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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9. 공자가어 (孔子家語)
    중국의 고전 /사상과 처세 2019. 1. 23. 18:42

    209. 공자가어 (孔子家語) / 저작자 왕숙(王肅

     

    350년경에 만들어진 책으로, 공자의 언행과 제자들과 나눈 문답을 정리한 것이다. 공자와 그 제자들의 언행과 사적을 기록한 점에서는 논어와 비슷하지만, 작자에 관해서는 삼국시대 말기의 학자 왕숙이 공자의 12세손 공안국(孔安國)의 이름을 빌려 위작한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상로(相魯)에서 곡례공서적문(曲禮公西赤問)까지 1044편이다.

     

    공자와 그 제자들의 언행과 사적을 기록한 책으로 논어의 자매편이라 할 수 있다. 한서』 「예문지공자가어27권이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같은 이름의 책이 한나라 때도 존재했음을 알 수 있는데, 오늘날에는 전해지지 않는다.

     

    현재 전해지는 공자가어신당서(新唐書)』 「예문지(藝文志)왕숙주가어(王肅注家語)’라는 지목으로 소개되어 있는 10권짜리 판본이다. 이 책은 삼국시대 말기에 왕숙이라는 학자가 공자의 12세손 공안국의 이름을 빌려 춘추좌씨전, 국어, 맹자, 순자, 대대례기(大戴禮記), 예기, 사기, 설원(說苑), 안자춘추, 열자, 한비자, 여씨춘추, 신서(新序), 한시외전(韓詩外傳)등의 책을 자료로 삼아 만들었다는 설이 유력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왕숙이 전한 시대에 편찬된 본래의 공자가어를 증보하고 재편집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위작 또는 재편집 중 어느 쪽이건, 이 책을 엮은 왕숙의 의도는 그 무렵 학계의 주류를 점하고 있던 정현(鄭玄1) , 후한 시대의 문학가)의 학통에 이의를 제기하고, 자기 학설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이 책에 왕숙 자신이 쓴 서문, 곧 오래전부터 정현의 학설에 의문을 품고 있다가 우연히 공자의 22세손 공맹(孔猛)이 전하는 공자가어를 보고 나서 자신의 의견이 옳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는 말에서 드러난다.

     

    이 책이 논어와 더불어 널리 읽힌 것은 공자와 그 제자들의 언행을 비교적 쉽게 알 수 있고, 일반적인 처세의 지혜로 활용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1) 127~200. 후한 시대의 학자로, 자는 강성(康成)이다. 이십이현(二十二賢) 중의 한 명인 마융(馬融)에게 배웠으며, 일경전문(一經專門)의 학풍을 타파하고 훈고(訓詁)에 힘썼다. 육예론(六藝論)을 저술했고, 시전(詩箋), 예기, 주역, 논어, 효경등을 주해했다.

     

     

     

     

     

     

     

    돌이킬 수 없는 세 가지 실수

     

    공자가 제나라에 갔을 때의 일이다. 길을 가는데 어디서 슬피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자가 말했다.

     

    저 소리는 슬프기는 하나 초상을 당한 사람의 울음소리는 아닌 것 같구나.”

     

    수레를 서둘러 달리게 해 그곳에 가 보니, 이상한 남자 하나가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남자는 낫을 손에 들고 허리에는 새끼줄을 매고 있었다. 공자는 수레에서 내려 자리를 막 떠나려는 남자를 불러 세웠다.

     

    여보시오,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이오?”

    저는 구오자(丘吾子)라고 합니다.”

     

    공자가 다시 물었다.

     

    보아하니 상을 당한 것도 아닌 듯한데 왜 그리 슬피 우는 게요?”

    제가 3가지 실수를 저지르고도 오늘날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비로소 알게 되어 너무 후회스러워 우는 것입니다.”

    3가지 실수가 무엇인지 좀 가르쳐 주시겠소?”

     

    구오자가 대답했다.

     

    저는 젊었을 때는 배우기를 좋아하여 천하를 돌아다녔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부모님이 이미 돌아가신 뒤였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실수입니다. 장성해서는 제나라의 군주를 섬겼는데, 군주가 교만하고 사치스러워 천하의 현자들이 모두 떠나 버렸고 저 역시 신하로서의 절개를 지키지 못했으니 이것이 두 번째 실수입니다. 그리고 저는 평생 사람 사귀기를 소중히 여겼는데, 지금 제 곁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실수입니다. 나무는 조용히 서 있고자 하나 바람이 멈추지 않고, 자식은 부모를 모시고 싶어 하건만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으니, 한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 것이 세월이요, 한번 죽으면 다시 뵐 수 없는 것이 부모입니다.”

     

    말을 마친 남자는 작별 인사를 하더니 갑자기 물속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공자는 그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오늘 보고 들은 것을 잘 기억해 두어라. 절대로 저와 똑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늘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할 것이다.”

     

    그날 이후 공자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부모를 모시기 위해 집으로 돌아간 제자가 13명이나 되었다. 치사편(致思篇)

     

    자고가 형벌을 내린 성문지기의 보은

     

    공자의 제자 자고(子羔)가 위나라에서 재판관을 할 때 한 남자에게 다리를 자르는 형벌을 내렸다. 그 뒤, 위나라에서 왕위를 둘러싼 내란이 일어났다. 위험을 느낀 자고가 국외로 도망치려고 성문에 이르렀는데, 그 성문지기가 바로 예전에 자신이 다리를 자르게 했던 그 남자였다. 그 남자는 자고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도망칠 길을 가르쳐 주었다.

     

    저쪽에 성벽이 무너진 곳이 있으니 그리로 도망치십시오.”

    군자는 그렇게 담을 넘어 다니지는 않는다.”

     

    자고가 말을 듣지 않자, 그 남자는 다른 길을 가르쳐 주었다.

     

    그럼 저기 개구멍이 있으니 그쪽으로 도망치십시오.”

    군자는 그런 개구멍으로는 다니지 않는다.”

    그럼 이쪽에 빈방이 있으니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그렇게 그 남자는 자고를 구해 주었다.

     

    이윽고 추격대가 물러나고 자고는 무사히 국외로 탈출할 수 있게 되었다. 탈출하기 전에 자고는 그 성문지기에게 물었다.

     

    나는 국법에 따라 자네의 다리를 자르게 했네. 내가 이런 위기에 빠져 있을 때야말로 그때의 원한을 갚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그런데 나에게 세 번이나 도망칠 길을 가르쳐 주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네.”

     

    성문지기가 대답했다.

     

    다리가 잘린 것은 제가 죄를 범했기 때문이니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그러나 당신은 법으로 단죄할 때, 저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가능하다면 벌을 내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전해져 왔습니다. 또한, 죄가 결정되어 판결을 내리려 할 때 당신은 슬픈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당사자인 저는 그런 표정을 제 마음처럼 알 수 있었지요. 당신은 사적인 원한으로 저를 재판한 것이 아닙니다. 군자란 원래 그래야 한다고 믿어 왔는데, 저는 당신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뒷날 공자에게 그 일화를 전하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관리란 늘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 법의 적용은 공평히 해야 하고, 엄벌을 내릴 때는 상대에 대한 배려를 잊어서는 안 된다. 자고가 바로 그런 관리였구나!” 치사편

     

     

    옛 친구는 옛 친구일세

     

    공자의 친구 가운데 원양(原壤)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들은 공자는 관을 하나 부조하려고 했다. 그러자 자로가 물었다.

     

    예전에 제가 선생님께 듣기로는 자기만 못한 자와는 벗하지 아니하고,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부조는 그만두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니다. 마을의 한 사람이 어려움에 처하면 온 마을 사람이 도와주는 법인데, 하물며 원양은 옛 친구가 아니냐. 나는 가 보아야겠다.”

     

    공자는 그렇게 말하며 관을 만들어 원양의 집에 보냈다. 원양은 그 관 위에 올라앉아 이렇게 말했다.

     

    내 오랫동안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그러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내용이 몹시 음란했다.

     

    백발 성성한 노인이 젊은 여자의 손을 잡고······.”

     

    공자는 숨어서 그 노래를 듣다가 모른 척하고 돌아왔다. 이에 자로가 한마디 했다.

     

    참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이래도 저자와 관계를 유지하실 겁니까?”

     

    이에 공자가 말했다.

     

    어떤 사람이 됐든 피붙이는 피붙이이고, 옛 친구는 옛 친구일세.” 굴절해편(屈節解篇)

     

    사람을 죽일 때도 예가 있다

     

    초나라가 오나라를 공격했을 때의 일이다. 상양(商陽)이라는 하급 무사가 공자(公子)인 진기질(陳棄疾)의 전차에 동승해 도망치는 오나라 군대를 추격하고 있었다. 적의 모습이 보이자, 진기질이 외쳤다.

     

    왕의 명령이다. 활을 들어라!”

     

    상양이 활을 들자, 진기질이 또 외쳤다.

     

    저기다. 쏘아라!”

     

    상양은 한 사람을 쓰러뜨리고는 활을 그냥 활집에 집어넣었다. 이어 진기질이 또 적을 발견했고, 상양은 진기질의 명령으로 두 사람을 죽였는데, 한 사람을 죽일 때마다 눈길을 돌렸다. 죽어 쓰러진 사람을 차마 똑바로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세 사람을 쓰러뜨린 상양은 마부에게 추격을 멈추도록 명령했다.

     

    소인은 대부의 연회에도 참석할 수 없는 비천한 신분이므로 세 명만 죽여도 할 일은 다 한 셈입니다.”

     

    뒷날 공자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평했다.

     

    사람을 죽일 때도 예가 있다.”

     

    그 말을 듣고 자로는 화를 내며 공자에게 대들었다.

     

    신하 된 자, 주군의 일에 임할 때는 있는 힘을 다해야 하고, 목숨을 걸어야 함이 마땅한데, 어찌하여 상양의 행동을 칭찬하시는 것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나는 다만 상양이라는 사람이 사람 죽이기를 꺼리는 그 마음을 칭찬했을 따름이다.” 곡례자공문편(曲禮子貢問篇)

     

    무거운 세금은 호랑이보다 무섭다

     

    공자가 제나라를 향해 가던 길에 태산(泰山) 옆을 지날 때였다. 어디선가 여인이 슬피 우는 소리가 들려오자 공자는 가던 길을 멈추고 자공을 시켜 물어보게 했다.

     

    울음소리를 들어 보니 예사로운 일이 아닌 듯싶다. 어서 가서 물어보고 오너라.”

     

    자공이 가서 이유를 묻자, 여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제 시아버지와 남편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는데, 자식마저 호랑이에게 물려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울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기막힌 재난을 당하면서도 왜 이곳을 떠나지 않습니까?”

     

    여자가 말했다.

     

    그건 이 마을에 무거운 세금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공은 들은 대로 공자에게 전했다. 공자가 말했다.

     

    다들 잘 기억해 두어라. 무거운 세금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것을.” 정론해편(正論解篇)

     

    어미 참새는 왜 그물에 걸리지 않는가?

     

    어느 날, 공자가 참새 잡는 광경을 보고 있는데, 그물에 걸린 새들이 모두 부리가 노란 새끼 참새들뿐이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공자는 참새를 잡던 사람에게 물었다.

     

    어미 참새는 왜 그물에 걸리지 않는가?”

     

    그러자 사내가 대답했다.

     

    어미 참새는 잘 놀라기 때문에 그물에 쉽게 걸리지 않습니다. 그에 비해 새끼 참새는 모이에 눈이 어두워 그물에 잘 걸립니다. 어린 참새라도 어미와 같이 있을 때면 잘 안 잡히지만, 어미 참새라도 새끼와 같이 있을 때는 쉽게 잡히기도 합니다.”

     

    그 말을 듣고 공자는 제자들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잘 놀라기 때문에 위험을 피할 수 있고, 음식에 눈이 어두워지면 재난을 당한다. 행복이건 불행이건 모두 그 마음에서 비롯한다. 또한 어떤 상대와 행동을 같이하느냐에 따라 복을 누릴 수도 있고 불행을 당할 수도 있으니 군자는 모름지기 행동을 같이할 상대를 신중히 가려야 한다.” 육본편(六本篇)

     

    대신의 지혜가 해바라기만도 못하다

     

    제자 번지(樊遲)가 공자에게 물었다.

     

    포견(鮑牽, 제나라의 대부)이 제나라 군주를 섬길 때, 그 정치가 흔들림이 없었으니 그는 참으로 충성스러운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군주는 그의 다리를 잘라 버렸으니 참으로 어리석은 군주가 아닙니까?”

     

    공자가 말했다.

     

    옛날에 뜻을 품은 사람은 그 나라에 도가 있으면 충성을 바쳐 군주를 도왔으나, 그 나라에 도가 없으면 물러나 화를 피했다. 그런데 포견은 녹을 타 먹는 데 급급하여 그 군주가 어진 사람인지 어리석은 사람인지도 모르고 있다가 화를 당하고 말았다. 이는 그의 지혜가 한 송이 해바라기만도 못함을 말해 주는 것이다. 해바라기는 무성한 잎사귀로 자신의 뿌리를 지키는 지혜를 가지고 살아가지 않더냐.” 정론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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