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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 장생전 (長生殿)
    중국의 고전 /소설과 희곡 2019. 2. 11. 12:23

    318. 장생전 (長生殿) / 저작자 홍승(洪昇)

     

    1688년경에 만들어진 책으로, 수많은 에피소드를 낳은 당나라 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목은 백거이(白居易, 당나라의 시인)가 지은 장한가(長恨歌)의 한 구절인 ‘77일 장생전에서 딴 것이다. 작자 스스로 태진외전(太眞外傳)을 빌려 이 작품을 만든 것은 인간의 정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이다라고 말했듯이,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장면이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이다. 50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 홍승은 자가 방사(昉思)이고, 호는 패휴(稗畦)이며, 항주(杭州) 사람이다. 1645(또는 1650)경에 태어나, 1704년 친구 집을 찾아갔다가 돌아오는 도중 배에서 미끄러져 물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많은 희곡을 창작했지만 장생전이 가장 유명하고, 최고의 걸작이다. 청나라 초기의 시인 왕어양(王漁洋)의 제자로서 일찍이 시재(詩才)로 이름을 날렸고 나중에는 희곡 창작에 힘을 쏟았는데, 시작(詩作)으로 닦은 솜씨가 큰 힘을 발휘했다.

     

    홍승은 장생전의 창작에 10여 년의 세월을 바쳐 공을 들였다고 한다. 초고는 1679년 이전에 만들어졌는데, 제목을 침향정(沈香亭)’이라 하고 이백(李白)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그 뒤, 숙종(肅宗)의 중흥(中興) 고사를 도입해 줄거리를 바꾸고 제목도 무예상(舞霓裳)’으로 고쳤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현종과 양귀비를 중심으로 한 두 사람의 애정을 그리기로 하고 장생전을 완성했다. 상연은 대성공이었으나, 생각지도 않게 국기일에 상연되었다는 이유로 불경죄에 걸려 감생(監生, 귀족의 자제 등으로 구성된 국자감의 학생)에서 제명되고, 친구들까지 연루되어 고초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 때문에 장생전은 더 유명해졌지만, 그 사건으로 홍승은 관직의 꿈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오로지 창작에 전념했다. 생활은 어려웠지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의 장생전에 대한 열정은 대단해서, 죽기 2년 전, 곧 완성된 지 14년이 지난 뒤에도 친구에게 비평을 요구했다고 한다.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이 작품은 도화선(桃花扇)과 함께 청나라 희곡의 쌍벽을 이룬다.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묘사

     

    당나라 황제 현종은 궁녀 양옥환(楊玉環)에게 반해 그녀를 귀비(貴妃)로 삼고, 금비녀와 전합(鈿盒, 자개 세공을 한 함)을 선물하며 애정을 표현했다. 귀비는 궁중의 3,000명이나 되는 미녀를 물리치고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누렸다. 귀비의 3명의 언니는 각각 진국(秦國), 한국(韓國), 괵국(虢國)의 왕에게 시집가고, 오빠 양국충(楊國忠)은 우상(右相)이 되어 일가가 영화를 누렸다.

     

    절도사(節度使) 안녹산(安綠山)은 싸움에서 패해 목이 달아날 처지였으나 양국충에게 뇌물을 바쳐 황제의 용서를 받고 도성에 머물고 있었다.

     

    무거(武擧) 출신의 중신 곽자의(郭子儀)가 장안의 현실을 개탄하며 술을 마시고 있는데, 그 앞을 안녹산이 부대를 이끌고 지나갔다. 곽자의는 그가 모반의 관상을 지닌 사람임을 알고 언젠가는 반드시 천하를 어지럽힐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귀비는 황제의 총애를 믿고 제멋대로 행동하다가 마침내 일을 저질렀으니, 언니 괵국 부인에 대한 질투가 화근이 되어 황제에게 무례를 범해 귀가 조치를 당하고 만 것이다. 실의에 빠져 눈물짓고 있는 귀비에게 현종의 총신(寵臣) 고력사(高力士)가 나타나 말했다.

     

    황제께서는 귀비가 떠난 뒤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계십니다. 저에게 정표라도 하나 주시면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내 몸에 지니고 있는 건 모두 황제께서 주신 것이지요.”

     

    귀비는 이렇게 말하고 자신의 검은 머리카락을 잘라 건네주었다. 그 머리카락을 본 현종은 그리움을 견디지 못하고 은밀히 귀비를 불러들였다. 그렇게 하여 두 사람의 사랑은 한층 더 깊어졌다. 귀비는 어느 날 밤 꿈에 월궁(月宮, 달에 있는 궁전)으로 가서 선녀가 연주하는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월궁의 음악)을 듣고 잠에서 깨어나 그것을 악보로 만들었다. 현종이 보기에 그것은 이 세상에서는 듣기 힘든 곡이었다. 현종은 이구년(李龜年)에게 명해 이원(梨園)의 자제들에게 그 음악을 가르치게 했다. 그렇게 하여 귀비에 대한 현종의 총애는 더욱 깊어졌다.

     

    안녹산은 권력을 장악하더니 자신을 비호해 준 양국충마저 깔보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현종은 안녹산을 범양(范陽)의 절도사로 임명했으니, 이는 호랑이를 들에 풀어 놓는 꼴이었다. 양국충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현종은 귀비가 여지(荔枝, 중국 특산의 과일)를 원하면, 멀리 산지까지라도 말을 보내 가지고 오게 했다. 그 말이 밭을 짓밟건 사람을 다치게 하건 상관하지 않았다. 궁중에서는 오늘도 귀비의 생일 축하연이 열리고 있었다. 때마침 여지가 도착하고 예상우의곡이 울려퍼지자 그 음률에 맞추어 귀비가 춤을 추었는데, 그 모습이 선녀처럼 아름다웠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이 세상의 선경(仙境)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안녹산은 범양에서 반역의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어느 날 밤, 귀비가 현종이 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시녀에게 묻자 상양궁(上陽宮)으로 쫓겨난 매비(梅妃)를 만나러 갔다고 하는 것이었다. 질투에 불타오른 귀비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다음 날 아침 현종을 찾아갔다. 문을 지키고 있던 고력사가 놀라서 큰 소리로 귀비가 오셨다고 외치자, 현종은 황망히 자리에서 일어나 매비를 도망치게 하고는 짐짓 태연자약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여자의 신발과 장식품을 발견한 귀비는 현종에게 말했다.

     

    버림받을 바에는 차라리 고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러고는 금비녀와 전합을 돌려주려 했다. 곤란해진 현종은 자신의 애정은 평생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귀비 앞에서 맹세했다. 77일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 밤, 현종과 귀비는 장생전에 앉아 하늘에서는 비익조(比翼鳥, 한 마리가 눈 하나와 날개 하나만 가지고 있어, 두 마리가 하나가 되어야 비로소 온전한 몸이 되어 날 수 있는 새), 땅에서는 연리지(連理枝, 뿌리가 다른 두 나무의 가지가 합쳐져 하나가 된 나뭇가지)가 되자라고 맹세하고, “하늘과 땅이 영원히 변하지 않듯, 우리 사랑 또한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라고 서약을 나누었다. 그것을 본 천상의 직녀는 두 사람의 사랑에 감격해 그 서약을 지켜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대의 홍안, 주군을 위해 다 바쳤네

     

    가을도 깊어 가던 어느 날, 현종과 귀비가 가볍게 술자리를 벌이고 있는데, 양국충이 헐레벌떡 달려와서 안녹산이 군사를 일으켰으니 촉() 땅으로 피난을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하여 피난을 가는 도중에 마외역(馬嵬驛)에서 병사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병사들은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양국충의 목을 베고, 귀비를 원흉으로 지목하며 목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황제는 나라가 망하고 황가가 몰락하는 한이 있어도 귀비를 버릴 수 없다며 꼭 끌어안았지만, 병사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귀비는 운이 다했음을 깨닫고 스스로 하얀 비단을 배나무 가지에 걸어 목을 맸다.

     

    백 년의 이별, 한순간이고, 일대의 홍안(紅顔), 주군을 위해 다 바쳤네.”

     

    현종은 혼이 빠져나갈 듯 흐느껴 울었다. 고력사는 금비녀와 전합을 귀비와 함께 묻어 준 뒤 거부하는 황제를 억지로 이끌고 촉 땅으로 피신했다. 현종은 촉 땅에서 태자에게 제위를 물려주게 되었다. 생활의 안정을 찾은 뒤에도 현종은 오로지 양귀비 생각뿐이었다. 귀비의 묘를 세우고, ()을 새기게 하고, 밤낮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자니, 귀비의 상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충신 곽자의는 정예병을 이끌고 일거에 안녹산을 격파하고 장안을 공략했다. 안녹산이 후계자 다툼 때문에 양아들 이저(李猪)의 칼에 찔려 죽자, 곽자의는 힘들이지 않고 장안을 손에 넣고 황제와 상황(上皇, 현종)을 맞이했다.

     

    상황은 귀비의 묘를 개장하려 했으나 유해는 사라지고 향낭(香囊)만이 남아 있었다. 귀비는 직녀의 호의로 신선들이 사는 봉래산(蓬萊山)으로 올라갔다. 황제는 도사 양통유(楊通幽)에게 귀비의 혼을 불러내라고 명했다. 양통유는 인간, 지부(地府), 천상을 돌아다니며 직녀의 안내를 받아 봉래산으로 찾아갔다. 거기에는 옥비태진지원(玉妃太眞之院)’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서 귀비를 만나 현종의 말을 전하자 귀비는 눈물을 흘리면서 금비녀와 전합을 깨뜨려 전해 주고, 장생전에서 주고받은 서약을 양통유에게 가르쳐 주어 증거로 삼게 했다. 양통유는 돌아와서 병상에 누워 있는 상황에게 그 말을 전하고, 중추절에 월궁에서 만나자는 귀비의 말도 전했다. 중추절 밤, 선교(仙橋)를 건너 월궁으로 간 황제는 귀비를 만나 손에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직녀는 두 사람을 도리천궁(忉利天宮)에서 부부로 맺어 주고, 선녀가 예상우의곡을 연주하는 가운데 두 사람을 천궁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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