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dwig Van Beethoven
Symphony No.5 in C Minor Op.67
교향곡5번 C단조 작품67
Philharmonia Orchestra
Cond : Herbert von Karajan,
누구나 아는, 한 번에 알 수 있는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이
그렇게도 엄청난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아마도 이 곡을 시작하는 네 음의 모티브가
어느 누가 들어도 귀에 쏙들어올 만한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 곡이
작곡가 베토벤 자신의 삶과 항상 결부되어 해석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 곡을 듣는 모든 사람들은 이 불멸의 작품을
- 당연하게도-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이 곡이 작곡가 자신의 운명에 대한 투쟁,
그리고 그 투쟁에서의 승리를 그리고 있다는 생각은
이 곡이 초연될 순간부터 오늘날까지 줄곧 이어져 내려오는
베토벤의 신화의 주요한 주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이 곡과 베토벤의 운명이 결부되기 시작한 것은
베토벤의 입에서 직접 나온 이야기라기보다 그의 제자이자 베토벤의 사후
베토벤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세상에 알린 장본인인
안톤 쉰들러(Anton Schindler)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후대 사람들은 쉰들러의 증언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고
쉰들러는 오늘날의‘베토벤 신화’를 만들어내는 데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한 사람 중 한 명임은 확실하지만
오늘날 학자들은 그가 전해주는 베토벤 관련 일화들의 많은 부분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왔다.
베토벤의 "교향곡 5번"에 대해 쉰들러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이러하다.
베토벤이 이 곡에 대해 설명하기를, 이 곡의 오프닝 모티브가
“운명이 문을 두드리는 것”(So pocht das Schicksal an die Pforte)이라고
묘사했다고 말한다. 베토벤이 정말 그렇게 말했을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서 쉰들러의 이야기는
이 곡의 오프닝 모티브에 대한 매우 생생한 이미지를 전달해준다.
이 모티브는 고전 교향곡에 있어서 매우 관습적이지 않은 모티브이기도 하고,
서주 없이 곧바로 시작되는 모티브라는 점에서도 이례적이다.
실제로 많은 감상자들은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이 오프닝의 시그널이 항상 다르게 들린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베토벤은 자신이 30 대 초반이었던 1802년경부터 자신의 청력상실을 인정했고,
자신의 장애가 최대한 음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타협하는
일련의 길고 긴 과정들을 시작한다. 그 결과 청력상실은
창작의 감퇴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해도 젊은 시절의 베토벤을 만들어주었던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로서의 명성에 큰 타격을 입었고,
그의 사교생활- 특히 여성들과의 사회적 관계도 영원히 회복될 수 없었다.
자신의 후천적 장애에 맞서는 그의 태도는 그래서 훨씬 더 전투적이었다.
청각상실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으로 나온 첫 번째 작품은 "교향곡 3번 ‘영웅"이었다.
이 작품으로 인해 클래식 음악의 세계는 완전히 탈바꿈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베토벤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거의 초인적인 창작력은
이후 10 년간 베토벤의 소위 ‘영웅적 작품들’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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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학자들은 이 시기를 베토벤의
‘영웅적 시기’(heroic period)라고 부르는데,
이 시기의 음악적 규모의 장대함은 물론,
곡 매무새의 아름다움과 기술적인 장인정신,
우주적인 개념들,
표현과 형식에 있어서의 급진적인 자유,
이 모든 것들은 베토벤의 자신과
자신의 운명과의 전투의 과정에서 쟁취한 것들이자
음악사의 새로운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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