워서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모두 맡기매, 숙향이 모든 일의 전후 곡절을 잘 살피고,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하며, 승상부부를 친부모처럼 지성으로 섬기고, 여러 남녀 비복을 인덕으로 부리었는데, 승상부부의 의향은 어진 가문에서 숙향의 배필을 구하여 가문의 후사(後事)를 맡기려고 기회를 기다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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