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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기(記碁) / 이색(李穡)
    옛 이야기/고전 隨筆 2019. 1. 28. 13:58

    기기(記碁) / 이색(李穡)

     

     

    선정(先正)1)께서 다른 기예(技藝)에는 뜻을 두지 않았으나, 바둑만은 대강 묘리를 얻어서 당시의 능수(能手)들도 혹 양보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집에는 그 기구가 남아 있지 않았다.

     

    내가 일찍이 고자(孤子)2)가 되어 서울에서 내려와 마음이 쓸쓸하여 학업을 그만두었는데, 소상(小祥)3)을 마치고 서질(書帙)4)을 정리하다가 바둑알이 나와 살펴보니, 하나는 조개로서 흰 바탕에 누렁 무늬가 있고, 다른 하나는 돌로서 옥같이 곱고 검은데, 갈고 다듬은 것이 정교하여 둥글둥글한 것이 마치 별 같아, “선비가 자리[] 위에 보배를 가졌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바둑알은 겨우 2백 개라서 파도에 씻기고 깨진 돌로 보충하여 비로소 부족함이 없게 되었다.

    하루는 손군(孫君)이 찾아와서 말하기를, “이것은 내가 중 계홍(戒弘)에게서 얻은 것인데, 영선대부(令先大夫)5)를 채시(綵侍)6)하올 때에 우리 아이 기()가 올린 것이오.” 하고, 곧 찾아다가 개수를 세어 보고는 말하기를, “처음에는 360개가 넉넉하였는데 이제 남은 것이 어찌 이렇게 적은가?” 한다. 내가 그의 말한 뜻을 살펴보니, 그의 마음속에 개연(慨然)7)함이 없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곰곰이 생각하니, 비록 조그만 물건이라도 반드시 그 사이에 운수(運數)가 있는 것이니, 군자(君子)로서 알아 두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 근원을 찾아보면 계홍(戒弘)의 이전에 이것을 만든 이가 누구였으며 이를 전한 자는 또 누구였을까. 계홍으로부터 손()에게로, 손으로부터 이()에게로 전해지는 동안 잃어버린 것이 거의 반()의 반이니, 이제 여기를 지나서 또 어느 사람에게 전해질 것인가? 점점 흩어지고 잃어버릴 것인데, 어느 사람의 손에 가서 다 없어지고 말 것인가? 또 우리 선비의 소용이 될 것인지, 아니면 부자나 호협객(豪俠客)의 노리개가 될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서글피 고금(古今)을 생각하고 물리(物理)를 자세히 살피면 어찌 눈물이 흐르지 않으리오. ()8)은 움직이고 방()9)은 멈춰있는 원리와 불리한 모양과 사나운 기세에 대한 논의에 대 하여는 미처 말할 겨를이 없다.

     

    삼가 기록하기를, “흰 돌 140, 검은 돌 19라고, 두 통의 글을 써서 한 통은 손군에게 보내어 이 바둑알을 보내 준 곳을 알게 하고, 한 통은 이 바둑알이 온 곳을 기록해 두고서 스스로 간직하여 앞으로는 혹 잃어버림이 없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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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선정(先正): 돌아간 자기 아버지를 가리킴.

    2) 고자(孤子): 아버지를 잃은 자식. ‘어머니를 잃은 자식애자(哀子)’, ‘양친을 다 잃은 자식고애자(孤哀子)’이다.

    3) 소상(小祥): 사람이 죽은 지 1년 만에 지내는 제사. 기년제일주기(一週忌).

    4) 서질(書帙): .

    5) 영선대부(令先大夫): 이색의 아버지 이곡(李穀:1298-1351). 고려 말기의 학자. 자는 중보(仲父). 호는 가정(稼亭). 1333년에 원나라 제과(制科)에 급제한 후, 원제(元帝)에게 건의하여 고려에서의 처녀 징발을 중지시켰다. 충렬충선충숙왕의 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저서에 ?가정집?이 있으며,?동문선?에 가전체 작품 인 죽부인전(竹夫人傳)이 전한다.

    6) 채시(綵侍): ()나라 노래자(老萊子)가 늙으신 부모를 즐겁게 하기 위해 채색이 화려한 색동옷을 입고 춤을 추며 어리광을 부렸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자식이 부모를 봉양함을 뜻하는 것이나, 여기서는 다른 어르신을 기쁘게 해드릴 때를 말함인 듯하다.

    7) 개연(慨然): 억울하고 원통하여 몹시 분함.

    8) (): 바둑알.

    9) (): 바둑판.

     

     

    해설

     

    이 글은 ?동문선? 72권에 실린 ()이다. ?동문선?의 원문에는 기기(記碁)’라고 되어 있으나 기기(碁記)’의 잘못으로 보인다.

     

    1351년경에 지어진 이 글은 바둑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이 아니라, 바둑과 관련된 독립된 작품으로서의 최초의 글이라서 비교적 짧은 글이지만 소개하는 바이다. 바둑은 가로와 세로에 각각 19줄이 그어진 바둑판 위의 각 교차점(모두 361)에 돌을 두어서 집내기를 하여 보다 큰 집을 가진 사람이 이기도록 만든 놀이이다.

     

    기구를 사용한 놀이로서는 그 기구를 이루는 숫자가 많을수록 흥미가 있게 마련이다. 윷놀이는 4개의 윷짝과 4개씩의 말을 사용하는 놀이이니, 최소 12개의 기구가 필요하고, 화투는 12달에 해당하는 화투짝이 각각 4개씩이니 48개의 화투짝이 사용되고, 트럼프는 총52장이라서 화투보다 몰입의 정도가 더욱 강하다. 가로와 세로가 각각 8줄씩 64칸으로 된 체스가 트럼프를 넘어서는 흥미를 유발하겠는데, 놀이패가 총 104개가 되는 마작(麻雀)이 이를 앞지르게 된다. 그렇지만 교차점 361개의 바둑에 대하면 1/3 정도의 수준에서 머무르는 놀이일 수밖에 없다. 바둑은 더구나 죽은 자리에도 또 돌을 놓을 수가 있기 때문에 361개의 돌만을 필요로 하는 놀이가 아니라는 점도 감안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다른 놀이들은 그 흥미 또는 집중력을 위해서 내기라는 형태를 띠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바둑은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내기가 없어도 흥미진진한 놀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두뇌의 발달도 도와줄 수 있는 놀이인 것이니 그 얼마나 바람직한 놀이인가? 오죽하면, 각급 학교에서 정식 과목으로 가르치기까지 하고 있는가? 바둑 이외의 놀이는 언감생심, 택도 없는 일이 아니던가?

     

    바둑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한사군 무렵이라고 한다. 향가 원가(怨歌)는 신충(信忠)이 잠저(潛邸) 시의 효성왕(孝成王)과 바둑을 두었던 일과 관련된 내용의 노래이다. 어디 그뿐인가? 880년경에는 신라 최고의 대문장가 최치원이 노년에 해인사에서 바둑을 두었다고 하기도 하고, ?고려사? 「악지(樂志)를 보면, 고려 초기에 중국 상인 하두강(賀頭綱)이 내기바둑으로 예성강변의 한 아름다운 부인을 빼앗으니 그 남편이 슬피 울며 부른 노래가 있다고 하는데, 흔히 그 노래를 예성강곡(禮成江曲)전편이라고 하며, 그것이 바로 고려의 속악 가시리라고도 하지 않는가?

    지은이 이색(李穡:1328-1396)은 고려 말기의 문신학자로, 자는 영숙(穎叔), 호는 목은(牧隱)이다. 중국 원나라에 가서 과거에 급제하고, 귀국하여 우대언(右代言)과 대사성 따위를 지냈다. 고려 말의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조선 개국 후 태조가 여러 번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다. 저서에 ?목은시고(牧隱詩藁)?, ?목은문고(牧隱文藁)?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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