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사미·효심의 난(金沙彌孝心-亂)
고려 명종 때인 1193년 김사미 세력과 효심 세력이 연합하여 일으킨 농민 봉기이다.
처음에 별도로 난을 일으켰던 이들은 뒤에 연합하여 공동전선을 폈다.
김사미는 운문산(雲門山, 청도)을 본거지로 불평분자를 모아서 난을 일으켰고
(김사미·패좌의 난),효심은 초전(草田, 울산)에 웅거하여 망명자를 불러 모아
부근을 약탈하는 한편 이의민과 내통하며 힘을 길렀다(효심의 난).
이들은 그 후 연합하여 세력을 증대한 후 각 지방에서 약탈을 일삼았다.
수만의 난민(亂民)으로 연합된 반란군의 토벌을 위해 고려 정부는
전존걸(全存傑)·이지순(李至純)·김척후(金陟候) 등을 보냈으나 실패하고,
1194년(명종 24년) 최인(崔仁)·고용지(高湧之)를 보내
밀성(密城, 밀양)에서 토벌하였다
▣ 김사미(金沙彌)
?∼1194(명종 24). 고려 무인정권기의 민란주동자.
1193년 경상도 운문(雲門:지금의 淸道)을 거점으로 농민을 모아 난을 일으키고
초전(草田:지금의 蔚山)에서 봉기한 효심(孝心) 등과 모의,
신라부흥을 표방하며 경상도의 여러 지역에서 기세를 올렸다.
더욱이 당시의 집정자이며 경주출신으로
역시 신라부흥을 꿈꾸던 이의민(李義旼)의
지지를 받는 데 성공하여 토벌군으로 편성되어온
이의민의 아들인 장군 지순(至純)으로부터 군사기밀을 제공받아,
대장군 전존걸(全存傑)의 정부군을 번번이 격파하였다.
그러나 같은해 11월 다시 정부로부터 파견된
상장군 최인(崔仁), 대장군 고용지(高湧之)의 토벌군에게
격파당하여 이듬해 2월 투항하였으나 참형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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