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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동(於于同) 성현(成俔)옛 이야기/고전 隨筆 2019. 1. 2. 22:47
어우동(於于同) 성현(成俔)
어우동1)은 지승문(知承文) 박 선생2)의 딸이다. 그녀는 집에 돈이 많고 자색이 있었으나, 성품이 방탕하고 바르지 못하여 종실(宗室) 태강수(泰江守)3)의 아내가 된 뒤에도 변함이 없었다.
그녀는 어느 날 나이 젊고 훤칠한 장인(匠人)을 불러 은그릇을 만들었다. 그리고 매양 남편이 나가고 나면 계집종의 옷을 입고 장인의 옆에 앉아서 그릇 만드는 정묘한 솜씨를 칭찬하더니, 드디어는 내실로 이끌어 들여 날마다 마음대로 음탕한 짓을 하면서, 남편이 돌아오면 몰래 숨기곤 하였다. 마침내는 남편도 그 사정을 알아차리고 어우동을 내쫓아 버렸다. 이후 그녀의 행동은 거리낌이 없었다. 그녀의 계집종도 역시 예뻐서 매양 저녁이면 옷을 단장하고 거리에 나가서 헌칠한 소년을 이끌어 들여 여주인의 방에 들여 주고, 저는 또 다른 소년을 끌어들여 함께 자기를 매일처럼 하였다. 꽃피고 달 밝은 저녁이면 정욕을 참지 못하여 둘이서 도성 안을 돌아다니다가 사람에게 끌리게 되면 제 집에서는 어디 갔는지도 모르는 채로 새벽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길가에 집까지 얻어서 오가는 사람을 점찍곤 했다.
“모(某)는 나이가 젊고 모는 코가 커서 주인께 바칠 만합니다.”
계집종이 말하면 그녀도,
“모는 내가 맡고 모는 네게 주리라.”
실없는 말로 희롱하여 지껄이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녀는 종실 방산수(方山守)와도 사통하였는데, 그는 젊고 호탕하여 시(詩)를 지을 줄 알므로, 그녀가 이를 사랑하여 자기 집에 맞아들여 부부처럼 지냈다. 하루는 그가 그녀의 집에 가니 그녀는 마침 봄놀이를 나가고 돌아오지 않았는데, 다만 소매 붉은 적삼만이 벽 위에 걸렸기에, 그는 시를 지어 쓰기를,
물시계는 또옥또옥 야기가 맑은데 / 玉漏丁東夜氣淸
흰 구름 높은 달빛이 분명하도다. / 白雲高捲月分明
한가로운 방은 조용한데 향기가 남아 있어 / 閒房寂謐餘香在
이런 듯 꿈속의 정을 그리겠구나. / 可寫如今夢裏情
라 하였다.
그 외에 조관(朝官)·유생(儒生)으로서 나이 젊고 무뢰한 자를 맞아 음행하지 않음이 없으니, 조정에서 이를 알고 국문하여, 고문을 받고, 폄직되고, 먼 곳으로 귀양 간 사람이 수십 명이었고, 죄상이 드러나지 않아서 면한 자들도 또한 많았다. 의금부에서 그녀의 죄를 아뢰어 재추(宰樞)4)에게 명하여 의논하게 하니, 모두들, “법으로서 죽일 수는 없고 먼 곳으로 귀양 보냄이 합당하다.” 하였다.
그러나 임금은 풍속을 바로잡고자 하여 형(刑)에 처했는데, 옥에서 나오자 계집종이 수레에 올라와 그녀의 허리를 껴안고 하는 말이,
“주인께서는 넋을 잃지 마소서. 이번 일이 없었다면 이 일보다 더 큰 일이 생겼을지 어찌 알겠습니까?” 하니, 듣는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여자가 행실이 더러워 풍속을 더럽혔으나 양가(良家)의 딸로서 극형을 받게 되니 길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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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우동(於于同):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어을우동(於乙于同)이라고 하였다. 타고난 미모와 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2 지승문(知承文) 박 선생: ‘지승문(知承文)’이라 함은 ‘승문원지사(承文院知事)’를 줄여서 일컫는 말이다. 승문원은 조선시대 외국과의 외교문서를 관장 하던 기관으로, 지사(知事)는 정3품의 고위직이다. 박 선생이란 ‘박윤창 (朴允昌)’을 말한다. 그런데 박윤창에 관한 기록은 족보에서조차 빼어 버렸는지 본관을 비롯하여 일체 찾아볼 수가 없다. 어머니 정씨(鄭氏)도 행실이 바르지 못했다고 한다.
3) 종실(宗室) 태강수(泰江守): 태강수(泰江守) 이동(李仝)은 효령대군의 손자다. 번역문에서는 태강 군수로 되어 있으나 이는 태강수를 태강의 군수로 잘못 알고 번역한 때문인 듯하다. 방산수(方山守) 이난(李瀾)의 경우도 같다.
4) 재추(宰樞): 재부(宰府: 육조를 지휘하면서 국정을 통령하는 의정부)의 재신(宰臣)과 중추원(中樞院: 왕명 출납과 숙위[宿衛]·군사기무를 담당하던 관청)의 추신(樞臣)을 아울러 이르는 말.
♣해설
이 글은 성현(成俔:1439-1504)의 "용재총화(慵齋叢話)" 제5권에 나오는 글인데, "용재총화(慵齋叢話)"는 "대동야승(大東野乘)" 속에 들어 있다. "대동야승(大東野乘)"의 ‘대동(大東)’은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말이요, ‘야승’의 ‘승(乘)’은 사승(史乘)을 말한다. 곧 ‘야승’이란 ‘야사(野史)’이다. "한국문학개론"(한국문학개론편찬위원회 편, 혜진서관, 1991.)에서는 패사적(稗史的), 야사적(野史的)인 글들을 ‘야담(野談)수필(隨筆)’로 분류하였다.(p.544 참조)
"대동야승(大東野乘)"은 언제 누가 편집된 것인지 불분명하며, 성현의 "용재총화(慵齋叢話)"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이 편술한 59종의 책을 수집한 총서이다.
성현(成俔)은 서거정(徐居正)으로 대표되는 조선 초기의 관각문학(館閣文學)을 계승한 대학자로 호는 허백당(虛白堂)·용재(慵齋)·부휴자(浮休子) 등으로 홍문관과 예문관 양관의 대제학에 올라 이 시기의 문풍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던 대학자이다. 죽은 뒤 수개월 만에 갑자사화가 일어나 부관참시(剖棺斬屍)당하였으나 뒤에 신원되었고 청백리로 추앙받았다. 시호는 문재(文載)이다.
어우동과 관련된 기록은 용재총화(慵齋叢話) 이외에도 남효온(南孝溫)의 추강냉화(秋江冷話), 권응인(權應仁)의 송계만록(松溪漫錄) 등에도 나오고(소제목은 따로 붙이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6번이나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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