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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릉호씨(巴陵胡氏)
    옛 이야기/한국의 姓氏 2019. 3. 4. 16:43

      
      ■ 한국에는 현재 약 286개의 성,姓 (2000년 통계)이 있으며, 본(本)을 필수 요소로 한다. 
      한국의 성씨는 삼국 시대 이후 중국의 성씨 제도를 차용한 것이 많고, 
      고려 시대부터 족보를 만들고 귀족 계급의 성씨 제도가 확립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성씨는 대부분 한 음절로 이루어져 있으나, 두 음절로 된 복성(複姓)도 있다. 
      성씨의 종류가 4천개가 넘는 중국이나 성씨가 10만이 넘는 일본과 비교할 때  
      한국에서는 성씨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고, 김(金)씨, 이(李)씨, 박(朴)씨인 사람이  
      전체 인구의 약 45%를 차지하여 특정 성씨가 차지하는 인구 비중이 매우 높다 
      
      ■ 파릉호씨(巴陵胡氏) 
      
      ■ 시조 : 호극기(胡克己)
      시조 호극기(胡克己)는 송(宋)나라 건녕(建寧) 사람으로 명(明)나라 숭정조에 문과에 올라 
      직각(直閣) 한림학사(翰林學士)로 도어사대부(都御史大夫)가 되었다. 
      그는 명나라 황제의 명을 받아 인조22년 우리나라에 사신으로 온 뒤 청(淸)나라에 
      송나라가 망하자 우리나라에 귀화, 경기도 가평(加平) 대명탄(大明灘)에서 살다가 
      함경남도 북청(北靑) 덕성(德城)에서 여생을 마쳤다. 
      6세 호세익(胡世翼)의 큰아들 호숙(胡淑)의 후손들은 중국의 본관인 파릉(巴陵), 
      둘째아들 호징(胡澄)과 셋째아들 호준(胡濬)의 후손은 가평(加平)을 본관으로 삼았다. 
      ● 인물
      호극기(胡克己)의 맏아들 호제백(胡濟伯)이 학자(學者)로 문명(文名)이 높았고, 
      후손 호사룡(胡士龍)은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올라 녹사(綠事)를 지낸 호태기(胡泰起), 
      충찬위(忠贊衛)에 오른 호시익(胡時益)과 함께 명망높은 가문을 더욱 유명하게 하였다. 
      ● 세거지
      임술보(壬戌譜)를 보면 시조 호극기(胡克己)가 우리나라에 귀화 후 잠시 경기도 가평에 있다가 
      함남 북청에 터를 잡았음이 기록되어 있다. 넷째아들 호원백(胡元伯)이 충북 괴산군 
      불정면으로 이주한 듯 하며 8세대를 전후해서 일부가 경북 문경, 충북 제천, 보은군, 괴산 
      등지로 산흩어져 거주한 것으로 보인다. 
      - 함경남도 북청군(北靑郡)- 황해도 장연, 송화, 봉산, 평산-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 족보발간
      - 갑신보(甲申譜, 1884)- 임술보(壬戌譜, 1982)
      ● 항렬자
      8世-순(純) 9世-명(明) 10世-한(翰) 11世-재(在) 12世-진(鎭) 13世-문(汶) 14世- 15世-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9世孫은 8代孫)
      ● 본관 연혁
      파릉(巴陵)은 악양(岳陽)의 옛 지명으로  중국 호남성(湖南省) 북동 끝에 있는 악양 지구의 
      현공서(縣公署) 소재지이다. 동정호(洞庭湖)의 물이 양자강(揚子江)으로 흘러나가는 
      출구에 위치하여 양자강의 수운(水運)과 경광철도(景廣鐵道) 육운(陸運)이 
      겹쳐 있어서 호남성의 관문 구실을 한다. 남북조시대부터 있어온 옛 도시로 
      악주성(岳州城) 서문(西門)에 있는 악양루(岳陽樓)는 
      동정호와 양자강을 전망하는 웅대한 경관으로 유명하다. 
      ●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파릉호씨는
      1985년에는 총 195가구 770명, 
      2000년에는 총 90가구 261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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