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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대학 (大學)중국의 고전 /사상과 처세 2019. 1. 15. 20:08
206. 대학 (大學)
BC 430년경에 만들어진 책으로, 수신(修身) · 제가(齊家) · 치국(治國) · 평천하(平天下)의 정치철학과 학문을 직접 연결한 유학의 정수를 담고 있다. 이에 따라 『대학』은 대인(大人)의 학문에서 나아가 천하를 이끄는 군주나 재상이 익혀야 할 학문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전문 1,750여 자의 짧은 글이지만, 송나라 때에 주자학이 일어나면서 ‘학(學) · 용(庸) · 논(論) · 맹(孟)’ 순으로 불리듯 ‘사서(四書)’의 필두를 장식하게 되었다.
『대학』은 원래 『예기(禮記)』의 한 부분으로, 한나라 무제(武帝)가 유교를 국교로 정하고 대학을 설치할 때 그 교육 이념으로 삼은 것으로 보이며, 작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책은 특히 송나라 이후에 중시되었다. 왜냐하면 송나라의 유학자 주희(朱熹)가 이 책을 공자의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증삼(曾參)과 그 문하생들이 만든 것이라 단정하고 원문을 대폭 수정해 자신의 주석을 단 『대학장구(大學章句)』를 저술한 뒤, 『논어』, 『맹자』, 『중용』과 더불어 ‘사서’라 이름 짓고 초학자의 필독서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주자학(朱子學)1) 이 융성함에 따라 널리 보급되어, 『대학』이라 하면 『대학장구』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지만, 명나라 때 들어 이에 반대한 왕양명(王陽明)이 원문을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며 『대학고본방주(大學古本旁註)』를 지었다. 주자학과 양명학(陽明學)2) 이 갈라지는 결정적인 부분은 『대학』의 ‘격물치지(格物致知)’에 대한 해석의 차이이다. 주희는 “사물의 이치를 규명해 지혜를 얻는다”라고 해석했고, 왕양명은 “내 마음의 양지(良知)를 사물에 나타나게 한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두 학파의 선명한 대립이 생겨났다.
어쨌든 『대학』은 근세 유학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문헌으로, 유학의 정수이다. 근대 중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쑨원(孫文)도 『대학』의 ‘팔조목(八條目)’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정치철학의 보물이라 하면서 새로운 중국 정치의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1) 남송(南宋)의 주희 등이 재구축한 유교의 새로운 학문 체계이다. 인간과 사물에 선천적으로 존재한다는 이(理)에 의거한 학설이라 하여 ‘이학[理學, 송명이학(宋明理學)]’이라고도 한다.
2) 명나라 중기의 유학자 왕양명(王陽明, 1472~1528)이 일으킨 신유가철학으로, 맹자의 성선설(性善說) 계보에 따른다. 왕양명은 초기에 이학(理學)을 공부하다가 주자(朱子)의 성즉리(性卽理)와 격물치지설(格物致知說)에 회의를 느끼고, 육상산의 설을 이어 심즉리(心卽理) · 치양지(致良知) ·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을 주창했다. 즉, 원리와 원리 실현의 소재(氣)를 엄격히 구별함으로써 마음은 기이고 마음이 갖춘 도덕성 등의 이치는 이(理)라고 한 주자의 견해에 대해, 만물일체와 불교의 삼계유심(三界唯心)의 입장에서 마음이 곧 이라고 주장했다.
■ 「경(經)」
송나라의 주희는 『대학』을, 공자의 가르침을 전하는 「경(經)」과 증삼이 그것을 해설한 「전(傳)」으로 나누어진다고 보고, 그 원칙에 따라 원문을 정리하고 고쳤다. 아래의 내용은 주희가 정리하고 교정을 본 『대학장구』의 요약이다.
삼강령(三綱領) - 학문의 궁극적인 목적
대학의 길은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고(明明德),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 있으며(新民), 지극히 착한 곳에 머무름에 있다(止於至善). 머물 곳을 알아야 뜻을 정할 수 있고, 고요할 수 있으며, 편안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고, 진리를 터득할 수 있다.
‘대학의 길’이란 최고의 학문을 지향하는 것이다. 천하의 지도자가 될 사람이 배우는 학문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들에게 선천적으로 갖추어진 덕을 발휘하게 하고, 민심을 새로이 하고, 최고로 선한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바르게 차근차근 학문을 배워야 한다.
이 ‘명명덕(明明德)’, ‘신민(新民)’, ‘지어지선(止於至善)’을 ‘대학의 삼강령’이라 하고, 학문의 원칙으로 삼는다.
팔조목(八條目) - 자신의 덕을 닦는 근본 이치
옛날에 밝은 덕을 천하에 밝히려 한 사람은 먼저 그 나라를 다스렸고, 나라를 다스리려는 사람은 먼저 그 집을 잘 정돈했으며, 집을 잘 정돈하려는 사람은 먼저 그 몸을 닦았다. 그 몸을 닦으려는 사람은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했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하려는 사람은 먼저 그 뜻을 정성스럽게 했으며, 그 뜻을 정성스럽게 하려는 사람은 먼저 앎을 가장 높은 곳에 두었고, 그 앎을 가장 높은 곳에 두려는 사람은 사물의 이치를 밝히려 했다. 사물의 이치가 밝혀져야(格物) 앎에 이를 수 있고(致知), 앎에 이른 뒤에야 뜻이 정성스러워지며(誠意), 뜻이 정성스러워진 뒤에야 마음이 바르게 되고(正心), 마음이 바르게 된 뒤에야 자신의 덕이 닦이며(修身), 자신의 덕이 닦여야 집이 잘 정돈되고(齊家), 집이 잘 정돈된 뒤에야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治國), 나라가 잘 다스려진 뒤에야 천하가 평안해진다(平天下).
천자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자신의 덕을 닦는 것이 근본이다. 그 근본이 어지러운데 그 말단이 잘 다스려질 리가 없다. 힘을 쏟아부어야 할 곳을 가벼이 여기고, 가벼이 여겨야 할 곳에 힘을 쏟아부어서는 안 된다.
앞의 ‘삼강령’이 학문의 궁극적인 목적을 말한 것이라면, 이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팔조목’은 그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순서이다. 천하를 평안하게 하고 지극히 선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수신’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유교의 학문론과 정치철학의 전형이다.
유교의 정치철학의 기본은 이른바 ‘덕치주의(德治主義)’이다. 통치의 근본은 덕이며, 법률이나 제도가 아무리 잘 정비되어 있어도 위에 서는 자에게 덕이 없으면 통치는 불가능하다. ‘수신’이라는 개인의 도덕적 수양이 ‘평천하’라는 정치 목적과 일직선으로 연결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또한, 학문이란 개별적 진리의 추구나 기술이 아니라, 도덕적 인격의 완성과 그것이 가져다줄 ‘지선(至善)의 세계’의 실현을 지향하는 행위이다.
■ 「전(傳)」
이상이 「경」(원문 200자)이고, 이어지는 1,500자는 「전」으로, 「경」의 중요한 구절을 상세히 해설한 것이다.
예를 들면, 주희가 초학자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한 ‘성의’에 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그 뜻을 정성스럽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않는 것이다. 마치 우리의 감각적 본능이 나쁜 냄새를 싫어하고 아름다운 색깔을 좋아하는 것처럼 거짓을 버리고 오로지 선을 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혼자 있기를 삼간다.’
또한 ‘치국평천하’는 이렇게 설명한다.
‘위에 서는 자가 늙은이를 소중히 여기면, 백성은 효를 소중히 여긴다. 위에 서는 자가 어른을 공경하면, 백성은 공손해진다. 위에 서는 자가 고아를 구제하면, 백성은 반역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런 진리를 헤아려 실천하는 마음의 잣대를 가져야 한다.’
□ 책 속의 명문장
雖不中 不遠矣 / 수부중 불원의
‘비록 정확히 짚지는 못했으나 그리 틀리지는 않다’ 또는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거의 완전에 가깝다’라는 뜻이다. ‘『서경(書經)』의 강고(康誥)에, 백성을 다루기를 갓난아기 돌보듯 한다는 말이 있다. 마음으로 성실하게 구하면 비록 완전하지는 못하다 하더라도 그리 틀리지는 않게 할 수 있다. 그건 마치 아기 키우는 법을 배우지 않고 시집을 가도 아기를 잘 키우는 것과 같다.’ - 「전」의 9장
心不在焉 視而不見 / 심부재언 시이불견
‘마음에 없으면 보아도 보지 못한다’라는 뜻이다. 이 말에 이어서 ‘들어도 듣지 못하고, 먹어도 그 맛을 알 수 없다’라는 말이 나온다. 분노나 두려움, 유혹, 고뇌를 끊지 못하면 마음이 바로 서지 못해 이런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말이다. - 「전」의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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