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의 샘/ Classic 엘가 / 첼로 협주곡-쟈크린 뒤 프레 Cello 늘푸른 봄날처럼 2019. 5. 27. 10:11 Elgar Cello Concerto in E Minor Op. 85 첼로 협주곡 E 단조 Edward Elgar, 1857~1934 Jacqeline du Pre: Cello London Symphony Orchestra / Sir. John Barbiroli -I. Adagio-Moderato -II. Lento-Allegro Molto -III. Adagio -VI. Allegro 에드워드 엘가는 헨리 퍼셀과 조지 프리데릭 헨델 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등장한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작곡가였다. 헨델의 경우엔 주로 영국에서 활동했지만 독일 태생의 작곡가였고, 퍼셀은 300년 전인 17세기의 작곡가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름다운 바이올린 소품 "사랑의 인사"와 "수수께끼 변주곡", "위풍당당 행진곡"으로 유명한 엘가는 무엇보다도 20세기에 작곡된 첼로 작품 중 가장 비극적인 곡 "첼로 협주곡 E단조"를 남긴 작곡가다. 엘가협주곡은 드보르쟉 슈만의 협주곡과함깨 3대 걸작중에 하나이다. 더구나 뒤프레가 연주한 곡은 누구보다도 훌륭해서 그뒤에도 숱한 연주자가 연주를 했지만 뒤프레것만 못하다 일반적으로 협주곡은 3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엘가는 교향곡과 같이 4개의 악장으로 작품을 구성했다. 감정의 클라이막스에 이르는 비탄에 잠긴 첼로의 노래 많은 사람들이 이 곡에서 위로를 받는다.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번지는 슬픔의 입자들이 온몸을 휘감는 듯한 느낌은 매우 특별한 체험을 제공한다. 엘가의 이 위대한 첼로 협주곡이 가지고 있는 가장 커다란 힘은 ‘마음의 위로’에 있다. 이 음악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슬픔의 바다에서 빛의 세계로 인도한다. 꿈보다 오래된 기억처럼, 가슴 속 아주 깊은 곳에서 퍼져나오는 눈물 같은 조각들은 엘가의 한숨과 섞여서 장중하게 흐른다. 첼로의 깊은 저음은 절절한 감정들을 핏빛으로 물들이며 촛불처럼 흔들린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8년 3월 22일 영국의 햄스티드에서 엘가는 "첼로 협주곡"의 첫 번째 스케치를 쓰기 시작했다. 종종 대포 소리가 들리는 와중에도 엘가는 부지런히 작곡을 계속했고, 마침내 7월에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었다. 1919년 10월 27일 마침내 첼리스트 잘몬트와 엘가가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의 협연으로 영국의 퀸즈 홀에서 곡을 초연했다. 그러나 청중의 반응은 썰렁했다. 많은 사람들은 엘가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던져준 달콤함을 기대했던 것이다. 더구나 오케스트라의 연습 부족도 문제였다. 악보의 출판도 2년 후에나 나왔다, 엘가의 부인은 이 협주곡이 초연된 후 5개월 뒤에 사망했고 엘가의 우울증은 더욱 심각해졌다. 사실 엘가로 하여금 작곡에 대한 의지와 용기를 북돋아주고, 그가 절망에 빠질 때마다 어둠 속에서 끌어올려준 존재가 바로 그의 부인 캐롤린 앨리스였다. 바이올린 소품 "사랑의 인사"는 바로 이러한 사랑의 결과물이다. ----------------------------------- 엘가의 "첼로 협주곡"은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와 연결되어 있다. 1973년, 다발성경화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뒤 프레의 비극적인 인생은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의 결혼 생활에도 위기를 가져오며 숱한 일화를 만들어냈다. 그녀가 존 바비롤리가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1960년대 연주는 ‘반드시’라고 할 만큼 제일 처음 들어야 하는 음반이다. 이 연주에는 뒤 프레의 눈물과 한숨이 모두 녹아 들어가 있으며 오케스트라도 최상급 연주를 들려준다. 비극성의 확장과 거대한 스케일이 자연스럽게 융합된 연주로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한 음반보다도 바비롤리와 함께 협연한 첫 번째 녹음이야말로 뒤 프레의 모든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앞날을 예감하듯이 고통으로 가득 찬 울림으로 엘가의 슬픔을 인류의 슬픔으로 승화시켰다. 그러나 남편은 뒤프레가 죽은후 곧 다른여자와 결혼했으며 한번도 무덤을찾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