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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1. 세설신어 (世說新語)
    중국의 고전 /소설과 희곡 2019. 1. 26. 23:01

    311. 세설신어 (世說新語) / 저작자 유의경(劉義慶)

     

    444년의 책으로, ()나라와 진()나라의 정권 교체기에 강렬한 개성과 다양한 연기(演技)’로 살아간 인간 군상을 담고 있다. 지금 전하는 판본은 남조 송나라의 유의경이 편찬하고, 남조 양()나라의 유효표(劉孝標)가 내용을 보충해 주를 단 것이다. · 진 시대의 대표적 인물에 관한 일화를 모은 것으로, 옛날에는 세설(世說)또는 세설신서(世說新書)라고 했다. 덕행 · 언어 · 정사(政事) · 방정(方正) · 아량(雅量) · 식감(識鑑) 36편이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인 위진 시대(220~420)는 그 무렵 사대부 계급에게는 수난의 시대였다. 내부에서는 제위 찬탈 투쟁이 이어지고, 외부에서는 북방 이민족이 침입해 강남땅으로 민족 이동이 일어나는 등 그 혼란은 춘추전국시대의 전란과 다를 바 없었다. 새로 권력을 잡은 지배자는 여론 형성에 영향력을 발휘할 지식인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여러 수단을 구사하는 한편, 자신에게 반대하는 지식인을 철저히 감시했다. 일부 지식인들은 이런 억압에 굴하지 않고 늠름하게 살면서 때로는 직접 반항하기도 하고, 때로는 예법을 무시한 기이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죽림칠현(竹林七賢)1) 으로 대표되는 탈속의 삶은 흔들리는 세상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연기였다. 물론, 형태는 다르지만 권력자들도 연기력을 발휘해 지배권을 확립하려 했다.

     

    세설신어는 이러한 혼란의 시대에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해 강렬한 개성을 발휘했던 대표적 인물들의 에피소드를 모은 것으로, 위진 시대의 풍격을 구체적으로 전해 준다. 이 책에 실린 에피소드가 반드시 사실만은 아니겠지만, 많은 진실을 전하고 있다. 사료적 가치는 물론이고 문학 작품으로서도 완성도가 뛰어나다. 세련된 단문 형식으로 다양한 뉘앙스를 함축한 에피소드를 이야기로 만들었기 때문에 읽으면 읽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는 작품이다. 또한 여기에 묘사된 굴절되고 복잡한 인간 심리는 현대인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할 뿐 아니라 삶의 지혜를 전해 주기도 한다. 이 책이 후대 중국 사대부의 인격 형성에 영향을 끼친 것도 이 때문이다.

     

    1) 위나라와 진나라의 정권 교체기에 정치권력에는 등을 돌리고 죽림에 모여 거문고와 술을 즐기며 청담(淸談)으로 세월을 보낸 7명의 선비들로, 완적(阮籍) · 혜강(嵇康) · 산도(山濤) · 상수(向秀) · 유영(劉伶) · 완함(阮咸) · 왕융(王戎) 등이다. 이들은 개인주의적 · 무정부주의적인 노장 사상을 신봉하여, 지배 권력이 강요하는 유가적 질서나 형식적 예교(禮敎)를 조소하고 그 위선을 폭로하기 위해 상식에서 벗어난 언동을 감행했다.

     

     

     

     

    둥지가 뒤집어졌는데 어찌 알이 무사할까?

     

    공융(孔融)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조정의 안팎이 술렁거렸다. 그러나 공융의 아홉 살, 여덟 살 난 두 자식만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태연하게 놀기만 했다.

     

    죄는 내가 지은 것이니 자식들의 목숨은 살려 주시겠지요?”

     

    포리(捕吏)에게 공융이 그렇게 사정하는 말을 듣고 자식들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아버지, 둥지가 뒤집어졌는데 알이 무사할 수 있겠습니까?”

     

    이윽고 포리가 다시 찾아와서 두 아이를 잡아갔다. 언어」 〈2

     

     

    친해지고 싶으면 제 발로 오겠지요

     

    장현(張玄)과 왕건무(王建武)는 면식이 없는 사이였으나 범여장(范予章)을 찾아갔다가 우연히 서로 만나게 되었다. 장현은 옷매무새를 고치고 인사를 했지만, 왕건무는 잠시 쳐다봤을 뿐 상대하지 않았다. 장현은 불쾌해하며 금방 그 자리를 떴다. 범여장이 가지 말라고 말렸지만, 장현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범여장은 왕건무의 숙부였기 때문에, 나중에 조카를 엄하게 나무랐다.

     

    장현은 이 오()나라 땅의 명사 중의 명사가 아니더냐. 세상이 높이 평가하는 사람인데, 너는 왜 그렇게 무례하게 대했느냐?”

     

    왕건무는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장현이 저와 친하게 지내고 싶다면 제 발로 인사를 하러 오겠지요.”

     

    범여장이 하인을 보내 그 말을 전하자, 장현은 그길로 선물을 들고 왕건무를 만나러 갔다. 그래서 두 사람은 술잔을 주고받으며 담소를 나누었는데, 아무런 거리낌도 없어 보였다. 방정」 〈5

     

     

    기량의 우열

     

    환온(桓溫)1)은 사안(謝安)과 왕탄지(王坦之)를 죽이기 위해 무장한 병사를 숨겨놓고 많은 선비를 초청해 연회를 열었다. 당황한 왕탄지는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사안에게 물었다. 사안은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느긋하게 웃으며 왕탄지를 달랬다.

     

    겁먹지 말게. 진나라의 존망은 우리의 행동에 달렸다네.”

     

    두 사람은 환온 앞으로 나아갔다.

    왕탄지의 얼굴에는 겁먹은 기색이 역력했다. 한편, 사안은 너무도 태연자약하게 앞으로 나아가더니 병사들이 숨어 있는 돌계단 쪽을 보고, 낙하(洛下) 서생의 노래를 부르고, 도도하게 흐르는 홍류(洪流)를 노래했다. 환온은 그 기개에 감탄하여 병사들을 물리쳤다. 그때까지 왕탄지는 사안과 비슷한 명성을 누렸으나, 그 뒤로 우열이 명확히 가려졌다. 아량」 〈6

     

    1) 환온(桓溫, 312~ 373)은 중국 오호십육국시대(五胡十六國時代)의 동진(東晉)의 정치가, 군인, 재상. 자는 원자(元子). 군사적 성공을 거듭해 동진(東晉)을 좌지우지하며 황제의 자리까지 넘봤지만 주변의 저항으로 실패했다.

     

     

    간하기는 어렵고, 통솔하기는 쉽다

     

    사람들이 여남(汝南)의 진중거(陳仲擧)와 영천(潁川)의 이원례(李元禮)를 두고 어느 쪽이 더 훌륭한지, 두 사람의 공적과 덕행에 관해 논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거기에 채백개(蔡伯喈)가 나타나 결론을 내려 주었다.

     

    진중거는 윗사람을 간하는 데 뛰어나고, 이원례는 아랫사람을 통솔하는 데 뛰어나다. 윗사람을 간하기는 어렵고, 아랫사람을 통솔하기는 쉽다.”

     

    그래서 진중거는 3() 아래에 들었고, 이원례는 8() 위에 놓였다. 품조(品操)」 〈9

     

     

    흉노의 사자를 시험한 조조

     

    위나라 무제[武帝, 조조(曹操)]는 흉노의 사자가 찾아왔을 때, 자신의 풍채가 보잘것없어서 오랑캐에게 체면을 세우기 힘들 것이라 생각하고 신하 최계규(崔季珪)를 대신 내세운 뒤, 자신은 칼을 차고 어상(御牀)의 기둥 옆에 섰다. 그리고 예식이 끝난 다음에 사람을 시켜 흉노의 사자에게 물어보게 했다.

     

    위왕의 느낌이 어떠시오?”

     

    위왕의 풍채는 정말 당당했소이다. 그러나 어상의 기둥 옆에 칼을 차고 서 있던 그 사람이야말로 진짜 영웅일 것이오.”

     

    그 말을 전해 들은 무제는 추격대를 보내 그 사자를 죽여 버렸다. 용지(容止)」 〈14

          

    진인(眞人)의 휘파람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완적(阮籍)2) 이 입을 오므리고 휘파람을 불면 수백 보 떨어진 곳까지 그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어느 날, 나무꾼들 사이로 소문산(蘇門山) 깊은 곳에 진인[선인(仙人)]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퍼져 나갔다. 그 말을 듣고 완적이 가보니 과연 한 남자가 무릎을 끌어안고 바위 옆에 웅크리고 있었다. 완적은 바위를 타고 올라가 그 사람과 마주 보고 앉았다. 그런 다음 위로는 황제(黃帝)와 신농(神農)의 유현한 가르침에서 아래로는 하((() 3대의 성덕과 아름다움에 이르기까지, 태고의 정치를 담담하게 논하고 의견을 구했다. 상대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화제를 바꾸어, 이번에는 방외(方外)의 세계와 서신도기술(棲神導氣術)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그 반응을 살폈다. 그러나 상대는 눈길을 허공에 둔 채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완적은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 상대를 바라보면서 입을 오므리고 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남자는 비로소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한 번 더 해 보시게.”

     

    그래서 다시 한 번 하고 휘파람을 불었더니 왠지 마음이 가득 차는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산 중턱쯤 이르렀을 때, 갑자기 머리 위에서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피리나 큰북의 음률처럼 숲과 계곡에 메아리치는 휘파람 소리였다. 뒤를 돌아보니 아까 그 남자가 입을 오므리고 숨결을 뿜어내고 있었다. 서일(棲逸)」 〈18

    2) 완적(阮籍 210263), ()는 사종(嗣宗), 하남성(河南省) 개봉(開封) 사람이다. 성격은 오만(傲慢)하지만 마음이 넓고 술과 풍류(風流)를 즐긴 낭만주의자였다. 유가(儒家)의 명교(名敎)인 인의(仁義)를 반대하고 노장(老莊)의 무위(無爲)와 소요(逍遙)를 추구(追求)했다.

     

     

    나라도 잃고 가문도 잃어 껍질만 남은 몸입니다

     

    ()나라를 평정한 환선무(桓宣武, 환온)는 그때 사로잡은 이세(李勢, 촉나라 왕)의 여동생을 첩으로 삼아 서재에 살게 하면서 총애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안 환온의 본처인 공주는 칼을 들고 시녀 10여 명과 함께 이씨를 습격했다.

    바로 그때, 이씨는 머리카락을 손질하고 있었다. 풍성한 머리카락이 바닥에 퍼졌는데, 그 색깔이 마치 까만 옥 같았다. 칼을 들고 들어선 공주에게 그녀는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

     

    나라를 잃고 가문도 잃어 껍질만 남은 몸입니다. 여기서 죽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다행스러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공주는 얼굴을 붉히며 물러났다. 현원(賢緩)」 〈19



    어머니 상중에 고기와 술을 먹은 완적

     

    완적은 어머니의 상중에 진나라 문왕[文王, 사마소(司馬昭)]의 연회에 참석해서 고기도 먹고 술도 마셨다. 사예교위(司隸校尉) 하증(何曾)이 그 자리에서 문왕에게 고언을 했다.

     

    공은 효도를 기본으로 하여 천하를 다스려야 합니다. 그런데 완적이란 자는 상중임에도 불구하고 공공연히 연회석상에 나타나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고 있습니다. 저런 작자는 마땅히 해외로 추방해 예를 바로 세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자 문왕이 말했다.

     

    완적을 잘 보아라. 저렇게 여위지 않았느냐. 어찌하여 그대는 불쌍히 여기지 못하느냐? 그리고 병중에는 고기와 술을 먹어도 된다는 것이 예가 아니더냐.”

     

    문왕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동안에도 완적은 태연히 술과 음식을 먹고 있었다. 임탄(任誕)」 〈23

     

     

    위나라 무제의 반역자 다스리기

     

    어느 날, 위나라 무제가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누가 나를 해치려 하면 늘 이렇게 가슴이 술렁거려.”

     

    나중에 무제는 평소 눈여겨봐 두었던 심부름꾼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칼을 품고 내 방에 은밀히 숨어들어라. 나는 가슴이 술렁거린다 하고 준비를 하고 있다가 너를 잡아서 처형하겠다. 너는 입을 다물고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네 목숨에는 아무런 지장도 없을 테니까. 나중에 내가 큰 상을 내리마.”

     

    그렇게 해서 잡힌 남자는 무제의 말을 믿고 따랐다가 목이 잘리고 말았다.

     

    그 뒤로 반역하려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가휼(假譎)」 〈27

     

    책 속의 명문장

     

    登龍門 / 등용문

    용문(龍門)은 황하 상류에 있는 급류의 이름이다. 그 용문을 거슬러 올라가는 잉어는 용이 된다는 데에서 유래한 말로, 영달의 관문을 비유할 때 주로 쓰인다. - 덕행(德行)」 〈1


    蒲柳之質 / 포류지질

    냇버들은 가을이 오면 맨 먼저 지고, 소나무와 측백나무는 겨울이 오면 더 푸르다(蒲柳之姿望秋而落, 松栢之質經霜彌茂 포류지자망추이락, 송백지질경상미무).”

    포류는 냇버들로, 몸이 약한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동진(東晋)의 간문무(簡文武)를 모셨던 고열(顧悅) 이 한 말이다. - 언어(言語)」 〈2

          

    懸河口辯 / 현하구변

    큰 강의 물줄기를 중간에 뚝 잘라서 그냥 흘려보낸 듯이 격렬하고 명쾌한 언설을 형용한 말이다. 서진(西晉)의 왕연(王衍)이 곽상(郭象)의 뛰어난 언설을 두고 한 말이다. 현하웅변(懸河雄辯)이라고도 한다. - 상예(賞譽)」 〈8

          

    群鷄一鶴 / 군계일학

    사람들 가운데 특히 출중한 사람을 형용하는 말이다. - 용지」 〈14

          

    閨房之秀 / 규방지수

    규방은 부인이 기거하는 거실과 침실로, 재색을 겸비한 여인을 뜻한다. 동진의 이부상서(吏部尙書) 장현지(張玄之)의 여동생을 비유해 나온 말이다. - 현원」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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