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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령전(南靈傳) / 이옥(李鈺)옛 이야기/고전 隨筆 2019. 2. 1. 11:55
남령전(南靈傳) / 이옥(李鈺)
남령(南靈)1)의 자는 연(烟)이다. 그의 선조에 담바고[淡巴菰]2)라는 자가 있어서 숭정(崇禎)3) 연간에 의술로써 알려져 일찍이 구변(九邊)4)에 두루 노닐며 수자리5) 살고 있는 변방 군사들의 상한(傷寒)6)을 다스려 심히 신효를 보았다. 그 공로로써 남평백(南平伯)이 되었더니 그 자손들이 드디어 성씨로 삼았다. 남령은 그 한 갈래였다.
사람됨이 체구는 단소(短小)하나 정치(精緻)하면서도 사나웠고, 거무틱틱하면서도 누런 얼굴빛에 성품은 매우 억세고 사나웠으며 병서를 익혀 화공(火攻)을 잘했다.
천군(天君)7)이 나라를 다스린 지 32년 여름 유월에 큰 장맛비가 내려 달이 넘도록 그치지를 않았다. 이에 영대(靈臺)8) 땅의 도적 추심(秋心)9)이 군사를 일으켜 반란을 꾀하여 격현(鬲縣)10)· 제주(齊州)11) 등지를 잇달아 함락시키니 방당(方塘)12)을 지킬 수가 없게 되었다. 천군을 몇 겁이나 에워싸서 그 한가운데[垓心]13)에서 곤경에 처하게 되자, 모든 장수들을 불러들여 구원하도록 명하였다.
황권(黃卷)14)이 은해(銀海)15)로부터 지름길로 구곡하(九曲河)16)로 넘어 들어오려 했으나 도적이 불을 놓아서 태우는 통에 황권이 미산(眉山)17)에서 웅크린 채18) 들어오지 못하고 말았다.
어떤 사람이 남령(南靈)을 장수로 삼을 만하다고 천거하니 천군이 이에 화정(火正)19) 벼슬의 여(黎)20)로 하여금 부절(符節)21)을 가지고 남령을 찾아뵙고 신화장군 평남후(神火將軍平南侯)로 삼아 화속(火速)히 싸움터로 가게 했다.
남령이 명령을 받들어 병부절(兵符節)22)을 차고서 군중(軍中)에 임해서 금대(金臺)23)에다가 봉수대를 설치하고 운당(篔簹)24) 골짜기의 구멍길을 따라 석성(石城)25)을 지나 화지(華池)26)를 건너고 인후관(咽喉關)27)을 넘어서 도적을 격현에서 만나 불살라 달리면서 영대 아래에까지 진군하여 적군과 더불어 크게 싸웠다. 불길은 사납고 바람은 사나워 연기 기운이 적의 요새 쪽으로 휘몰아치자 추심(秋心)은 불에 뛰어들어 스스로 불타서 죽고 남아 있는 무리들도 몽땅 항복해 버렸다.
천군이 대단히 기뻐해서 사신을 보내서 남령을 서초패왕(西楚霸王)28)으로 책봉케 한 후에 구석(九錫)29)을 더해 주었다. 그 책문(冊文)30)에서 일렀다.
‘지난 적에는 짐이 덕이 없어 스스로 뱃속의 근심을 끼쳤더니, 도적 추심(秋心)이 그 무리 장백발(長白髮)31)·몽불성(夢不成)32) 들과 더불어 크고 작은 고을들을 침식해 들어와 그 기세가 대단히 치열하고 성대했다. 마침내 그 칼날은 방의(防意)33)의 성채에까지 다다르고 화살은 신명(神明)34)의 집에까지 미치는 데에 이르렀지만, 수족과 같이 떠받들던 고을들도 서로 구원할 수 없었고 가장 측근에 있던 신하들조차도 스스로 힘쓸 길이 없어서 자고 일어나 나라 일을 생각하면 오직 위태하고 미약할 뿐이라서 경(卿)만을 의지하고 바랐던 바이오. …(중략)… 이에 서초패왕을 명하고 은 꽃잎을 새겨 넣은 철염(鐵奩)35) 한 개를 주어 경의 제택(第宅)36)을 삼고, 누런 기름종이로 된 갑(匣)37) 하나로 경의 의복으로 삼으며, 녹색 구슬 주머니 하나로 경의 절모(節旄)38)를 삼으며, 흰 널판으로 된 네모진 상자 하나로 경의 채읍(采邑)39)을 삼으며, 청동화로 하나로 경의 봉토(封土)를 삼으며, …(중략)…
남령은 비록 서초(西楚)의 봉함을 받았으나 그때 추심(秋心)의 무리인 우심(憂心)40)이 오히려 기해(氣海)41)에 숨어 매복해 있었으므로 남령이 자신의 나라로 가서 부임하는 것을 허치 않았다. 이에 남령은 조정에 벼슬하여 진향사(進香使)42), 각다사(榷茶使)43), 주천태수(酒泉太守)를 겸하여 권세가 일세를 휩쓸었다.’ …(중략)…
화사씨(花史氏)44)는 이르노라.
옛날 한모려(韓慕廬) 담(菼)45)이 남연(南烟)과 국생(麴生)46)으로 더불어 망형(忘形)47)의 벗을 삼았더니 어떤 사람이 묻기를, “두 사람을 겸하여 벗할 수 없다면 마땅히 어느 쪽을 버리겠소?” 하였더니, 한공이 속으로 깊이 생각하고 한참 있다가 말하기를, “둘 다 버릴 수 없겠지만 만약 부득이할 경우엔 국생을 버릴 수밖에 없겠소. 연(烟)에 이르러서는 죽을지언정 버릴 수가 없소.” 하였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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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령(南靈): 담배. 남쪽에서 들어온 신령스러운 풀이라고 ‘남령초(南靈草)’, ‘남초(南草)’라고 했으며, 근심을 잊게 해 준다고 해서 ‘망우초(忘憂草)’라고도 했다. 원래 ‘망우초(忘憂草)’는 ‘원추리(훤초[萱草])’를 말한다. 원추리는 꽃봉오리가 아기의 고추를 닮았다고 해서, 옛 사람들은 ‘머리에 원추리꽃을 꽂고 있으면 아들을 낳는다.’고 ‘의남화(宜男花)’라고도 하며 ‘어머니’를 상징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계시는 방을 ‘훤당(萱堂)’이라고도 한다.
2) 담바고[淡巴菰]: 담배. 원산지인 포르투갈 사람들이 ‘토바코(tobacco)’라 부른 데서 유래한다. 그것이 일본에 들어오면서 ‘타바코(タバコ)’로 바뀌었고, 다시 우리나라로 전래되면서 ‘담바고’로 불리었다가 ‘담배’가 되었다.
3) 숭정(崇禎): 중국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 의종(毅宗) 때의 연호(1628-1644). 명나라가 망한 뒤에도 조선은 청나라 연호를 쓰는 것을 꺼려 이 연호를 사용하였다.
4) 구변(九邊): 명대(明代)에는 북쪽 변방을 아홉 구역으로 나누었다.
5) 수자리=수(戍)자리=위수(衛戍): 국경을 지키던 일.
6) 상한(傷寒): 한(寒), 열(熱) 따위의 사기(邪氣: 요사스럽고 나쁜 기운. [한의학]사람의 몸에 병을 일으키는 여러 가지 외적 요인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인하여 생기는 병.
7) 천군(天君): 마음.
8) 영대(靈臺): 천군(天君)이 있는 곳.
9) 추심(秋心): ‘愁’의 파자(破字)로 근심을 가리킴.
10) 격현(鬲縣): ‘격(鬲)’은 가슴을 가리키는 ‘격(膈)’자를 의미함.
11) 제주(齊州): ‘제(齊)’는 배꼽을 뜻하는 ‘제(臍)’자를 의미함.
12) 방당(方塘): 주희(朱熹)가 어릴 적 글을 읽던 곳. 여기선 마음이 있는 곳.
13) 한가운데(垓心): 항우(項羽:項籍)가 해하(垓下)에서 에워싸였던 일과 연관시킨 듯함.
14) 황권(黃卷): 원래는 서적을 뜻하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담배.
15) 은해(銀海): 담뱃대의 흰 대통을 가리키는 말.
16) 구곡하(九曲河): 담배통과 물부리 사이의 담배설대.
17) 미산(眉山): 눈썹.
18) 웅크린 채: 눈썹을 찡그린 채.
19) 화정(火正): 고대에 불을 맡은 벼슬. 화관(火官).
20) 여(黎): ‘여(黎)’는 ‘여(藜)’로 명아주로 만든 부지깽이인 듯.
21)부절(符節): 예전에, 돌이나 대나무ㆍ옥 따위로 만들어 신표로 삼던 물건. 주로 사신들이 가지고 다녔으며 둘로 갈라서 하나는 조정에 보관하고 하나는 본인이 가지고 다니면서 신분의 증거로 사용하였다.
22)병부절(兵符節)=병부(兵符)=발병부(發兵符): 조선 시대에, 군대를 동원하는 표지로 쓰던 동글납작한 나무패. 한 면에 ‘발병(發兵)’이란 글자를 쓰고 또 다른 한 면에 ‘관찰사(觀察使)’, ‘절도사(節度使)’ 따위의 글자를 기록하였다. 가운데를 쪼개서 오른쪽은 그 책임자에게 주고 왼쪽은 임금이 가지고 있다가 군사를 동원할 때, 교서(敎書)와 함께 그 한 쪽을 내리면 지방관이 두 쪽을 맞추어 보고 틀림없다고 인정하면 군사를 동원하였다.
23) 금대(金臺): 여기서는 누런 구리로 된 대통.
24) 운당(篔簹): 왕대, 곧 담배설대.
25) 석성(石城): 물부리.
26) 화지(華池): 사람의 입 안.
27) 인후관(咽喉關): 목구멍.
28) 서초패왕(西楚霸王): 항적(項籍: 項羽)의 왕호(王號). 남초(南草)의 대구(對句)로서 서초(西楚)를 사용한 듯.
29) 구석(九錫): 공이 있는 신하에게 임금이 내리는 거마(車馬)․의복(衣服) 등 아홉 가지 은전(恩典).
30) 책문(冊文): 책문(策文)이라고도 하는 바, 임금이 조령(詔令)으로 신하를 봉(封)할 때 쓰는 문체의 하나.
31) 장백발(長白髮): 백발이 길어짐. 곧 수심(愁心)이 깊어짐.
32) 몽불성(夢不成): 잠을 못 이룸. 역시 근심으로 인한 것.
33) 방의(防意): 조심스러움.
34) 신명(神明): 정신.
35) 철염(鐵奩): 담배 서랍.
36) 제택(第宅): 살림집과 정자를 통틀어 이르는 말. 여기서는 담배 서랍.
37) 누런 기름종이로 된 갑(匣) 하나: ‘담배쌈지’를 가리킴.
38) 절모(節旄): 임금이 칙사(勅使)에게 내리는 깃대.
39) 채읍(采邑): 식읍(食邑).
40) 우심(憂心): 걱정.
41) 기해(氣海): 배꼽 아래 한 치쯤 되는 부분의 급소.
42) 진향사(進香使): 예불 담당관.
43) 각다사(榷茶使): 차[茶]에 대한 과세를 맡은 벼슬.
44) 화사씨(花史氏): ?매화외사(梅花外史)?의 이칭으로 ?사기?의 ‘태사공 왈(太史公曰)’을 본뜬 논평자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45) 담(菼): 담바고[淡巴菰]의 ‘淡’과 같은 음을 이름자로 이용했음.
46) 국생(麴生): 술.
47) 망형(忘形)의 벗을 삼았더니: 형체가 서로 다르므로 망형(忘形)이란 말을 썼음.
♣해설
이 글은 이옥(李鈺:1760-1812)이 지은 연대 미상의 가전체 작품이다.
지은이 이옥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기상(其相), 호는 문무자(文無子)·매사(梅史)·매암(梅庵) 등이다. 그는 성균관 유생 시절 정조의 명으로 글 한 편을 짓게 되는데 정조가 보기에 그것은 순정(純正)한 문체가 아니었다. 그래서 정조는 그에게 매일 10편씩 열흘 동안 시를 지어 바치라는 과제를 주기도 하고, 과거 응시 자격을 박탈해 보기도 하고, 충군(充軍)하는 엄벌을 내리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의 입신출세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사후 그의 아들이 생전의 친구였던 김려(金鑢)에게 부친의 글들을 가지고 가서 김려의 ?담정총서(藫庭叢書)? 권21. ?매화외사(梅花外史)?에 실려 전한다.
동명(同名)의 「남령전(南靈傳)」은 섬재(蟾齋) 이희로(李羲老:1760-1792)의 것도 있는데, 담배의 유래 및 전파, 유통 경로 등을 한·중·일의 역사성과 관련하여 서술한 작품으로 사용된 어구가 난삽(難澁)하고 길이도 상당히 길다.
☆ 참고 ☆
♣담배 예찬론자
*허준(許浚:1546-1615):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연초는 맵고 열이 있어 장담(腸覃)1), 한독(寒毒)2), 풍습(風濕)3)을 몰아내며 살충의 효과가 있다. …(중략)…냉(冷)한 음식에 체한 데 쓰면 신효하다.”
*이수광(李睟光:1563-1628): ?지봉유설(芝峰類說)?에서 “담배를 피우면 가래가 없어지고 기(氣)가 내리며 술이 깬다.”고 함.
*장유(張維:1587-1638): 어전회의에서도 담배를 피울 정도의 애연가. ?계곡만필(谿谷漫筆)?에서, “100년 뒤에는 반드시 차(茶)와 이익을 다툴 것”이라고 했다.
*정조(正祖:1752-1800): 신하들에게 내린 책문(策問)4)에서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어 담배의 이로움을 조목조목 개진하면서 담배를 적극 권장.
*문무자(文無子) 이옥(李鈺 : 1760-1813): 「남령전」뿐만 아니라, ?연경(煙經)?도 썼다.
♣담배 폐해론자
*김상용(金尙容:1561-1637): 청군이 강화성을 포위하자 김상용(호는 선원[仙源])은 남문에 올라가 화약에 불을 붙여 자결했다. 그런데 엉뚱한 소문이 돌았다. “김상용은 절의를 위해 죽은 것이 아니라 담뱃불을 붙이려다 실수로 화약에 불이 옮겨 붙어 폭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상용은 평소 흡연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위 장유(張維)가 흡연하는 것을 면전에서 질책할 만큼 흡연을 혐오했다.
*이익(李瀷:1681-1763):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담배의 해악을 10가지로 정리했다.
1.정신을 해하고
2.눈과 귀를 해하고
3.머리칼이 희어지고
4.얼굴이 창백해지고
5.이가 빠지고
6.살이 깎이고
7.노쇠해지고
8.냄새가 나고
9.재물을 소모하고
10.시간을 허비한다.
*안정복(安鼎福:1712-1791: 흡연과 관련된 풍기 문제를 거론하였다.
*이덕무(李德懋:1741-1793): ?사소절(士小節)?에서 “어린이에게 담배 피우기를 권하는 부형도 있으니, 어찌 그리도 천박한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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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담(腸覃): 여자의 배 속에 단단한 뭉치가 생겨서, 임신한 것처럼 점점 배가 불러오는 병.
2) 한독(寒毒): 한증(寒症)을 일으키는 병독(病毒).
3) 풍습(風濕): 풍사(風邪: 바람이 병의 원인으로 작용한 것)와 습사(濕邪: 습기가 병의 원인으로 작용한 것)가 겹친 것. 또는 이로 인하여 생긴 병증. 뼈마디가 쑤시고 켕기며 굽혔다 폈다 하기가 어렵다.
4) 책문(策問): 정치에 관한 계책을 물어서 답하게 하던 과거(科擧) 과목 ≒책(策)ㆍ책시(策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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