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 - 5
이때 뜻밖에 방자 나와
“도련님. 사또께옵서 부르시오.”
도련님 들어가니 사또 말씀하시되
“여봐라 서울서 동부승지 교지가 내려왔다. 나는 문부사정하고 갈 것이니 너는 내행을 배행하여
명일(明日)로 떠나거라.”
도련님 부교(父敎) 듣고 일변은 반갑고 일변은 춘향을 생각하니 흉중이 답답하여 사지에 맥이 풀리고
간장이 녹는 듯 두 눈으로 더운 눈물이 펄펄 솟아 옥면(玉面)을 적시거늘. 사또 보시고
“너 왜 우느냐. 내가 남원을 일생(一生) 살 줄로 알았더냐. 내직(內職)으로 승차되니 섭섭히 생각 말고
금일부터 치행등절을 급히 차려 명일 오전으로 떠나거라.”
겨우 대답하고 물러나와 내아(內衙)에 들어가 사람이 무론상중하하고 모친께는 허물이 적은지라.
춘향의 말을 울며 청하다가 꾸중만 실컷 듣고 춘향의 집을 나오는데 설움은 기가 막히나 노상에서 울 수 없어 참고 나오는데 속에서 두부장 끓 듯 하는지라. 춘향 문전 당도하니 통채 건더기채 보채 왈칵 쏟아져 놓(으)니
“어 푸 어 푸 어 허.”
춘향이 깜짝 놀래어 왈칵 뛰어 내달아
“애고 이게 웬일이오. 안으로 들어가시더니 꾸중을 들으셨소. 노상에 오시다가 무슨 분함 당하(여) 계(시)오.
서울서 무슨 기별이 왔다더니 중복을 입어계(시)오. 점잖으신 도련님이 이것이 웬 일이오.”
춘향이 도련님 목을 담쏙 안고 치맛자락을 걷어 잡고 옥안(玉顔)에 흐르는 눈물 이리 씻고 저리 씻으면서
“울지 마오. 울지 마오.”
도련님 기가 막혀 울음이란게 말리는 사람이 있으면 더 울던 것이었다. 춘향이 화를 내어
“여보 도련님 입 보기 싫소. 그만 울고 내력 말이나 하오.”
“사또께옵서 동부승지하(여) 계시단다.”
춘향이 좋아하여
“댁의 경사요. 그래서, 그러면 왜 운단 말이오?”
“너를 버리고 갈 터이니 내 아니 답답하냐.”
“언제는 남원 땅에서 평생 살으실 줄로 알았겠소. 나와 어찌 함께 가기를 바라리요. 도련님 먼저 올라가시면 나는 예서 팔 것 팔고 추후(追後)에 올라갈 것이니 아무 걱정 말으시오. 내 말대로 하였으면 군색잖고
좋을 것이요. 내가 올라가더라도 도련님 큰 댁으로 가서 살 수 없을 것이니 큰 댁 가까이 조그마한 집 방이나
두엇 되면 족하오니 염탐하여 사 두소서. 우리 권구 가더라도 공밥 먹지 아니할 터이니 그렁저렁 지내다가
도련님 나만 믿고 장가 아니갈 수 있소. 부귀영총 재상가의 요조숙녀 가리어서 혼정신성할지라도 아주 잊든
마옵소서. 도련님 과거하여 벼슬 높아 외방 가면 신래마마 치행할 제 마마로 내세우면 무슨 말이 되오리까.
그리 알아 조처하오.”
“그게 이를 말이냐. 사정이 그렇기로 네 말을 사또께는 못 여쭈고 대부인전(大夫人前) 여쭈오니 꾸중이
대단하시며 양반의 자식이 부형(父兄)따라 하향에 왔다 화방작첩하여 데려간단 말이 전정에도 괴이하고
조정에 들어 벼슬도 못한다더구나. 불가불 이별이 될 밖에 수 없다.”
춘향이 이 말을 듣더니 고대 발연변색이 되며 요두전목에 붉으락 푸르락 눈을 간잔지런하게 뜨고 눈썹이
꼿꼿하여지면서 코가 발심발심하며 이를 뽀드득 뽀드득 갈며 온몸을 쑤신 입 틀 듯하며 매 꿩 차는 듯 하고
앉더니
“허허 이게 왠 말이오.”
왈칵 뛰어 달려들며 치맛자락도 와드득 좌르륵 찢어 버리며 머리도 와드득 쥐어뜯어 싹싹 비벼 도련님
앞에다 던지면서
“무엇이 어쩌고 어째요. 이것도 쓸데 없다.”
명경(明鏡) 체경 산호죽절을 두루 쳐 방문 밖에 탕탕 부딪치며 발도 동동 굴러 손뼉치고 돌아앉아
자탄가(自嘆歌)로 우는 말이
“서방 없는 춘향이가 세간살이 무엇하며 단장하여 뉘 눈에 괴일꼬. 몹쓸 년의 팔자로다. 이팔청춘 젊은 것이
이별될 줄 어찌 알랴. 부질없는 이내 몸을 허망하신 말씀으로 전정(前程) 신세 버렸구나. 애고 애고 내 신세야.”
천연히 돌아앉아
“여보 도련님 이제 막 하신 말씀 참말이요 농말이요. 우리 둘이 처음 만나 백년언약 맺을 적에 대부인
사또께옵서 시키시던 일이오니까. 빙자가 웬 일이요. 광한루서 잠깐 보고 내 집에 찾아와서 침침무인 야삼경에
도련님은 저기 앉고 춘향 나는 여기 앉아 날더러 하신 말씀 구맹불여천맹이요 산맹불여천맹이라고 전년 오월
단오야(夜)에 내 손길 부여잡고 우둥퉁퉁 밖에 나와 당중(堂中)에 우뚝 서서 경경히 맑은 하늘 천 번이나
가리키며 만 번이나 맹세키로 내 정녕 믿었더니 말경(末境)에 가실 때는 톡 떼어 버리시니 이팔청춘 젊은 것이
낭군 없이 어찌 살꼬. 침침공방 추야장에 시름 상사 어이할꼬. 모질도다 모질도다 도련님이 모질도다.
독하도다 독하도다 서울 양반 독하도다. 원수로다 원수로다 존비귀천(尊卑貴賤) 원수로다. 천하에 다정한 게 부부정(夫婦情) 유별(有別)컨만 이렇듯 독한 양반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애고 애고 내 일이야. 여보 도련님
춘향 몸이 천(賤)타고 함부로 버리셔도 그만인 줄 알지 마오. 첩지박명 춘향이가 식불감 밥 못 먹고 침불안
잠 못 자면 며칠이나 살 듯하오. 상사로 병이 들어 애통하다 죽게 되면 애원한 내 혼신(魂神) 원귀(怨鬼)가
될 것이니 존중(尊重)하신 도련님이 근들 아니 재앙이요. 사람의 대접을 그리 마오. 인물 거천하는 법이
그런 법이 왜 있을꼬. 죽고지고 죽고지고. 애고 애고 설운지고.”
한참 이리 자진하여 설이 울 제 춘향모는 물색(物色)도 모르고
“애고 저것들 또 사랑 싸움이 났구나. 어 참 아니꼽다. 눈 구석 쌍 가래톳 설 일 많이 보네.”
하고 아무리 들어도 울음이 장차 길구나. 하던 일을 밀쳐 놓고 춘향 방 영창 밖으로 가만가만 들어가며 아무리 들어도 이별이로구나.
“허허 이것 별일 났다.”
두 손뼉 땅땅 마주 치며
“허 동네 사람 다 들어 보오. 오늘날로 우리 집에 사람 둘 죽습네.”
어간 마루 섭적 올라 영창문을 뚜드리며 우루룩 달려들어 주먹으로 겨누면서
“이년 이년 썩 죽어라. 살아서 쓸데없다. 너 죽은 시체라도 저 양반이 지고 가게. 저 양반 올라가면 뉘 간장을
녹이려냐. 이년 이년 말 듣거라. 내 일상 이르기를 후회되기 쉽느니라. 도도한 마음 먹지 말라고 여염 사람
가리어서 형세 지체 너와 같고 재주 인물이 모두 너와 같은 봉황의 짝을 얻어 내 앞에 노는 양을 내 안목에
보았으면 너도 좋고 나도 좋지. 마음이 도고하여 남과 별로 다르더니 잘 되고 잘 되었다.”
두 손뼉 꽝꽝 마주 치면서 도련님 앞에 달려들어
“나와 말 좀 하여 봅시다. 내 딸 춘향을 버리고 간다 하니 무슨 죄로 그러시오. 춘향이 도련님 모신 지 거진
일 년 되었으되 행실이 그르던가 예절이 그르던가 침선(針線)이 그르던가 언어가 불순턴가 잡스런 행실 가져
노류장화 음란턴가. 무엇이 그르던가. 이 봉변이 웬 일인가. 군자 숙녀 버리는 법 칠거지악 아니면은 못 버리는
줄 모르는가. 내 딸 춘향 어린 것을 밤낮으로 사랑할 제 안고 서고 눕고 지며 백년 삼만육천일에 떠나 살지
말자 하고 주야장천 어루더니 말경에 가실 제는 뚝 떼어 버리시니 양류천만사인들 가는 춘풍(春風) 어이 하며
낙화낙엽되게 되면 어느 나비가 다시 올까. 백옥같은 내 딸 춘향 화용신도 부득이 세월에 장차 늙어져
홍안(紅顔)이 백수(白首)되면 시호시호부재래라. 다시 젊든 못 하나니 무슨 죄가 진중하여 허송(虛送) 백년
하오리까. 도련님 가신 후에 내 딸 춘향 님 그릴 제 월정명 야삼경에 첩첩수심(疊疊愁心) 어린 것이 가장(家長) 생각 절로 나서 초당전(草堂前) 화계상담배 피워 입에다 물고 이리저리 다니다가 불꽃같은 시름 상사 흉중으로 솟아나 손 들어 눈물 씻고 후유 한숨 길게 쉬고 북편을 가리키며 한양 계신 도련님도 나와 같이 그리(워하)신지 무정하여 아주 잊고 일장 편지 아니 하신가. 긴 한숨에 듣는 눈물 옥안홍상(玉顔紅裳) 다 적시고 저의 방으로 들어가서 의복도 아니 벗고 외로운 베개 위에 벽만 안고 돌아누워 주야장탄(晝夜長嘆) 우는 것은 병 아니고
무엇이오. 시름 상사 깊이 든 병 내 구(救)치 못하고서 원통히 죽게 되면 칠십 당년 늙은 것이 딸 잃고 사위
잃고 태백산 갈가마귀 게발 물어다 던지 듯이 혈혈단신 이 내 몸이 뉘를 믿고 살잔 말고. 남 못할 일 그리 마오. 애고 애고 설운지고. 못하지요. 몇 사람 신세를 망치려고 아니 데려가오. 도련님 대가리가 둘 돋쳤소.
애고 애고 무서(워)라 이 쇠 띵띵아.”
왈칵 뛰어 달려드니 이 말 만일 사또께 들어가면 큰 야단이 나겠거든
“여보소 장모. 춘향만 데려갔으면 그만 두겠네.”
“그래 아니 데려가고 견뎌낼까.”
“너무 거세우지 말고 여기 앉아 말 좀 듣소. 춘향을 데려간대도 가마 쌍교 말을 태워 가자 하니 필경에
이 말이 날 것인즉 달리는 변통할 수 없고 내 이 기가 막히는 중에 꾀 하나를 생각하고 있네마는 이 말이
입 밖에 나서는 양반 망신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선조(先祖) 양반이 모두 망신할 말이로세.”
“무슨 말이 그리 좌뜬말이 있단 말인가.”
“내일 내행(內行)이 나오실 제 내행 뒤에 사당이 나올 테니 배행(陪行)은 내가 하겠네.”
“그래서요.”
“그만하면 알지.”
“나는 그 말 모르겠소.”
“신주(神主)는 모셔내어 내 창옷 소매에다 모시고 춘향은 요여에다 태워 갈 밖에 수가 없네. 걱정 말고
염려 마소.”
춘향이 그 말 듣고 도련님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마소 어머니. 도련님 너무 조르지 마소. 우리 모녀 평생 신세 도련님 장중(掌中)에 매었으니 알아 하라
당부나 하오. 이번은 아마도 이별할 밖에 수가 없네. 이왕에 이별이 될 바에는 가시는 도련님을 왜
조르리까마는 우선 갑갑하여 그러하지. 내 팔자야. 어머니 건넌방으로 가옵소서. 내일은 이별이 될 텐가 보오. 애고 애고 내 신세야. 이별을 어찌할꼬. 여보 도련님.”
“왜야.”
“여보 참으로 이별을 할 테요.”
촛불을 돋우(어) 켜고 둘이 서로 마주앉아 갈 일을 생각하고 보낼 일을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 한숨질 눈물겨워 경경오열하여 얼굴도 대어보고 수족도 만져보며
“날 볼 날이 몇 밤이오. 애달파 나쁜 수작 오늘 밤이 망종(亡終)이니 나의 설운 원정(原情) 들어보오.
연근육순 나의 모친 일가친척 바이 없고 다만 독녀(獨女) 나 하나라. 도련님께 의탁하여 영귀(榮貴)할까
바랐더니 조물(造物)이 시기하고 귀신이 작해하여 이 지경이 되었구나. 애고 애고 내 일이야.
도련님 올라가면 나는 뉘를 믿고 사오리까. 천수만한 나의 회포 주야 생각 어이 하리. 이화(李花) 도화(桃花)
만발할 제 수변행락 어이 하며 황국(黃菊) 단풍 늦어갈 제 고절숭상 어이할꼬. 독숙공방 긴긴 밤에 전전반측
어이하리. 쉬느니 한숨이요 뿌리느니 눈물이라. 적막강산 달 밝은 밤에 두견성(杜鵑聲)을 어이 하리. 상풍고절 만리변(萬里邊)에 짝 찾는 저 홍안성을 뉘라서 금하오며 춘하추동 사시절에 첩첩이 쌓인 경물(景物) 보는 것도 수심이요 듣는 것도 수심이라.”
애고 애고 설이 울 제 이도령 이른 말이
“춘향아 울지 마라. 부수소관첩재오라. 소관의 부수들과 오나라 정부들도 동서(東西) 님 그리워서 규중심처
(閨中深處) 늙어 있고 정객관산로기중에 관산의 정객이며 녹수부용 채연녀도 부부신정(夫婦新情)
극중(極重)타가 추월강산(秋月江山) 적막한데 연을 키워 상사하니 나 올라간 뒤라도 창전에 명월(明月)커든
천리(千里) 상사 부디 마라. 너를 두고 가는 내가 일일(一日) 평분 십이시(十二時)를 낸들 어이 무심하랴.
울지 마라 울지 마라.”
춘향이 또 우는 말이
“도련님 올라가면 행화춘풍(杏花春風) 거리거리 취하는 게 장진주요 청루미색(靑樓美色) 집집마다 보시느니 미색이요 처처에 풍악소리 간 곳마다 화월(花月)이라. 호색하신 도련님이 주야 호강 놀으실 제 나같은
하방천첩이야 손톱만큼(이)나 생각하오리까. 애고 애고 내 일이야.”
“춘향아 울지 마라. 한양성 남북촌(南北村)에 옥녀가인(玉女佳人) 많건마는 규중심처 깊은 정 너밖에 없었으니 이 아무리 대장부인들 일각이나 잊을소냐.”
서로 피차 기가 막혀 연연(戀戀) 이별 못 떠날지라. 도련님 모시고 갈 후배사령이 나올 적에 헐떡헐떡 들어오며
“도련님 어서 행차하옵소서. 안에서 야단났소. 사또께옵서 도련님 어디 가셨느냐 하옵기에 소인이 여쭙기를 놀던 친구 작별차로 문밖에 잠깐 나가셨노라 하였사오니 어서 행차하옵소서.”
“말 대령하였느냐.”
“말 마침 대령하였소.”
백마욕거장시(白馬欲去長嘶)하고 청아석별견의로다. 말은 가자고 네 굽을 치는데 춘향은 마루 아래 툭 떨어져 도련님 다리를 부여잡고
“날 죽이고 가면 가지 살리고는 못 가고 못 가느니.”
말 못하고 기절하니 춘향모 달려들어
“향단아 찬물 어서 떠오너라. 차를 달여 약 갈아라. 네 이 몹쓸 년아 늙은 어미 어쩌려고 몸을 이리 상하느냐.”
춘향이 정신 차려
“애고 갑갑하여라.”
춘향의 모 기가 막혀
“여보 도련님 남의 생때같은자식을 이 지경이 웬 일이오. 절곡한 우리 춘향 애통하여 죽게 되면 혈혈단신
이내 신세 뉘를 믿고 살잔 말(인)고.”
도련님 어이없어
“이봐 춘향아 네가 이게 웬 일이냐. 나를 영영 안 보려느냐. 하량낙일수운기는 소통국의 모자(母子) 이별,
정객관산로기중에 오희월녀 부부 이별, 편삽수유소일인은 용산의 형제 이별, 서출양관무고인은 위성의
붕우(朋友) 이별. 그런 이별 많아도 소식 들을 때가 있고 생면(生面)할 날이 있었으니 내가 이제 올라가서
장원급제 출신하여 너를 데려갈 것이니 울지 말고 잘 있거라. 울음을 너무 울면 눈도 붓고 목도 쉬고 골머리도 아프니라. 돌이라도 망두석은 천만년이 지나가도 광석될 줄 모르고 나무라도 상사목은 창 밖에 우뚝 서서
일년춘절(一年春節) 다 지나되 잎이 필 줄 모르고 병이라도 훼심병은 오매불망 죽느니라. 네가 나를 보려거든 설워 말고 잘 있거라.”
춘향이 할 길 없어
“여보 도련님. 내 손에 술이나 망종 잡수시오. 행찬없이 가실진대 나의 찬합갊아다가 숙소참 잘 자리에
날 본 듯이 잡수시오. 향단아 찬합 술병 내오너라.”
춘향이 일배주 가득 부어 눈물 섞어 드리면서 하는 말이
“한양성 가시는 길에 강수(江樹) 청청(靑靑) 푸르거든 원함정을 생각하고 천시가절(天時佳節) 때가 되어
세우(細雨)가 분분커든 노상행인욕단혼이라. 마상(馬上)에 곤핍(困乏)하여 병이 날까 염려(되)오니 방초 무초 저문 날에 일찍 들어 주무시고 아침날 풍우상(風雨上)에 늦게야 떠나시며 한 채찍 천리마에 모실 사람
없사오니 부디부디 천금귀체 시사 안보(安保)하옵소서. 녹수진경도에 평안히 행차하옵시고 일자(一字) 음신
듣사이다. 종종 편지나 하옵소서.”
도련님 하는 말이
“소식 듣기 걱정 마라. 요지(瑤地)의 서왕모(西王母)도 주목왕(周穆王)을 만나려고 일쌍 청조 자래(自來)하여
수천리 먼먼 길에 소식 전송하였었고 한무제(漢武帝) 중랑장은 상림원 군부전(君父前)에 일척금서 보았으니
백안(白雁) 청조 없을망정 남원 인편(人便) 없을소냐. 슬퍼 말고 잘 있거라.”
말을 타고 하직하니 춘향 기가 막혀 하는 말이
“우리 도련님이 가네 가네 하여도 거짓말로 알았더니 말 타고 돌아서니 참으로 가는구나.”
춘향이가 마부더러
“마부야. 내가 문 밖에 나설 수가 없는 터니 말을 붙들어 잠깐 지체하여 서라. 도련님께 한 말씀 여쭐란다.”
춘향이 내달아
“여보 도련님. 인제 가시면 언제나 오시려오. 사절(四節), 소식 끊어질 절(絶), 보내나니 아주 영절,
녹죽(綠竹) 창송(蒼松) 백이숙제(伯夷叔齊) 만고충절(萬古忠節), 천산(千山)에 조비절, 와병(臥病)에
인사절(人事絶), 죽절(竹節), 송절(松節), 춘하추동 사시절, 끊어져 단절, 분절(分絶), 훼절, 도련님은 날 버리고 박절히 가시니 속절없는 나의 정절, 독수공방 수절할 제 어느 때에 파절(破節)할꼬. 첩의 원정(寃情) 슬픈 고절(苦節) 주야 생각 미절(未絶)할 제 부디 소식 돈절마오.
대문 밖에 거꾸러져 섬섬한 두 손길로 땅을 꽝꽝 치며
“애고 애고 내 신세야.”
애고 일성(一聲) 하는 소리 황애산만풍소삭이요 정기무광일색박이라. 엎더지며 자빠질 제 서운찮게 갈 양이면 몇 날 며칠 될 줄 모를레라. 도련님 타신 말은 준마가편이 아니냐. 도련님 낙루(落淚)하고 훗 기약을 당부하고 말을 채쳐 가는 양은 광풍(狂風)에 편운(片雲)일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