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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전국책 (戰國策)중국의 고전 /역사와 정치 2019. 1. 8. 14:00
104. 전국책 (戰國策) / 저작자 유향(劉向)
BC 6년경에 만들어진 책으로, 전국시대에 대륙을 누비며 세 치 혀로 유세했던 책사의 변설과 권모술수를 기록했다. ‘전국책’은 이 책의 편자 유향이 지은 제목이며, ‘책(策)’이란 책략이라는 뜻이다. 총 23편.
주로 전국시대1) (BC 403~BC 221)에 활약한 세객(說客)의 언론 활동과 권모술수를 나라별로 기록한 역사 이야기로, 사마천이 『사기』를 집필할 때 이 책에서 많은 자료를 얻었다고 한다. 원저자는 모른다.
전한의 유향2) (BC 77~BC 6)이 궁중의 장서를 교정할 때, 『국책(國策)』, 『국사(國事)』, 『단장(短長)』, 『사어(事語)』, 『장서(長書)』, 『수서(脩書)』 등의 명칭으로 비밀리에 보존되어 있던 여러 책을 정리하고 중복을 없앤 뒤에 33권으로 편집해 『전국책』이라 했다.
1973년 겨울, 『전국책』의 성립에 관해 주목할 만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발굴이 끝난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 교외의 ‘마왕퇴(馬王堆)3) 3호 한묘(漢墓)’에서 백서(帛書, 문자를 기록한 비단)에 기록된 『전국책』의 원문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이후 그 전문이 『문물(文物)』 1975년 4월호에 발표되었고, 학자들이 그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오늘날의 『전국책』은 유향본 그대로가 아니다. 시대가 흐르면서 결손 부분이 생겼고, 그것을 송나라 때의 증공(曾鞏)이 복원한 것이다. 옛날에는 역사서로 분류했는데, 때로는 종횡가(縱橫家)에 넣기도 한다. 종횡가란 소진(蘇秦), 장의(張儀)의 합종연횡(合從連橫)에서 따온 이름으로, 전국시대에 외교 전략을 설파한 학파를 가리킨다. 물론 학파라고는 하지만 유가처럼 정연한 사상 체계를 갖춘 것은 아니며, 전편에 걸쳐 책사와 세객의 권모술수적인 언론과 행동으로 가득하다.
1)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BC 770년에 중국의 주(周)나라 제13대 평왕(平王)이 낙양(洛陽)으로 도읍을 옮긴 다음부터 진(秦)나라가 다시 중국을 통일하는 BC 221년까지의 동란의 시대를 일컫는다. 도읍을 낙양으로 옮긴 이후부터 주나라를 ‘동주(東周)’라고 부른 데서 ‘동주 시대’라고 하며, 이 시대는 다시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나뉘는데, BC 403년에 진나라가 한(韓) · 위(魏) · 조(趙)의 삼국으로 나누어지기 전을 ‘춘추시대’라 하고 그 이후를 ‘전국시대’라 한다.
춘추시대에는 봉건제의 붕괴로 주나라 왕조의 권위가 점차 떨어지면서 각지의 제후들이 패권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전란을 벌였다. 그 결과 주나라 초기에는 1,800개 정도였던 도시 국가가 13개국[노(魯) · 제(齊) · 진(晋) · 초(楚) · 진(秦) · 송(宋) · 위(衛) · 진(陳) · 채(蔡) · 조(曹) · 정(鄭) · 연(燕) · 오(吳)]으로 압축되었고, 그중에서 패권을 장악한 5개국[진(晋) · 제(齊) · 초(楚) · 오(吳) · 월(越)]을 춘추오패(春秋五覇)라고 한다.
BC 435년, 강력했던 대국 진(晋)나라에서 하극상이 일어나 한 · 위 · 조의 삼국으로 분리되면서 전국시대가 펼쳐졌다. 전국시대에는 이른바 ‘전국칠웅(戰國七雄)’이라 불리는 7개국[위에서 언급한 한(韓) · 위(魏) · 조(趙) 외에 진(秦) · 초(楚) · 연(燕) · 제(齊)를 말함]이 패권을 다툰다. 그 뒤 BC 221년에 부국강병을 위해 법치주의를 철저히 관철한 진나라의 시황제가 중국 최초의 통일 국가를 세웠다.
2) 유향(劉向): BC 77~BC 6. 전한(前漢) 시대의 학자로, 자는 자정(子政)이다. 궁중의 도서 교정(校訂)에 힘쓰고, 그 해제서(解題書)인 『별록(別錄)』을 편집했다. 저서에 『설원(說苑)』, 『신서(新序)』, 『열녀전(列女傳)』 등이 있다.
3) 1972년 중국 호남성(湖南省) 장사시(長沙市) 교외의 마왕퇴에서 발굴된 BC 2세기경 한(漢)나라 때의 무덤. 다양한 유물이 완벽한 상태로 발견됐다.
■ 토지를 빼앗기고 병사를 잃고 위기에 빠지다
제(齊)나라가 초(楚)나라를 도와 진(秦)나라를 공략하고, 곡옥(曲沃)을 빼앗았다. 그 뒤 진나라는 제나라에 복수를 꾀했으나 제나라와 초나라의 사이가 좋아서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이에 진나라 혜왕(惠王)은 재상 장의(張儀) 에게 대책을 세우게 했다.
“제나라에 복수를 하고 싶은데, 제나라는 초나라와 친밀하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한번 해 보겠습니다. 마차와 비용을 준비해 주십시오.”
장의는 남하해 초나라 회왕(懷王)을 설득했다.
“우리 군주는 누구보다 초왕께 호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인도 왕을 모시고 싶습니다. 우리 군주는 누구보다도 제왕을 미워하고, 소인 또한 제왕을 미워합니다. 얼마 전 우리 군주는 제왕에게 치욕을 당했습니다. 복수를 하고 싶지만, 귀국이 제나라와 친밀해 협력을 요청할 수도 없고, 소인도 왕을 모실 수가 없습니다. 청컨대 제나라와 국교를 끊어 주실 수는 없으신지요? 그 대신 우리 군주에게 청해 상어(商於) 땅 600리 사방을 헌상하겠습니다. 귀국이 손을 끊으면 제나라는 분명 약해질 것이고, 그러면 왕의 뜻대로 부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제나라를 약하게 하고 진나라에 은혜를 베풀면서 상어의 땅을 손에 넣게 되니 이것이야말로 일거삼득(一擧三得)이 아니겠습니까?”
초왕은 기분이 좋아져서 신하에게 말했다.
“상어의 땅 600리 사방을 손에 넣었도다.”
군신들은 입을 모아 축하했다. 그러나 늦게 나타난 진진(陳軫)이라는 자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래서 초왕이 물었다.
“병사 하나 움직이지 않고 한 명의 부상자도 내지 않은 채 상어를 손에 넣었다.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 다들 기뻐하는데, 왜 너만 홀로 입을 다물고 있느냐?”
진진이 말했다.
“상어 땅은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어이없는 화를 당하게 될 것이니 기뻐할 일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진나라가 우리나라를 두려워하는 것은 제나라와 손을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땅을 손에 넣지 않은 단계에서 제나라와 국교를 단절하면 우리나라는 고립되고 말 것입니다. 제나라가 우리를 두려워하는 것도 그때까지입니다. 그렇다고 제나라와 단교하기 전에 진나라가 땅을 넘겨줄 리 만무하며, 단교한 뒤에 땅을 요구하면 장의에게 당하는 꼴이 됩니다. 그리 되면 왕께서는 분노하시어 서쪽으로는 진나라와 충돌하고, 북쪽으로는 제나라와 다투게 될 것이니 결국 우리는 진나라와 제나라 양국의 공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일에는 빈틈이 없을 테니, 군소리하지 말고 잘 지켜만 보고 있거라.”
초왕은 제나라에 사신을 보내 국교를 끊었다. 그리고 그 사자가 귀국하기도 전에 또다시 절교를 통고했다.
진나라로 돌아간 장의는 제나라에 사자를 보내 은밀히 손을 잡고, 약속한 땅을 받기 위해 초나라에서 파견된 장군을 이런저런 병을 핑계로 만나지 않았다. 이를 보고받은 초왕은 “장의는 우리가 아직 제나라와 단교하지 않은 줄 아는 모양이야”라고 하면서 일부러 제나라에 용사(勇士)를 보내 국왕을 나무랐다. 장의는 초나라가 제나라와 완전히 단교한 것을 알고, 이윽고 초나라의 사자를 만났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6리의 땅을 가져가시오.”
사자가 따졌다.
“나는 600리라고 들었는데, 겨우 6리라니요?”
“나같이 비천한 신분의 사람이 어떻게 600리를 준다고 말할 수 있겠소?”
사자가 귀국해 이 같은 사실을 보고하자, 초왕은 화가 나서 진나라를 치려했다. 그때 진진이 알현을 요청했다.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말해 보아라.”
“진나라를 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 하나를 주고 진나라와 연합해 제나라를 쳐야 합니다. 진나라에게 준 것은 제나라에 빼앗아올 수 있으니 손해는 없을 것입니다. 군께서는 제나라와 단교하고, 진나라의 약속 위반을 무력으로 물으려 하십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 스스로 진나라와 제나라의 단결을 촉진하는 결과를 초래해 장차 초나라는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초왕은 진진의 말을 듣지 않고 병사를 일으켜 진나라를 쳤다. 이에 진나라는 제나라와 연합했고, 한(韓)나라까지 여기에 가담했다. 그 결과 초나라 군대는 두릉(杜陵)에서 크게 패했다.
결국 초나라는 토지와 병사를 잃었을 뿐 아니라 멸망의 위기에까지 몰렸다. 초왕이 진진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장의의 책략에 말려들었기 때문이다. 「진책(秦策)」
■ 뱀의 다리를 그리다 술잔을 빼앗기다
초나라의 대신 소양(昭陽)이 위나라 군대를 쳐부수고 대장을 죽인 뒤 8개의 성을 공략하더니, 이윽고 창 끝을 돌려 제나라로 향했다. 세객 진진이 제왕의 사자로서 소양을 만났다. 진진은 무릎을 꿇고 승전을 축하한 다음 자리에 앉았다.
“초나라에서는 적을 쳐부수고 대장을 죽이면 어떤 자리를 보장해 줍니까?”
“벼슬은 상주국(上柱國)이 될 것이고, 작위는 상집규(上執珪)가 될 테지요.”
“그보다 높은 자리는 있는지요?”
“영윤(令尹)뿐이지요.”
그러자 진진이 말했다.
“과연 영윤이라면 귀한 자리이지요. 그러나 영윤이 두 사람일 수야 없겠지요. 비유해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옛날 초나라의 어떤 가문에서 잔치를 벌일 일이 있어 가까운 사인(舍人)들에게 1개의 큰 잔에 술을 가득 따라 주었습니다. 이때 사인들은 이런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여러 사람이 마시기엔 부족하지만, 한 사람이 마시기엔 만족스러울 것이다. 그러니 땅 위에 뱀을 그리되 가장 먼저 그린 사람이 마시기로 하자’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하여 한 사람이 뱀을 먼저 그렸습니다. 그 사람은 왼손에 그 술잔을 쥐고 여전히 오른손으로 뱀을 그리면서 말했습니다. ‘아직 뱀 다리까지 그릴 여유가 있어.’ 그러나 그 다리를 미처 다 그리기도 전에 다른 사람이 뱀을 다 그리고는 술잔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뱀은 다리가 없네. 다리를 그리면 그건 뱀이 아니지’ 하고 말했습니다. 뱀 다리까지 그린 사람은 결국 술을 못 마시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장군께서 초나라의 대신이 되어 위나라를 공략하고 적장을 죽인 뒤 성을 8채나 빼앗았습니다. 나아가 그 기세를 타고 제나라까지 공격하려 하십니다. 제나라는 장군을 몹시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너무 과하면 파멸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고생해서 얻은 작위도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것이니, 그건 마치 뱀의 다리를 그리는 것과 같지 않겠습니까?”
소양은 진진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냥 물러났다. 「제책(齊策)」
■ 큰 고기도 물에서 벗어나면 벌레의 먹이에 지나지 않는다
정곽군(靖郭君)각주2) 이 자신의 영지인 설(薛) 땅에 성을 지으려 하자 세객들이 그것을 중지하라고 간했다. 이에 정곽군은 측근을 시켜 세객들의 출입을 금지했다. 그러자 제나라의 세객이 측근을 통해 면담을 요청하며 말을 전했다.
“세 마디만 하게 해 주십시오. 그 이상 말하면 가마에 삶겨 죽어도 좋습니다.”
정곽군은 그를 만나기로 했다. 남자는 잰걸음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해(海), 대(大), 어(魚).”
그러고는 다시 도망치듯이 달려가는 것이었다.
“잠깐!”
정곽군은 그를 불러 세웠다.
“저는 하찮게 목숨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괜찮다. 죽이지 않을 테니 어서 말해 보거라.”
“주군께서는 대어(大魚)에 대해 들어 보셨는지요? 너무 커서 그물로도 잡을 수 없고, 낚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큰 고기라 해도 물에서 벗어나면 벌레들의 먹이가 되고 맙니다. 제나라는 주군께 그런 물과 같습니다. 그 물만 있으면 설 땅에 성을 지을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제나라에 등을 돌리면 하늘까지 닿는 성을 짓는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과연 옳은 말일세.”
정곽군은 설에다 성을 짓지 않았다. 「제책」
■ 초나라 회왕과 측실을 놀린 책사 장의
장의는 초나라에 있을 때 빈궁했다. 그래서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짜증을 내며 돌아가겠다고 하자, 다음과 같이 달래며 위로했다.
“조금만 기다리게. 내가 초나라의 회왕을 만나 그대들을 잘 대접하라고 말할 테니까.”
그 무렵 초나라에는 남후(南后)와 정수(鄭袖)라는 측실이 회왕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이윽고 장의는 회왕을 만났으나 크게 환영받지 못하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신에게 용무가 없는 듯하니, 소신은 북쪽의 진(晋)나라 군주를 만나러 가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왕께서는 혹시 진나라에서 구하고 싶은 건 없으신지요?”
“우리 초나라에는 황금, 상아, 구슬, 무소 뿔 등 안 나는 게 없으니 뭘 더 구하겠는가?”
“왕께서는 미인을 좋아하지 않으신지요?”
“왜 그런 말을 하는가?”
“정(鄭)나라나 주나라의 여인은 눈썹을 그리고 길가에 서 있으면 선녀가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로 아름답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시골이라 그런 미인을 본 적이 없다네. 그런 여자라면 내 어찌 좋아하지 않겠는가?”
그러면서 회왕은 장의에게 보석을 주어 여행비용으로 쓰게 했다. 그 말을 전해들은 남후는 걱정이 되어 장의에게 심부름꾼을 보냈다.
“장군께서 진나라로 간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황금 1,000근을 드릴 테니 여비에 보태 쓰십시오.”
정수도 황금 500근을 보내왔다
장의는 회왕에게 작별 인사를 하며 말했다.
“천하의 관문은 막히기 쉬워 통과하기 어려우니 이다음에 언제쯤 만나 뵙게 될지 기약이 없습니다. 이별의 술잔이라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술잔을 내려 주지.”
왕은 술 한 잔을 주었다. 장의는 얼마 뒤 정중하게 예를 올리며 부탁했다.
“이 자리에 다른 사람은 없는지요? 왕께서 가장 총애하는 측실과 함께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왕은 남후와 정수를 불러 잔을 나누었다. 그때 갑자기 장의가 자세를 가다듬고 정중하게 절을 하며 말했다.
“소신은 왕께 죽을 죄를 지었나이다.”
“갑자기 그건 또 무슨 말이냐?”
“소신은 천하를 두루 둘러보았으나, 아직 이 두 분에 비길 만한 미인을 본 적이 없나이다. 그러므로 소신이 진나라에 가서 미인을 구해 오겠다는 말이 거짓말이 되고 말았나이다.”
“걱정할 것 없다. 과인도 진작 천하에 이 둘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는 없으리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초책(楚策)」
■ 무사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
진나라 필양(畢陽)의 후손 가운데 예양(豫讓)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는 진나라의 중신 범씨(范氏)와 중행씨(中行氏)를 섬겼으나 중용되지 못했다. 그 뒤 중신 지백(智伯)을 섬겼는데, 지백은 예양을 높이 평가했다.
이윽고 중신 한씨(韓氏), 위씨(魏氏), 조씨(趙氏)가 손을 잡고 지백을 멸망시키고 그 영지를 빼앗아 나눠 가졌다. 그중 조양자(趙襄子)는 지백을 얼마나 미워했던지, 그의 두개골을 변기로 사용했다.
예양은 산으로 도망쳐 길게 탄식하며 맹세했다.
“아, 무사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하는 법. 주군의 원한은 반드시 갚고야 말겠다.”
이리하여 예양은 이름을 바꾸고 감옥에 갔다 온 사람처럼 가장한 뒤, 미장이 신분으로 조양자의 저택에 들어가 측간의 벽을 칠하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측간에 들어가려다 이상한 느낌이 든 조양자가 벽에 칠을 하던 미장이를 잡아 자세히 살펴보니 예양이었다. 그가 들고 있는 흙손에는 칼날이 달려 있었다. 예양은 하는 수 없이 지백의 원한을 갚기 위해 들어왔다고 자백했다. 그러자 측근들이 그를 죽이려 했으나 조양자가 제지했다.
“그 사내는 의로운 사람이다. 내가 몸조심하면 될 일이지. 지백은 죽어서 후계자도 없었는데, 그를 위해 복수하려는 신하가 있었다니 놀랍구나. 그자야말로 천하의 현인이로다.”
그러고는 예양을 석방해 주었다.
이 일로 그냥 물러설 예양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작전을 바꾸어 나병 환자처럼 위장하기 위해 몸에 옻칠을 하고 수염을 깎고 눈썹을 민 다음 얼굴에 칼자국까지 내고 구걸을 하며 다녔다. 아내조차 남편인 줄 못 알아볼 지경이었다.
“모습은 남편과 너무 다르지만, 목소리만은 똑같아.”
아내가 그렇게 말하자 예양은 숯을 먹어 목소리마저 낼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그런 그를 보다 못한 친구가 말했다.
“자네 수법으로는 성공하기 어려울 게야. 그 마음은 잘 알겠지만 현명한 생각은 아닐세. 자네는 재능이 있으니 차라리 조양자를 섬기는 게 어떻겠나? 그는 반드시 자네를 아낄 것인즉, 그런 연후에 계획을 실행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이에 예양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자네 말은 옛 친구를 위해 새로 사귄 친구를 죽이고, 이전에 모시던 주군을 위해 새롭게 섬기는 주군을 죽이라는 말과 같지 않은가? 그것은 군신의 도리를 해치는 일이 아닌가? 그렇게 할 수는 없네.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은 군신의 도리를 밝히기 위해서라네. 난 결코 안이한 길을 가고 싶지 않네. 신하의 서약을 해 놓고서 그 주군을 죽이려 한다면, 처음부터 두 마음으로 섬기는 것과 같지 않은가?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도, 후세에 두 마음을 가지고 주군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를 알리기 위함일세.”
어느 날, 조양자가 외출을 하게 되었다. 예양은 그 행렬이 지나가는 다리 밑에 숨어 있었다. 조양자가 다리를 건너려 하는데 갑자기 말이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말이 놀라는 걸 보니 분명 예양이 이 부근에 있을 것이다.”
조양자가 그렇게 말하고 부하들을 풀어 예양을 찾아냈다. 조양자는 예양을 나무랐다.
“너는 예전에 범씨와 중행씨를 모시지 않았더냐? 그들을 멸망시킨 사람이 바로 지백이다. 너는 그 원수를 갚지 못할지언정 서약을 하고 지백을 섬겼다. 그런데 지백이 죽었다고 무슨 이유로 그 원수를 갚으려 한단 말이냐?”
“범씨와 중행씨를 섬겼을 때, 그 두 사람은 나를 중인(中人)으로 대우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도 중인으로 보답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백 님은 나를 국사(國士)로 대우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국사로서 은혜를 갚으려 하는 것입니다.”
조양자는 예양의 의로운 마음에 감동해 울며 탄식했다.
“아, 예양아, 너는 벌써 지백에게 할 일을 다 했다. 여태까지는 너를 관대히 봐주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구나. 각오를 하거라. 이제는 용서할 수 없다.”
조양자의 병사들이 예양을 둘러쌌다. 예양이 말했다.
“현명한 군주는 다른 사람의 절조와 도의를 가로막지 않고, 충신은 목숨을 던져 그 이름을 보전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당신은 한 번 나를 살려 주었습니다. 천하 사람들은 당신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나는 기꺼이 죽을 생각입니다. 다만 그 전에 당신의 옷이라도 베고 싶습니다. 바랄 수야 없는 일이겠지만, 그러면 여한이 없겠기에 내 진심을 털어놓는 것입니다.”
그의 말에 감동한 조양자는 측근에게 명령해 자신의 웃옷을 예양에게 건네주게 했다. 예양은 검을 빼 들고 3번 휘둘러 그 옷에 흠집을 냈다.
“이것으로 지백 님께 보답하게 되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자결했다. 예양이 죽자 조나라 사람들은 모두 그를 위해 슬피 울었다.
「조책(趙策)」
■ 남쪽의 초나라를 치려 하면서 북쪽으로 가는 것과 같다
위(魏)나라의 안리왕(安釐王)이 초나라의 수도 한단(邯鄲)을 치려 했을 때의 일이다. 세객 계량(季梁)이 그 소식을 듣고 여행 중에 급히 돌아와 안리왕에게 알현을 청했다.
“방금 돌아오는 길에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마차를 북쪽으로 달리면서 초나라로 갈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초나라로 가는데 왜 반대쪽인 북쪽으로 가느냐’고 묻자, 그는 ‘정말 잘 달리는 말이거든요’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좋은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길을 잘못 든 것 같다’고 했더니, 남자는 ‘여비도 충분하거든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비가 많아서 좋겠지만 길을 잘못 든 것 같다’고 다시 말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아주 훌륭한 마부를 데리고 있거든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좋은 조건을 갖추었으니 더욱더 초나라에서 멀어질 것입니다. 지금 주군께서는 패왕이 되기 위해 천하의 인심을 얻으려 하고 계십니다. 강한 군사력을 믿고 한단을 공략해 영토를 넓히고 이름을 날리려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함부로 움직이면 그만큼 패업에서 멀어질 것입니다. 남쪽의 초나라로 가려 하면서 북쪽으로 달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위책(魏策)」
■ 어부지리(漁夫之利)
조나라가 연(燕)나라를 치려 하자 소대(蘇大)가 연나라를 위해 조나라의 혜왕(惠王)을 설득하려고 이렇게 말했다.
“오늘 소신이 역수(易水) 근처를 지나가는데, 마침 큰 조개가 물에서 나와 햇볕을 쬐고 있었습니다. 그때 황새 한 마리가 날아와서 조갯살을 쪼아 먹으려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조개가 껍데기를 닫아 황새의 부리를 꽉 물어 버렸습니다. 황새가 말했습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비가 안 오면 넌 죽을 거야.’ 조개가 말했습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내 입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면 너도 죽을 거야.’ 이러면서 어느 쪽도 놓아주려 하지 않았는데, 마침 지나가던 어부가 그 둘을 모두 잡아 버렸습니다. 지금 조나라는 연나라를 치려 하는데, 두 나라가 오래 싸우면 두 나라 백성들은 지쳐 버릴 것입니다. 그때 강력한 진(秦)나라가 그 어부처럼 두 나라를 단번에 먹어 치울 것입니다. 왕께서는 이 같은 일을 굽어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혜왕은 그 말을 듣고 연나라를 치려던 계획을 접었다. 「연책(燕策)」
■ 곽외를 만나 천하의 현자를 불러들이다
자지(子之)의 난으로 혼란에 빠진 연나라의 어려움을 수습하고 왕위에 오른 소왕(昭王)은, 내란을 틈타 침략했던 제나라에 보복하기 위해 재물을 마련하고 겸허한 태도로 천하의 현자를 불러들이고 있었다.
소왕은 먼저 곽외(郭隗) 선생을 만났다.
“제나라는 우리나라의 내란에 편승해 기습 공격을 가했다. 과인은 이 상태로는 제나라에 복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현자를 등용해 선왕의 수치를 씻는 것이 과인의 비원이다. 우리가 거국적으로 복수를 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지 말해 보라.”
“제왕의 기량을 가진 사람은 좋은 스승을 모셔 국정을 의논합니다. 왕의 기량을 가진 사람은 어진 친구를 구해 국정을 의논하고, 패자(覇者)의 기량을 가진 사람은 의지할 만한 신하를 두어 국정을 의논하며, 나라를 망하게 할 군주는 턱짓으로 부릴 수 있는 하찮은 인물과 함께 노는 법입니다. 예의를 다해 상대를 받들고 겸허하게 가르침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보다 100배나 뛰어난 인물이 찾아올 것입니다. 상대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보다 10배는 뛰어난 인물이 찾아올 것입니다. 상대와 대등하게 대화를 나누면, 자신과 비슷한 인물이 찾아올 것입니다. 책상에 몸을 기댄 채 지팡이를 짚고 곁눈질로 지시를 내리면, 소인들이 모일 것입니다. 노골적으로 고함을 지르고 나무라면, 비천한 인간이 모일 것입니다. 이것이 인재를 모으는 상식입니다. 지금 널리 국내의 인재를 가려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소문이 퍼지면 천하의 인재가 앞을 다투어 모여들 것입니다.”
“그럼 누구의 가르침을 받으면 좋겠는가?”
“소신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옛날에 어느 왕이 천금을 들여 가며 천리마를 구했으나 3년이 지나도록 손에 넣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한 측근이 나서서 자신이 찾아오겠다고 자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왕은 그 사람에게 맡겼습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그 남자는 천리마가 있는 곳을 찾아내 급히 가 보았으나 벌써 말은 죽고 없었습니다. 남자는 말의 뼈를 500금을 주고 사서 돌아와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왕은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살아 있는 말이야. 죽은 말에게 500금이나 내는 바보가 어디 있단 말이냐!’ 그러자 남자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죽은 말을 500금이나 주고 샀으니 살아 있는 말이라면 더 높은 가격으로 살 것이라는 소문이 퍼져 나갈 것입니다. 곧 온 나라의 말이 모여들 것입니다.’ 그 뒤 왕은 과연 1년도 되지 않아 천리마를 세 필이나 구할 수 있었습니다. 왕께서 진실로 인재를 구하신다면, 먼저 소인부터 등용해 일을 시작하시지요. 저 같은 사람도 정중한 대우를 받는다는 소문이 퍼지면, 천 리를 멀다 하지 않고 인재들이 모여들 것입니다.”
그 말에 따라 소왕은 곽외를 극진히 대접했다. 그 이후로 위나라에서는 악의(樂毅)각주3) 가, 제나라에서는 추연(鄒衍)각주4) 이, 조나라에서는 극신(劇辛)이 모여들었다. 그렇게 하여 연나라는 제나라를 쳐서 복수에 성공했다. 「연책」
□ 책 속의 명문장
遠交近攻 / 원교근공
멀리 있는 나라와는 동맹을 맺고 가까이 있는 나라를 공략한다는 외교 전략으로, 범수(范睢)가 진(秦)나라의 소왕에게 헌책한 전략이다. 진나라는 이 전략을 채택했고, 이윽고 시황제 때 중국을 통일했다.
合從連橫 / 합종연횡
전국시대에 고안된 합종과 연횡이라는 두 가지 외교 전략이다. 전국시대의 세력 판도를 보면, 서쪽으로는 진(秦)나라, 동으로는 제(齊)나라, 북으로는 연(燕)나라, 남으로는 초(楚)나라, 그리고 중원 지역에는 한(韓)나라 · 위(魏)나라 · 조(趙)나라 3국이 있었다. 합종이란 제나라 이하 6개국이 종으로 동맹을 맺어 서쪽의 강국 진나라에 대항하자는 전략이다. 연횡이란 서쪽의 강국 진나라와 다른 6개국이 손을 잡는 전략이었다. 합종책은 소진(蘇秦)이 주도했고, 연횡책은 장의(張儀)가 주도했다.
騏驥老劣駑馬 / 기기로열노마
천리마도 늙으면 노마만도 못하다는 말로,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도 늙으면 평범한 사람에게도 못 미친다는 뜻이다. 합종책을 추진한 소진이 제나라의 민왕(閔王)에게 한 말이다.
行百里者 半於九十 / 행백리자 반어구십
‘100리를 가려는 자는 90리를 그 반으로 친다.’ 무언가를 성취할 때 중요한 것은 마무리임을 지적한 말이다. 자기 나라의 힘을 과신한 진나라 무왕(武王)에게 가신이 한 말이다.
轉禍爲福 / 전화위복
소진이 제의 선왕(宣王)에게 한 유명한 말로, 악화된 국면을 타개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壯士一去兮不復還 / 장사일거혜불복환
‘장사는 한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연나라의 태자 단(丹)의 의뢰를 받아 진나라 왕 정(政)을 암살하기 위해 장도에 오른 자객 형가(荊軻)가 역수(易水)에서 친구 고점리(高漸離)의 축(비파의 일종) 음률에 맞춰 부른 노래에서 나온 말이다. 결사의 마음으로 장도에 오르는 남자의 시로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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