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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초한지 卷一 / 4장 웅크린 호랑이(2)Warehouse/이문열 초한지 2019. 1. 1. 20:03
장군가의 자제답게 항량도 어려서부터 무예를 익혔다. 당연히 성취도 있어 유협(遊俠)들 사이에서도 무예 때문에 업신여김을 당하지는 않았고, 난군(亂軍) 속에 떨어져도 몸을 가릴 만큼은 되었다. 하지만 방금 본 검기(劍氣)는 그런 항량에게도 눈부셨다.
가만히 문을 열고 나선 항량은 짐짓 발소리를 죽이며 뜰을 가로질러 항우에게로 갔다. 조카의 무예수련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뜻이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몰래 조카의 성취를 가늠해 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떨기나무와 굵은 나무등걸에 몸을 감추어가며 다가가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항우는 칼끝을 땅바닥 쪽으로 늘어뜨린 채 거칠어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여덟 자 키에 우람한 몸매와 순진해 뵈면서도 위엄 서린 얼굴이었다. 당시의 자[척]는 약간 짧아, 여덟자라 해봤자 뒷날로 치면 여섯 자 남짓이었으나, 그 키만으로도 일반적으로 왜소한 초나라 사람들에 견주면 산악(山嶽) 같다 할 만했다. 그 늠름하고 환한 항우의 모습이 다시 항량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짓게 했다.
그 사이 한숨을 돌린 항우는 장검을 칼집에 거두더니, 나무 등걸에 기대 세워두었던 창을 집어들었다. 긴 자루 끝에 쌍날이 달려 베기와 찌르기를 겸할 수 있는 창으로, 날은 진과(秦戈)와 달리 쇠로 벼려져 있었다. 자루도 철갑을 씌워 여느 창보다는 몇 배나 무거워 보였다.
항우는 계부(季父)가 숨어서 보고 있음을 알기나 하듯 창을 들어 천천히 창법을 펼쳐 보였다. 처음에는 단병접전(短兵接戰)에서의 창법이었는데 찌르고 베는 기세가 사납고 매섭기 그지없었다. 다음은 여럿과의 차륜전(車輪戰) 형태인데 대여섯 군데에서 번갈아 치고 드는 적을 받아내는 동작이 여간 엄밀하지 않았다.
마지막이 대병(大兵)속의 혼전을 헤쳐나가는 창법이었다. 사방팔방, 상하좌우에서 베고 찔러오는 창칼을 퉁겨내며 맞받아 베고 찌르는 것인데, 시간이 흐를수록 창날의 속도는 빨라졌다. 그러다가 어느 때가 되자 다시 항우의 몸은 창대가 짓는 그늘과 창날이 내뿜는 빛의 장막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놀랍구나. 어느새 이 아이의 솜씨가 이토록 휘황하게 어우러졌단 말이냐….)
항량은 그렇게 감탄하며 문득 항우가 처음 무예를 배우기 시작한 날을 떠올렸다.
몇 년 전 항량이 처음 항우에게 가르친 것은 글이었다. 비록 어려서부터 떠돌아다니며 숨어살았지만 태어난 가문 덕분인지 항우는 그때도 초나라의 서법(書法) 정도는 대강 알고 있었다. 그러나 천하를 아우른 시황제가 문자를 하나로 통일하자 항우는 문맹이나 다름없이 되어버렸다. 이에 항량은 다시 진의 서체인 전서(篆書)를 배우게 했던 것인데, 결과는 뜻 같지가 못했다.
“끝엣 아버님[季父], 문자란 자기 이름만 쓸 줄 알면 넉넉한 것입니다. 도필리(刀筆吏〓문서를 맡은 관리)로 일생을 살고자하지 않을 바에야 무엇 때문에 그 많은 문자를 다 익힌답니까?”
어느 날 항우는 그렇게 말하며 책을 덮더니 다시는 펴려 하지 않았다. 항우의 고집을 잘 알고 있는 항량이라 억지로 글을 가르치려 들지는 않았다. 한동안 항우를 살피다가 슬며시 권해 보았다.
“그럼 칼쓰기를 배워 보겠느냐? 무(武)란 대장부가 마땅히 본업으로 삼을 만한 것이니라.”
항우는 그 새로운 권유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처음 얼마간은 항량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돈 들여 불러들인 무예의 달인(達人)들로부터 새로운 무예 초식(招式)을 전수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반복단련에 싫증이 났는지 곧 검술에 시들한 태도를 보였다.
“우리 초나라가 진에게 망한 것은 결코 문(文)이 뒤져서가 아니었다. 사람의 목을 잘라오는 것을 그 어떤 공보다 으뜸으로 삼는 저들의 상무(尙武)에 진 것이었다. 너는 진병의 칼날 아래 피를 뿜고 쓰러진 부조(父祖) 이대의 한을 잊지 말라!”
항량은 항우가 무예 익히기를 게을리 할 때마다 그렇게 다그쳤으나, 항우는 왠지 불만한 기색을 숨기려 들지 않았다.
“무(武)라는 게 손목과 팔로 창검을 익히는 것만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항량은 그 말이 자신의 게으름을 감추기 위한 핑계로만 받아들였는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닌 듯했다. 그 몇 년 항우는 무예에 온 힘을 쏟아 상당한 성취를 이루었고, 이제는 그 성취를 바탕 삼아 보다 높고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기를 바라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어르신[大人], 주인 어르신.”
갑자기 누가 등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항량이 얼른 돌아보았다. 늙은 청지기가 아전바치[郡吏]하나를 데리고 저만치 서 있었다.
(또 무슨 일인가. 이번에는 몇 명이나 긁어모아야 하나….)
아전바치를 알아본 순간 항량은 짜증부터 났다. 대낮부터 사람을 보낸 것으로 보아 회계수(會稽守〓회계 태수. 太守란 관명은 漢代부터 쓰인다)가 또 군역(軍役)이나 요역(쟸役)에 끌고 갈 사람을 졸라댈 작정인 듯했다. 하지만 당장은 조카에게 자신이 엿보고 있었음을 들키게 된 게 더욱 짜증났다.
“무슨 일이냐?”
“관아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그제야 항량도 군에서 나온 관리를 알은체하며 그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공조리(工曹吏)께서 어인 일로 또 오시었소?”
그러면서 흘긋 항우 쪽을 보니 항우는 어느새 창을 거두어 짙은 나무그늘로 사라지고 있었다. 성난 듯한 그 뒷모습에서 좋건 나쁘건 자신을 쉽게 남 앞에 드러내지 않으려는 조카의 자존망대(自尊妄大)한 습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군수(郡守)께서 나으리를 찾으십니다.”
항량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군리가 공연히 주눅든 얼굴로 대답했다.
(이번에는 뭔가 가운데서 절충하기 어려운 일을 떠넘기려는 모양이구나….)
항량은 문득 군수 은통(殷通)의 의뭉스러운 얼굴을 떠올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발등에 떨어진 불이 다급하다보니 조카의 일은 잠시 잊을 수밖에 없었다.
통일 뒤 이런저런 토목공사로 진(秦) 조정은 천하 서른여섯 군(郡)에서 적지 않은 사람을 인부로 데려갔다. 그러다가 시황제 32년 연나라의 방술사 노생(盧生)이 동해에서 참위(讖緯)의 글귀를 얻어오면서 한층 더 많은 사람을 끌고 가게 되었다.
<진나라를 망하게 할 자는 호이다[亡秦者胡]>란 구절을 본 시황제는 호(胡)를 말 그대로 오랑캐, 그것도 북쪽 흉노(匈奴)로 해석했다. 그해 바로 장군 몽염(蒙恬)으로 하여금 군사 30만을 일으켜 흉노를 치게 했고, 이듬해부터는 곳곳에 요새를 쌓아 쫓겨난 그들이 다시 돌아올 수 없게 했다. 또 그 이듬해부터는 천하에서 널리 일꾼들을 끌어내 흉노를 막을 장성(長城)을 쌓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니 천하의 군현(郡縣)이 모두 군사와 인부를 대기 위해 진땀을 빼야 했다. 병사로 나가든 역도(役徒)로 떠나든 돌아오기를 기약하기 어려운 길이라, 백성들은 누구도 선뜻 떠나려 하지 않았다. 일거리가 많은 진나라 도성이나 흉노와의 싸움터뿐만 아니라 장성을 쌓을 요해처(要害處)가 모두 서북의 멀고 험한 땅에 몰려 있는 데다, 도달해야 할 날은 엄하게 정해져 있어도 돌아갈 날은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조정에서 보내라는 사람의 머릿수를 맞춰 대기가 군현마다 여간 힘들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회계군(會稽郡)은 특히 더했다. 땅 자체가 진나라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뿐더러, 그 어느 지역보다 반진(反秦)의 감정으로 불온한 초나라의 고토(故土)였다. 무리하게 백성을 끌어내다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누군가 진나라 조정에서 내려보낸 관리와 오중의 토착민 사이를 중재하고 조정할 사람이 꼭 필요했다.
시황제가 보낸 진(秦) 회계 군수 은통은 몇 년 전부터 그 일을 항량에게 맡기고 있었다. 항량이 초나라의 명문자제라는 풍문이라던가, 어딘가 반역의 냄새를 풍기는 그의 감춰진 전력이 께름칙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우선 급한 것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오중 백성들의 불만을 어루만지기 위해서는 그들로부터 믿음과 사랑을 받는 항량을 내세워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항량도 기꺼이 그 일을 떠맡아왔다. 당장 진나라를 뒤엎고 초나라를 되일으켜 세울 수 없을 바에야, 적당한 양보를 얻어내고 진나라에 순응하는 것이 오중 사람들을 지키는 길이었다. 은통과의 담판에서 군역(軍役)을 부역으로 바꾸고 보낼 사람의 머릿수를 원래보다 줄인 뒤, 다시 오중의 부로(父老)들을 모아 줄어든 부담을 받아들이도록 달래는 것이 대개 그가 하는 중재와 조정의 내용이었다.
항량이 관아에 이르러보니 은통은 객청(客廳)에서 홀로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에는 무슨 두꺼운 가죽이라도 덮어쓴 듯 속내를 짐작할 길 없던 그의 크고 무표정한 얼굴이 그날 따라 어둡게 굳어있는 걸로 보아 예사 아닌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았다.
“항씨(項氏) 아우님.”
차 한잔 다 비우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은통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항량을 불렀다. 언제부터인가 은통은 항량보다 몇 살 손위임을 내세워 항량을 아우로 부르면서 친분과 신임을 과장하고 있었다.
“점점 고약한 공문들이 내려오고 있네. 아마도 우리 황제께서는 천하 백성들을 모조리 끌어다가 싸움터가 아니면 일터에 밀어 넣을 작정인가 보이.”
그럴 때의 은통은 시황제의 권위를 대신하여 내려온 삼엄한 관리가 아니라 정말로 같은 고장에 함께 사는 형 같은 데가 있었다. 항량도 걱정스러움을 과장하며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조정에서 장성을 쌓을 역도(役徒) 1만에, 남월(南越〓이때의 남월은 桂林 象郡 南海를 가리킴)에 수(戌)자리로 보낼 1만을 한꺼번에 내라는군. 이 형은 그저 아뜩할 뿐이네. 항량. 어쩌면 좋겠나?”
한창 때의 회계군이 22만 호(戶). 이제는 전란으로 죽고 여기저기 끌려가 20만 호에 훨씬 못 미치니, 진나라 조정이 원하는 2만을 내려면 집집마다 다시 장정을 한 명 넘게 내야 한다. 더구나 작년 재작년에 이미 집집마다 하나 꼴로 역도를 끌고 가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도 보내지 않고 그냥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항량은 속으로 가만히 오중(吳中)땅이 더 낼 수 있는 머릿수를 가늠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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