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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효본 <변강쇠가>- 5옛 이야기/고전 小說 2019. 1. 31. 14:23
여인을 보낸 후에 각기 설움 의논할 때,
이것들 앉은 데가 원두(園頭)밭 머리로서
참외 한참 산영하니,
막은 아직 아니 짓고 밭 임자 움생원(生員)이
집에서 잠을 자고 밭 보려 일찍 올 때,
먼지 낀 묵은 관을 돛 단 듯이 높이 쓰고,
진동 좁고 된짓 달아 소매 좁은 소창의와
굽 다 닳은 나막신에 진 담뱃대 중동 쥐고,
살보 짚고 오다가서 밭머리 사람 보고
된 목으로 악써 물어,
"네, 저것들 웬 놈이냐."
뎁득이 대답하되,
"담배 장사요."
"그 담배 맛 좋으냐."
"십상 좋은 상관초(上關草)요."
"한 대 떼어 맛 좀 보자."
"와서 떼어 잡수시오."
마음 곧은 움생원이 담배 욕심 잔뜩 나서
달려들어 손을 쑥 넣으니
독한 내가 코 쑤시고, 손이 딱 붙는구나.
움생원이 호령하여,
"이놈, 이게 웬일인고."
뎁득이 경판으로 물어,
"왜, 어찌 하셨소."
"괘씸한 놈 버릇이라
점잖은 양반 손을 어찌 쥐고 아니 놓노."
뎁득이와 각설이가 손뼉치며 대소하여,
"누가 손을 붙들었소."
"이것이 무엇이냐."
"바로 하제. 송장 짐이오."
"네 이놈, 송장짐을 외밭머리 놓았느냐."
"새벽길 가는 사람 외밭인지 콩밭인지
아는 제어미할 놈 있소."
움생원이 달래여,
"그렇든지 저렇든지 손이나 떼다고."
네 놈이 각문자(各文字)로 대답하되,
"아궁불열(我窮不閱)이오,"
"오비(吾鼻)도 삼척(三尺)이오."
"동병상련(同病相憐)이오."
"아가사창(我歌査唱)이오."
움생원이 문자속은 익어,
"너희도 붙었느냐."
"아는 말이오."
"할 장사가 푹 쌓였는데 송장장사 어찌 하며,
송장이 어디 있어 저리 많이 받아 지고
어느 장을 가려 하며,
송장 중에 붙는 송장 생전 처음 보았으니,
내력이나 조금 알게 자상(仔詳)히 말하여라."
뎁득이 하는 말이,
"지리산중 예쁜 여인 가장이 악사하여
치상을 해주면 함께 살자 한다기에
그 집을 찾아간즉 송장이 여덟이라
간신히 치상하여 각설이 세 사람과
둘씩 지고 예 왔더니,
나도 붙고 게도 붙어 오도가도 못할 터니
그 내력을 알 수 있소."
움생원이 의사(意思) 내어,
"그리하면 좋은 수 있다.
오고가는 사람들을 보는 대로 후려들여
무수히 붙였으면 소일(消日)도 될 것이요,
뗄 의사도 날 것이니 그 밖에 수가 없다."
"기소불욕(己所不欲)을 물시어인(勿施於人)이라니
일은 아니 되었으되,
궁무소불위(窮無所不爲)라니 재조대로 하여 보오."
이 때에 하동(河東) 목골, 창평(昌平) 고살메,
함열(咸悅) 성불암(成佛庵),
담양(潭陽), 옥천(沃川), 함평(咸平) 월앙산(月仰山) 가리내패가
창원(昌原), 마산포(馬山浦), 밀양(密陽), 삼랑(三浪),
그 근방들 가느라고 그 앞으로 지나다가
움생원의 관을 보고, 걸사(乞士)들이 절을 하여,
"소사(小士) 문안이오, 소사 문안이오."
그 뒤에 아기네들이 낭자도 곱게 하고
고방머리 엇게 하고,
다리 아파 잘쑥잘쑥 지팡막대 짚었으며,
두 줄에 다리 넣고 걸사 등에 업혔으며,
수건으로 머리 동여 긴담뱃대 물었으며,
하하 대소 웃으면서,
낭낭옥어(琅琅玉語) 말도 하고 무수히 오는구나.
움생원이 불러,
"이애 사당(寺黨)들아,
너의 장기대로 한 마디씩 잘만 하면
맛 좋은 상관 담배 두 구부씩 줄 것이니
쉬어 가면 어떠하냐."
이것들이 담배라면 밥보다 더 좋거든,
"그리 하옵시다."
판놀음 차린 듯이 가는 길 건너편에 일자로 늘어앉아,
걸사들은 소고(小鼓) 치며,
사당은 제차(第次)대로 연계사당 먼저 나서
발림을 곱게 하고,
"산천초목이 다 성림(盛林)한데 구경가기 즐겁도다.
이야어.
장송(長松)은 낙낙(落落), 기럭이 펄펄,
낙낙장송이 다 떨어졌다. 이야어.
성황당(城隍堂) 궁벅궁새야 이리 가며 궁벅궁
저 산으로 가며 궁벅궁 아무래도 네로구나."
움생원이 추어,
"잘한다, 내 옆에 와 앉거라. 네 이름이 무엇이냐."
"초월(初月)이오."
또 하나 나서며,
"녹양방초(綠楊芳草) 저문 날에 해는 어이 더디 가고,
오동야우(梧桐夜雨) 성긴 비에 밤은 어이 길었는고.
얼싸절싸 말 들어 보아라,
해당화 그늘 속에 비 맞은 제비같이
이리 흐늘 저리 흐늘, 흐늘흐늘 넘논다.
이리 보아도 일색이요, 저리 보아도 일색이요,
아무래도 네로구나."
"잘한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구강선(具江仙)이오."
한 년은 또 나서며,
"오돌또기 춘향(春香) 춘향 유월의 달은 밝으며 명랑한데,
여기 저기 연저 버리고 말이 못된 경이로다.
만첩청산(萬疊靑山)을 쑥쑥 들어가서
늘어진 버드나무 들입다 덤뻑 휘여잡고
손으로 줄르르 훑어다가 물에다 둥둥 띄워 두고
둥덩둥실 둥덩둥실
여기 저기 연저 버리고 말이 못된 경이로다."
"어, 잘한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일점홍(一點紅)이오."
또 한년 나서며,
"갈까보다 갈까보다, 임을 따라 갈까보다.
잦힌 밥을 못 다 먹고 임을 따라 갈까보다.
경방산성(傾方山城) 빗두리길로
알배기 처자(處子) 앙금살살 게게 돌아간다."
"잘한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설중매(雪中梅)요."
한 년이 나서며 방아타령을 하여,
"사신(使臣) 행차(行次) 바쁜 길에 마중참(站)이 중화(中和),
산도 첩첩 물도 중중(重重) 기자왕성(箕子王城)이 평양,
모닥불에 묻은 콩이 튀어나니 태천(太川),
청천(靑天)에 뜬 까마귀 울고 가니 곽산(郭山),
차던 칼을 빼어 내니 하릴없는 용천 (龍川),
청총마(靑聰馬)를 둘러 타고 돌아보니 의주(義州)."
"잘한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월하선(月下仙)이오."
한 년은 자진방아 타령을 하여,
"누각(樓閣)골 처녀는 쌈지장사 처녀,
어라뒤야 방아로다.
왕십리 처자는 미나리장사 처자,
순담양 처자는 바구니장사 처자,
영암(靈岩) 처자는 참빗 장사 처자."
"어, 잘한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금옥(金玉)이오."
한참 이리 농탕(弄蕩)칠 때,
이 때에 시임(時任) 향소(鄕所) 옹좌수(雍座首)가
수유(受由)하고 집이 갔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도포 입고 안장말에 향청(鄕廳) 하인(下人) 후배(後陪)하여
달래달래 돌아가니
움생원이 불러,
"여보소, 옹좌수.
자네가 아관(亞官)으로 기구가 좋다하여
출패(出牌)나 무서워 하지,
나 같은 빈천지교(貧賤之交) 시약불견(視若不見) 지나가니
부귀자교인(富貴者驕人) 말이 자네 두고 한 말일쎄."
좌수가 할 수 있나,
말에서 내려 걸어오니 움생원이 제 옆에 앉혔구나.
좌수가 물어,
"노형의 평생행세 내가 대강 짐작하니
이러한 큰 길가에서 협창행락(挾娼行樂) 의외로세."
움생원이 연해 웃어,
"꿈 같은 우리 인생 육십이 가까우니
남은 날이 며칠인가
파탈(擺脫)하고 놀아 주세.
얘, 옥천집, 좌수님 들으시게 시조(時調)나 하나 하여라."
그렁저렁 장난 후에 좌수가 하직(下直)하여,
"향청(鄕廳)에 일 많아서 총총히 돌아가니
노형(老兄)은 사당하고 행락을 하게 하소."
움생원이 웃어,
"자네 소견대로."
좌수 불끈 일어서니 밑구멍이 안 떨어져,
"애겨, 이게 웬일인고."
움생원은 좋아라고 곧장 웃어 두었구나.
"허허, 내 말 들어 보소.
노형은 내게 비하면 식자(識字)도 들었고,
경락(京洛)도 출입하고,
읍내 가 오래 있어 관장(官長)도 모셔 보고,
지사(知事)하는 아전(衙前) 친구 응당히 많을 테니,
송장이 붙는 말을 자네 혹 들었는가."
좌수 귀가 매우 밝아 깜짝 놀라 급히 물어,
"이것이 송장인가."
남은 급히 서두는데 움생원은 훨씬 늘여,
"그것은 무엇이든지 장차 수작(酬酌)하려니와,
송장이 붙는다는 말 사기(史記)에나 경서(經書)에나
혹 어디서 보았는가."
옆에 있던 사당들이 깜짝 놀라 일어서니 모두 다 붙었구나.
요망(妖妄)한 이것들이 각색으로 재변(才辯) 떨 때
애고애고 우는 년,
먼산보고 기막힌 년, 움생원 바라보며
더럭더럭 욕하는 년,
제 화에 제 머리를 으등으등 찧는 년,
살풍경(殺風景) 일어나니 좌수는 어이없어
암말도 못 하고서
굿 보는 사람나서 우두커니 앉았다가,
"여보소, 저 짐이 다 모두 송장인가."
움생원 변구(辯口)하여,
"하나씩이면 좋게."
"둘씩이란 말인가."
"방사(倣似)한 말이로세."
"어느 고을 올 시절이 송장 풍년 그리 들어
몰똑하게 지고 왔소."
뎁득이 하던 말을 움생원이 송전(誦傳)하니,
좌수와 사당들이 서로 보고 걱정한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굿 보느라고 아니 가고,
먼 데 마을, 근처 마을 구경하자 모여드니,
그리 저리 모인 사람 전주장(全州場)이 푼푼하다.
구경꾼 모인 데는
호도(胡桃)엿장수가 먼저 아는 법이었다.
갈삿갓 쓰고 엿판 메고 가위 치며 외고 온다.
"호도엿 사오, 호도엿 사오.
계피(桂皮) 건강(乾薑)에 호도엿 사오.
가락이 굵고 제 몸이 유하고 양념 맛으로 댓 푼.
콩엿을 사려우, 깨엿을 사려우.
늙은이 해소에 수수엿 사오."
여러 사람들이 호도엿 사먹으며 하는 말이,
"이것이 원혼이라,
삼현(三弦)을 걸게 치고 넋두리를 하였으면
귀신이 감동하여 응당 떨어질 듯하다."
목 좋은 계대(繼隊)네를 급급히 청해다가
좌수가 자당(自當)하여 굿상을 차려 놓고
멋있는 고인들이 굿거리를 걸게 치고,
목 좋은 제대네가 넋두리춤을 추며,
"어라 만수(萬壽) 저라 만수.
넋수야 넋이로다. 백양청산(白楊靑山) 넋이로다.
옛 사람 누구 누구 만고원혼(萬古寃魂) 되었는고.
공산야월(空山夜月) 불여귀(不如歸)는 촉 망제(望帝)의 넋일런가.
무관춘풍(武關春風) 우는 새는 초 회왕(懷王)의 넋이로다.
어라 만수. 청청향초나군색(靑靑向楚羅裙色)은 우미인의 넋일런가.
환패공귀월야혼(環패空歸月夜魂)은 왕소군(王昭軍)의 넋이로다.
어라 만수 저라 대신.
넋일랑은 넋반에 담고, 신첼랑은 화단(花壇)에 뫼셔
밥전(廛), 넋전(廛), 인물전(廛)과 온필 무명,
오색 번(번)에 넋을 불러 청좌(請座)하자.
어라 만수 저라 대신.
열 대왕님 부리는 사자(使者)
일직사자(日直使者) 월직사자(月直使者)
금강야차(金剛夜叉) 강림도령(降臨道令),
이 생 망제 잡아갈 때 뉘가 감히 거역할까.
어라 만수 저라 대신.
만승천자(萬乘天子), 삼공 육경(六卿) 기구로도 할 수 없고,
천석(千石) 노적(露積) 만금부자 값을 주고 면켔는가.
멀고 먼 황천길을 가자 하면 따라가네.
어라 만수 저라 대신.
지장보살(地藏菩薩) 장한 공덕,
보도중생(普度衆生)하려 하고
지옥문(地獄門) 닫아 놓고, 서양길을 가르칠새
불쌍한 여덟 목숨 비명에 죽었으니,
어느 대왕께 매였으며, 어느 사자 따라갈까.
어라 만수 저라 만수.
지하에 맨 데 없고, 인간에 주인 없어
원통히 죽은 혼이 신체 지켜 있는 것을
무지한 인생들이 경대(敬待)할 줄 모르고서
손으로 만져 보고 걸터앉기 괘씸쿠나.
어라 만수 저라 만수.
옹좌수 자넬랑은 일읍(一邑)의 아관(亞官)이요,
움생원 자넬랑은 양반의 도리로서
경이원지(敬而遠之) 귀신대접 어이 그리 모르던가.
어라 만수 저라 대신.
사당, 걸사, 명창, 가객, 오입장이 너의 행세
취실(取實)할 수 왜 있으리.
비옵니다, 여덟 혼령
무지한 저 인생들 허물도 과도 말고,
갖은 배반(杯盤) 진사면(陳謝免)에 제대춤에 놀고 가세.
어라 만수 저라 만수."
우두커니 짐꾼 넷만 남겨 놓고
위에 붙은 사람들은 모두 다 떨어져서,
제대에게 치하(致賀)하고
뎁득이 각설이에게 각각 하직하는구나.
이것들이 식구 많이 있을 때는 소일하기 좋았더니
비 오는 날 파장같이 경각간(頃刻間)에 흩어지니
심심하여 살 수 있나.
뎁득이가 그래도 서울 손이라 애긍히 사정으로
송장에게 비는 목이 의지하여 듣겠거든,
"천고에 의기남자 원통히 죽은 혼이
지기지우(知己之友) 못 만나면 위로할 이 뉘 있으리.
역수상(易水上) 찬 바람에 연태자(燕太子)를 하직하고
함양에서 죽었으니 협객 형경(荊卿) 불쌍하고,
계명산(鷄鳴山) 밝은 달에 우미인을 이별하고,
오강(烏江)에 자문(自刎)하니 패왕 항적(項籍) 가련하다.
이 세상에 변서방은 협기 있는 남자로서
술먹기에 접장(接長)이요 화방에 패두(牌頭)시니,
간 데마다 이름 있고 사람마다 무서워한다.
꽃 같은 저 미인과 백년을 살쟀더니
이슬 같은 이 목숨이 일조(一朝)에 돌아가니
원통하고 분한 마음 눈을 감을 수가 없어,
뻣뻣 선 장승 송장.
주 동지 자네 신세
부처님의 제자로서
선공부(禪工夫) 경문(經文) 외어 계행을 닦았으면
흰 구름 푸른 뫼에 간 데마다 도방이요,
비단 가사(袈裟) 연화탑(蓮花塔)에 열반(涅槃)하면 부처될새
잠시 음욕 못 금하여 비명횡사(非命橫死) 거적 송장.
촐첨지(僉知) 자네 정경 동냥 고사 천업(賤業)이라,
낯에는 탈을 쓰고, 목에는 장고 메고,
돈푼 쌀줌 얻자 하고 이집 저집 다닐 적에
따른 것이 아이들과 짖는 것이 개 소리라,
탄 분복(分福)이 이러한데 가량(可量) 없는 미인 생각
제 명대로 못 다 살고 남의 집에 붙음송장.
풍객(風客) 한량(閑良) 다섯 분은 오입 맛이 한통속.
왕별목장 춘향가 가객이 앞을 서고,
가얏고 심방곡(心方曲) 통소 소리
봉장취 연풍대(燕風臺) 칼춤이며,
서서 치는 북 장단에 주막(酒幕)거리 장판이며,
큰 동내 파시평에
동무 지어 다니면서 풍류로 먹고 사니
눈치도 환할 테요, 경계(經界)도 알 터인데
송장을 쳐 낸대도 계집은 하나 뿐,
누구 혼자 좋은 꼴 보이려 한꺼번에 달려들어
한날 한시 뭇태 송장
여덟 송장 각기 설움 다 원통한 송장이라.
살았을 때 집이 없고 죽은 후에 자식 없어
높은 뫼 깊은 구렁 이리 저리 구는 뼈를
묻어줄 이 뉘 있으며,
슬픈 바람 지는 달에
애고애고 우는 혼을 조상할 이 뉘 있으리.
생각하면 허사로다, 심사 부려 쓸 데 있나.
이 생 원통 다 버리고
지부명왕(地府明王) 찾아가서
절절이 원정하여 후생의 복을 타서,
부귀가에 다시 생겨 평생행락하게 하면
당신네 신체들은
청산에 터를 잡아 각각 후장(厚葬)한 연후에
년년기일 돌아오면 내가 봉사(奉祀)할 것이니
제발 덕분 떨어지오."
애긍히 빈 연후에
네 놈 불끈 일어서니 모두 다 떨어졌다.
북망산 급히 가서 송장짐을 부리니
석 짐은 다 부리고
뎁득이 진 송장은 강쇠와 초라니라
등에 붙어 뗄 수 없다.
각설이 세 동무는
여섯 송장 묻어 주고 하직하고 간 연후에
뎁득이 분을 내어 사면을 둘러보니
곳곳 큰 소나무 나란히 두주 서서
한 가운데 빈틈으로 사람 하나 가겠거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고울고울 달음박질
소나무 틈으로 쑥 나가니
짊어진 송장짐이 우두둑 삼동 나서
위 아래 두 도막은 땅에 절퍽 떨어지고
가운데 한 도막은 북통같이 등에 붙어
암만해도 뗄 수 없다.
요간폭포괘장천(遙看瀑布掛長天)
좋은 절벽 찾아가서 등을 갈기로 드는데
갈이질 사설이 들을 만하여,
"어기여라 갈이질.
광산(匡山)에 쇠방앗고 문장공부 갈이질.
십년을 마일검(磨一劍) 협객의 갈이질.
어기여라 갈이질.
춘풍에 저 나비가 향내만 찾아가다
거미줄을 몰랐으며,
산양에 저 장끼가 소리만 찾아가다
포수 우레 몰랐구나.
어기여라 가리질.
먼저 죽은 여덟 송장 전감(前鑑)이 밝았는데,
철모르는 이 인생이 복철(覆轍)을 밟았구나.
어기여라 갈이질.
네번째 죽은 목숨 간신히 살았으니 좋을씨고
공세상(空世上)에 오입 참고 사람되세.
어기여라 갈이질."
훨씬 갈아 버린 후에 여인에게 하직하여,
"풍류남자 가려서 백년해로하게 하오.
나는 고향 돌아가서 동아부자(同我婦子) 지낼 테오."
떨뜨리고 돌아가니 개과천선(改過遷善) 이 아닌가.
월나라 망한 후에 서시가 소식 없고,
동탁(董卓)이 죽은 후에 초선이 간 데 없다.
이 세상 오입객이 미혼진(迷魂津)을 모르고서
야용회음(冶容誨淫) 분대굴(粉黛窟)에
기인도차오평생(幾人到此誤平生)고.
이 사설 들었으면 징계가 될 듯하니
좌상에 모인 손님 노인은 백년향수,
소년은 청춘불로
수부귀다남자(壽富貴多男子)에
성세태평하옵소서.
덩지 덩지 -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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