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렇게 살자
비가 내린다. 참 지겹게도 비가 내린다.
우리의 장마철 비는 그래도 쏟아지는 시원스러움이 있어
후덥지근하게 가라앉은 마음을 후련하게 씻어 내리는 통쾌함이라도 있지만,
귀찮고 잔소리 많은 할망구 같은 이 곳의 비는 사람을 성가시게 하는
짜증스러움만 있을 뿐이다. 더구나 티브이 일기예보는 앞으로 3주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비가 내린다고 하니 짜증스러움을 넘어 울화가 치밀기까지 한다.
도통 이놈의 나라는 날씨까지 맘에 들지 않는다.
우리는 경계가 분명한 4계절을 살아와서인지 모든 것에 경계를 분명히 하는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자신을 너무 분명히 들어내는 사람은
겸양과 수양이 부족한 사람으로 여겨져
그다지 대접받지 못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왔다.
아마도 정떨어질 만큼 정확한 자연의 법칙에서
그 또한 자연스럽게 형성된 반사심리에서 기인된 것이 아닐까?
같은 이치로 이놈의 나라에 사는 인간들이란
잡은지 사나흘 지나 맛간 동태눈 같이 흐리멍텅하기도 하고
막걸리 서너되에 흥청거리는 장돌뱅이 훌치는 화냥년같이
이리도 쌜죽 저리도 흥흥거리는 날씨 때문인지
매사에 분명한 것을 덕으로 여기며 살아내고 있으니
사람 또한 정떨어지기는 매 일반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날씨가 좋다.
여름의 후덥지근하고 찜통 같은 더위는 혀 빼물고 죽을 만큼 화끈해서 좋고
겨울의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귀를 날랄 것 같은 매서운 바람은
청양고추처럼 독해서 좋다.
더구나 통큰 바람둥이처럼 화끈한 여름이 지나 천년묵은 구미호같이 독살스러운
겨울로 가는 사이에 야시야시한 갸날픔으로 가슴 설레게 하는 가을과,
겨울의 독한 추위에 얻어맞은 뺨으로 눈물을 흘릴 때쯤이면
누님 같이 따사로움으로 포근히 입김을 불어주는
봄은 얼마나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가.
우리네 더위에는 끈적거리는 열기가 있지만
그를 씻어 날리는 소나기가 있어 좋고
그 매섭고 혹독한 동장군도 삼한사온의 아량이 있어 좋다.
우리네 자연이 그러한데 맺고 끊음이 정확한 질서에서 조금 벗어나
베풀고 거두기를 조금쯤은 어리숙하게 한들 무엇이 그리 흠이 되랴.
세상 모든 이치를 정(正)으로만 따지고 들다가
그에 맞서 또 전부를 반(反)으로 몰고 가더니
그도 저도 아닌 것을 합(合)으로 우격다짐하듯이 꿰어 맞추는
이 놈들의 변증법적 사고방식보다는 만물을 음과 양으로,
자연과 인간을 오행의 생성과 상극으로 풀이하려는
우리네 사고방식이 얼마나 여유롭고
또한 자연스러운 일인가.
나는 그래서 우리나라의 날씨가 좋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좋다.
그리고 그 중 '우리'의 틀을 깨지않으면서도
'우리'를 벗어나 '우리'를 관조하려는 '우리'가 더욱 좋다
우리는 그렇게 살자