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ehouse/이문열 초한지

<72>초한지 卷二 /10장 어떤 종말(4)

늘푸른 봄날처럼 2019. 1. 2. 15:42

이사(李斯)의 상소문이 이세 황제에게 전해지는 것은 막았으나 조고의 마음은 편치 못했다. 문장뿐만 아니라 말재주로도 결코 남에게 지지 않는 이사였다. 이세 황제가 언젠가 한번쯤은 이사를 면대하고 진상을 물을 때가 있을 터인데, 그때 가서 이사가 말을 뒤집으면 큰일이다 싶었다. 이에 조고는 간교하면서도 잔인한 꾀를 냈다.


이사가 옥리(獄吏)에게 글을 준 뒤 며칠 아니 되어서였다. 이세 황제가 보낸 어사(御使)가 감옥으로 찾아와 이사를 보고 말했다. 


“폐하께서 승상의 글을 읽으시고 저를 보내셨습니다. 잊고 계셨던 승상의 지난 공훈을 되새기시고 늦었지만 이제라도 실상을 알아 오라고 하십니다. 승상께서는 그간에 있었던 그릇된 일들을 모두 기탄없이 말씀해주십시오. 폐하께 아뢰어 그 억울함을 풀어 드리겠습니다.” 


자신이 상소를 올린 지 며칠 아니 되는 데다 찾아온 어사의 차림과 생김새가 워낙 그럴싸했다. 이에 이사는 아무런 의심 없이 마음속에 한탄과 푸념을 곁들여 자신의 억울함을 모두 털어놓았다. 그리고 조고에게 품고 있던 분노와 원한까지 서슴없이 내비쳤다. 


“알겠습니다. 저희들도 승상 부자(父子)분께서 모반을 꾀할 까닭이 없다고 짐작은 했습니다만 일이 그렇게 된 것이군요. 반드시 들은 대로 폐하께 전해 올리겠습니다.”


다 듣고 난 어사는 그렇게 이사를 안심시키고 돌아갔다. 이사는 이제 살았다 싶었다. 한시바삐 황제로부터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그날 밤이었다. 그동안의 고문으로 멍들고 찢긴 몸을 추스르며 이사가 막 잠들려 하는데 갑자기 감옥 안이 횃불로 대낮같이 밝아지더니 옥리들이 몰려와 이사를 끌어냈다. 


이사가 끌려간 곳은 감옥 뒤뜰 후미진 곳이었다. 저만치 횃불로 빙 둘러싸인 곳에 호사스러운 교의(交椅)가 놓여 있고 그곳에 한사람이 앉아 있었다. 이사는 이세 황제가 몸소 진상을 알아보려 나선 것으로 알고 감격부터 했다. 하지만 다가가 보니 그게 아니었다. 조고가 잔뜩 거드름을 빼며 교의에 앉아 끌려오는 이사를 차갑게 쏘아보고 있었다. 


“죄인 이사는 듣거라. 너는 한때 좌승상을 지냈으니 우리 진나라의 법이 얼마나 엄정한지를 잘 알 것이다. 그런데도 너는 감옥에 갇힌 몸으로서, 죄를 비는 구실로 황제께 상소를 올려 있지도 않은 지난 공을 스스로 추어올렸다. 이는 폐하의 이목을 현혹시키는 일일 뿐만 아니라 법을 집행하는 대신을 능멸하는 죄를 더한 셈이다.”


이사가 그 앞에 무릎이 꿇리자 조고가 이사의 상소를 흔들어 보이며 엄하게 꾸짖었다. 자신이 써 올린 글이 조고의 손안에 있는 걸 보자 비로소 이사는 일이 크게 잘못된 걸 알았다. 놀랍고도 두려워 어찌할 줄 모르는데 조고가 문득 사방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옥리들은 무얼 하는가? 어서 저 죄인의 양쪽 엄지와 검지를 모두 부러뜨려 다시는 망령되이 붓을 잡지 못하도록 하라!” 


그러자 옥리들이 달려와 이사의 손가락을 모두 꺾어 다시는 붓을 잡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처절한 비명과 함께 이사가 혼절하자 물을 퍼부어 다시 깨어나게 한 조고가 다시 두 번째 판결을 내렸다.  


“너는 오늘 또 황제께서 보내신 어사에게 네 죄를 부인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 옥사(獄事)를 맡게 된 나를 무고하였다. 네가 모반을 꾀한 죄는 뒷날 오형(五刑)으로 다스리려니와, 곁들여 저지른 작은 죄는 바로바로 셈하게 될 것이다. 여봐라. 이 자를 일백번 매질하되 털끝만큼도 손끝에 인정을 남겨서는 아니 된다!”


그러면서 두 번째 죄의 증인으로 낮에 다녀간 바로 그 어사를 불러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어사는 조고에게 빌붙어 사는 식객(食客) 가운데 하나였다. 조고가 옥리들과 짜고 그를 어사로 꾸며 이사의 속을 떠보게 한 것인데, 이사가 보기 좋게 걸려들고 말았다.  


그 거짓 어사를 알아본 이사는 두려움으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후회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이사의 몸이 준비된 형틀에 얹히자 모진 매질이 쏟아졌다. 조고는 이사가 몇 번이나 혼절했다 깨어나기를 거듭하며 일백대의 매를 다 맞는 걸 보고서야 자리를 떴다. 


조고의 독한 꾀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 뒤로도 황제가 보낸 어사들이 몇 번 더 감옥으로 이사를 찾아왔다. 그러나 한번 쓴맛을 본 이사는 쉽게 속을 털어놓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조고가 덮어씌운 대로 승복하며 어서 죽여 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하지만 날이 지나면서 상처가 아물고 아팠던 기억이 무디어지자 이사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다시 살고자 하는 욕망이 되살아났다. 언젠가 한번은 황제가 진상을 물어올 것이란 믿음도 차츰 이사의 경계심을 무디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감옥 안이 떠들썩할 만큼 요란한 격식과 수많은 손아래 벼슬아치들을 거느린 알자(謁者)가 다시 이사를 찾아왔다. 어사나 알자나 황제의 명을 받들기는 마찬가지지만, 어사가 벼슬아치들을 감찰하는 일을 한다면 알자는 황제가 예우를 갖춰 제 뜻을 전할 때 부리는 내관(內官)이다. 그 알자란 직함이 풍기는 우호적인 느낌에다 그를 맞는 옥리들의 정중하면서도 공손한 태도가 한층 더 이사의 경계심을 풀어놓았다. 


거기다가 알자의 말투며 몸가짐까지 참으로 황제가 보낸 사람 같은 데가 있어, 이사는 마침내 거듭 감추어 오던 내심을 털어놓고 말았다. 다시 한번 자신의 무죄함을 주장함과 아울러 조고의 간교함을 일러바쳤다. 뿐만 아니라, 듣고 있는 알자의 얼굴에 함께 한탄하고 분노하는 기색이 떠도는 걸 보고 부러진 손가락까지 내보이며 흐느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알자는 황제가 보낸 것이 아니었다. 이사가 잘 속지 않자 조고가 식객들 중에서 생김이 더 그럴듯하고 언변이 더 나은 자를 골라 보냈을 뿐이었다. 따라서 그날 밤 이사는 다시 감옥 뒤뜰로 끌려가 또 한번 견뎌내기 어려운 고통과 수모를 당해야 했다. 


거기서 몇 군데 성한 뼈가 더 부러지고 온전하던 살가죽이 찢기는 고통을 겪자 이사는 마침내 모든 희망을 잃었다. 굳게 마음의 문을 닫고 그 뒤로는 누가 어떤 이름으로 찾아와도 그 속을 털어놓지 않았다. 모두 조고가 보낸 사람이라 여겨 조고가 바랄 만한 대답만 했다. 그렇게 이사가 죽기만을 기다리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 비교적 이사에게 인정을 베풀던 옥리 하나가 이사에게 가만히 일러주었다.


“누가 승상을 찾아왔는데 만나보시겠습니까? 만나면 알아보실 분이라고 말합니다만….” 


그때 이사는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있었으나 아는 사람이 찾아왔다는 말을 듣자 누군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약 조고가 거짓으로 꾸며 보낸 사람이라면 그때 가서 거기에 맞게 응대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그를 만나보기로 했다.


오래잖아 옥리가 데려온 사람은 이사가 잘 아는 시중(侍中)이었다. 자신이 아직 이세 황제의 신임을 잃기 전 궁궐을 드나들 때 자주 보았는데, 들은 바로는 충직하고 근후한 위인이었다. 그 시중이 소매에서 황제의 옥새가 찍힌 친필 조서를 내보이면서 말했다. 


“좌승상 어른. 고초가 많으셨을 줄 압니다. 이제야 황제께서도 조고의 간악함을 아시고 특별히 저를 보내셨습니다. 승상의 무고함과 아울러 조고의 죄상을 명백히 하시어 자칫 뒤집힐 뻔했던 사직과 법치(法治)를 바로잡자는 게 폐하의 뜻입니다.”


그러는 시중의 눈에서는 금세 눈물이라도 떨어질 듯했다. 거기다가 감옥에서 몇 달간 말 못할 고초를 겪기는 해도 옥새나 친필이라면 누구보다 잘 분별할 수 있는 이사였다. 황제가 친필에다 옥새까지 찍어 그 시중을 보증하는 데는 이사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중이란 벼슬도 조고가 틀어쥐고 있는 낭중령(郎中令)에 속한다는 게 약간 마음에 걸렸지만 이사는 또 한번 속아 그 시중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말았다.


하지만 결과는 앞서 어떤 때보다 끔찍했다. 그 시중 또한 그 사이 조고의 사람으로 변해, 앞서 어사나 알자로 왔던 식객들과 다름이 없었다. 그 때문에 그날 밤 더해진 모진 고문으로 이미 걸레쪽같이 되어있던 이사의 몸은 또 한번 으스러지고 찢어지고 터지고 짓뭉개졌다. 그리고 그런 몸에 못지않게 이사의 정신도 온전히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늦어도 한참이나 늦어, 이세 황제 호해가 보낸 어사가 감옥으로 이사를 찾아간 것은 그 뒤로도 몇 번이나 더 거짓 어사가 이사를 혼란시킨 뒤였다. 진짜 어사는 이사를 감옥에서 끌어내 정중히 심문했지만 이사는 그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조고가 보낸 가짜라 여겼다. 거듭거듭 죄를 자복(自服)하며 그저 죽여주기만을 빌었다.


감옥에서 돌아간 어사가 보고들은 대로 아뢰자 그래도 마음 한구석 어딘가 석연치 않은 데가 있던 이세 황제는 오히려 기뻐하며 말했다.


“조고가 아니었다면 이사에게 크게 속을 뻔하였구나!”


그리고는 다시 어사를 삼천군(三川郡)으로 보내 그 아들 이유(李由)의 죄를 드러내놓고 알아보게 하였다. 오래잖아 어사가 돌아와 알렸다.


“이유는 이미 항량(項梁)의 무리에게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이세 황제는 이제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이사를 조고의 손에 맡겨 처결하게 했다. 조고는 이사에게 갖은 죄목을 덮씌워 오형에 이은 요참(腰斬)을 그 벌로 삼았다. 이사는 이세 황제 2년 7월(史記 <진시황本紀>에서는 3년 겨울이라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한두 달 차이) 함양의 저자 바닥에서 목숨을 잃었다. 형을 받기 위해 감옥을 나설 때에야 비로소 정신이 돌아온 듯 이사는 함께 끌려가던 둘째 아들을 돌아보며 처연히 말했다. 


“만약 내가 풀려난다면 너와 함께 다시 한번 누런 개를 이끌고 고향 상채(上蔡)의 동쪽 변두리로 나가 토끼 사냥을 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어쩔 수가 없게 되었구나!” 


그리고 마침내 부자가 얼싸안고 크게 울었다.


이사의 최후는 그가 일생 동안 펼친 계책이 남에게 끼친 고통과 스스로 걱정했을 만큼 누렸던 영화를 아울러 연상케 하는 데가 있었다. 이사는 죽기 전에 오형을 받았는데, 먼저 얼굴에 먹물로 글자를 새겨 넣고[경], 다음에 코를 베어내고[의], 이어 다리를 잘라내고[%], 다시 생식기를 도려낸[宮] 뒤, 마지막으로 머리를 쪼개는[大(벽,피)] 순서였다. 그런 다음 허리를 베고 목을 잘라 저잣거리에 내거니 보는 사람이 모두 끔찍해했다. 


그날 이사와 함께 죽은 것은 그의 둘째아들뿐만이 아니었다. 그 친가와 외가, 처가를 합쳐 삼족이 모두 죽음을 당하니 이른바 진(秦)의 <이삼족(夷三族)>이었다. 사마천은 이사의 죽음을 두고 이렇게 평하였다. 


<…이사는 작위와 봉록이 막중하면서도 군주에게 아첨하고 구차하게 그 뜻에 영합하려 하였다. 조칙을 엄히 하고 형벌을 혹독하게 하였으며 조고의 간사한 말에 넘어가 적자를 폐하고 서자를 (천자로) 세웠다. 그러다가 제후들이 반란을 일으킨 뒤에야 바른 말을 하려고 하였으니, 어찌 늦지 않을 것이랴. 사람들은 모두 이사가 충성을 다하였으나 오형을 당하고, 죽은 줄 알지만 그 본말을 살펴보면 세속의 공론과 다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진실로 충성을 다하였다면) 이사의 공적도 주공(周公)이나 소공(召公)에 못지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