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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8. 삼국지 (三國志)
    중국의 고전 /역사와 정치 2019. 1. 22. 13:38

    108. 삼국지 (三國志) / 저작자 진수(陳壽)

     

    290년경에 저술된 책으로, 후한이 멸망한 뒤 위(), (), () 세 나라가 다투던 세상을 그렸다. 삼국지()’는 기록이라는 뜻이다. 위서(魏書)10, 촉서(蜀書)15, 오서(吳書)20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나라 진수가 편찬했다. 후한서보다 오래되었다. 65.

     

    삼국지는 후한이 멸망하고 삼국이 정립한 뒤부터 진()나라가 통일을 이룬 시기까지를 기술한 역사서이다.

     

    일반적으로 삼국지라는 제목은 명나라의 나관중(羅貫中)이 지은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가 더 유명한데, 나관중의 소설은 삼국지를 바탕으로 하여 민간 설화나 강담(講談) 등을 참고해 만든 것으로, 경극 등의 소재가 되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역사서 삼국지는 문장이 간결하고 역사적 사실들이 잘 정리되어 있어 정사 중에서도 잘된 책으로 꼽히며, 그 취향은 삼국지연의와 많이 다르다. 편찬자 진수(233~297)는 파서(巴西) 안한(安漢) 사람으로, 처음에는 촉나라의 관리였다가 촉나라가 멸망한 뒤에는 진()나라의 관리가 되어 삼국지65권을 완성했다. 또한 남조 송()나라의 배송지(裵松之)가 붙인 주석은 유명하다.

     

    삼국지연의를 비롯해 많은 글들이 촉나라의 유비(劉備)를 좋은 사람으로, 위나라의 조조(曹操)를 악한으로 다루는데, 이것은 남송의 유학자 주희가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을 편찬할 때, 그의 사상적 입장에서 촉나라를 정통으로 세웠고, 이후 그의 주자학이 국가가 인정하는 학문이 되자 그 설이 일반화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는 조조를 반드시 악한 인물로만 보지는 않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삼국지역시 위나라를 정통 왕조로 보고 위서에만 제기(帝紀)를 두었다.

     

     

     

     

    ■ 「제갈량전(諸葛亮傳)

     

    제갈량의 자는 공명(孔明)으로, 낭야군(琅邪郡) 양도[陽都,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기수현(沂水縣)] 사람이다. 한나라의 사례교위(司隷校尉, 경찰관의 일종) 제갈풍(諸葛豊)의 자손이다. 아버지 규()의 자는 군공(君貢)으로, 후한 말에 태산군(太山郡, 지금의 산동성)의 승[, ()의 차관]이었다. 제갈량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는데, 숙부 현()이 원술(袁術, 군벌 가운데 하나)에 의해 예장[豫章, 지금의 강서성(江西省)]태수로 발탁되자, 제갈량과 그 동생 균()을 데리고 임지로 갔다. 그때 마침 후한의 조정이 고호(告皓)라는 인물을 예장 태수로 선발해 현과 교체하려 했다. 이에 현은 잘 아는 사이였던 형주(荊州)의 목(, 장관) 유표(劉表)를 찾아가 의지했다. 현이 죽자 제갈량은 스스로 농사를 지으며 즐겨 양보음(梁父吟)각주1) 을 노래했다. 키가 8(1척은 23cm)이나 되어 늘 자신을 관중(管仲, 춘추시대 제나라의 재상)이나 악의(樂毅, 전국시대 연나라의 장수)에 비견했는데, 사람들은 그런 그를 상대해 주지 않았다. 다만, 박릉(博陵, 지금의 하북성)의 최주평(崔州平)과 영천(潁川, 지금의 하남성)의 서서[徐庶, 자는 원직(元直)]만이 제갈량과 친하게 지냈다.

     

    공명을 만나기 위한 유비의 삼고초려

     

    그 무렵 유비는 신야(新野, 지금의 하남성)에 주둔하고 있었다. 서서는 유비를 만나러 갔다. 유비는 서서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서서는 유비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갈공명은 와룡(臥龍)입니다. 장군께서 한번 만나 보시지 않겠습니까?”

     

    유비가 말했다.

     

    그럼 여기로 데려오너라.”

     

    서서가 말했다.

     

    그 사람은 만나러 갈 수는 있으나 데리고 올 수는 없습니다. 장군께서 스스로 찾아가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유비는 제갈량이 사는 곳으로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하다가 세 번째 가서야 겨우 만났다. 유비는 주위 사람들을 물리치고 말했다.

     

    한나라는 벌써 기울어져 간신들이 제멋대로 세력을 불리고, 주상은 수도에서 쫓겨나는 실정이라네. 내 비록 힘은 미약하나 천하를 구하려 해 보았는데, 지혜가 부족해 결국에는 실패하고 오늘날 이 자리에 앉아 있다네. 그러나 나는 아직 뜻을 버리지는 않았네. 그대의 생각은 어떤가?”

     

    제갈량이 대답했다.

     

    동탁(董卓, 후한 말의 군벌) 이래로 여기저기서 호걸이 일어나 여러 개의 주군을 지배하는 자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을 지경입니다. 조조는 원소(袁紹, 후한 말의 군벌)에 비하면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고 병력도 적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조조가 원소를 이길 것입니다. 약한 자가 점점 강해지는 것은 때를 잘 만났기 때문만이 아니라 인간적인 노력과 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조조는 100만의 백성을 거느리며 천자를 내세워 제후에게 호령을 하고 있으니,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대적할 상대가 못 됩니다. 손권(孫權)은 강동[江東, 장강(長江) 하류의 남쪽 땅]을 점유해 벌써 3대를 이어 오고 있습니다. 그 나라는 요새처럼 견고하고, 민심도 안정되어 있으며, 재능 있는 자들이 열심히 활약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반드시 손을 잡아야 하며 함부로 대적해서는 안 됩니다.

    형주는 북으로는 한수(漢水)와 면수(沔水, 한수의 상류)에 접해 있고, 남으로는 남해에 이르며, 동으로는 오회[吳會,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오현성(吳縣城)]로 이어지고, 서쪽으로는 파(), [, 지금의 사천성(四川省)]과 통합니다. 그러므로 이 땅은 군대를 거느리고 적을 제압하기에 적합한 곳이지만, 지금 이 땅의 주인은 나라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이것은 마치 하늘이 장군을 위해 기회를 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장군, 이 땅을 손에 넣을 생각이 있으신지요?

     

    익주[益州, 지금의 사천성 광한현(廣漢縣)]는 험악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옥토가 1,000리나 뻗어 있어 그야말로 천부의 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나라의 고조도 이 땅을 기반으로 제위에 올랐습니다. 유장(劉璋, 익주의 장관)은 어리석은 데다 장로(張魯, 황건적의 지도자)가 북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백성도 많은 데다 물자가 넘쳐 나는데도 유장은 백성을 어여삐 여길 줄 몰라 재능 있는 인물들이 현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장군은 황실의 자손인 데다 그 신의가 사해에 알려져 있고, 영웅을 부하로 두고 있으며, 현자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만일 형주와 익주를 모두 차지하고, 그 요새를 확보한 다음, 서쪽으로는 융()과 화해하고, 남쪽으로는 월인(越人)과 손을 잡고, 바깥으로는 손권과 우의를 돈독히 하고, 안으로는 정치를 정비하고, 천하에 이변이 일어났을 때는 상장군에게 명령해 형주의 군대를 이끌고 완[, 지금의 하남성 남양현(南陽縣)], 낙양[洛陽, 낙양현(洛陽縣)]으로 향하게 하고, 장군 스스로는 익주의 군사를 이끌고 진천[秦川, 지금의 섬서성(陝西省)과 감숙성(甘肅省)]으로 치고 나가면, 백성들은 모두 식량을 손에 들고 장군을 환영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패업을 이룰 수 있고, 한나라의 황실도 다시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유비가 말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네.”

     

    그렇게 하여 유비와 제갈량은 나날이 친교가 깊어졌다. 그러나 관우와 장비는 그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내가 공명을 얻은 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다름없다. 너희들은 아무 말 말거라.”

     

    관우와 장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책 속의 명문장

     

     

    蛟龍得雲雨 終非池中物 / 교룡득운우 종비지중물

    이무기와 용은 비구름을 만나면 연못 속에 머물지 않는다. , 지금은 움츠리고 있지만, 영웅이란 때를 만나면 반드시 자기 힘을 발휘한다는 뜻으로, ()나라의 장수 주유(周瑜)가 유비를 평하여 한 말이다.

    泣斬馬謖 / 읍참마속

    공적인 일을 처리할 때는 사적인 정을 끊어야 한다는 말로, 제갈공명이 군율을 지키기 위해 싸움에서 패한 부하 마속의 목을 자른 데서 나온 말이다.

     

     

    雲中白鶴 / 운중백학

    구름 속의 백학처럼 고고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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