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ehouse/이문열 초한지

<24>초한지 卷一 / 6장 亡命(4)

늘푸른 봄날처럼 2019. 1. 1. 20:12

유계가 패현을 떠나던 날은 볼 만했다. 그가 이끌고 갈 사람들은 비록 품삯도 받지 못하는 역도(役徒·일꾼)로 끌려가기는 하나, 그래도 죄수나 노예와는 달랐다. 제 땅에서는 저마다 하늘같은 가장이요 사랑하는 지아비며 피를 나눈 형제거나 귀하게 기른 자식이었다. 그들 300명이 먼 길 떠날 채비를 하고 현청 앞으로 모여드니 군대처럼 엄정한 대오는 없어도 자못 위의(威儀)가 있었다.


유계도 먼 길을 떠나는 데다가 그들을 인솔하는 처지라 차림을 갖추다 보니 이전과 달랐다. 높은 코와 잘 생긴 수염은 나이 들며 더 짙어진 얼굴의 음영과 더불어 전보다 훨씬 성숙한 남성미로 사람의 눈길을 끌었다. 거기다가 자신이 공들여 짠 죽피관(竹皮冠)을 쓰고, 결 고운 베로 갖춰 지은 사대부 계층의 나들이옷을 걸치고 있으니 멀리서도 한눈에 가려낼 수 있을 만큼 훤칠한 장부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볼 만한 것은 그를 배웅하러 나온 패현의 유지와 호걸들이었다. 먼저 현령과 여공(呂公)을 중심으로 소하와 조참, 하후영 같은 이들이 평소 유계와 가까이 지내는 다른 향리(鄕吏)들과 함께 한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자기를 칼로 찌른 유계를 덮어주느라 옥살이까지 한 적이 있는 하후영은 그때 현(縣)의 사어(司御〓말과 수레를 관장하는 관리)가 되어 있었는데, 유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게 못내 서운하다는 표정이었다.


유계를 따라 함양으로 가지 못하는 것을 한스럽게 여기는 이들로는 노관과 번쾌가 더 있었다. 그 사이 처자를 거느리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소하까지 말려 이번에는 함께 가지 못하게 된 그들은 공연히 풀이 죽어 유계를 배웅 나온 저잣바닥 건달들 속에 끼어 있었다. 그들 속에는 틈만 보이면 유계에게 맞서다가 근래에야 그 밑으로 들어온 옹치(雍齒)가 있었고, 누에치기로 살며 남의 상사(喪事)에 피리를 불어주는 주발(周勃)도 보였다.


아직 유계 밑에 들지는 않았지만 먼 빛으로 흠모하고 있는 건달들도 여럿 나왔다. 그들 중에는 기신(紀信)과 주가(周苛)도 있었다. 비록 그들의 몸은 풍읍(豊邑) 인근의 농투성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나 그 마음은 이미 드넓은 세상을 향해 날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뒷날 둘 모두 유계를 위해 죽게 되는데, 어쩌면 그렇게 된 것은 그날 그들이 보낸 흠모의 눈길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웃 현에서 협객을 자처하며 평소 유계와 연결을 맺고 있던 건달들도 패현까지 배웅을 나왔다. 그 중에는 수양현(Q陽縣) 저자에서 비단 장수를 하는 관영(灌쒚)이란 사내가 있었다. 몸집은 작으나 말을 잘 타고 완력이 세었다. 성격이 불같고 두려움을 몰라 나중에 유계의 기장(騎將)으로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전장을 내닫게 되는데, 그 또한 그날의 배웅 때 이미 예정되어 있던 배역이었을 것이다.


그래저래 100여 명의 사내들이 저마다 크고 작은 예물을 가지고 유계와 작별하니 현청 앞의 넓은 뜰은 무슨 엄숙한 출정의 마당 같았다. 누가 보아도 한 시골 하급관리가 수백 명 일꾼을 도성의 노역장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 떠나는 길 같지는 않았다. 아버지 태공(太公)이 늘 실속 없음을 걱정하고, 가깝게 지내는 소하마저 큰소리만 칠 뿐 실행하는 일이 적다고 빈정댄 유계였다. 그러나 턱없이 커서 늘 비어있는 것 같던 그 그릇은 어느새 적지 않은 사람들의 믿음과 기대로 채워져 가고 있었다.


역도로 떠나는 300명 장정들의 부모형제와 처자도 마지막 석별의 정을 나누느라 현청 앞뜰을 악머구리 끓듯 하였다. 서로 붙잡고 울고 웃으며 옷깃을 놓아줄 줄 모르는데, 유계 또한 그들을 박절히 떼어놓지 못해 출발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날 유계와 풍읍의 장정들은 해가 중천으로 솟은 뒤에야 패현 성문을 나설 수가 있었다.


당시 역도들이 함양에 이르기까지의 숙식은 원칙으로 노숙(露宿)과 자급(自給)이었다. 게다가 돈으로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마을이 언제나 이어져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장정들은 침구와 식량과 취사도구를 지니고 가야 했다. 대개 같은 동네 사람들끼리 식량과 도구를 모아 수레로 끌거나 등짐으로 번갈아 져 날라야 했는데, 그 때문에 처음부터 행군은 고달프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무겁게 지고 끌고 갈 짐이 있는 자들은 그래도 나았다. 이미 여러 해 시황제의 폭정에 시달린 뒤라 그나마 자기들이 쓸 것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끌려가는 이들이 있어 그 참상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동료들에게 얻어먹기도 하고 지나는 마을에서 구걸하기도 하지만, 함께 가는 일꾼들에게도 마을 사람들에게도 그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게 많지 못했다.


가는 도중에 굶주려 쓰러지거나 뒤처져 비렁뱅이로 떠돌게 되는 게 그들의 운명이었다.


게다가 일껏 마음을 먹고 떠난 이들도 풍읍에서 멀어지면서 마음이 달라졌다. 고향에 남아있는 가족들이 받을 고초를 생각해 억지로 부역을 나서기는 했지만, 진나라의 기강이 흐트러져 돌아갈 날을 기약할 수 없게 된 게 딴 생각을 하게 했다. 고향에서는 부역을 떠난 것으로 알고 있어, 관리들이 가족들을 더는 괴롭히지 않을 것이라 믿고 달아날 틈만 노렸다.


유계가 이끌고 가는 장정들도 시황제 말년의 이런 저런 토목공사에 끌려가는 역도들이 빠져있는 그같은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풍읍의 경계를 벗어나기 전부터도 하나 둘 안 보이는 얼굴이 생기더니, 풍읍 경계를 벗어나면서부터는 눈에 띄게 장정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첫날밤을 묵고 나니 수십 명이 달아나고 없었고, 그 다음날 아침에는 이미 절반 넘게 보이지 않았다. 따라간 구도(求盜)와 정보(亭父)가 특히 유계를 따르는 젊은이 몇과 지킨다고 지켜보았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사흘째 되던 날 아침에 헤어보니 장정은 다시 전날 밤의 절반으로 줄어있었다. 아직 풍읍에서 서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늪지에서의 일이었다.


(이러다가는 여산에 이르기도 전에 일꾼들이 하나도 남지 않겠구나!)


유계는 어느 새 아흔 명도 남지 않은 장정들을 이끌고 다시 길을 재촉하면서도 암담한 느낌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함께 걸으면서 그들의 괴로운 처지를 보니, 굳이 함양까지 끌고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을 다 보내주고 나면 이번에는 자신이 진의 엄한 법에 걸려 목을 잃게 되어 있었다.


떠날 때 그게 그리 쉬운 길이 아니리란 것쯤은 유계도 대강 알았다. 하지만 일이 그토록 절박한 지경까지 몰리게 될 줄은 전혀 짐작조차 못하였다. 거기다가 소하가 간곡히 권한 일이라 더욱 마음 느긋해져 떠났는데, 거기서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으니 어지간한 유계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유계는 처음부터 깊이 있는 사유나 치밀한 논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런 유계에게 어둡고 진지한 상념은 섬세하고 간드러진 감상만큼이나 맞지 않았다. 고약하게 되었다 - 라는 말 대신 잔뜩 찌푸린 얼굴로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특히 곁에 두고 손발처럼 부리는 정보를 불렀다.


“모두 여기서 멈추라고 하고 너는 인근 마을로 가서 술을 사오너라. 사람을 데리고 가서 여기 있는 모두가 마실 만큼 넉넉히 사와야 한다.”


떠나올 때 이 사람 저 사람으로부터 받은 전별금(餞別金)으로 받은 돈을 헤어보지도 않고 한줌 덥석 집어 내밀며 유계가 그렇게 말했다. 진작부터 걱정으로 울상이 되어있던 정보가 알 수 없다는 얼굴로 유계를 쳐다보며 물었다.


“술을… 사오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다. 혼자 속을 끓이고 머리를 쥐어짜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여럿이 마시면서 속을 터놓고 함께 의논해보자.”


유계가 정보의 속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듯 그렇게 대답했다. 그에게는 말로 조리있게 엮어 내지는 못해도 사물의 핵심을 한눈에 꿰뚫어보는 힘 같은 것이 있었다. 또 사람과 사물이 뒤얽히고 엉겨 빚어내는 변화의 기미들을 예민하게 읽어내는 감각도 남달랐다. 하지만 그때는 아직 그것이 자각되지 못하고 그저 본능적인 육감에 머물러 있었다.


유계가 여럿과 함께 술을 마시려고 마음먹은 것도 아직은 본능과도 같은 그 육감 때문이었다. 내 삶에서 무언가를 결단할 때가 되었고, 그 결단은 이들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시달리고 짓밟히면서도 기댈 데 없는 이 가엾은 생명들 - 그 정도의 느낌으로 낮술을 퍼마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술이 거나해지자 미리 마음에 정해둔 바 없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여러분. 여기서 모두 헤어집시다. 이제 더는 진나라를 위해 땀흘릴 까닭도 없거니와, 간다해도 돌아올 기약 없는 게 이 길이오. 차라리 진작에 달아나 각기 살 길을 찾는 게 낫겠소.”


유계가 장검을 짚어 건들거리는 몸을 바로 잡으며 장정들에게 그렇게 소리쳤다. 그러자 별나게 유계를 따르던 젊은이들 중에 하나가 근심스러운 듯 물었다.


“저희들은 그렇게 살기를 도모한다 쳐도, 명색 나라의 녹을 먹는 정장나리께서는 어쩔 작정이십니까? 곧 뒤쫓아올 진나라의 엄한 법과 모진 관리들을 어쩌시렵니까?”


“나도 달아날 것이오. 달아나 깊은 산 속에 숨어 세상이 바뀌기를 기다릴 것이오!”


다시 그렇게 미리 생각해둔 적이 없는 말이 유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말을 하다보니 아직은 막막하게만 느껴지는 그 망명(亡命)이 새삼스러운 무게로 가슴을 짓눌러 그의 목소리를 떨게 했다. 하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진지하게만 들리는 떨림이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도 떠들썩하게 익어가던 술자리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유계의 말을 나름으로 해석하고, 저마다 서있는 자리에 맞춰 받아들이느라고 그런지, 한참이나 손가락 하나 까닥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마음들이 정해졌는지 수런거림과 함께 장정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혹시라도 유계의 생각이 바뀔까봐 겁을 낸 사람들이 서둘러 행장을 꾸려 떠났다. 이어 유계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죄스러워하며 떠났고, 다시 소심해서 법을 어기고 달아나기가 겁나던 사람들이 마음을 다잡아먹고 그 뒤를 따랐다. 그런데 그중 여남은 명은 끝내 떠나지 않고 지켜 섰다가 마침내 유계 앞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저희들은 나리를 따르고자 합니다. 받아주십시오.”


유계에게는 뜻밖이었지만, 다른 사람의 공경이나 복종을 받아들일 때 미련스럽거나 뻔뻔하게 보일 만큼 당당한 게 또한 유계였다.


“일어들 나시오. 이 무슨 일이오? 나는 여러분을 감당할 자신이 없소.”


그렇게 겸양을 하다가 이내 가슴을 젖히며 호탕하게 소리쳤다.


“좋소. 그럼 새 날이 올 때까지 함께 고락을 나눕시다! 이 유(劉)아무개, 비록 힘없고 어리석으나 여러분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겠소.”


그리고는 술을 더 사오게 해 그들과 함께 날이 저물도록 배짱 좋게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