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 卷三 覇王의 길 2장 宋義를 베고 솥과 시루를 깨다(1) 초한지Warehouse/이문열 초한지 2019. 1. 3. 09:26
진(秦) 2세 황제 2년 윤(閏)9월 초나라 상장군 송의는 항우를 차장(次將), 범증을 말장(末將)으로 데리고 군사 5만과 함께 거록(鉅鹿)을 구원하러 팽성을 떠났다. 하지만 초군(楚軍)의 장수는 거의가 항량이 거두어들인 이들이었으며 개중에는 계포나 종이매, 환초, 용저 같이 이미 항우의 심복이 된 이들도 있었다. 군사도 5만이라고는 하지만 대개는 유민들을 급하게 끌어 모아 머릿수만 채운 터라, 알맹이가 되는 것은 역시 항우가 이끌고 있는 강동병(江東兵)이었다. 따라서 진중이 마냥 조용할 수만은 없었다.
“회왕이 어찌 이럴 수가 있소? 양치기로 늙어갈 촌뜨기를 왕으로 세운 게 누군데 우리 항(項)장군을 이렇게 푸대접할 수 있단 말이오? 무신군(武臣君)께서 이 꼴을 보신다면 지하에서 통곡하실 것이요!”
저희 패거리만 모이자 종이매가 먼저 그렇게 투덜거렸고, 환초와 용저도 거들었다.
“송의 제까짓 게 뭘 안다고, 여기저기서 한 두 마디 귀동냥한 것으로 무슨 대단한 병가(兵家)행세를 하고 있으니….”
“비렁뱅이 떼 같은 식솔들 챙기기에 바쁜 늙은 책상물림 손에 우리 목숨이 매이게 되었으니 우리가 어느 구덩이에 묻히게 될지 실로 걱정이요.”
하지만 항우 자신은 태산처럼 침착하고 깊은 바다처럼 조용하였다.
“왕명이니 신하된 자로서는 따를 뿐이오, 또 상장군이 모자란 데가 있으면 마땅히 우리가 채워 나가야할 것이외다.”
그러면서 더는 불평하지 못하게 그들을 단속했다. 성급과 고집, 그리고 격정으로 특징 지워지는 항우의 성격은 어쩌면 그의 정치적 패배 때문에 더욱 커진 뒷날의 폄하(貶下)일런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항우도 그 예사 아닌 참을성 못지않게 깊은 헤아림을 지니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내가 지금 들고일어난다 해도 송의를 죽이고 회왕을 억눌러 병권(兵權)을 되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범증처럼 옛 초나라 왕실에 깊은 충성심을 품고 있는 이들이나 패공 유방과 당양군(當陽君) 경포, 여신(呂信), 포장군(蒲將軍) 같이 정통성이나 전통적인 권위에 기울 수밖에 없는 별장(別將)들을 달랠 길이 없다. 그게 언제일지 모르지만 곪은 종기가 터지듯 저들의 악과 어리석음이 무르익을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한다. 장졸들 모두 내가 일어나 주기를 간절히 기다릴 때까지.)
항우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말없이 송의를 따랐다.
그런데 실로 알 수 없는 것은 상장군 송의였다. 5만 군사를 이끌고 기세 좋게 팽성을 나선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뒤가 이상했다. 며칠 휘몰아 대듯하여 거록까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안양(安陽)에 이르더니, 거기에 진채를 내리게 하고 더는 움직일 줄 몰랐다. 그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마흔 여섯 날이나 이어졌다.
그 사이 2세 황제 2년 윤 9월도 가고 2세 황제 3년이 되었다. 정월인 시월도 다해가는 어느 날 항우가 마침내 상장군 송의의 군막을 찾아가 말했다.
“내가 듣기로 진나라 군사는 조왕(趙王) 헐(歇)과 그 승상 장이(張耳)를 거록성에 몰아넣고 에워싼 지 벌써 여러 날이 되었다고 합니다. 상장군께서는 장졸을 재촉해 강을 건너 하루 빨리 거록으로 가야합니다. 가서 우리 초나라는 바깥에서 치고 조나라는 안에서 호응하면 진군(秦軍)을 반드시 무찌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는 항우의 말뜻은 강해도 목소리는 공손하기만 했다. 송의가 병법과 책략은 혼자 다 안다는 듯 받았다.
“그렇지 않소. 무릇 소 등을 쳐서 등에[1]를 죽일 수 는 있지만 이[2蝨]를 죽일 수는 없소. 비유컨대 진나라가 등에라면 장함은 이 같은 자이니, 크게 힘을 써서 진나라를 쳐 없애야지 조나라를 구하기 위해 장함 따위와 급하게 싸워서는 아니 된다는 뜻이오. 이제 진나라가 조나라를 치고 있는데, 설령 진나라가 이긴다 해도 우리는 그들이 지친 틈을 탈수 있을 것이요. 또 진나라가 이기지 못할 때는 우리가 북을 울리며 서쪽으로 쳐들어가면 반드시 진나라를 우려 뺄 수 있을 것이외다. 따라서 지금은 먼저 진나라와 조나라가 싸우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계책이 될 것이오. 장군의 충심을 내 모르는 바 아니지만, 너무 걱정 마시오. 갑옷투구 차림에 무기를 잡고 싸움터에서 적과 맞붙는 일은 내가 장군보다 못할 것이나, 앉아서 계책을 베푸는 일은 장군이 나보다 못할 것이오.”
송의는 그렇게 좋은 말로 항우를 물리쳤으나 돌아서니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엄한 군령으로 항우의 기를 꺾으려 들었다.
“근래 군중(軍中)의 기강이 해이해져 상하(上下)가 바로 서지 못하고 명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사납기가 호랑이 같고, 제멋대로 굴기가 양(羊) 같으며, 탐욕스럽기가 승냥이 같고, 제 뜻만 우겨 부릴 수 없는 자는 모두 목을 베리라!”
그런데 송의가 그렇게 억지를 부려가며 안양에서 머뭇거려야 하는 데는 다른 내막이 있었다. 바로 고릉군 현(顯)을 사이에 둔 제(齊)나라와의 뒷거래 때문이었다.
고릉군 현은 사신으로 제나라와 초나라를 오락가락하면서 누구보다도 초나라의 내막을 잘 알게 되었다. 내란을 겪고 있는 제나라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초나라의 잠재력을 실감하였고, 항량과 오중(吳中)의 호걸들로부터 송의와 초나라의 구 귀족집단에게로의 급속한 권력이전도 가까이에서 보았다.
(우리 제나라가 진나라에 맞서 견딜 수 있는 계책은 초나라의 도움을 받는 것뿐이다. 그리고 초나라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이 송의란 책략가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다. 먼저 이 자를 구워삶을 길을 알아보자.)
그렇게 마음을 정한 고릉군 현은 어느 날 호젓한 자리에 마주앉게 되었을 때 슬쩍 송의의 속을 떠보았다.
“초나라와 제나라가 어떻게 맺어지면 한 몸처럼 힘을 합쳐 진나라에 맞설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송의가 기다린 듯 대답했다.
“그야 옛적 합종(合縱)의 역사를 더듬어보면 되지요. 소진이 육국(六國)의 재상을 겸할 때가 육국의 합종이 가장 잘 이루어질 때가 아니었습니까?”
“하지만 옛날과는 달리 지금은 육국이 나라로서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고, 그 사이에는 또 장함이 거느린 진의 대군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설령 소진이 다시 난다고 한들 어떻게 여러 나라의 재상을 겸할 수 있겠습니까?”
고릉군 현이 다시 그렇게 묻자 송의가 주름진 얼굴에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실은 내게 양(襄)이란 아들이 있는데 그 재주가 자못 쓸만합니다. 제나라가 그 아이를 데려다가 무겁게 쓰면, 그 아이가 비록 나와 한 몸은 아니라 하더라도 제나라와 우리 초나라는 한 재상이 다스리는 거나 다름없을 것입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고릉군 현은 은근히 분하기까지 했다. 송의가 아무리 크고 힘센 나라의 실권자라지만, 이건 아들을 보내 남의 나라의 내정(內政)까지 주무르겠다는 것이나 진배없지 않은가.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꼭 그렇지도 않았다.
(제 딴에는 아들을 보내 우리 제나라를 어찌해보려는 수작인지 모르지만, 우리 제나라로 보면 오히려 좋은 인질을 잡게 된 것이나 다름없을 수도 있다. 아들이 제나라 조정에 와 있는 한 저는 싫어도 제나라를 위해 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좋다. 그리해보자. 송의가 초나라를 돌보지 않고 다만 우리 제나라를 위하여 왕을 움직여준다면 그 아들 송양(宋襄)에게 무슨 자린들 얻어주지 못하겠는가.)
그렇게 마음을 바꾼 고릉군 현은 곧 송의와 제나라 사이에 다리를 놓기 시작했다. 제나라의 실권을 잡고 있는 재상 전영(田榮)과 대장군 전횡(田橫)에게 먼저 그 일을 알려 의논을 맞춘 다음 제왕(齊王) 전불(田불)에게도 알려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송양에게 내릴 벼슬을 정하는 일이 쉽지 않은데다 사자가 오가는 길이 멀어, 팽성에서 시작된 그 뒷거래는 송의가 안양에 군사를 머물게 한 뒤로도 달포를 더 끌게 되었다.
그러다가 제나라가 마침내 송양에게 재상자리를 내주며 부른 것은 안양에 머문 지 쉰 날을 넘긴 뒤였다. 송의는 몸소 무염(無鹽)까지 가서 제나라 사신과 아들을 전송하며 크게 잔치를 열었다. 그러나 때는 윤달이 낀 해의 시월 하순이라 날이 차가운데 비까지 퍼부었다. 거기다가 싸움도 없이 한곳에 오래 머문 바람에 그 무렵에는 군량마저 넉넉하지 못했다.
제대로 먹지 못한데다 추위에까지 떨며, 술과 고기로 흥청거리는 잔치를 지켜보게 되니 사졸들의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항우가 더는 참지 않고 소리 높여 송의를 나무랐다.
“죽을힘을 다해 진나라를 쳐야할 이 때 일없이 한곳에 오래 머물며 움직일 줄 모른다. 흉년이 들어 백성들은 궁핍하고, 사졸들은 나물과 콩으로도 배를 채우지 못하며, 진중에는 군량이 없는데, 술을 마시며 크게 잔치나 벌인다. 군사를 이끌고 강을 건너 조나라 군량을 먹으며 조나라와 힘을 합쳐 진나라를 치려고 하지는 않고, 그저 말로만 적이 지친 틈을 타겠다고 떠들어댄다. 무릇 진나라의 강함을 들어 새로 생긴 조나라를 치면 그 형세로는 조나라가 질게 뻔하다. 그래서 조나라는 망하고 진나라는 더욱 강해진 뒤에 틈을 타기는 무슨 틈을 탄다는 말인가!
또 우리 초나라 군사는 방금 정도(定陶)에서 크게 진 뒤라 대왕께서는 앉아 계시어도 그 자리가 편치 못하실 지경이다. 그런 대왕께서 온 나라의 병사를 쓸어 모아 모두 상장군에게 맡기셨으니 나라의 안위(安危)가 실로 이번 싸움에 달려 있다. 그런데도 이제 사졸들은 돌보지 않고 사사로운 정만을 따르니 이는 결코 충심으로 나라를 지키려는 신하가 아니다!”
송의에게 들으라고 하기보다는 장졸들에게 외치는 소리였다. 듣고 난 장졸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지간한 범증조차도 송의의 군막을 향해 불길이 뚝뚝 듣는 듯한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항우는 그래도 며칠을 더 기다리다가 손을 썼다.
항우가 상장군 송의를 죽인 것은 2세 황제 3년 동지 달 초순이었다. 이제 때가 충분히 무르익었다 싶자 항우는 새벽같이 보검을 차고 송의의 군막을 찾아갔다. 막 잠자리에서 깨어난 송의가 뭔가 심상찮은 느낌으로 가슴 섬뜩해하며 항우에게 찾아온 까닭을 물으려는데, 항우가 벼락같이 소리쳤다.
“내 대왕의 명을 받들어 나라를 저버린 간적(奸賊)을 죽인다!”
이어 칼빛이 번쩍하더니 송의의 머리가 그 어깨 위에서 떨어졌다. 명색 상장군의 군막이라 안팎에 사람이 없었던 게 아니었으나, 차장(次將)인 항우가 갑작스레 손을 쓴 것이라 송의를 구하기는커녕 그를 위해 비명조차 제대로 질러보지 못했다.
'Warehouse > 이문열 초한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79> 卷三 覇王의 길 2장 宋義를 베고 솥과 시루를 깨다(3) 초한지 (0) 2019.01.03 78> 卷三 覇王의 길 2장 宋義를 베고 솥과 시루를 깨다(2) 초한지 (0) 2019.01.03 76> 卷三 覇王의 길 1장 武信君은 죽고(4) 초한지 (0) 2019.01.03 75> 卷三 覇王의 길 1장 武信君은 죽고(3) 초한지 (0) 2019.01.03 74> 卷三 覇王의 길 1장 武信君은 죽고(2) 초한지 (0) 2019.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