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경..../36計

14計 차시환혼 (借屍還魂)

늘푸른 봄날처럼 2019. 1. 5. 18:22

14차시환혼 (借屍還魂) : 남의 시신을 빌려 다시 살아나다.

 

 

차시환혼은 원나라 악백천(岳伯川)의 잡극 여동빈도철괴리(呂洞賓度鐵拐李)에서 나왔다. 민간에 나도는 이야기를 토대로 한 이 희곡에 따르면 옛날 이현(李玄)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도교에서 태상노군(太上老君)으로 숭상하는 노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장생불사의 비술을 배웠다. 어느 날 그의 혼이 태상노군을 따라 하늘의 끝으로 유람을 떠나게 되었다.

 

이현은 제자에게 세상에 남아 있는 자신의 육체를 간수하라고 부탁하고는 이레 후에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엿새째 되는 날 제자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는 황급히 그의 시체를 화장한 후 떠나갔다. 이현의 영혼이 돌아와서 보니 들어갈 몸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방금 객사한 거지의 몸으로 들어갔다. 흐트러진 머리와 때가 낀 얼굴에 다리를 절며 머리가 벗어진 철괴(鐵拐)의 모습이 되고 말았다. 이현이 거지가 집고 다니던 대나무 지팡이를 향해 선수(仙水)를 한 모금 뿌리자 대나무 지팡이가 문득 쇠지팡이로 변했다. 이후 사람들은 그를 쇠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이씨라는 뜻의 철괴리로 부르게 되었다.

 

여기서 차시환혼 성어가 나왔다. 이는 훗날 낡거나 폐기된 물건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준다는 뜻으로 전용되었고, 삼십육계의 차시환혼은 곤경에 처했을 때 주어진 여건을 최대한 활용해 국면을 전환시키는 전술의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차시환혼(借屍還魂)은 이미 죽어버렸지만 다른 육체를 빌려 새로운 생명을 찾는다는 뜻으로 국면을 전환시켜 주도권을 쥐는 계책이다. 원문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有用者, 不可借. 不能用者, 求借. 借不能用者而用之, 匪我求童蒙, 童蒙求我 - 대개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남을 위해 일하려 하지 않고, 스스로 무언가를 하기 어려운 사람이 왕왕 다른 사람에 의해 유용하게 활용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스스로 무언가를 하기 어려운 사람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이는 내가 유치하고 몽매한 어린애인 동몽(蒙童)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동몽이 나에게 도움을 청하도록 만드는 것을 뜻한다.

 

차시환혼(借屍還魂)의 차시(借屍)는 수단이고 환혼(還魂)은 목표다. 다른 사람의 죽은 육신()을 빌린다()는 수단을 통해 생명()을 얻는다()는 목표를 이룬다는 뜻이다.

회사가 부도나거나 조직이 와해될 때 반응하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주저앉아 지나간 시절을 회상하며 눈물만 흘리는 유형이고, 둘째는 툴툴 털고 다른 조직에서 새롭게 거듭나는 유형이다. 비록 별 볼일 없는 조직이라도 그 조직을 통해 새롭게 재기하는 전략이 차시환혼(借屍還魂)의 본질이다. 비록 하찮은 조직이라도 내 영혼을 되살릴 수만 있다면 주저 없이 바꿔 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육체()냐가 아니라 어떤 정신()을 가지고 있는가 이기 때문이다.

 

인생처세나 조직론에서 자주 사용되는 차시환혼(借屍還魂)의 전술은 결국 생존을 위한 전술이다. 생존을 위하여 새로운 육체를 찾아 끊임없이 떠도는 혼()의 계속되는 행진은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 행동방식이며,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의도를 실현하는 조직의 생존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